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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作者: 오타쟁이
심영지가 미처 이유를 묻기도 전에, 부석빈의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진미령이 걸어 나왔다.

화려한 맞춤 드레스에 완벽한 화장.

재벌가 아가씨 특유의 기품이 흘러넘쳤다.

마치 이 빌딩의 안주인이라도 된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심영지는 그제야 동료들이 왜 그런 묘한 시선을 보냈는지 깨달았다.

다들 심영지가 미래의 사모님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런데 하루아침에 부석빈이 약혼을 발표하면서, 심영지의 처지가 우스워진 것이다.

오히려 진미령은 심영지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왔다.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띤 채, 손에 든 청첩장을 건네며 살갑게 말했다.

“심 비서님, 안녕하세요. 다음 주에 저랑 석빈 씨 약혼식이 있어서요. 청첩장 드리려고 직접 왔어요.”

“심 비서님이 석빈 씨 곁에 가장 오래 계셨잖아요. 꼭 오셔서 축하해 주셔야 해요.”

심영지는 곧바로 흠잡을 데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두 손으로 청첩장을 받아 들었다.

“두 분의 약혼을 축하드립니다.”

진미령은 미소를 유지한 채 한 발짝 다가오더니, 두 사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본인이 부석빈의 아내가 될 줄 알았다면서? 꿈도 참 크게 꾸셨네.”

“석빈 씨가 심 비서 데리고 기술 연습 좀 했나 봐. 그래야 결혼해서 날 기쁘게 해줄 테니까.”

“우리 사이의 격차를 똑바로 봐. 서둘러 미련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얼굴의 미소는 바뀌지 않았고 태도도 다정했다. 남들이 보면 친근하게 귓속말을 나누는 걸로 착각할 만했다.

심영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지만, 가방끈을 쥔 손가락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미령의 행동이 이해는 갔다. 남편의 전 애인이 자기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걸 좋아할 여자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심영지는 입술을 깨물더니, 스스로 자세를 한껏 낮추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제 분수는 제가 잘 압니다.”

진미령의 웃음기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러길 바라요. 하지만 난 원래 남을 믿고 도박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곧 진미령이 심영지의 손을 끌어당기면서 스스로 뒤로 털썩 넘어졌다.

심영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진미령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억울하다는 듯 심영지를 올려다보았다.

“심 비서님, 저는 좋은 마음으로 약혼식에 초대하려던 것뿐인데 왜 절 밀치셨어요?”

마침 사무실 문이 열리고더니 부석빈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진미령을 발견한 부석빈은 다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미령아, 무슨 일이야?”

진미령은 눈시울을 붉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심 비서님께 약혼식 청첩장을 드렸는데, 갑자기 화를 내시면서 날 밀치고는 꺼지라고 하셨어.”

부석빈이 심영지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심영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서둘러 해명했다.

“저는 밀지...”

하지만 부석빈은 심영지의 말을 매몰차게 끊고는 진미령에게 말했다.

“누가 얘한테 청첩장 주랬어?”

순간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남자의 무자비한 멸시에 심영지의 가슴은 날카롭게 찔리는 듯했다.

진미령은 흠칫 놀란 듯하더니, 금세 눈웃음을 치며 부석빈에게 콧소리를 냈다.

“그래도 석빈 씨 수석 비서잖아. 석빈 씨 사람 챙겨주려고 그런 건데.”

부석빈은 진미령을 번쩍 안아 들고는 그대로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걸음을 내디디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우리 회사 미래의 안주인이야. 그 누구도 너보다 중요하지 않아. 어디 다친 거야? 좀 보자.”

심영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선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미령도 참 성급했다. 사직서를 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일을 벌이다니.

저렇게 어설픈 연기를 부석빈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저 알면서도 기꺼이 감싸주기로 한 것이겠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울고 떼쓴다고 공정한 대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영지는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덤덤하게 사직서를 꺼내 들었다.

부석빈의 서명을 받으러 들어가려던 순간, 그가 갑자기 다시 밖으로 나왔다.

훤칠한 체격의 그가 성큼 다가오더니, 긴 손가락으로 심영지의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통보했다.

“미령이가 널 보기 불편해하니까 그만둬.”

부석빈의 싸늘한 눈매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심영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미리 준비해둔 사직서를 꽉 쥐었다.

