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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 이름표

Author: 유영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23:12:13

열쇠는 두 개였다.

한무현이 하나를 넣고 돌렸다. 문이 열렸다.

서지안은 뒤에 선 법무팀장을 봤다. 서류를 만들다 말고 올라온 사람이었다.

"팀장님도 들어오세요. 저 혼자 열었다는 말이 나오면 안 되니까요."

"…예."

셋이 들어갔다.

책상 위에 종이도 필기구도 없었다. 서랍 세 칸도 다 비어 있었다.

"…오늘 치운 게 아닙니다. 서랍 안쪽 먼지가 고르게 앉아 있습니다."

언제 나가도 되게 해 두고 십오 년을 앉아 있던 방이었다.

잠긴 것은 창가 쪽 서류함 하나였다. 남은 열쇠가 그것이었다.

사보 낱권이 넷. 한 권이 십오 년 전 가을호였고 나머지는 앞뒤 해였다.

한 권만 없어지면 그 해가 드러나니 같이 걷어 간 것이었다.

47쪽을 펼쳤다. 창립 기념 단체 사진이 그대로 있었다.

찢은 자리도, 지운 자리도 없었다.

없애려던 것이 아니었다. 창고에 그 호가 없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오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서지안이 그 사보를 들고 있었다.

표지에 발행 연도가 박혀 있었고, 문경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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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41화 — 약속

    신호가 여섯 번째로 가다가 끊겼다.서지안은 전화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문경석의 휴대전화를 봤다.『출발했습니다.』강도현이 기둥 뒤에서 나와 그 화면을 봤다. 문경석이 보낸 윗줄까지 읽고 얼굴이 굳었다."…지금 가자.""가는 데 15분이에요. 문 앞은 지금이고요."오전에 서영애 쪽은 강도현의 전화로 서지안을 속이려 했다. 이번에는 문경석의 전화가 서지안 손에 있었다.들켰다는 걸 알면 문 앞의 남자는 셔터 말로 밀어붙인다. 모르면 새 말을 기다린다.기다리게 해야 했다. 서지안은 답을 썼다.『정정합니다. 회장님이 방금 말을 바꾸셨습니다. 셔터 말 아닙니다. 새 말 확인되면 드리겠습니다.』답이 20초 만에 왔다.『3층 앞입니다. 빨리 주십시오.』서지안의 손끝이 굳었다.3분 전에 관리실은 3층 복도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출입도 막았다.그런데 벌써 문 앞이었다. 막힌 문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서지안의 전화에 문자가 떴다. 조성달이었다.『누가 문을 두드립니다. 셔터 말을 했습니다. 안 열었습니다.』『회장님이 오신다고 한 지 몇 분 안 됐는데 너무 빨라서요. 전화 소리 날까 봐 못 받았습니다.』서지안은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가게를 넘긴 뒤에도 아침마다 셔터를 반쯤 올렸다 내리던 사람이었다. 서두르는 발소리는 그런 사람이 먼저 알아들었다.서지안은 조성달에게 답을 썼다. 이번에는 소리 내지 않았다.『셔터 말은 새어 나갔어요. 이제 그 말 하는 사람은 열지 마세요.제가 가면 묘지에서 드린 약속을 말할게요.』공원묘지 두 비석 앞에서, 둘만 있을 때 한 약속이었다.강도현이 관리실을 다시 불렀다."3층에 누구 올려 보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40화 — 둘

