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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uthor: 임셀리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0 09:51:13

세나가 도혁을 찾아가 결혼을 약속한 다음 날.

대명푸드는 발칵 뒤집혔다.

회사마당으로 매끄럽게 들어 오는 고급 세단.

직원들이 목을 빼고 구경하는 데 키가 훤칠하고 누가 봐도 잘 생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지난 주에 왔던 태원 사람이다 아니다라며 웅성이는 직원들의 입을 한 번에 닫게 한 건 남자 다음에 내린 사람이었다.

세나였다.

세나를 주면 자금난을 해결해 주겠다며 도혁이 왔다 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대명푸드를 찾아 왔다.

그것도 세나와 함께.

결혼을 허락받겠다고.

사실 허락보다는 통보에 더 가까웠다.

“세나 너! 차회장이 여기 왔다 간 거 알고 왔을 때 아무 말도 없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결혼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자식들을 키우면서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은 오승환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딸을 걸고 거래를 하자는 도혁의 제안은 대꾸할 가치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이 함께 찾아 와 결혼을 하겠다니.

나이가 많은 도혁이 순진한 세나를 꼬드겼다고 생각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미안해요,아빠. 엄마도.”

나윤의 남편과 친구 사이라 알게 됐다.

호감을 가지고 몇 번 만났다.

도혁이 나이가 있어 결혼을 서두르게 됐다.

지난 주, 도혁이 찾아 온 것은 나도 전혀 몰랐다. 알고 나서 허락을 받으려고 온 것이다.

세나가 생각해 낸 시나리오였다.

오승환이 말도 안 된다며 언성을 높이고 세나가 쩔쩔 매는 동안 도혁은 침묵했다.

“세나 너! 이 사람한테 가스 라이팅 당한 거야. 뭐라고 너를 구워 삶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야.”

오승환에 이어 엄마 장영서까지 두 발 벗고 반대를 했다.

“저희 딸은 이제 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 데리고 장난한 거라면 여기서 그만 하세요.”

“…제가 첫 눈에 반했습니다.”

줄곧 입을 닫고 있던 도혁의 첫 마디였다.

“나이때문에 물러 나려고 애썼는데 도저히 안 되서 포기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 왔던 겁니다. 오세나씨가 부모님 걱정을 많이 하길래 그 걱정을 없애면 저를 받아 주려나 해서.”

도혁의 말에 네 사람이 있는 사무실에는 잠시 정적이 앉았다.

눈을 서너번 깜빡이던 세나가 오승환의 헛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언짢아 하는 기색이 그대로 묻어 있는 헛기침이었다.

첫 눈에 반했다니.

언제? 누가?

세나는 옆에 앉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잘도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구나.

밤새 이리 저리 짜 맞춰 생각한 시나리오가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세나에 반해 도혁의 태도는 당당했다. 오히려 뻔뻔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혼 허락을 받아야 회사를 살려 준다고 했으니 참아야 했다.

“아버님,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거 잘 압니다. 귀하게 기운 따님, 고생 시키지 않겠습니다.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한 번 거절당하고도 허락을 구하는 도혁의 태도는 침착했다. 애걸복걸 매달리지 않았다.

“오늘은 돌아 가요. 우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조금은 누그러진 태도로 오승환이 나오자 오히려 초조한 건 세나였다.

빨리 결론을 내야 도혁이 투자든 자금이든 내 줄테니까.

“아빠! 허락해 줘! 사실, 나 오디션 준비하며 학교에 이력서 돌리고 수업하는 데 지쳤어. 그냥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바이올린만 하고 싶어. 회장님이 그렇게 살도록 해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아빠…엄마…이 결혼, 허락해 줘.”

음악만 하며 살고 싶다는 세나의 말에 오승환과 장영서가 감정을 가라 앉혔다.

안다.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자신보다 동생을, 부모를 먼저 챙기며 살아온 아이란 것을.

레슨비에 많은 돈을 들인 것을 알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집에 손을 벌리지도 않았다.

그런 세나가 처음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

“무턱대고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잖니. 살아가는 데 돈이 다가 아니야, 세나야. 태원이라면 돈이 무섭지는 않겠지. 하지만 평생을 맡길 사람인데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허락을 하든 반대를 하든 할 거 아니니.”

장영서가 세나를 달랬다.

“엄마! 아빠! 나 믿잖아.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잘 살게.”

“믿어 주십시오.”

허락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을 기세였다.

“어른들 허락은 받았어요? 우리만 허락한다고 될 게 아니라.”

결혼도 손익을 따져 거래로 치는 재벌들의 셈법에 장영서가 걱정했다.

“말씀은 드렸습니다. 내일 같이 찾아 뵙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그룹에서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집의 딸을 며느리로 들일까.

“그 쪽 어른들이 이 결혼 받아들이시면 우리도 허락하는 걸로 하죠.”

반대를 예상한 오승환이 일단 한 발 물러 났다.

“내일 허락 받고 다시 오겠습니다.”

세나의 애원에도 결국 완전한 허락은 받지 못 했다.

허락을 받기 전에는 다시 찾아 오지 말라는 오승환의 조용하지만 무거운 강요에 세나와 도혁은 사무실을 나왔다.

차에 단 둘만 있게 되자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연극이 끝난 기분.

연극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급격히 기운이 빠졌다.

아직 불편하고, 아직 무서운 도혁과 단 둘이 있으려니 숨 쉬는 것도 조심하게 됐다.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을만큼 어색한 사이.

겨우 두 번 본 남자.

하지만 남편이 될 사람.

지금까지 남자 친구 한 번 만나지 않고 악기만 보고 살아 온 결과가 이런 결혼이라니.

사랑없는 결혼.

서로를 믿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일, 어머니와는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아마 별 다른 말은 없을 겁니다. 시간 맞춰서 집 앞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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