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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Author: CHU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8 12:48:01

도혁은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몰라 저장도 못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취할 정도로 마신 건 아니라지만, 아침이 되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실 무슨 생각으로 번호를 받아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대체 그 여자랑 뭘 하겠다고. 짧은 해프닝으로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어제를 기점으로 성욕이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님! 계십니까? 들어가도 됩니까?"

"왜."

그는 곧장 씻으러 가려다가 문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짧게 답했다. 

"아니, 어제 갑자기 사라지셔서... 차도 그대로 두고 가시고, 누가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방에 오셨는지 와봤습니다."

"택시 타고 들어왔어. 말 나온 김에 차 좀 찾아와. 차키 여기 있으니까."

도혁은 문을 열고 차키를 휙 던졌다. 도혁을 찾아온 성철은 키를 손으로 받아내며 문틈으로 그를 한참 살폈다. 성철의 눈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술을 마시다가 사라진 적은 없었던지라 이상했지만 팬티만 한 장 걸치고 잠든 몸에도 상처는 없는 듯하고, 얼굴도 태연했다. 그래서 그는 알겠다고 말하며 멀어졌다. 도혁은 가만히 샤워기 아래에 서서 새벽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 여자의 목소리, 얼굴, 말투, 그리고 다른 모든 상황. 

"아."

도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이건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주치의를 만나야 하는 건지, 그 여자를 다시 만나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은 있었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지,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지.

"태규야."

"예, 형님."

도혁은 방 안에 있는 내선 전화기로 사람을 호출해 명령을 내렸다.

"홍성민한테 연락 넣어둬. 오늘 간다고."

"예? 무슨 일로 짭새한테... 그냥 저 시키십쇼."

도혁은 태규를 바라보다가 짧게 손을 휘저었다. 부하들한테 무언가를 시켰다가는 조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날 것이 뻔했다. 밖에서 해결하는 게 맞았다. 그게 뭐든. 

"술 한잔하자고 전해."

"홍성민이는 그, 뭐, 이상한 곳에 맨날 술 마시자고 부르는데..."

그 이상한 곳에 가려고 그를 선택한 것이었으므로 도혁은 그 또한 상관없다고 말하며 태규를 내보냈다. 그리곤 고를 것도 없는 옷장에서 트레이닝 복을 꺼내어 입었다. 잡생각을 떨치는 데에 운동만 한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 반복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도혁은 트레이닝장으로 향했다. 

도혁은 그곳에서 정말 한참 운동해서 부하들을 약간 떨게 했다. 기분이 나쁜가 싶어서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태규가 모시러 왔다며 찾아올 때까지 누구를 괴롭히진 않았다. 그는 다시 샤워하고, 태규가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 탔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열어 다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바라보았다. 아침에도 한참을 봐서 이미 거의 외우다시피 한 번호였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십니까? 다 왔습니다, 형님."

"별로. 이따 전화하면 곧장 와라."

"혼자 들어가실 겁니까?"

"어."

도혁은 혼자 차에서 내려 술집의 조용한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섰다. 성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외로웠나 봐? 나한테 술을 다 마시자고 하고."

성민의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 다양한 모습들이었다. 짙은 화장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민낯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은 한껏 긴장한 모양새였다. 

"혹시 몰라서 성별도 섞어봤어."

"미친놈."

도혁은 눈가를 찌푸리며 대충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성민이 이런 식인 걸 모르지 않았기에 그 이상 뭐라고 하진 않았다. 무언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온건, 도혁 자신이었으니까.

"왜, 이거 아니야?"

성민의 말에 도혁은 다시 한번 찬찬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느낌이 오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 상상만 해도 서버리는데. 아침이라서 그랬나? 도혁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보며 술잔을 들었다. 술이나 달라는 제스처에도 성민은 웃기만 했다. 성민 대신 도혁의 옆에 앉은 '누군가'가 살짝 떨리는 손으로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고 했다. 도혁은 힐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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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78.

