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아침.
“뿌애애애앵-!”
애드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집 안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로테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에 기대 있었고,
루카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에리스는 창가에 앉아 말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또 운다. 이번엔 네가 좀 봐줘, 로테.”
"....루카.."
"왜...?"
“나 배도 고프고, 잠도못자서 기운도없고..."
"혹시 아기의 뜻이 엄마 아빠를 아사시키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라는 말이 아닐까...”
“뿌애애애애앵!!!”
“가요... 갑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애드에게 다가갔다.
루카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고 흔들었다.
“자, 손님. 이번엔 무엇이 불만이십니까?”
“으아아앙!!”
“.........”
“모유는 아까 드셨잖아요, 손님.”
“으아아아앙!!!”
그 순간, 기저귀 사이로 익숙하고도 불길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루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로테. 이번엔 똥이래.”
“건조시켜 둔 기저귀 가져올게...”
밤새도록 기저귀 갈기, 세탁, 건조, 다시 갈기, 다시 세탁을 반복한 두 사람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에리스는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와... 무슨 무한 가내수공업 지옥이냐.”
그때였다.
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스르륵.
그 기운을 감지 하자마자 에리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결국 왔구나. 아파테.’
육아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에리스는 조용히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집 앞 숲길.
붉은 눈동자와 새하얀 긴 머리카락, 자신과 닮은 뿔을 가진 남자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누님. 오랜만입니다.”
“아파테. 자리를 옮기자.”
“아아, 이해합니다.”
“지금 ‘가족’처럼 여기는 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신 거겠지요.”
“.....!”
정곡을 찔린 에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곧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하. 내가 인간 따위를 가족처럼 여길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물러졌나?”
“글쎄요.”
두 사람은 더 깊은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아파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말씀드릴 건, 제가 어머님의 봉인석을 찾았다는 겁니다.”
“...뭐?”
“그리고 누님도 ‘헬리오스’를 찾으신 것 같더군요.”
에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파테, 그건...”
“그런데 말입니다.”
아파테는 말을 끊고 미소 지었다.
“스스로 자신을 봉인한 어머님께서, 정말 봉인이 풀리길 바라실까요?”
“어...?”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어릴 적, 어머님이 단 한 번이라도 웃는 모습을 본 적 있습니까?”
에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는 것은 차갑고 공허한 얼굴뿐이었다.
“저는,”
아파테가 다시 에리스를 바라봤다.
“어머님께서 봉인으로 인해 오히려 안식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누님은 왜 우리가 ‘불화’와 ‘기만’으로 태어났는지 아십니까?”
“......왜?”
“신의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가 품은 감정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가며 싱긋 웃었다.
“즉, 어머님은 저희를 낳으실 때 행복하지 않으셨다는 뜻이지요.”
그의 말에 에리스의 얼굴이 굳었다.
“...어머님이 날 낳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누군가가 그런 감정을 심어 주었겠죠.”
“누가?”
아파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침묵이 숲속을 가득 메웠다.
잠시 후,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누님은... 행복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
에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파테는 품속에서 검은 흑요석이 박힌 귀걸이 한 쌍을 꺼내 그녀의 손에 올려두었다.
“이건 뭐지?”
“행복을 선택하게 해 주는 귀걸이입니다.”
“뭐?”
“이걸 착용하고 계시면, 당장의 불화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에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글쎄요.”
아파테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빛의 힘을 가진 헬리오스는 제가 찾겠다고.”
“......”
“물론 찾지 않을 겁니다.”
그는 다정하게 웃었다.
“누님은 그저 지금의 일상을 즐기세요.”
“...그래도 되는 거야?”
“네.”
아파테는 에리스의 손을 감싸 쥐며 속삭였다.
“즐기세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에리스의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이 조금은 걷히는 듯했다.
이제 더는 떨지 않아도 된다.
이제 정말 저 세 사람 곁에 섞여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믿으며, 에리스는 귀걸이를 귓불에 걸었다.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스쳤다.