    서지안은 손을 내밀었다.문경석이 한참 그 손바닥을 봤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올려놓았다.서지안은 운전석에 앉았다. 차 안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몰고 들어온 차였다.트렁크가 열릴 만큼 앞으로 뺐다. 내려서 버튼을 눌렀다.뚜껑이 올라갔다.강도현이 옆으로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두 손목이 등 뒤에서 케이블 타이로 묶여 있었고, 입에 넓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왼쪽 눈썹 위가 찢어져 피가 까맣게 말라 있었다.움직이지 않았다."…선배."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다.서지안은 트렁크 턱을 잡았다. 손가락 끝이 하얘졌다."선배."속눈썹이 떨렸다. 눈이 떠졌다.그 눈이 서지안을 알아봤다.서지안은 숨을 한 번에 다 내쉬었다. 테이프 끝을 잡고 천천히 떼어 냈다."…혼자 왔어?"목이 잠겨 있었다. 오전에 『혼자 가지 마.』라고 보낸 사람이 트렁크 안에서도 그걸 먼저 물었다."혼자 안 왔어요. 문 실장님이랑 왔어요."강도현의 시선이 서지안 어깨 너머로 갔다. 문경석이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트렁크 옆 칸에 공구함 있어."니퍼로 케이블 타이를 끊었다. 강도현이 손목을 앞으로 가져오다가 얼굴을 찡그렸다.다섯 시간 가까이 뒤로 꺾여 있던 팔이었다.서지안은 그 손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어떻게 된 거예요.""조성달 씨 내려 드리고 나오는 길에 신호에서 뒤차가 받았어. 내리니까 둘이었어. 한 명이 뒤에서 쳤고.""조성달 씨 어디 계신지 물었어요?""몇 번. 서아 학교 이름까지 대면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39화 — 지하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문경석이 서류 봉투를 들고 내렸다."회장님."이번에도 먼저 인사한 것은 그쪽이었다."외근이 길어졌습니다."서지안은 그 얼굴을 봤다. 오전에 봤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십오 년을 이 얼굴로 회사를 다녔다는 뜻이었다."문 실장님. 실장님 방 열었어요."문경석의 손이 봉투를 고쳐 쥐었다. 그것뿐이었다."…회장 권한이시니까요.""법무팀장하고 한무현 씨 같이 들어갔어요."복도 끝 그의 방문이 열려 있었다. 문경석이 그쪽을 한 번 봤다.시선이 돌아오는 길에 회장실 앞을 지났다.회장실 문도 열려 있었다.안에서 색연필이 바닥에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서지안은 반걸음 옮겨 그 시선 앞에 섰다.문경석이 회장실 쪽에서 눈을 바로 떼지 않았다."…회장실에 손님 계십니까.""제 딸이에요."숨기면 그것이 값이 된다. 회사 사람 모두가 회장 딸이 와 있는 걸 알게 드러내는 쪽이 오히려 안전했다."학교 끝나고 제가 데려왔어요. 오늘은 제 옆에 있을 거예요."문경석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실장님. 지하에서 올라오셨네요.""…차를 두고 왔습니다.""무슨 차요."문경석이 처음으로 대답을 안 했다."같이 내려가시죠."서지안은 회장실 쪽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그쪽으로 보냈다."한무현 씨. 3시 50분까지 제가 안 올라오면 경찰에 거세요. 지하 2층이라고 하시고요.""…회장님.""서아 옆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문경석이 먼저 지하 2층을 눌렀다. 카메라가 꺼진 그 층이었다.혼자 올려 보냈으면 지금쯤 위에 전화를 걸고 있을 사람이었다.같이 타고 있으면 그것을 못 한다. 그래서 데리고 내려온 것이었다."주주총회 전날 새벽에 제 방에 위임장 사본 놓고 가셨잖아요.그때 왜 저한테 주셨어요."문경석이 층수 표시를 봤다."…그때는 서영애 부회장님이 지실 것 같았습니다."숫자가 두 칸 더 내려갔다. 좁은 칸 안에서 문경석에게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지금은 제가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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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쇠는 두 개였다.한무현이 하나를 넣고 돌렸다. 문이 열렸다.서지안은 뒤에 선 법무팀장을 봤다. 서류를 만들다 말고 올라온 사람이었다."팀장님도 들어오세요. 저 혼자 열었다는 말이 나오면 안 되니까요.""…예."셋이 들어갔다.책상 위에 종이도 필기구도 없었다. 서랍 세 칸도 다 비어 있었다."…오늘 치운 게 아닙니다. 서랍 안쪽 먼지가 고르게 앉아 있습니다."언제 나가도 되게 해 두고 십오 년을 앉아 있던 방이었다.잠긴 것은 창가 쪽 서류함 하나였다. 남은 열쇠가 그것이었다.사보 낱권이 넷. 한 권이 십오 년 전 가을호였고 나머지는 앞뒤 해였다.한 권만 없어지면 그 해가 드러나니 같이 걷어 간 것이었다.47쪽을 펼쳤다. 창립 기념 단체 사진이 그대로 있었다.찢은 자리도, 지운 자리도 없었다.없애려던 것이 아니었다. 창고에 그 호가 없으면 그만이었다.그런데 오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서지안이 그 사보를 들고 있었다.표지에 발행 연도가 박혀 있었고, 문경석의 시선이 거기로 한 번 갔다.놓친 한 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그리고 10시 41분에 조성달의 조사 일정을 열었고, 10시 50분에 회사에서 나갔다.내가 이걸 들고 그 앞에 섰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이것이다.서류함 아래 칸에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봉해져 있지 않았다.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표로 만들어 인쇄한 한 장이었다.학교 이름. 3반. 담임 이름.등교 8시 40분. 하교 1시 40분.아파트 동 호수. 차는 정문 앞에 세워야 함. 사람은 걸어서 들어감.하교 칸 옆에 인쇄된 『후문』 위로 볼펜 줄이 가 있고, 그 옆에 『정문』이라 적혀 있었다.서지안의 손이 종이를 놓지 못했다.김선호는 어제 그 단지에 걸어 들어왔다. 차를 세울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걸어 들어가면 된다는 것을 미리 읽고 온 것이었다.인쇄된 쪽이 후문이었다. 후문으로 정한 것은 지난주 화요일, 학예회는 그다음 날이었다.그날에 맞춰 찍고, 그 뒤에 볼펜으로 고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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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시 41분에 문자가 왔다.『이상 없음.』강도현 번호였다. 서지안은 그 세 글자를 두 번 읽었다.오전에 헤어질 때 삼십 분마다 넣기로 했다. 내용은 없어도 된다고 했다.앞의 두 번은 『ㅇ』 한 글자였고, 시간이 정확했다.10시 47분 다음은 11시 17분이어야 했다. 24분이 늦었다.그리고 글자가 늘었다.서지안은 답을 쓰지 않고 손을 멈췄다.전화를 걸면 안 받으면 그만이고, 받아도 목소리를 안 내면 그만이다.그래서 글자로 물었다.『아까 큰길에서 타고 오신 차, 흰색이었죠?』답이 40초 만에 왔다.『응.』검은색이었다. 갓길에서 내리는 것을 봤고, 오는 동안 백미러로 두 번 봤다.강도현이면 40초가 안 걸린다. 그리고 틀린 색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40초는 확인하고 답한 시간이었다. 확인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뜻이었다.손끝이 차가워지는데 머리는 오히려 빨라졌다.서지안은 한 번 더 보냈다.『어제 저한테 마지막으로 하신 말 뭐였죠?』색은 옆에서 알려 줄 수 있다. 그 자리에 없던 사람이 알려 줄 수 없는 것을 물어야 했다.시계 초침이 세 바퀴를 돌았다.답이 오지 않았다.어제 놀이터 벤치에서였다. 강도현이 서지안의 손을 잡고 그러면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열 걸음 앞에서 모래를 만지던 아이도 그 말은 못 들었다.그 말을 아는 사람은 둘뿐이었다.서지안은 회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법무팀장님 지금 올라오시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한 실장 연결해 주세요. 지금이요."비서실 직원이 수화기를 들었다."회장님. 그리고 서아 학교에서 조금 전에 전화가 왔었습니다."서지안의 발이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136화 — 부회장실