    "주인님...""조용히 해. 너 저 사람 아니었으면 최소 2주일은 나 못 봤어.""네..."도혁은 주하의 말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 정도 생각했는데 2주일이나 못 볼 예정이었다니. 그걸 기찬이 정말 막은 거라면, 그도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뭘 했길래 마음을 돌렸는지는 나중에 물어볼 생각이었지만."가보세요.""가, 감사합니다."기찬은 허리를 깊게 숙여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갔다. 마당엔 도혁과 주하, 병호와 만식만이 남았다. 그녀는 태연하게 그를 불렀다."애기야.""네, 주인님""헉."당연하게도 병호와 만식은 들어본 적이 없는 호칭이었다. 유일하게 들어본 기찬은 그녀에게 무수히 사과하고 이미 열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숨을 삼켰다. 아직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이 없었다."혼나야겠지?""네, 주인님. 혼내주세요.""부하들 앞이라 창피해?""아니요. 주인님 명령이라면 그게 뭐든, 누구 앞에서든 창피하지 않습니다."도혁은 일부러 평소보다 각 잡힌 자세로 서서 담담하고 확실하게 말했다. 부하들에게도 누구의 서열이 더 높은지 이번 기회에 알려줄 생각이었다. 평소였다면 능글맞게 웃거나 장난도 쳤겠지만, 그는 참았다."그래. 착하네. 그래도 내가 옷은 안 벗겼잖아.""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주인님.""우리 애기 몸은 나만 봐야지."뭘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지? 옷을 벗겨?도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얌전히 대답했다. 이건 솔직히 벌이라기보단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77.

    "없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이럴 땐 그냥 납작 엎드리는 게 최선이었다. 도혁은 최대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그녀의 화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다신 안 보겠다고 했는데 전화까지 하시고?""정말 죄송합니다."부하들이 전달을 안 했다느니 하는 핑계를 댈 줄 알았는데, 그가 깔끔하게 사과만 하니 주하는 아주 조금 더 화가 풀렸다. 그는 그녀가 쓸데없는 변명 같은 걸 안 좋아한다는 것쯤은 이제 잘 알고 있었다. 몇 번 혼나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판결은 언제나 냉정하고 단호했으며 그에게 여지를 주지 않곤 했으니까."흐음.""잘못했어요."도혁은 애교 작전으로 가기로 했다. 이 작전은 웬만한 일에 잘 먹혔다. 주하는 생각보다 애교에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릎걸음으로 주하에게 조금 더 다가가서 그녀의 허벅지에 볼을 살짝 비볐다. 주하가 그런 도혁의 이마를 손끝으로 밀었다."애기야, 지금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해?""죄송해요. 혼내주세요. 네?"주하는 안 먹힌다고 말했지만, 도혁은 그녀의 표정이 점점 풀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조금 더 애교를 부렸다. 주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혼나야 하는 건 도혁이 맞았다. 애교까지 부리면서 혼내달라는데, 당연히 혼내주긴 할 거였다. 근데 거기서 끝낼 순 없었다."근데 너만 혼날 일이 아니지?""예?""아까 그 아저씨들.""아."도혁은 순간 멈칫거렸다. 그의 부하들을 딱히 그녀 앞에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그들을 혼내는 건 더 싫었다. 혼낸다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둘 사이의 놀이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5.

    "어때? 가족 때문에 빚이 좀 있긴 한데, 학교 선생님이야. 괜찮아."도대체 뭐가 어떻냐는 건지. 도혁은 술병을 빼앗아 자신이 따르고, 병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단숨에 한 잔을 다 마셨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어제와 같은 상태가 될지도 몰랐다."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스타일로 준비를 해본 건데?"하지만 도혁의 옆에 앉은 사람은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여기서 소개팅하겠다는 건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술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하룻밤. 그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3.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데.""그럴 리가."괜히 한 번 도발해 본 거였는데 태연한 척 받아치는 목소리가 사실 조금 멋은 없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기 때문이었다. 긴장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그래요?"그 말이 마치 엄청난 도발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버틸지 보겠다는 듯이. 도혁은 조금 오기가 생겼지만, 술이 조금 들어간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성생활과는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2.

    "뭐, 근처에도 방은 많으니까요."이 근처엔 널린 게 모텔방이었다. 도혁은 주하의 말에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날 때부터 도련님이라 이런 곳에 가본 적은 없었다. 물론 갑자기 둘이 택시 타고 호텔을 찾아가는 건 좀 웃긴 것 같기도 했다."흠.""손으로만 해줄 테니까 가려면 가고요.""뭐?"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저보다 2배는 큰 남자를 보면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가 싶다가도, 무슨 자신감인지 궁금하기도 했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1.

    주하는 개강 첫날부터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5학년 2학기. 이제 졸업 작품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졸업 논문만 쓰고 나면 길었던 학교생활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나 술이 당기는지. 학교를 다니는 4년 반 동안 그렇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은 없었다. 건축학과는 제법 술을 많이 마시는 이미지가 있었는데도 주하는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마실 일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날 좀 보기 드물게 취해있었다. 길에서 커다란 남자와 부딪혔을 때, 별생각 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과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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