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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왜 나를 무서워하지 않지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07:11:45

채연우가 눈을 뜬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통증이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뜨겁게 갈라지는 듯했다. 실제로 검에 찔린 것도 아닌데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날카로운 것이 폐부를 긁었다. 연우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몸을 일으켰다.

“허억…….”

거친 숨이 터졌다.

눈앞에는 비 내리는 폐궁도, 피투성이가 된 이현도 없었다. 붉은 비단 휘장이 내려진 동궁전 침전이었다. 꺼졌던 등잔에는 다시 불이 붙어 있었고, 창호 너머에서는 새벽이 오기 전의 짙은 어둠이 눌러앉아 있었다.

꿈이었다.

아니.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손목이 너무 아팠다.

한소명이 붙잡았던 자리였다. 소매를 걷자 손목 둘레로 희미하게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섯 손가락 모양이 선명했다.

연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나는 당신을 부른 적이 없어요.’

소명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살아났다.

‘여기 오면 안 되는데.’

그리고 또 하나.

무너진 회랑 아래 서 있던 남자.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치던 이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두 번째 이현.

찾았다.

“…….”

연우의 손끝이 떨렸다.

그때 옆에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연우가 화들짝 돌아봤다.

침상 아래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저하!”

이현이었다.

연우는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가 두 걸음 앞에서 멈췄다.

꿈속의 장면이 겹쳐졌다.

검이 가슴을 관통하던 순간.

그녀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무릎을 꿇었다.

“저하. 정신 차리십시오.”

대답이 없었다.

이현의 얼굴은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덕분에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았다.

연우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금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세자의 얼굴을 보지 말 것.

하지만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연우는 손을 뻗었다가 다시 멈췄다.

또 하나의 금기.

자정이 지나면 세자의 손을 잡지 말 것.

이미 늦었다.

그 손을 잡았고, 그래서 꿈속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다시 만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미치겠네.”

연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누가?”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가 얼어붙었다.

이현의 눈이 떠져 있었다.

“…….”

“누가 미쳤다는 거지?”

조금 전까지 정신을 잃었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또렷한 목소리였다.

연우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 저하께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 네가?”

“…….”

“그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군.”

연우의 입술이 벌어졌다.

이 사람이 지금 농을 한 건가?

그러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얼굴을 보면 안 되니까.

이현이 몸을 일으켰다.

연우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황급히 거뒀다.

그 짧은 움직임을 이현이 놓치지 않았다.

“왜 멈췄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조금 전에는 내 손을 잘도 잡더니.”

연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기억하고 있다.

“그건 저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위급해 보이지 않나?”

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이현이 가까워졌다.

연우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한 걸음.

이현은 따라왔다.

또 한 걸음.

또 따라왔다.

“저하.”

“왜.”

“가까우십니다.”

“내 침전인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연우가 옆으로 비키려는 순간 이현의 팔이 움직였다.

탁.

손바닥이 연우의 뒤편 기둥에 닿았다.

연우의 몸이 그대로 멎었다.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현의 팔과 기둥 사이에 갇혀 버렸다.

향이 느껴졌다.

연우가 오늘 밤 쓰지 않은 바로 그 향.

옅은 침향 냄새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사람의 체온이 있었다.

꿈속에서는 피 냄새밖에 맡지 못했는데.

현실의 그는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상하군.”

이현이 말했다.

프롤로그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말이었다.

연우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아까는 그렇게 겁을 먹더니.”

그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지금은 다른 걸 두려워하는 얼굴이라.”

연우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얼굴을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는 거지.

“제 얼굴은 보이지 않으실 텐데요.”

“그래서 얼굴을 보고 싶어졌어.”

면사 끝이 움직였다.

이현의 손가락이었다.

연우가 즉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안 됩니다.”

정적.

연우의 얼굴이 굳었다.

……잡았다.

또 잡았다.

이번에는 자정이 지난 뒤라는 걸 뻔히 알면서.

연우가 화들짝 손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이현이 손을 뒤집어 연우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잡았군.”

“놓아주십시오.”

“왜?”

“그냥…… 놓아주십시오.”

손목을 감싼 손은 단단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연우가 한 번 더 손을 빼려 하자 이현의 힘이 느슨해졌다.

정말 놓아주었다.

그 즉시.

연우는 오히려 당황했다.

이현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싫은 건가?”

“예?”

“내가 닿는 것.”

연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싫으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두려운 것은 그의 손이 아니었다.

그 손을 잡으면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가 죽는 모습.

그리고 그 죽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그.

“저하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명을 받았습니다.”

결국 연우가 말했다.

“누구에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얼굴을 보지 말라는 것도.”

“예.”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것도?”

연우가 흠칫했다.

이현의 목소리에 희미한 웃음기가 묻었다.

“맞군.”

“……저하께서는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취미가 있으십니까?”

말하고 나서 또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현은 화내지 않았다.

“있나 보군.”

“…….”

“오늘 알았다.”

연우는 이 남자를 조금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소문 속의 세자 이현은 냉정하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웃는 모습을 본 궁인이 거의 없고,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연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저하.”

“말해.”

“조금 전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번에는 이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연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알고 있다.”

“손끝에서 피도 났습니다.”

“그것도.”

“그리고…….”

연우는 잠시 망설였다.

“꿈을 꾸셨습니까?”

공기가 바뀌었다.

아주 미세했지만 확실했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느슨한 긴장감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이현이 물었다.

“누가 그 말을 했지?”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알았어?”

연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해야 할까.

자신도 같은 꿈에 들어갔다고.

그곳에서 한소명을 만났다고.

당신이 죽는 걸 봤다고.

그리고 당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남자를 봤다고.

하지만 한소명의 경고가 떠올랐다.

보지 마세요.

연우는 결국 일부만 말했다.

“저도…… 잠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현의 시선이 내려앉았다.

“함께?”

“아마도요.”

“무엇을 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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