BH그룹에서 7년을 뼈 빠지게 일했지만, 이렇게 비참한 방식으로 쫓겨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영지는 씁쓸하게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울면서 매달리지 않는 담담한 태도에, 부석빈은 왠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오늘 당장 짐 싸서 나가. 재무팀에 위약금은 두 배로 지급하라고 지시할 테니까.”

심영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부석빈은 미련 없이 뒤돌아 가버렸다.

자리에 앉은 심영지는 미리 써 둔 사직서를 찢어버리고, 곧바로 사내 시스템을 통해 퇴사 결재를 올렸다.

부석빈이 미리 인사팀에 손을 써둔 모양인지, 퇴사 신청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통과되어 곧장 부석빈에게 넘어갔다.

곧이어 심영지의 모니터에 알림창이 떴다.

[퇴사 신청이 승인되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심영지의 계좌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퇴직 위로금이 입금되었다.

심영지는 신속하게 짐을 챙겼다. 소지품 상자를 품에 안고 회사를 나서면서, 부석빈의 사무실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문이 꽉 닫혀있지 않아서 문틈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부석빈은 시선을 내리깐 채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진미령은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진미령은 한 입 떠먹고는, 다시 한 스푼을 크게 떠서 부석빈의 입가로 가져갔다.

“한 입 먹어봐. 이거 진짜 맛있어.”

부석빈은 그녀가 입을 댔던 숟가락인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작은 케이크 조각을 받아먹었다.

“맛있네.”

심영지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입사 첫날부터 심영지는 부석빈에게 두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첫째, 심한 결벽증이 있어서 남과 식기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처음엔 침대 위에서 키스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첫 키스를 나눈 건 심영지가 고열로 앓아누웠을 때였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웅얼거리다 우연히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 것이 시작이었다.

심영지는 기겁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남자가 그녀의 입술에 깊게 입을 맞췄다.

그때 심영지는 자신이 그에게 꽤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했다.

둘째, 부석빈은 단것을 질색했다.

7년을 곁에서 모셨지만, 부석빈이 단 음식을 입에 대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기분 전환 삼아서 사 온 작은 조각 케이크에도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심영지는 부석빈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그의 취향과 식성을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두고 달달 외웠다.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그 수첩은 전부 다 우스운 헛짓거리였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금기도 무의미해질 뿐이었다.

가방에서 묵직한 수첩을 꺼낸 심영지는 씁쓸하게 웃더니, 미련 없이 수첩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돌아섰다.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든 부석빈은, 문틈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잠시 멍하니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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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제25화

    부석빈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진미령이 몰래 F시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마침 너도 여기로 출장을 왔다고 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와봤어.”“다행이야... 늦지 않았네.”그 말을 끝으로 부석빈의 무겁게 내려앉던 눈꺼풀이 끝내 감기면서, 몸이 힘없이 앞으로 무너졌다.심영지는 본능적으로 그를 붙잡아 바닥에 쓰러지는 걸 막았다.그리고 그 순간, 부석빈의 등을 본 심영지는 숨이 턱 막혔다.진미령이 뿌린 황산은 전부 그의 등으로 대신 받아낸 상태였다.옷으로 막았지만 이미 피부는 심하게 녹아내렸고, 피범벅이 된 채 짓물러 있었다.심영지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곧바로 경호원들과 함께 부석빈을 병원으로 옮겼다.수술실로 들어간 뒤에도 심영지는 수술실 앞을 떠나지 못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준호도 다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수술실 앞에 서 있는 심영지를 보자마자 곧장 그녀에게 달려갔다.가장 먼저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심영지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난 괜찮아. 황산은 전부 부석빈 씨가 대신 맞았어.”말을 할수록 눈물이 더 쏟아졌다.하준호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괜찮을 거야, 분명 무사할 거야.”하준호는 곧바로 가장 실력 있는 화상 전문 의료진을 불러 부석빈의 치료를 맡겼다.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부석빈도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다만 등에 남은 흉터만큼은 평생 지울 수 없게 됐다.심영지는 부석빈이 퇴원할 때까지 줄곧 병원에서 그의 곁을 지켰다.그 시간을 보내며 부석빈은 비로소 분명히 깨달았다.심영지에게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남은 건 오직 고마움뿐이었다.심영지는 부석빈을 위해 모든 걸 빈틈없이 챙겼다.해야 할 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지만 하준호 앞에서는 달랐다.편안하게 기대기도 했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실수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었다.부석빈이 퇴원하는 날.심영지와 하준호가 함께 그를 데리러 왔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하준호를

