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성철은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성철은 그저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리는 어떻게 되어가냐."
"그... 게..."그러나 이어지는 질문에 성철은 당황해서 옆 사람을 보았다. 그는 무슨 정리냐고 묻지도 못하고, 무슨 대답이든 하긴 해야 해서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으로 SOS를 보냈다. 하지만 모인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정리'라는 단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성철은 어쩔 수 없어 도혁에게 되물었다.
"형님, 어떤 정리인지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노친네가 하던 일, 다 정리하라고 했잖아."성철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도혁이 말하는 '노친네'는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러니까 처음 이 조직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혁은 제 아버지가 2년 전쯤 일선에서 물러나며 조직을 그에게 물려줄 때부터 조직에서 하던 일을 전부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까. 그는 언제까지나 그런 일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전쯤, 부하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긴 내렸다. 그사이에 한 번도 진척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 한 번도. 그러니까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까먹었을 정도로.
"아, 그, 그 정리, 말씀입니까? 당연히, 예, 되고 있습니다...! 하하!"
성철은 아주 과장되게 웃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또 물어보지 않을 텐데 여기서 멍청하게 그런 건 안 하고 있다고 실토할 필요는 없는 법이었다. 도혁은 성철의 대답을 듣고 다른 사람 이름을 불렀다.
"태규야."
"예, 형님...!!"성철과 태규는 도혁의 할아버지가 조직을 만들 때부터 있었을 정도로 오래된 부하였고, 지금도 도혁의 양팔을 맡고 있었다. 처음엔 막내였어도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은 도혁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를 철저하게 보스로 모시며 조직 내에서도 입지를 잘 다지고 있었다.
"새로 시작하기로 한 사업은?"
앞선 질문 때문인지 아예 예상 범위에 없던 물음은 아니었다. 태규 또한 1년 내내 '신사업' 같은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그거, 사업자 등록은 우선 내놨습니다. 그... 뭐, 조만간... 시작을..."
"둘 다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해." "예, 형님!" "예, 형님!"도혁은 우렁찬 두 사람의 대답을 들으며 잠시 눈가를 찌푸렸다. 도혁이 아무리 1년 동안 그에 관해 물어보진 않았다고 해도, 두 사람이 아주 착실히 준비해 오지 않은 것 정도는 당연히 알았다. 솔직히 도혁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서 내버려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많이 급했다.
"이틀."
"예?" "흐업."두 사람은 도혁이 준 데드라인에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까라고 하면 깐다지만, 전국에서 벌여놓은 일을 이틀 만에 정리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가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굴러가는 회사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했다.
"1년 전에 말한 건데 시간이 더 필요하냐?"
도혁은 성철과 태규를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제외한 이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성철과 태규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 아닙니다."
"그, 헉, 어떻게든, 해, 해놓겠습니다...!" "3일."도혁은 선심쓰듯 하루를 늘려주었다. 성철과 태규는 하루라도 늘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형님!"
"빨리 해결하겠습니다!"도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휘휘 저었다. 이만 가보라는 표시에 다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도혁이 입을 열어서 다시 일사분란하게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랑채 제일 큰 방은 오늘부터 회의실로 쓸거니까 테이블 가져다 놓고,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고서 작성해서 회의실에 매일 올려둬."
무슨 회의실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걸 감히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알겠다는 대답만이 돌아왔기에 도혁은 그제서야 모두를 내보냈다. 그리고 성민이 팩스로 보낸 종이 한 장을 다시 들어올렸다.
"보스보다도 무서워.""예?""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만식은 인간이 아니라고 덧붙일까 하다가 그건 참았다. 말이라는 게 어디서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는데 함부로 입을 털다가 잘못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미리 말하지 않은 조직원들도 이해가 되었다. 이 바닥에서 혓바닥 잘못 놀렸다가 어떻게 되는지는 뻔하니."아무튼 개기지 말고, 눈 마주치면 눈 깔고. 뭐 시키면 '네, 알겠습니다.' 그것만 해. 알겠어들?""놀리는 거구만.""아! 그런 겁니까?" 속을 뻔했잖습니까."만식은 답답했지만 그 이상 설득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자신이어도 당해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건 어려웠으니까."다들 목숨이 소중하면 뼈에 새겨......""분명 박기찬이 뭘 알 텐데.""보스한테 여자 생긴 것 같다고 제일 먼저 말한 것도 그 놈이잖아."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댔던가, 그런 얘기를 수군거리고 있는 곳에 기찬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만식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털이 쭈뼛 섰다."보스가, 3분 안에, 허억, 집에서 다 꺼지랍니다... 흐억...!"만식은 기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정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지금의 도혁은 주하와 같이 있다. 즉, 기찬이 전달한 명령이 보스의 명령인지 주하의 명령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3분이라는 시간이, 보스에겐 그냥 '빨리'라는 상징적인 의미처럼 쓰일지 몰라도 주하가 쓴 거라면 절대로 지켜야만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만식은 '최대한 빨리'가 아니라 '무조건 3분 안에'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다."으응...?"다