“...고마워, 아파테.”
아파테는 환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별말씀을.”
그는 안개처럼 숲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에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귀걸이를 매만졌다.
검은 흑요석이 햇빛 아래에서 아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파테가 돌아간 뒤, 에리스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괜찮을 것이다.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연 순간.
“으아아아악! 로테, 나 좀 살려줘!!!”
“어? 어?! 애드! 아빠 머리 뽑힌다!!”
“꺄하핫-!”
“.........”
집 안은 아까보다 더 처참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루카는 애드에게 머리카락을 붙잡힌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로테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피식 웃었다.
“하. 한심하긴.”
그녀는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어이. 나한테 아기 넘겨봐.”
루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너, 아기 안는 법은 알아?”
“두고 보면 알겠지.”
“그래. 다치게만 하지 마라.”
루카가 조심스럽게 애드를 에리스에게 넘겼다.
에리스 품에 안긴 애드는 동그란 눈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해맑게 웃었다.
“꺄륵.”
“....!”
아기의 미소에 에리스의 심장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작고 따뜻한 체온.
말랑한 손.
그리고 자신만 바라보며 웃는 얼굴.
‘뭐야... 좀 귀엽잖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려던 순간.
푝.
“.........?”
애드의 두 손가락이 정확히 에리스의 눈을 찔렀다.
“으아아아아아악!!!!!!!”
에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두 팔을 놓쳤다.
“헉! 애드!!!”
몸이 공중에 붕 뜬 애드를 루카가 재빨리 낚아채듯 받아냈다.
“후... 다행이다.”
루카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대로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탓에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었다.
로테는 이미 육아에 지쳐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고,
에리스는 눈을 감싼 채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내 눈! 내 신성한 눈이!!”
“누가 아기 안는 법 안다고 했냐?”
“닥쳐, 손해배상청구 할거야!”
“꺄하핫!”
아무것도 모르는 애드는 루카 품 안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지옥 같은 집 안에서, 유일하게 행복해 보이는 존재는 애드 하나뿐이었다.
세 달 뒤.
애드는 제법 통통하게 자라 있었고,
에리스의 뿔을 장난감처럼 붙잡고 놀고 있었다.
“야. 이거 장식 아니다.”
“에-브-”
에리스는 자신의 뿔을 꼭 쥔 애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치며 말했다.
“‘에-브-’가 에리스 예쁘다, 이런 뜻이지? 역시 애들은 솔직하다니까.”
루카가 코웃음을 쳤다.
“꿈보다 해몽이지.”
“뭐야?!”
“이잉...”
에리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애드의 눈망울에 금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또 울렸네. 못된 에리스 같으니.”
“네가 먼저 시비 건 거잖아!!!”
“후에에에엥!!!”
“으아아악, 시끄러워!”
“야! 울려 놓고 어디 가!”
“네 아들이잖아!”
애드가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뜨리자, 에리스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다락방으로 도망쳤다.
세 달 전, 아파테가 일상을 즐기라 말한 뒤로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레보스도 더는 자신을 찾지 않았고, 누군가 감시하는 기척조차 없었다.
에리스는 이제야 해방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잠잠할 수가 있나?’
하지만 불안은 한 번 시작되면 끝도 없이 커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에리스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침대에 누운 채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까마귀 한 마리가 창틀 위에 내려앉아,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인 채 에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악. 까악.”
잠시 후, 까마귀는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에리스는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뭐야, 저 까마귀는.”
그때 아래층에서 로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리스! 점심 먹으러 내려와!”
“......”
잠시 망설이던 에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야, 또 버섯이지?”
로테가 활짝 웃었다.
“정답!”
“아... 진짜.”
“꺄하하핫!”
애드의 맑은 웃음소리가 집 안에 퍼졌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은 계속되었고, 계절은 다시 몇 번이나 바뀌어 갔다.
