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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도혁은 짜증스럽게 말하며 차 문을 열었다. 언제 샀는지 상수는 본 적도 없는 빨간 스포츠카였다. 이런걸 타고 다녔었나?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매일 검은색 세단만 타고 다니던, 심지어는 본인이 운전하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운전석을 여니까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떠나려는 도혁을 다급하게 다시 불렀다.
"백 대표님!"
"어, 간다." "아니, 어디 가시는데요! 형님! 아! 형님!!!!!"상수는 미련 없이 운전해서 사라지는 그를 보며 절규했다. 생전에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양지에서 사업을 하질 않나. 갑자기 대표라고 부르라고 하고. 요즘은 도대체 어딜 다니는 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난리였다. 사업을 벌여놓고 대표까지 달았으면 뭐라도 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래봤자 처맞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던데. 물론 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 백보스 대체 어디 가시는 거야!"
"너 모르냐? 그 뭐냐... 한서대학교? 거기 가시는 거잖아."어느새 따라 나온 기찬의 말에 상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뭐? 대학교? 고등학교도 겨우 나온 인간이라 그런 곳이랑은 영 관계가 없었는데 이 나이 먹고 무슨 대학교를 들락날락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둘은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의아한 일이었다.
"아니, 인마. 수업 들으러 가시겠냐? 여자 보러 가시는 거지. 내가 볼 땐 확실해."
"여...자...?"이해가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다른 조직원들과 백퍼센트 고자라고 수군거리던 게 고작 지난주였는데, 무슨 여자? 심지어 대학생...? 하지만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 기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히 알려고 하면 단명해."
맞는 말이긴 했다. 남아있는 일이 문제였을 뿐이지. 그런 걸 궁금해하는 것보다는 서명이 없는 서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진짜, 더럽게, 궁금하긴 했지만.
"...근데 언제부터?"
"얼마 안 됐을걸. 최근에 새벽 4시에 들어온 날 있잖아. 그날부터."열흘이나 되었을까. 정말 얼마 안 된 기간이라 상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사업을 한다니 어쩐다니 했던 게 그쯤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부하들이 지금 너무 바빠서 눈코 뜰 새가 없는 지경이니까.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상수는 기찬을 살살 꼬드겼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10년 가까이 조직에 있었지만 여자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12시 반인가? 그때까지 술 마시고 계셨는데, 갑자기 잠시 바람 쐬러 나가셨거든. 그 뒤론 연락이 아예 없다가... 갑자기 한서대학교에 자주 가시는 중이라. 여자 아닐지 추측 중."
"그러니까, 빚 받으러 가는 게 아니고?" "그걸 보스가 왜 직접 하냐."기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 상수를 쳐다보았다. 집에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도혁이 직접 가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론 지금까지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기는 했다. 사실은 기찬이 여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안 믿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아니, 안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 100명 중 99명이었고 1명 정도가 비웃어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무슨 뒤뜰에 틀어진 라디오도 아니고. 하지만 기찬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가까운 조직원인 상수라도 설득해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상수 또한 금세 흥미를 잃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상하잖아. 믿을 수가 없는데?"
"내가 증거를 찾아올게." "뭐?" "그다음에 같이 가보자. 그 한서대학교에."상수는 진짜인가 싶어서 가늘어진 눈으로 기찬을 보았다. 기찬은 당당한 표정이었다. 증거.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게 맞다는 증거? 상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궁금하긴 했으니까. 다음 날, 기찬이 '안 보는 게 낫겠다'라고 할 때까지 그는 별생각이 없었다. 사람이란 무릇 보지 말라고 말리면 더 보고 싶어지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기찬이 불붙인 호기심 때문에 상수는 결국 보면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어떤 여자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 하는 백도혁을.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운 그런 것을. 기찬을 원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때, 주하의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렸다. 주하와 도혁의 시선이 동시에 핸드폰으로 꽂혔다. 저장이 되어있지 않은 번호.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한 번쯤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주하는 한참 내려다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평소라면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았을 텐데, 기분이 묘해서."여보세요?"'오주하 씨? 저 건물주입니다.'건물주? 그런 사람이 왜 전화가 오지?주하는 저도 모르게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도혁이 아무렇지 않게 그 시선을 마주 보았다. 왠지, 지금 이 남자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주하는 짧게 눈짓했다. 도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실을 나갔다."네, 무슨 일이시죠?"'엘리베이터에 공지 붙여놓은 거 보셨죠?'엘리베이터. 공지. 주하는 흰색 종이 한 장을 떠올렸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일 보는 종이지만 처음 읽은 이후로는 눈길도 안 줬던 탓에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났다. 무슨 공사를 한다고 했었던가. 건물 철거.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제법 중요한 내용인데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사 시작 시기가 1월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은 못 했어도 이미 학기는 끝나있을 시점이니까. 그건 졸업반인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네, 봤는데요."'그게 좀 일정이 당겨져서, 나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러시면..."아직 10월. 일주일에 한 번 뿐이라고는 해도 수업이 있고, 과제도 해야 했다. 학교 앞의 다른 원룸으로 가자니 2달만 더 지내면 되는데 1년 계약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다른 곳으로 가자니 어디로 취업할지도 모르는데 대뜸 계약하기도 그렇고. 이 보증금으로 학교 앞 말고 어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시원이라도 가야 하나. 주하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
