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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Author: 임서아
허아연은 유건희가 건넨 메모지를 받아들며 말했다.

"네, 대표님. 이따 민규 선배랑 한번 상의해 볼게요."

그렇게 유건희는 몇 가지 사항을 더 전달했고 허아연은 바로 아래층으로 한민규를 찾으러 내려갔다.

함께 팔로업 명단을 상의하던 한민규는 주현우, 권승준, 그리고 일흔 살의 할머니인 나문희를 허아연에게 맡기고 본인은 나머지 사용자 세 명을 맡았다.

나머지 두 명은 팀 내 다른 담당자에게 배정했다.

담당 사용자 자료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온 허아연은 먼저 나문희에게 연락했다.

제품은 어제 이미 받았고 손자가 어젯밤 내내 도와서 설명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몇 가지 기능은 결국 헷갈린다고 했다.

연세가 있는 분이기도 하고 가정용 로봇이 워낙 생소한 기술이다 보니 허아연은 오후에 시간을 내어 직접 찾아뵙고 사용법을 설명하기로 했다.

나문희는 연신 좋다며 허아연이 참 다정하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책상 앞에서 웃으며 전화를 끊은 허아연은 곧바로 AI로 어르신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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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03화

    "몇 년 동안, 텅 빈 방을 혼자 지키고 현우 씨 대신 뒷수습을 할 때마다 합의서를 줘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어요. 그때마다 꾹 눌러 참았어요.""그런데 주현우 씨, 사람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기다려주는 건 더더욱 그래요. 세상에 누구도 언제까지나 당신을 감싸주고 맞춰줄 순 없어요.""내가 원래부터 잘 참는 사람인 줄 알아요? 내가 진짜 감정도 없고 괴롭지도 않고 현우 씨 일들 하나도 신경 안 쓰는 줄 알아요? 현우 씨와 오지은이 같이 다니는 거 정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아요? 그래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주현우 씨를 향한 감정은 3년 동안 주현우 씨의 거듭된 배신으로 이미 다 닳아 사라졌으니까요.""현우 씨는 우리 결혼을 배신한 거예요.""주현우 씨, 우리 오랜 시간 알고 지냈으니 잘 알 거잖아요. 내가 이혼 합의서를 건넨 순간부터 우리 혼인은 더 이상 어떠한 가능성도 없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더 이상 주현우 씨 일에 나서서 대신 수습하지 않을 거예요.""물론 주현우 씨가 누구를 만나든 이제 상관없어요. 내 마음속에서 주현우 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편이 아니었으니까요.""지금 이렇게 합의서에 사인도 안 하고 신청도 안 하고 질질 끄는 게 내가 만만하게 보여서인지, 아니면 이혼만 안 하면 예전처럼 내가 다 받아주고 감싸주고 온갖 거지 같은 뒷수습까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허아연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니에요, 주현우 씨. 난 이제 예전 허아연이 아니에요. 더 이상 주현우 씨만 바라보며 살지 않을 거예요."잠깐 말을 끊었던 허아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절차는 주현우 씨 마음대로 해요. 안 밟아도 그만이고요. 현우 씨가 유부남인 상태로 바람을 피워서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그러니까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 줘요. 한 달 후, 두 달 후, 연말까지 이런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3년을 참고 억눌러왔는데 주현우가 계속 질질 끌더니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02화

    전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말에 감동이 밀려온 허아연은 주민경이 남자였으면 애초에 결혼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주민경은 그 말에 깔깔 웃으며 지금이라도 하고 싶으면 자기는 상관없다고 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오니 마침 유미 이모가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이 시간에야 들어오는 허아연을 보며 유미 이모가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사모님, 이렇게 야근하시면 몸이 버티질 못해요. 저녁도 아직 못 드셨죠? 밥 남겨뒀는데 가져다드릴게요."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유미 이모."밥을 먹는 동안 유미 이모는 주현우가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요즘 부쩍 야위어 보인다고 했다.허아연은 그냥 웃기만 했다.밥을 다 먹고 위층으로 올라간 허아연은 주현우가 이미 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올라가자마자 주현우가 손에 물컵을 들고 안방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복도에서 마침 마주치자 허아연이 가볍게 인사했다."돌아왔어요?""응."주현우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그때 체험 로봇이 떠오른 허아연이 말했다."참, 회사에서 보낸 체험 제품 있잖아요. 궁금한 점이나 건의 사항 있으면 나한테 보내줘요."주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알았어요."주현우가 허아연을 보며 말했다."허아연, 업무 시간 좀 조율해. 계속 이렇게 일하면 몸이 못 버텨.""알아요, 조절할게요."두 사람은 그렇게 복도에 서 있었다. 노란 불빛이 은근히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현우가 허아연의 앞을 막고 선 모양이 됐다.갑자기 찾아든 침묵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이 같았다.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보던 허아연이 왼쪽으로 비키려는 순간, 주현우도 왼쪽으로 비켜섰다.두 사람은 또 다시 마주쳤다.허아연이 얼른 오른쪽으로 자리를 내주자 주현우도 오른쪽으로 비켜섰다.또 마주쳤다.두 번 연속 마주치자 허아연은 조금 난감해졌다. 그러다 허아연이 문득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참, 진 변호사님한테 전화했더니 이미 합의서를 작성해서 현우 씨한테 전달했다고 하더라고요. 나 지금 시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01화