  •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제24화

    설마 진미령이 여기까지 쫓아와 자신을 해치려 들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심영지는 이를 악문 채 차갑게 쏘아붙였다.“진미령, 지금 제정신이야?”심영지는 진미령에게 잘해 준 적은 없었지만, 먼저 시비를 건 적도 없었다.늘 먼저 시비를 걸어온 건 진미령이었다.문밖에서 진미령의 오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 남자를 빼앗았는데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았어?”“G시에서는 부석빈하고 하준호가 널 지켜줬겠지만 여긴 달라.”“여기서도 누가 널 지켜줄 수 있을까?”부석빈이 XP그룹에 강하게 경고한 뒤에, 진미령은 한동안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외출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지낸 그녀가 그 분을 삭일 리 없었다.부석빈에게는 덤빌 수는 없어도 심영지쯤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애초에 심영지만 아니었다면 XP그룹이 그런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다.그래서 진미령은 심영지를 뼛속까지 증오했다.그동안은 부석빈과 하준호가 번갈아 그녀를 지키고 있어서 손을 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심영지가 G시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진미령은 오랫동안 노려 온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진미령이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빨리 문 부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호원이 침실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침실 문은 현관문보다 훨씬 약했다.심영지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쾅-곧 침실 문이 부서졌다.문 앞에는 건장한 경호원 여러 명이 버티고 서 있었고, 그 뒤에서 진미령이 차가운 눈빛으로 심영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진미령은 심영지 손에 들린 핸드폰을 향해 눈짓을 보내자, 경호원이 곧바로 핸드폰을 빼앗아 바닥에 내던졌다.핸드폰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심영지가 몸부림쳤지만 두 명의 경호원이 양팔을 붙잡아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곧이어 한 경호원이 심영지의 무릎 뒤를 걷어찼다.“윽!”고통을 견디지 못한 심영지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진미령은 천천히 다가와 그녀를 내려다봤다.“심영지.”“부석빈도 붙잡고 하준호한테도 들러붙더니

  •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제23화

    F시에 도착한 심영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누군가 계속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주변을 둘러봤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여행객처럼 보였다.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은 없었기에 왠지 더 찜찜했다.모두가 의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괜한 예민함을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걸음을 재촉한 심영지는 공항을 빠져나온 뒤 F시 지사 직원들과 합류했다.사람들과 함께 움직이자, 아까부터 느껴지던 시선도 어느 정도 사라진 듯했다.심영지도 더는 신경 쓰지 않고 호텔에 들르지도 않은 채 곧바로 지사로 향했다.업무를 정리한 뒤 지사 직원들과 함께 거래처를 찾아가 미팅까지 마쳤다.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한 끝에 심영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짐을 대충 정리하고 막 숨을 돌리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을 본 심영지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하준호였다.전화를 받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원래 이번 계약은 하준호가 직접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심영지가 먼저 와서 계약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었다.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철컥-문밖에서 카드키를 찍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심영지는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안전고리까지 걸어 둔 상태였다.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초인종이 울렸다.심영지는 하준호와의 대화를 멈추고 현관으로 걸어갔다.초인종이 계속 울리더니 문밖에서 정중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하지만 고객님 정보 확인 과정에서 문제가 확인됐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심영지는 별다른 의심 없이 핸드폰을 든 채 문 앞으로 다가갔다.막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전화기 너머에서 하준호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고객 정보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 호텔은 우리 지사에서 계속 이용하는 곳이라 갑자기 그럴 리가 없는데...]그 말을 듣는 순간, 심영

