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 금은보화가 누구에게 가는 것인지 아느냐."조원철은 왕청원을 주시하며 물었다."그건 소인도 정말 모릅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갔으니, 소인이 건지고 싶어도 건질 수 없지 않습니까."왕청원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조원철은 더 이상 그를 다그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대인, 그 실려 나간 재물이 혹시 공부의 은자가 아니겠습니까?"왕청원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 단서를 제공했으니 죄를 씻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아니다."조원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공부의 은자는 관은이다."관은에는 관아의 표식이 찍혀 있다. 진원이 그 은자를 차지했다 한들 밖으로 함부로 꺼내 쓸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금방 눈에 띌 것이다."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긁어모은 은자일 겁니다. 진원은 병주의 수원과 수로를 독점하고 있으니……."왕청원은 어떻게든 진원과 선을 긋고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아는 진원의 악행을 모조리 털어놓았다.조원철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왕청원은 입이 닳도록 떠들다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다 털어놓았느냐."청류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아는 것은 모조리 고했습니다."왕청원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충성심을 보였다."네가 심부름 좀 해줘야겠다."조원철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분부만 내리십시오!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겠습니다!"왕청원은 흔쾌히 대답하며 넙죽 엎드렸다."말장난은 집어치워라. 너 같은 놈은 배신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청류가 코웃음을 쳤다. 말만 번지르르한 이 녀석이 가장 믿음직스럽지 못했다."당치도 않습니다! 소인은 그저 공을 세워 죗값을 치르고 목숨을 부지하고 싶을 뿐입니다."왕청원은 다시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조원철이 그를 살려주기만 한다면, 일이 끝나는 즉시 짐을 싸서 병주를 뜰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 이 진흙탕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진원에게 가서 일러라. 이번에 새
조원철의 압도적인 기세에 왕청원은 감히 거짓을 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 여인들은 어디서 데려온 것이냐."조원철이 다시 물었다."그게…… 모두 인근 마을의 처녀들입니다. 진원은 저희에게 떠돌이 도사 행세를 하게 하여, 무료로 사주를 봐주는 척 처녀들의 사주팔자를 알아내라 지시했습니다. 알맞은 사주를 찾아 보고하면 그가 알아서 처리했습니다."왕청원은 기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알아서 처리하다니,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청류가 호통 쳤다."그러니까…… 우선 은자를 주고 샀습니다. 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들은 기꺼이 돈을 받고 팔아넘겼습니다. 만약 은자로 해결이 안 되면 억지로 빼앗았습니다. 어차피 진원은 지부 대인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 힘없는 백성들이 관아에 억울함을 호소해봤자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흐지부지 덮이고 말았지요."왕청원은 조원철의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눈앞의 세자가 심기가 틀어져 당장 목을 치라 명할까 봐 두려웠다. 천인공노할 짓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직접 한 일은 아니었다. 전부 진원이 벌인 짓이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수재를 막기 위한 제방 공사에서 진원이 공부에서 내려온 은자를 빼돌렸다지. 그 일에 대해서도 짐작 가는 바가 있을 텐데."조원철은 싸늘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심문을 이어갔다."그건…… 소인도 소문만 들었을 뿐,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관아에서 진원에게 그 일을 맡겼다지요."왕청원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내막을 모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진원이 챙겨주는 두둑한 은자를 탐내어 편하게 지내려고 저택에 머물던 일개 술사일 뿐이었다. 진원이 그런 중대한 기밀을 그에게 털어놓을 리 만무했다."그 관은의 행방을 알고 있느냐."조원철은 계속해서 캐물었다."그건 모릅니다."왕청원은 고개를 저었다."바른대로 고하지 못해!"청류가 목소리를 높이며 다시 호통을 쳤다.왕청원은 화들짝 놀라며 식은땀을 닦았다. 그는 사시