    허아연은 유건희가 건넨 메모지를 받아들며 말했다."네, 대표님. 이따 민규 선배랑 한번 상의해 볼게요."그렇게 유건희는 몇 가지 사항을 더 전달했고 허아연은 바로 아래층으로 한민규를 찾으러 내려갔다. 함께 팔로업 명단을 상의하던 한민규는 주현우, 권승준, 그리고 일흔 살의 할머니인 나문희를 허아연에게 맡기고 본인은 나머지 사용자 세 명을 맡았다. 나머지 두 명은 팀 내 다른 담당자에게 배정했다.담당 사용자 자료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온 허아연은 먼저 나문희에게 연락했다. 제품은 어제 이미 받았고 손자가 어젯밤 내내 도와서 설명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몇 가지 기능은 결국 헷갈린다고 했다. 연세가 있는 분이기도 하고 가정용 로봇이 워낙 생소한 기술이다 보니 허아연은 오후에 시간을 내어 직접 찾아뵙고 사용법을 설명하기로 했다.나문희는 연신 좋다며 허아연이 참 다정하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책상 앞에서 웃으며 전화를 끊은 허아연은 곧바로 AI로 어르신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제품 사용 설명서를 만들었다.작업을 마친 뒤에는 권승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며 권승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허아연은 서둘러 자기소개를 했다."권 비서실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라이트 테크의 허아연이라고 합니다."전화 너머에서 허아연의 소개를 들은 권승준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허 선생님."허아연은 정중하게 대답했다."비서실장님, 스타라이트 홈 로봇 체험 사용과 관련해서 얘기 좀 나누려고 연락드렸어요. 사용하시는 중에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제품에 건의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지금 연락드린 번호가 제 번호예요."허아연은 차분하고 부드럽게 연락한 용건을 전달했다.전화기 너머 권승준의 목소리가 더 부드러워졌다."허 선생님, 스타라이트 테크에서 보내주신 체험 제품은 아직 사용해 보지 못했어요. 사용해 보고 나서 궁금한 점이나 좋은 건의 사항이 있으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괜찮겠어요?""그럼요, 비서실장님. 실례했습니다.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00화

    주건영이 말했다."이혼 생각이 없었다고? 그러면 왜 잘살아 보지 않고 오지은이랑 그렇게 붙어먹어?"주건영의 말에 주현우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금 잘 달래고 있어요."어릴 때부터 주현우가 고개를 숙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늘따라 풀이 죽은 듯한 주현우의 모습에 주건영도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고 그저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빨리 달래서 앞으로는 똑바로 잘 살아."말을 마친 주건영이 한마디 덧붙였다."단 아연이가 정말 싫다고 하면 억지로 잡지는 마. 괜히 그 애 힘들게 하지 말고.""삼 년 동안 네가 아연이한테 잘못한 거니까 나중에 줘야 할 건 한 푼도 빠짐없이 줘. 혹시라도 얄팍한 수 쓰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주건영이 덧붙이는 말을 들은 주현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알아요."이제는 주현우와 허아연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허아연의 사직서에는 주현우의 아버지가 사인했고 이제는 할아버지까지 이혼을 권하고 있었다.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려던 주현우는 병원이라는 게 생각나 다시 집어넣었다.어쩌면 처음부터 주현우의 방법이 잘못됐던 걸지도 몰랐다.……그 시각, 병원을 나온 주민경은 곧장 차를 몰아 허아연을 새집으로 데려갔다.주민경이 주문한 홈시어터가 오늘 도착하는 날이었다. 점점 살림살이가 갖춰져 가는 집을 보니 허아연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혼자만의 생활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주민경이 허아연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허 대표, 어때? 괜찮지?"허아연이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주 대표 안목이 최고지.""당연하지,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허아연이 허리를 씰룩여 주민경과 엉덩이를 살짝 부딪치며 말했다."지금 나 비꼬는 거야?"말이 끝나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주문한 배달 음식이 도착한 것이었다.이번에도 에어컨을 쐬며 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다. 다만 이번엔 볼 수 있는 TV가 생겼다.밥을 먹던 주민경이 가구는 수요일에 들어오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199화

