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혁은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몰라 저장도 못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취할 정도로 마신 건 아니라지만, 아침이 되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실 무슨 생각으로 번호를 받아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대체 그 여자랑 뭘 하겠다고. 짧은 해프닝으로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어제를 기점으로 성욕이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님! 계십니까? 들어가도 됩니까?"
"왜."그는 곧장 씻으러 가려다가 문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짧게 답했다.
"아니, 어제 갑자기 사라지셔서... 차도 그대로 두고 가시고, 누가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방에 오셨는지 와봤습니다."
"택시 타고 들어왔어. 말 나온 김에 차 좀 찾아와. 차키 여기 있으니까."도혁은 문을 열고 차키를 휙 던졌다. 도혁을 찾아온 성철은 키를 손으로 받아내며 문틈으로 그를 한참 살폈다. 성철의 눈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술을 마시다가 사라진 적은 없었던지라 이상했지만 팬티만 한 장 걸치고 잠든 몸에도 상처는 없는 듯하고, 얼굴도 태연했다. 그래서 그는 알겠다고 말하며 멀어졌다. 도혁은 가만히 샤워기 아래에 서서 새벽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 여자의 목소리, 얼굴, 말투, 그리고 다른 모든 상황.
"아."
도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이건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주치의를 만나야 하는 건지, 그 여자를 다시 만나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은 있었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지,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지.
"태규야."
"예, 형님."도혁은 방 안에 있는 내선 전화기로 사람을 호출해 명령을 내렸다.
"홍성민한테 연락 넣어둬. 오늘 간다고."
"예? 무슨 일로 짭새한테... 그냥 저 시키십쇼."도혁은 태규를 바라보다가 짧게 손을 휘저었다. 부하들한테 무언가를 시켰다가는 조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날 것이 뻔했다. 밖에서 해결하는 게 맞았다. 그게 뭐든.
"술 한잔하자고 전해."
"홍성민이는 그, 뭐, 이상한 곳에 맨날 술 마시자고 부르는데..."그 이상한 곳에 가려고 그를 선택한 것이었으므로 도혁은 그 또한 상관없다고 말하며 태규를 내보냈다. 그리곤 고를 것도 없는 옷장에서 트레이닝 복을 꺼내어 입었다. 잡생각을 떨치는 데에 운동만 한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 반복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도혁은 트레이닝장으로 향했다.
도혁은 그곳에서 정말 한참 운동해서 부하들을 약간 떨게 했다. 기분이 나쁜가 싶어서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태규가 모시러 왔다며 찾아올 때까지 누구를 괴롭히진 않았다. 그는 다시 샤워하고, 태규가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 탔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열어 다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바라보았다. 아침에도 한참을 봐서 이미 거의 외우다시피 한 번호였다."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십니까? 다 왔습니다, 형님."
"별로. 이따 전화하면 곧장 와라." "혼자 들어가실 겁니까?" "어."도혁은 혼자 차에서 내려 술집의 조용한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섰다. 성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외로웠나 봐? 나한테 술을 다 마시자고 하고."
성민의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 다양한 모습들이었다. 짙은 화장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민낯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은 한껏 긴장한 모양새였다.
"혹시 몰라서 성별도 섞어봤어."
"미친놈."도혁은 눈가를 찌푸리며 대충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성민이 이런 식인 걸 모르지 않았기에 그 이상 뭐라고 하진 않았다. 무언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온건, 도혁 자신이었으니까.
"왜, 이거 아니야?"