"대인, 사람을 잘못 잡으신 거 아닙니까? 소인은 그저 제사나 올리는 일개 술사일 뿐입니다요. 진씨 가문이 뭘 했는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왕청원은 바닥에 냅다 이마를 찧으며 속으로 잔머리를 굴렸다.며칠 전, 그는 경성에서 내려온 자들이 빼돌린 관은의 행방을 쫓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관아에서 진원에게 서신을 보내 몸을 사리라 경고했는데, 왕청원이 우연히 그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다.그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정체 모를 대인 앞에 끌려와 엎드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진씨 가문이 저지른 짓은 하나같이 음지에서 벌인 악행이었다. 어떻게든 그들과 선을 긋고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었다.그는 입으로는 살려달라 빌면서도, 당장 풀려나면 진씨 저택으로 돌아가 짐부터 챙겨 달아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 엮였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좋은 말로 할 때 털어놓는 게 좋을 거다."조원철의 곁에 선 청류가 왕청원을 내려다보며 경고했다."네놈의 눈앞에 있는 분은 어전지휘사이자 진국대장군이시며, 진국공 세자이시다. 조정에서 폐하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분이시지. 세자께서 네놈에게 친히 하문하시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영광이다. 네가 술사라 하니 어디 한번 점을 쳐보거라. 오늘 네가 살아서 나갈 상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상인지 말이다."왕청원은 겁 많은 인간이었다.눈을 굴리는 모양새나 인중의 팔자수염이 꽤 교활한 인상을 주었지만 위협이 될 만한 자는 아니었다.청류는 조원철의 신분을 밝혀 압박을 가하면 진실을 실토할 것이라 판단했다."대인! 소인이 눈이 멀어 귀하신 분을 몰라뵈었습니다……."청류의 말을 들은 왕청원은 사색이 되어 연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눈앞의 사내가 그 유명한 진국공 세자 조원철일 줄이야.그의 명성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병주는 고사하고 경성 전체를 통틀어 조원철에게 맞설 자는 손에 꼽았다. 그가 얼마나 막강한 권세를 쥐고 있으며, 적을 처단할 때 얼마나 가차
성곽 밖 외진 곳에 자리한 별원. 현판 없는 대문에 높은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은밀한 곳이었다."대체 누구기에 이러시오! 당장 이거 놓지 못할까!"회청색 장포를 입은 왕청원이 험악한 얼굴의 두 사내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대문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길쭉한 얼굴에 팔자수염을 기른 그는 이리저리 발버둥을 치느라 머리가 헝클어져 몰골이 엉망이었다.진원은 영혼 혼례 제물로 쓸 여자에게 달거리가 왔다며 그를 불러 혼례 날짜를 미루고는 수고비로 두둑한 은자를 챙겨주었다. 횡재를 한 그는 곧장 거리로 나가 술이나 한잔하며 기분을 낼 참이었다.그런데 진씨 저택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뒤에서 그를 덮쳤다. 그러더니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새도 없이 입을 틀어 막힌 채 마차로 처박혔다. 이곳에 도착해 입에 물린 천을 빼내 주자, 그는 다급히 고함을 지르며 발악했다."입 다물고 들어가."등 뒤의 사내가 가차 없이 등을 떠밀자, 왕청원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오, 형님. 일처리가 참 빠르십니다."회랑을 지키던 청류가 청운 일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세자께 알리거라."청운이 지시했다.청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손짓했다."들어오시랍니다.""가자."청운이 왕청원의 뒷덜미를 거머쥐며 말했다.수하들은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왕청원은 눈치를 살피다 장검을 쥔 청운을 보고는 저항을 포기한 채 얌전히 끌려 들어갔다.단촐하고 평범한 방 안은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상석에는 젊은 사내가 꼿꼿이 앉아 있었다. 무심하고 서늘한 이목구비에 범접할 수 없이 고고한 위압감이 흘렀다.왕청원은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으나,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허름한 방이 화려한 궁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왕청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다. 그는 자신이 언제 저런 거물에게 밉보인 적이 있었는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꿇어라."청운이 거칠게 왕청원의 등을 떠