    그때 허아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주현우를 슬쩍 보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엘리베이터 왔어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현우는 허공에 뻗어 있던 오른손을 가볍게 움켜쥐고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두 사람이 차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허아연이 주현우에게 물었다."할아버지 몇 층이에요?""23층."허아연은 군말 없이 23층 버튼을 눌렀다. 주현우의 기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요즘은 그럴 의지도 없었다.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23층에 멈췄다. 두 사람이 주건영 병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 주민경도 와 있었다.허아연이 온 걸 본 주민경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아연아, 왔어?""민경아."주민경에게 인사를 건넨 허아연은 병상 쪽으로 다가가 주건영의 손을 살며시 잡고 몸을 숙이며 다정하게 물었다."할아버지, 좀 어떠세요?""별거 아닌데 의사가 심하게 말한 거야."옆에서 주민경이 고자질을 했다."술 마시면 안 된다는데 몰래 마시더니, 잘됐죠? 병원까지 오고 말이에요.""사람이 먹고 마시기 위해 평생 사는 거 아니겠어?"허아연이 피식 웃으며 뒤에 있던 의자를 당겨 옆에 앉았다. 주건영의 손은 여전히 꼭 잡고 있었다. 주건영이 계속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처음엔 주건영의 몸 상태 얘기를 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허아연 할아버지와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옛 시절 이야기로 넘어갔다. 허아연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옆에 있던 주민경이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드리겠다고 하자 주건영은 그제야 허아연의 손을 놓으며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무슨 책을 써."사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영화도 이미 나와 있었다.주현우는 소파에 반쯤 기대어 손에 든 책을 무심히 넘기며 이따금씩 세 사람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허아연이 아무 걱정 없이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 모습을 본 주현우는 한참이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198화

    허아연의 주 대표님이라는 호칭에 주현우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지금 주현우는 오지은과 함께 있었고 허아연이 주 대표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호칭도 없었다.허아연이 가려는 걸 본 권승준이 계단까지 배웅했다.유건희 차 앞에 다다르자 허아연은 몸을 돌려 권승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오늘 밤 접대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권승준은 허아연과 가볍게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아주 정중하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허아연이 몸을 숙여 차에 오를 때는 또 조심스럽게 허아연의 머리 위를 보호해 주었다. 권승준은 줄곧 권유성과 함께 손님들을 배웅했지만 허아연만 계단 아래까지 배웅하고 차 문을 열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문 앞에서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허아연을 배웅하고 돌아왔을 때 주현우의 차도 왔다.권승준은 대범하게 악수하며 다른 손으로는 주현우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현우야, 이제 또 보자. 다음번엔 제수씨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이어서 오지은과도 가볍게 악수했다. "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권 비서실장님, 안녕히 계세요."주현우와 오지은이 차에 오르는 걸 지켜본 권승준은 계속해서 권유성을 도와 다른 손님들을 배웅했다.……11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 허아연이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주현우가 침실에서 나왔다.주현우가 집에 있는 걸 본 허아연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인사했다."돌아왔네요."허아연을 담담하게 지켜보던 주현우가 물었다."너도 권 어르신을 알아?""권 어르신은 스타라이트의 기술 고문이세요. 유 대표님이 얼마 전에 나를 데리고 인사드리러 갔었거든요."허아연이 이렇게 말하자 주현우는 이해했다.고개를 숙여 허아연을 보던 주현우가 다시 말했다."할아버지 다리 지병이 또 도지셨어, 내일 같이 뵈러 가자."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두 사람의 서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이상, 이런 상황에는 당연히 찾아봬야 했다. 게다가 두 집안 어르신들의 관계도 돈독했다.허아연의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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