성민의 말에 도혁은 다시 한번 찬찬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느낌이 오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 상상만 해도 서버리는데. 아침이라서 그랬나? 도혁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보며 술잔을 들었다. 술이나 달라는 제스처에도 성민은 웃기만 했다. 성민 대신 도혁의 옆에 앉은 '누군가'가 살짝 떨리는 손으로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고 했다. 도혁은 힐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주하는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 행동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계산된 행동이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한다면, 그가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애기야.""네, 주하 님."여전히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도혁은 기쁘게 대답했다. 주하는 꽤 예전처럼 그를 대하고 있었다."이거 가방 좀. 아, 책도.""네."잦은 심부름만 봐도 그랬다. 그냥 심술이 아니라, 필요해서 부르는 심부름. 그게 얼마나 좋은지, 그는 신나게 가방과 책을 받아서 들었다. 하나도 무겁지가 않았다."저녁은 뭐야?"자주 묻는 말이라 미리미리 파악해 두고 있었기에 도혁은 막힘없이 대답해 냈다. 주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준비하라고 해놓고 되돌려보내던 심술도 이제는 끝이 났다. 그녀는 평소처럼 주는 대로 먹었다. 물론, 그 사이에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녀의 취향을 제법 파악하긴 했지만.아무튼 모든 것이 거의 다 제자리였다. 주하가 편하게 대해줘서, 도혁은 그런 주하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충실하고 완벽하게 그녀의 명령에 대응했다. 혹시나 자신이 선을 넘어버렸다가 이 평화가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대표님, 누님, 오셨습니까. 편하게 식사 하십시오.""네. 잘 먹을게요."두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서니 다들 척척 일어나 자리를 정리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것만큼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주하는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고 늘 앉던 자리로 갔다. 더 익숙하게, 도혁이 꺼내주는 의자에 앉았다. 도혁은 짧게 고갯짓으로 모두에게 인사하고 주하의 건너편으로 갔다. 옆자리가 탐났지만 감히 탐내지 않았다.조직원들은 식당을 나가며 너도나도 도혁의 표정이 좋다고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걸 도혁도 주하도 몰랐다. 그들은 평범하
어느새 4주가 흘렀다. 주하가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도혁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주하가 집을 나갔을 때 거의 시체처럼 야위어가던 남자는 다시 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있었고, 매일 빼놓지 않고 운동을 했다. 핏기가 돌지 않던 얼굴에는 조금씩 생기가 생겼고, 가끔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작게 웃는 일도 늘었다. 그 사이의 주하는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졸업 작품 마감과 기말고사가 다가오면서,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아졌다.새벽 2시. 주하의 작업실엔 초침 소리만 가득했다. 주하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뻐근해진 목덜미를 주무르며 칼을 내려놓았다. 눈앞에 놓인 과제물은 슬슬 완성되어 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빙글빙글 돌 지경이었다. 새벽 2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조명이 아니었다면 더 피곤했을 터였다. 잠시 멍하니 있던 주하는, 문득 근처에 있을 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하루 종일 단 한 번도 주하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 서 있었다. 허리를 곧게 편 단정한 자세,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눈빛. 마치 주하가 불쾌해할까 봐 숨소리조차 죽인 채, 오직 그녀의 동선만을 살피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것도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제법 익숙해져 있어서 주하는 잠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자조적인 웃음에 가까웠다. 뭐라고 해보겠다는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그를 보면 늘 의욕이 꺾여버리곤 해서.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는데. 주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텁텁해진 입안을 혀로 한 번 쓸었다. 이제, 그녀가 꺼낼 수 있는 카드도 얼마 없었다."애기야."일부러 담담한 목소리를 꺼낸 거였다. 어쩌면 나른하기까지 할 정도로 느긋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여유 있다기보단 평소처럼 무심한 목소리. 꾸며낸 목소리지만 최대한 평소처럼 보이도록 노력한 거였다. 부르자마자 작업실 안의 공기가 얼