    배창현이 회장실로 들어온 것은 11시 10분이었다.부회장이었다. 서영애가 구속되고 넉 달 비어 있던 자리에, 이사회 만장일치로 앉힌 사람이었다.그 만장일치를 만든 것이 서지안이었다.서지안은 선 채로 배창현이 들어오는 것을 봤다.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웃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그때는 이 얼굴이 사보 47쪽에 있는 줄 몰랐다."앉으세요.""금방 나가겠습니다."배창현은 소파에 앉지 않고 책상 앞에 섰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부회장님. 아까 전화는 문경석 실장 방에서 하셨죠.""예. 지나가다 들렀는데 자리에 없어서, 전화만 쓰고 나왔습니다.""실장이 어디 갔는지는 아세요?""모릅니다. 아침에 한 번 봤고 그 뒤로는 못 봤습니다."서지안은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문경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서지안도 아침 엘리베이터였다."오전에 감사팀 건은 들었습니다.""…네.""회장님. 그 건은 사내 감사로 끝내시는 게 낫습니다."서지안은 서랍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이유를 여쭤도 될까요.""검찰로 넘기시면 우리 감사 기록이 통째로 들어갑니다. 십오 년 치가요."십오 년.배창현은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회사 문서 보존 연한이 십오 년이라 나온 숫자일 수도 있었다."기록이 들어가면 뭐가 문제인가요.""문제라기보다, 회장님이 취임하시고 나서 결재하신 인사가 그 안에 다 있습니다."서지안은 그제야 배창현이 무엇을 걸고 있는지 알았다.감사팀장을 검찰로 넘기면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둔 것도 같이 나온다.문경석을 잡으면 그를 올린 결재란에 서지안 이름이 있다.회장이 자기 손으로 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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