"아아. 뭐... 다음에 기회 되면 한 번 불러줘.""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전화 한 통이면 지금도 올 텐데."정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당장 전화를 걸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정도였다. 권력이라는 게 이렇게 유혹적인 거라니, 지금까지는 미처 몰랐다. 주하는 얼른 노트로 눈을 돌렸다. 태연하게 굴어야만 했다."응."그렇게 학문에 깊은 관심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옥을 눈으로 보고, 취향에 꼭 맞는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궁금한 게 생겼다. 졸업반이라서 더 눈이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점심이라도 먹고 계속 보는 게 어때요?""아. 밥, 먹어야지. 나가서 먹어?""아뇨. 별채에 식당이 있어요."식당? 주하는 되묻지 않고 얌전히 도혁을 따라갔다. 가면서 왜 안채를 본채라고 부르는지, 언제쯤 한옥을 완성했는지 같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없었고 그녀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건물들 사이사이가 워낙 넓어서 별채까지 가는 동안 한참 걸렸는데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여긴 또 뭐야?"족히 서른 명은 앉을 수 있는 식탁과 의자가 한 공간에 놓여 있었다. 여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모습으로. 과 사람들을 데려와서 같이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눈이 돌아가는 공간들 뿐이었다."한식으로 준비했는데 괜찮아요?"식당엔 두어 명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 도혁과 같이 나타난 주하를 보고 인사도 못 한 채 자리를 떴다. 주하는 계속 먹어도 된다고 말할 틈도 없이 사라지는 남자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식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식기들을 보고, 도혁을 다시 바라보았다. 도혁은 아무렇지
주하는 부리나케 인사하고 멀어지는 남자들을 보다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잘 지어진 한옥이었다."사랑채도 볼 수 있어?""주인님이 못 가는 곳은 없어요. 적어도 이 집에선."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도혁이 손에 쥐어주는 권력은 너무 커서 가끔 그게 어색할 때가 있었다. 이런 사람을 기합까지 줘놓고 하기엔 늦은 생각인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튼 주하는 이 넓은 한옥을 꼭 제 집처럼 다닐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조금 좋아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디서 머물러?""본채로 먼저 가실래요?"오늘 안에는 다 못 볼 것이 틀림없었다. 대문까지 오는 것도 한참이었고, 건물도 많으니까. 안까지 구석구석 보려면 더 오래 걸릴 것이었다. 오늘 집중해서 볼 공간을 골라야 했다. 주하는 꽤 고심 끝에 사랑채를 먼저 보기로 했다. 본채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잠시 구경할 수 있을 테니까."사랑채에선 뭐 해?""지금은 회의실로 쓰고 있어요. 응접실도 있고."주하는 문을 하나 지나자마자 보이는 사랑채에 눈을 반짝 빛냈다."누마루가 있네.""네. 부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요."대부분의 사람들을 내보냈지만, 사랑채는 업무 공간이라 몇 명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도혁과 주하를 보고 그대로 돌이 되어 굳어있다가 도혁의 눈빛을 받고 후다닥 사라졌다.미친. 보스가 여자를 데리고 왔어!소리 없는 아우성이 집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지만 주하는 한옥에 푹 빠져서 다른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새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쓱쓱 쓰고 있었다. 도혁은 그런 주하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다니며 사람들을 물렸다. 그
"지금이라도 제대로 안 앉으면 당신들 보스 이 흙바닥에 머리까지 박아야 해요. 그리고 또 토 달면 내가 속옷까지 다 벗길 건데. 알몸으로 혼나는 모습이 보고 싶으신가 봐들.""무릎 꿇고 앉, 앉았습니다. ""자, 잘 앉아있습니다...!""제대로 보고 있습니다...!"백도혁을 이 자리에서 '다' 벗길 수 있는 존재. 빌어봤자 더 큰 벌로 되돌려줄 뿐인 사람. 표정도 변하지 않고 말로 언짢아하는데도 소름 끼칠 정도로 두려웠다. 아까 도혁이 뛰어간 후, 기찬이 꼭 사람이 아닌 존재를 보는 것 같다고 했을 때 그 작은 아가씨가 뭐라고 이렇게나 과장을 하나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그러면 시작해, 애기야. 아까 생각한 것보다 두 배는 더 해야겠다.""하나. 주인님, 잘못했습니다."그녀의 말에 도혁은 팔 굽혀 펴기를 하며 숫자를 세었다. 그녀가 시킨 대로 반성의 말도 덧붙였다. 사실 이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의 부하들도 다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그냥 자신들 때문에 보스가 얼차려를 받는다는 그 자체에 아연실색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하가 오기 전에 이 공간은 도혁이 절대적인 존재였고 유일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흐윽..."둘. 주인님, 잘못했습니다.""흑...""셋. 주인님, 잘못했습니다."아무렇지 않게 벌을 받는 도혁의 목소리 사이로 자꾸만 흐느낌 소리가 섞여 들었다."하으...""누가 이렇게 자꾸 우는 거야?"주하의 말에 마당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다시 도혁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넷. 주인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면 당신들도 벌을 받아야지 무슨 소리예요? 