한편, 주하는 공부를 하다가 목이 뻐근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혁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펴며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주하의 손에는 책이니 뭐니 잡다한 것들이 가득 들려있었다. 당장이라도 들어드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참았다. 그저 그녀의 반보 뒤로 따라붙었다. 문을 열자 꽤 차가운 바람이 스쳤다. 주하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도혁은 하루 종일 들고 있던 담요를 얼른 내밀었다."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는데 이거라도...""됐어. 걷기 불편해."오늘도 돌아온 것은 차가운 거절이었지만 도혁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이 정도는 시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대답이라도 해주는 건, 아주 관대한 처사였기에. 도혁은 담요를 쳐다도 보지 않고 앞서 걷기 시작하는 그녀의 뒤로 걸으며 묵묵히 뒤를 지켰다.물론 그녀는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였지만 뒤로 따라붙은 그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서 견딜만했다. 뒤에서 부는 바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가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져 발걸음이 조금 꼬였다. 그녀의 품에 있던 두꺼운 책이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지려 했다."아!""!"도혁은 빠르게 손을 뻗어 책이 떨어지기 전에 받쳐 들었다. 커다란 몸이 순식간에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며 향기를 풍겨댔다. 너무나도 익숙한 향이었다. 며칠 전, 제 아래에서 사정 허락을 구하던 그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별것도 아닌 접촉에 이런 생각을 한다니. 주하는 고개를 저으며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고마워, 애기야."그러니까 이건,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 늘 그를 그렇게 부르던 습관. 고맙다는 인사가 생각하지 않고도 나오는 것처럼, 그 뒤에 붙은 호칭도 익숙하게 나와버린 것에 불과했다. 의식적으로 부르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는데 마음을 놓자마자 저도 모르게 불러버린 것이다. 부
"아직도 저러고 계셔?""용서 못 받으셨나 봐."태규와 성철은 멀리서 도혁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주하가 집을 나갔을 때보다야 사람 꼴이긴 하지만, 안쓰러운 건 여전했다. 주하가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바쁜 동안 도혁은 그 옆에 서서 자리만 지키고 있었으니 부하들이 보기에는 영 안쓰러웠던 것이다. 사실 도혁은 제법 행복한 눈치였는데 그 소박한 마음이 부하들에게는 더 마음에 걸렸다."누님도 대단하시네..."하루종일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도 용서할 마음이 안 드시는 건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들 하니까. 아무리 도혁의 명령에 따라 주하를 모시고 있어도, 두 사람은 영원히 도혁의 사람이었다."나였으면 바로 용서해 줬을 것 같은데.""...그래도 너무하긴 하셨잖아. 자존심 지킬 걸 지키시지, 참."태규와 성철은 '대참사'가 일어났던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조직원들 사이에서 대참사의 날이라고 불렸다) 만약 있었다면 두 사람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도혁을 말렸을 것이다. 주하에게 그 어떤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았을 터였다. 물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해했다. 절대 주하를 눈앞에 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애초에 주하를 1순위라고 말한 것도 도혁이고. 게다가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도혁을 말렸다. 진짜로."근데 너무 오래됐어...""누님 안 계실 때보다 얼굴은 훨씬 좋잖아.""그땐 진짜..."두 사람은 그날을 생각하며 얼굴을 굳혔다. 몸이 점점 야위어가서 병원에 가보자든가 주치의를 부르자고 해도 도혁은 거절만 했다. 그럼 밥이라도 먹으라고 설득해 봤지만 잠시뿐이었다. 번번이 쫓겨나기만 했던 기억에 아찔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나 진짜 전 보스라도 찾아가야 하나 생각했었다니까."
"다행...이에요."도혁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얼마나 고민했는지, 얼마짜리 물건인지, 어떻게 구했는지. 그는 주하가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자신이 준비한 선물이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게, 그저 기뻤기에."잘 쓸게."도혁은 입을 열지 못하고 꾹 다물었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주하가 자신이 준 선물을 '쓰겠다'라고 말해준 게 조금 믿어지지 않아서, 괜히 입을 열었다간 웃음을 숨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는 그저 다문 입술 끝을 올린 채 고개를 숙였다.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봐."주하는 노리개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도혁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이 정도가 전부구나. 섹스를 끝내고 나란히 누워 이야기하던 때를 떠올리니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은 조심을 해야 할 때였다. 그녀의 기분이 다 풀렸는지 어떤 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는 금세 마음을 가다듬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는 문을 열다가 문득,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생각이 나서 얼른 뒤로 돌았다. 주하는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다가 조금 놀라 저도 모르게 눈가를 찌푸렸다. 그러지 않으면 놀란 티가 날 것 같았다. 