"오셨어요?""아. 응."미치겠네. 안 그래도 잘생긴 남자는, 마음을 자각하고 나니 훨씬 더 잘생겨 보였다. 게다가 눈이 마주치면 항상 저렇게 웃어대니 심장이 주체를 못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막 씻고 나와서 왠지 촉촉해 보이기까지 하니. 망할. 저 인간 때문에 내 눈만 높아져서, 앞으로 어떡하지? 주하는 참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훔쳐본 새ㄲ... 놈들은 다 쫓아낼게요.""놔둬. 궁금한가 보지."욕하지 말랬다고 말을 정정하는 것마저 기특해 보였다. 인생이 망하려면 이런 식으로도 망할 수 있다는 걸, 주하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오늘은 어디 보시려고요?""사랑채로 가려고."주하는 자신이 평소와 똑같이 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남자이니 분명 이상하게 굴었다면 물어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엔 없는 것이었다."아. 자리 만들어놨어요.""응. 들었어."자랑 좀 신나게 하려고 했더니 박기찬 새끼가 선수를 쳐?도혁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주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그저 싱긋 웃었다. 도혁은 주하에게 잘 보일 생각 밖에 없어서, 그녀가 평소와 다른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주하는 원래도 표정이 많은 편은 아니고 종종 '잘생기긴 했네.'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기에 이상한 것을 눈치채기란 제법 어려웠다."여기예요.""어... 고마워."회의실 한 구석도 아니고, 정중앙에 그녀의 자리라고 떡하니 만들어진 곳은,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깔끔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 지난번에 까먹고 안 들고 간 메모 몇 장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노트, 펜, 스탠드 등이 줄 맞추어 놓여있었다.&nb
하. 주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망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해봐도 언제부터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얼굴에 홀렸다는 자각이야 있었지만, 마음까지는 절대 안 주리라 생각했었다. 그야, 자신 같은 대학생쯤은 유희일 것이 뻔한 남자니까. 그녀는 상처받는 건 자신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와 섹스하는 게 두려운 이유도,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인 것 같았다. 한 번 자고 나면 그 고분고분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 사이가 끝나버릴까 봐. 이미 좋아하게 되어버린 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주하는 책상에 머리를 쾅 박으며 엎드렸다. 일단은 이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게 중요했다. 늘 가벼운 척 해대며(분명 첫 만남엔 안 그랬다.) 속내를 숨기고 있는 남자에게, 이런 마음을 들킬 수는 없었다. 분명히 저를 가지고 놀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와의 섹스가 너무 하고 싶은 건 확실하니, 그걸 어떻게든 이용해 보는 게 나을까."......"주하는 눈을 감았다. 도망갈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꼬셔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들키지 말고 유지만 하자. 그게 주하의 결론이었다. 과제와 논문 때문에 그 집에 몇 번 더 가기로 했으니, 핑계는 괜찮았다. 사진도 아직 부족하고, 전체적인 구조도 다 파악 못한 데다가, 누마루도 아직 신경 쓰이니까. 심지어 지도교수님도 현장에 다시 다녀오라고 했다. 주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기찬이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나가기 전에 저도 모르게 거울을 한 번 확인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삐져나온 머리마저 조금 신경이 쓰였다. 미친 게 틀림없다니까. 주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모시러 왔습니다."기찬은 이미 주하의 집 앞이었다. 당연하게도 도혁이 데리러
"손님맞이를 그렇게 해놓고 무슨 상을 받아?"급조한 변명이었다.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는, 그런 변명. 오늘은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이건 두 번째 도망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주하는 도망을 선택해버리고 말았다."아, 니..."주하가 급조해 낸 변명인지 뭔지, 도혁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상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었으니까.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상이 되돌아오는지 그것만이 궁금했다."그건, 제가 잘못했는데요-..."너무 구질구질한가? 도혁은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이미 벌을 받았으니 상이랑은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해봐야 할 것 같은데 입이 열리질 않았다. 주하가 이미 결정한 일을 번복할 리가 없어 보여서. 그렇다면 지금까지처럼 얌전히 고분고분 굴어야 다음 기회가 올 것만 같아서."...알겠어요."도혁의 수긍에 주하는 몰래 숨을 골랐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섹스쯤이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아무튼 오늘은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아까 문전박대당한 것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기껏 잔뜩 긴장하고 왔다가 열받은 채로 되돌아가면서 섹스 생각을 잊어버렸으니까."......."잠시 방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도혁은 자신의 침대 위에 앉은 주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상을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사람 설레게 여기까지 와선 아무렇지 않게 남의 침대에 앉은 건지. 주하의 뒤를 따라다니며 한껏 했던 상상들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억울한 마음이 한 번에 다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기다릴게요.""뭐?""다음에 상 주실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고요."아예 주지 않겠