  •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제22화

    심영지는 부석빈에게도 이렇게 막무가내인 구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다음 날 아침 출근하려고 문을 열자, 부석빈이 이미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손에는 BH그룹에 다닐 때 자주 먹던 아침 메뉴가 들려 있었다.부석빈이 그녀에게 봉투를 내밀었다.“예전에 네가 제일 좋아하던 거잖아.”심영지는 무표정하게 한 번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자주 먹었던 거지,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부석빈 씨가 좋아해서 같이 먹었던 거예요. 전 그 집 음식 별로 안 좋아해요.”부석빈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그때 옆의 현관문이 열리며 하준호가 아침 식사 두 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심영지는 자연스럽게 하나를 받아들고 하준호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멍하니 서 있던 부석빈도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따라붙었다.“그럼 뭘 좋아하는데? 내일부터는 네가 좋아하는 걸 사 올게.”심영지가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그를 힐끗 바라봤다.“부석빈 씨는 예전처럼 자신만만하게 구는 게 더 잘 어울려요.”“...”옆에서 듣고 있던 하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부석빈은 처음 보는 심영지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얄밉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고 신기했다.그제야 심영지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당신은 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요.’맞는 말이었다.부석빈은 심영지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왜 그녀가 그렇게 지쳐 버렸는지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심영지는 항상 부석빈의 취향에 맞춰서 자신을 조금씩 바꿔 왔다. 그러다 결국 심영지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 버렸다.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상처투성이가 되도록 버티고 또 버텼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이 아니라 부석빈을 버리기로 했다.그래도 부석빈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절당할수록 더 집요해졌다.다음 날부터는 매일 다른 집 아침 식사를 사 왔다.혹시라도 심영지가 좋아하는 메뉴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회사에 출근하면 어김없이 꽃

  •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제21화

    부석빈은 뭔가를 깨달은 듯 본능적으로 심영지의 말을 막으려고 했다.‘말하지 마.’그 한마디만 하면 됐지만, 떨리는 입술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곧 심영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자신을 무너뜨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끝까지 듣고 싶었다.‘도대체 왜 날 떠난 거야?’심영지의 잔잔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그 부드러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부석빈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건 정말 쉬웠어요. 능력도 뛰어나고, 누구보다 눈부신 사람이었으니까요.”“사업 감각도 남달랐고, 무심코 던진 조언 한마디에도 나는 늘 많은 걸 배웠어요.”잠시 말을 멈춘 심영지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들었어요.”“7년 동안 나는 늘 당신 뒤만 쫓아다녔어요.”“당신과 나란히 서고 싶어서 당신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나는 밤잠까지 줄여 가며 그 거리를 좁히려고 애썼어요.”“내 세상은 온통 당신뿐이었어요.”“나는 심영지가 아니라 부석빈 비서로만 살았어요. 내 취향도 내 삶도 내 모습도 모두 잃어버렸어요.”“당신 앞에서는 한 번도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어요.”심영지는 씁쓸하게 웃었다.“조금씩 지쳐 가던 순간들이 있었어요.”“당신이 자기 마음도 모른 채 나를 밀어냈다 다가왔다 하던 그때도 그랬고.”“친구들 앞에서 나를 사랑할 일은 없다고 말하던 그 순간도 그랬어요.”“그리고...”잠시 숨을 고른 심영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당신이 날 버리던 그날.”“잘못은 진미령에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약혼자라는 이유만으로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죠.”“그리고 진미령과 약혼했고, 나는 수술실에서 우리 아이를 잃었죠.”심영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때 이미 다 끝났어요.”“너무 지쳤고... 더는 당신을 사랑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심영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지금은 정말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부석빈 씨는 늘

  • 버린 여자에게 다시 반했습니다   제20화

    부석빈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심영지만 바라봤다.심영지는 놀란 듯 그를 올려다봤다.부석빈 같은 사람이 먼저 돌아와 달라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심영지는 망설이지도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싫어요.”부석빈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예전처럼 그런 관계가 아니라 이번엔 정식으로 만나고 싶어.”심영지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부석빈은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평생 누구에게도 숙여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간절했다.“안 될까?”심영지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짧은 침묵이 흐른 뒤,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미 늦었어요.”부석빈의 눈빛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을 쏟아냈다.“영지야, 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잖아. 얼마나 날 사랑했는지 나도 알고 있어.”“날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어.”“내가 가진 돈이나 지위 때문인 사람도 있었고, 얼굴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지.”“인정해. 그땐 네 마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어.”“그런데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널 사랑하고 있었어.”“내가 필요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내 곁에 있었고,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네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도 이제야 깨달았어.”“함께한 시간이 익숙해진 것도, 우리가 너무 잘 맞았다는 것도...”잠시 말을 멈춘 부석빈이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난 이미 오래전부터 널 사랑하고 있었어.”“그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한 번의 기회도 줄 수 없는 거야?”부석빈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고 눈빛에는 혼란과 답답함까지 어려 있었다.분명 심영지는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다.BH그룹에서 함께한 지난 7년 동안, 심영지는 어떻게든 그의 곁에 서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부석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누구보다 애썼고, 두 사람은 함께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경쟁사에서 부석빈을 노리고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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