앉아서 눈 똑바로 뜨고 보세요. 당신들 보스, 당신들 때문에 나한테 벌 받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보는 게 당신들 벌이고."물론 1차 잘못은 도혁에게 있었고, 그건 주하도 잘 알았지만, 절규하는 그들을 더 절망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녀는 '너희들 때문임.'이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그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 솔직히 처음엔 이런 벌을 줄 생각은 아니었다. 문득 이게 가장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걸 보면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잔인하네. 도혁은 그런 주하를 보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안도했다. 그 잔인한 칼날이 저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저희가 하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이렇게 부탁드립니다...!!""애기야. 너 아직도 부하들 제대로 못 가르쳤어?"거의 울부짖는 부하들을 보고도 주하는 표정 변화가 전혀 없었다. 도혁은 이래서야 누가 조직 보스인지 모를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집합 전에 알아서 잘하라는 경고 정도는 했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까진 없었다."죄송합니다. 주인님. 이 새끼들아, 앉아. 진짜 뒤질려고...""흑흑흑. 보스. 저희가 죄송합니다. 진짜. 제발.""저희 진짜 밤새 기합 받을 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쇼!!!"그들은 도혁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크게 울었다. 도혁만이 여기서 꺼내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혁에겐 그럴 힘도 권력도 뭣도 없었다. 그가 이 관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고 있는 한은 확실히. 지금 그녀에게 대들어봤자 더 혼나기만 할 뿐이라는 의미였다. 도혁은 그걸 잘 알았는데, 눈앞의 인간들이 몰랐다. 모르면 시
"주인님...""조용히 해. 너 저 사람 아니었으면 최소 2주일은 나 못 봤어.""네..."도혁은 주하의 말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 정도 생각했는데 2주일이나 못 볼 예정이었다니. 그걸 기찬이 정말 막은 거라면, 그도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뭘 했길래 마음을 돌렸는지는 나중에 물어볼 생각이었지만."가보세요.""가, 감사합니다."기찬은 허리를 깊게 숙여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갔다. 마당엔 도혁과 주하, 병호와 만식만이 남았다. 그녀는 태연하게 그를 불렀다."애기야.""네, 주인님""헉."당연하게도 병호와 만식은 들어본 적이 없는 호칭이었다. 유일하게 들어본 기찬은 그녀에게 무수히 사과하고 이미 열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숨을 삼켰다. 아직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이 없었다."혼나야겠지?""네, 주인님. 혼내주세요.""부하들 앞이라 창피해?""아니요. 주인님 명령이라면 그게 뭐든, 누구 앞에서든 창피하지 않습니다."도혁은 일부러 평소보다 각 잡힌 자세로 서서 담담하고 확실하게 말했다. 부하들에게도 누구의 서열이 더 높은지 이번 기회에 알려줄 생각이었다. 평소였다면 능글맞게 웃거나 장난도 쳤겠지만, 그는 참았다."그래. 착하네. 그래도 내가 옷은 안 벗겼잖아.""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주인님.""우리 애기 몸은 나만 봐야지."뭘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지? 옷을 벗겨?도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얌전히 대답했다. 이건 솔직히 벌이라기보단
"그걸로도 안 될 것 같단 말이야?"혜진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안되는 수준이 아니라 더 얽힐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그냥 지독한 정도가 아닐 것이었다. 그녀는 돈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그게 아니라 좀, 그, 성적으로 질리게 할 만한 거 없어?""그런 거라면 98.3% 정도 확률로 도망가게 안들 방법이 있지."미묘하게 자세한 수치가 왠지 믿음이 가야 할 것 같은데 미더웠다. 그 남자는 모르긴 몰라도 1.7% 안에 충분히 들 수 있을 것 같은
"노예야, 그렇게 불러도 좋을지도? 근데 그런 말 들으면 좆이 터지는 거 아닌지 몰라.""그, 혹시, 마조예요?""지금까진 아니었는데, 주인님한텐 그럴지도 몰라.""왜 나한테만 그래.""주인님한테만 반응하는걸요."주하는 짧게 한숨을 쉬고 손을 저었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계속 이런 결론만 내고 있었다."일단, 밖에서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왜? 그럼, 뭐라고 불러요? 주하님?""부르지 마요."
주하는 개강 첫날부터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5학년 2학기. 이제 졸업 작품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졸업 논문만 쓰고 나면 길었던 학교생활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나 술이 당기는지. 학교를 다니는 4년 반 동안 그렇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은 없었다. 건축학과는 제법 술을 많이 마시는 이미지가 있었는데도 주하는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마실 일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날 좀 보기 드물게 취해있었다. 길에서 커다란 남자와 부딪혔을 때, 별생각 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과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보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도혁은 짜증스럽게 말하며 차 문을 열었다. 언제 샀는지 상수는 본 적도 없는 빨간 스포츠카였다. 이런걸 타고 다녔었나?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매일 검은색 세단만 타고 다니던, 심지어는 본인이 운전하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운전석을 여니까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떠나려는 도혁을 다급하게 다시 불렀다."백 대표님!" "어, 간다." "아니, 어디 가시는데요! 형님! 아!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