"보스보다도 무서워.""예?""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만식은 인간이 아니라고 덧붙일까 하다가 그건 참았다. 말이라는 게 어디서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는데 함부로 입을 털다가 잘못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미리 말하지 않은 조직원들도 이해가 되었다. 이 바닥에서 혓바닥 잘못 놀렸다가 어떻게 되는지는 뻔하니."아무튼 개기지 말고, 눈 마주치면 눈 깔고. 뭐 시키면 '네, 알겠습니다.' 그것만 해. 알겠어들?""놀리는 거구만.""아! 그런 겁니까?" 속을 뻔했잖습니까."만식은 답답했지만 그 이상 설득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자신이어도 당해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건 어려웠으니까."다들 목숨이 소중하면 뼈에 새겨......""분명 박기찬이 뭘 알 텐데.""보스한테 여자 생긴 것 같다고 제일 먼저 말한 것도 그 놈이잖아."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댔던가, 그런 얘기를 수군거리고 있는 곳에 기찬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만식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털이 쭈뼛 섰다."보스가, 3분 안에, 허억, 집에서 다 꺼지랍니다... 흐억...!"만식은 기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정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지금의 도혁은 주하와 같이 있다. 즉, 기찬이 전달한 명령이 보스의 명령인지 주하의 명령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3분이라는 시간이, 보스에겐 그냥 '빨리'라는 상징적인 의미처럼 쓰일지 몰라도 주하가 쓴 거라면 절대로 지켜야만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만식은 '최대한 빨리'가 아니라 '무조건 3분 안에'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다."으응...?"다
"아아. 뭐... 다음에 기회 되면 한 번 불러줘.""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전화 한 통이면 지금도 올 텐데."정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당장 전화를 걸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정도였다. 권력이라는 게 이렇게 유혹적인 거라니, 지금까지는 미처 몰랐다. 주하는 얼른 노트로 눈을 돌렸다. 태연하게 굴어야만 했다."응."그렇게 학문에 깊은 관심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옥을 눈으로 보고, 취향에 꼭 맞는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궁금한 게 생겼다. 졸업반이라서 더 눈이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점심이라도 먹고 계속 보는 게 어때요?""아. 밥, 먹어야지. 나가서 먹어?""아뇨. 별채에 식당이 있어요."식당? 주하는 되묻지 않고 얌전히 도혁을 따라갔다. 가면서 왜 안채를 본채라고 부르는지, 언제쯤 한옥을 완성했는지 같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없었고 그녀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건물들 사이사이가 워낙 넓어서 별채까지 가는 동안 한참 걸렸는데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여긴 또 뭐야?"족히 서른 명은 앉을 수 있는 식탁과 의자가 한 공간에 놓여 있었다. 여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모습으로. 과 사람들을 데려와서 같이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눈이 돌아가는 공간들 뿐이었다."한식으로 준비했는데 괜찮아요?"식당엔 두어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 도혁과 같이 나타난 주하를 보고 인사도 못 한 채 자리를 떴다. 주하는 계속 먹어도 된다고 말할 틈도 없이 사라지는 남자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식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식기들을 보고, 도혁을 다시 바라보았다. 도혁은 아무렇지
"......이게 말이 돼요?" "보고 있잖아? 나 진짜 주인님만 봐도 쌀 것 같아. 싸도 돼, 이제?"영상을 통해서 본 성기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시들시들했는데 어느새 다시 이렇게 커진 건지, 도혁이 힘찬 성기를 흔들며 물었다. 주하는 손을 들어 그에게 짧게 명령했다."안 돼요. 멈추고 좀 나와봐요. 그 영상통화도 끊고."도혁은 아쉬워 입맛을 다시면서도 그녀의 말대로 했다. 두 사람은 다시 모텔방에서 아까와 같은 구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참아야 해?""뭘 참아요? 나 아니면 못 싼다며. 계속해요. 지칠 때까지. 그래도 안 싸면 주인님인지 뭔지 해줄게요.""그러다 내 좆 닳으면 어떡해? 주인님이 책임져줄 거야?""닳기 직전까지만 하면 되겠네요. 시끄러우니까 빨리 시작이나 해요."주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도혁은 우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명은 이미 생각해 뒀고, 이 상황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솔직히 주하의 얼굴만 상상해도 발기하는 상황에서 얼굴을 보며 자위를 하는데 안 싸는 게
주하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려다가 시무룩해하는 도혁을 보며 회상을 멈추었다. 솔직히 차단까지 했는데 다른 번호로 연락할 정도로 집요할 것이라곤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적당히 바쁘다고 무시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기어코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니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더 단호하게 거절해야만 했다."글쎄, 아저씨랑 더 만날 일 없다니까요.""어떻게 사람을 한 번 먹고 버릴 수가 있어!"이 아저씨가 진짜 미쳤나.주하는 주변을 휙 휙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여기에 관
"우리 좋았잖아."[ 아저씨나 좋았겠죠. ]굳이 따지자면 맞는 말이지만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섹스하자는 말에 거절한 건 주하니까, 같이 좋을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어디야."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 무색하게도 태연하게 말이 나왔다. 마치 원래 알던 사람처럼. 그게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또 한참 말이 없었다. 뒤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끊었는지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