상처에 피가 고이자, 강유영은 진 부인의 손을 끌어내려 자신의 치맛자락에 피를 묻혔다."너 지금……."진 부인은 그제야 강유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달거리가 시작된 척하여 시간을 끌 생각이었던 것이다.산 사람의 혼례도 여인이 달거리하는 날을 피하는 법인데, 영혼 혼례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금기시했다.확실히 훌륭한 묘안이나, 자신만 꼼짝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그런 생각이 머리를 쳐들자, 진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남을 해치려 했던 죗값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경성으로 돌아가면, 한씨가 저를 해치라고 사주했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시겠습니까?"강유영은 상처에서 피를 짜내며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그… 그 여자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마."진 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한 승산이 없다면 나서지도 않습니다."강유영은 손을 놓고 고개를 숙여 피 묻은 자국을 살폈다.사실 그녀는 진 부인이 승낙할 것을 알고 있었다.살아남기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기세였다.굳이 질문을 던진 것은 계속 상처만 쳐다보고 있으면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질 테니까 주의를 돌리기 위함이었다."아직 부족하다."진 부인은 상처를 꽉 잡고 피를 더 짜주었다."이만하면 진짜 같구나."그녀는 치맛자락에 피를 조금 더 묻히고 세심히 살핀 뒤에야 손을 내렸다."상처를 싸매드리겠습니다."강유영은 진 부인의 겉옷을 걷고 속옷 끝자락을 찢어 상처를 감싸주었다."내가 몹쓸 짓을 했는데도 이렇게 챙겨주니 고맙구나.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진 부인은 지혈에 집중하는 강유영을 보며 뭉클함과 죄책감이 몰려왔다."부인이 가여워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강유영은 시선을 돌리고 싸늘하게 말했다."이따가 문이 열렸을 때 상처를 들키면 곤란해지니까 가려두는 것뿐입니다."진 부인이 불쌍한 척해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경성에서 병주까지 오는 내내 그토록 살뜰히 챙겼건만, 상대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그녀를 함정에
진 부인은 강유영이 자신이 죽거나 말거나 모른 척할까 봐 두려웠다."피를 흘릴지 목숨을 잃을지, 둘 중 하나를 고르십시오."어스름한 촛불이 비춘 강유영의 고운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나,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지독히 차가웠다.그녀는 속마음마저 꿰뚫어 볼 듯한 맑은 눈으로 고요히 진 부인을 응시했다."내, 내가……."진 부인은 시선을 피하며 머뭇거렸다.목숨을 잃을 수는 없었지만, 피를 흘리는 것도 아플 테니 싫었다. 두 가지 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제가 구해주기만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강유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주시했다.진 부인의 마음이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저 아플까 봐 겁을 먹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일 터였다."피를 써서 어떻게 시간을 번다는 말이냐?"진 부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거기까진 아실 것 없습니다. 그저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십시오. 정 싫으시다면 관두시지요. 방금 한 말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강유영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지금 진 부인과 길게 실랑이를 벌일 때가 아니었다. 말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칠 것이 뻔했다.달리 피를 구할 곳이 없었다. 오씨 어멈 일행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고, 제 몸에 상처를 내는 것도 싫었다.남은 사람은 진 부인뿐이었다. 어차피 진 부인이 자초한 일이니 손을 쓰는 데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피를 조금 뽑는 것쯤이야 괜찮다만…… 대체 무엇으로 피가 나게 만든단 말이냐? 여긴 날카로운 물건 하나 없지 않니."궁지에 몰린 진 부인은 마지못해 수긍하다가, 곧바로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찾은 듯,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부인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방법은 다 있습니다."강유영은 물러서지 않고 까만 눈동자로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알겠다."진 부인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깨닫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승낙하셨으니 잘 협조하십시오. 서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