그 얼굴에 도혁이 흠칫 했지만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그, 생일... 축하드립니다..."갑작스러운 전개에 가장 중요한 말을 하지 못했다. 방 안이 다시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주하는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가 '그래.'하고 짧게 대답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생일 인사인데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조심스러워서. 다행스럽게도 짧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도혁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었다는 생각인지."푹 쉬세요."달칵. 문이 조용히 닫히고 도혁이 사라졌다. 주하는 한동안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그대로 있었
허락 없이 사정하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파르르 떨며 참아내는 도혁의 얼굴이 안쓰러우면서도 야했다. 그러나 다정하게 그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솔직하게 구는 그를 마냥 괴롭힐 만큼 막되어 먹지도 못했을 뿐. 주하는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그의 골반을 최대한 단단히 쥔 채, 내벽 제일 깊은 곳을 가차 없이 내리꽂았다."싸. 참지 말고.""아, 흐윽! 감, 감사합니다......! 주, 하님...!"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혁은 긴 신음을 토해내며 침대 시트 위로 무너지듯 사정했다. 허벅지와 등줄기를 파르르 떨며 페니반을 꽉 조이는 그의 애널을 내려다보고, 주하도 가쁜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허리짓이 천천히 멈추었다. 방 안에는 거친 숨소리가 엉킨 채로 가득 차 있었다.사정이 끝난 후에도 도혁은 엉덩이를 내리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가만히 있었다. 조금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튼 덩치에 안 맞게. 그 훌쩍거림이 슬프거나 아파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는 분명히 기분 좋은 열기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테니까.도혁은 주하가 갑자기 섹스하자고 한 이유에 대해 여전히 모르고 있었지만, '상'이라는 단어에 불안을 조금 잠재우고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그대로 있으니 척추를 따라 느릿하게 쓸어내리는 손가락이 내려앉았다. 그는 커다랗고 단단한 몸을 살짝 굳혔다."쿡..."그가 긴장하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그녀가 작게 웃었다. 도혁은 그 작은 소리가 너무 좋아서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주하가 천천히 몸을 뒤로 뺐다. 안쪽을 가득하게 채우고 있던 단단한 존재감이 빠져나갔다. 도혁은 짜릿한 떨림과 함께 움찔 떨었다. 주하는 말없이 페니반을 벗어 바닥에 던지듯 내려두고, 협탁 위의 물티슈를 몇 장 뽑아 주변을 대충 닦아냈다. 그 사이 도혁은 여전히 엉덩이를 들고 얼굴을 묻은 자세 그대로 있었다
오주하. 만 23세. 생일은 11월 17일. 현재 한서대학교 건축학과 5학년 2학기 재학 중. 9학기 중의 6학기는 과에서 1등. 전액 장학금. 졸업 후에 취업 예정. 가족은 부모님, 그리고 고등학생인 여동생 한 명. 가족들은 지방 거주. 그래서 서울에 혼자 자취 중이고, 위치는 학교 앞 원룸. 부모님은 평범한 회사원.별다를 것 없는 정보의 나열이었는데 읽는 내내 자꾸만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이 끼어들 틈 같은 것은 없는 종이 한 장이었는데도, 심드렁하던 주하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성철아.""예, 형님."성철은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성철은 그저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정리는 어떻게 되어가냐.""그... 게..."그러나 이어지는 질문에 성철은 당황해서 옆 사람을 보았다. 그는 무슨 정리냐고 묻지도 못하고, 무슨 대답이든 하긴 해야 해서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으로 SOS를 보냈다. 하지만 모인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정리'라는 단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성철은 어쩔
"어때? 가족 때문에 빚이 좀 있긴 한데, 학교 선생님이야. 괜찮아."도대체 뭐가 어떻냐는 건지. 도혁은 술병을 빼앗아 자신이 따르고, 병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단숨에 한 잔을 다 마셨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어제와 같은 상태가 될지도 몰랐다."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스타일로 준비를 해본 건데?"하지만 도혁의 옆에 앉은 사람은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여기서 소개팅하겠다는 건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술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하룻밤. 그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데.""그럴 리가."괜히 한 번 도발해 본 거였는데 태연한 척 받아치는 목소리가 사실 조금 멋은 없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기 때문이었다. 긴장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그래요?"그 말이 마치 엄청난 도발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버틸지 보겠다는 듯이. 도혁은 조금 오기가 생겼지만, 술이 조금 들어간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성생활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