애드가 처음 뒤집기를 하던 계절엔 눈이 녹았고,
처음으로 ‘이모’와 ‘엄마’를 헷갈려 옹알이하던 날엔
숲 가득 이름 모를 여름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에리스의 귀걸이가
단 한 번도 차갑게 식지 않은 채,
일곱 번의 눈이 내리고,
일곱 번의 꽃이 다시 피어났다.
에리스는 몰랐다.
그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잔인하고도 따뜻한 유예였다는 것을.
“으흑... 에리스... 갑자기 왜 이런 일이...”“…울지 마”낡은 오두막 안에는 로테의 흐느낌과, 낮게 가라앉은 에리스의 목소리가 번갈아 울리고 있었다.아빠를 뜻하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애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아니겠지.잘못 들은 거겠지.애드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조금 밀었다.끼이익-문이 열리고, 멍한 얼굴의 애드가 안으로 들어섰다.로테는 황급히 눈물을 훔친 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애드, 왜 벌써 들어와? 놀만한게 없어?”애드는 잠시 로테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엄마.”“대체 누가 아빠를 죽인거야…?”로테는 어린아들에게 차마 대답하고싶지않은 질문을 들어버렸다.“이야기... 들었니...?”“들어버렸어.”일곱 살 아이의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담담한 목소리.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아들의 모습에 로테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애드에게 달려가그를 힘껏 끌어안았다.“미안해, 애드...”“이제... 검은 숲으로는 돌아가지 못해...”로테의 말에 애드는 참고있던 울분을 터트렸다.“추억의 장소라며...”“아빠랑 엄마가 만난 곳이잖아!”애드는 목소리가 갈라질정도로 화를냈다.“그리고 아빠를 죽인 놈이 나쁜 거잖아!”“왜 우리가 숨어 살아야 하는 건데? 난 그놈 용서못해!! ”애드의 말에 로테는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애드... 엄마도 분하고 억울해.”“당장이라도 찾아내서 찢어 죽이고 싶어.”“하지만 복수를 시작하면... 그 불행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갉아먹고 말아...”애드는 로테의 말을 듣지않고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갉아먹혀도 괜찮아!”“이미 아빠는 돌아오지 못하고... 행복도 다 부서졌는데!”로테는 떨리는 손으로 애드의 뺨을 때렸다.찰싹-!“아야...”“애드.”그녀가 눈물을 머금은 채 웃었다.“넌 아직 어려… 부서진 행복은... 다시 이어 갈 수 있어.”“엄마는 그 빌어먹을
“헉... 헉...!”에리스는 의식을 잃은 로테를 업은 채, 숨이 찢어질 듯 숲을 달리고 있었다.등에 느껴지는 로테의 체온은 점점 식어 가고 있었다.달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애드의 행방으로 가득했다.“그 꼬맹이는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그때였다.맞은편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에리스는 즉시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을 노려보았다.혹시 놈이 다시 쫓아온 건 아닐까.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려던 순간.“와악-! 이모!”수풀을 헤치고 애드가 튀어나왔다.장난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하아....”에리스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놀랐지? 이모!”애드의 얼굴을 보는 순간 풀어졌던 긴장도 잠시,에리스는 곧바로 표정을 다잡고 낮게 말했다.“애드. 장난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달려야 해.”애드에게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내 손 잡아.”“응...?”그제서야 애드는 에리스 등에 업힌 로테를 발견했다.“어!? 이모, 엄마는 왜 이래? 다쳤어? 아빠는?”“......”애드의 물음에 에리스의 머릿속에서 헬리오스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피를 토하던 얼굴.끝내 다 하지 못한 말.에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우린 지금 술래잡기 중이야.”“뭐?”“아빠가 술래고, 엄마는 도망가다 다쳤어.”애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른 셋이서 무슨 술래잡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해?”“질문은 나중에.”에리스는 애드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우선 달리자.”“...응!”세 사람은 한참 동안 숲속을 내달렸다.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릴때 쯤,숲 끝자락, 절벽 근처에 버려진 낡은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에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문을 밀어 열었다.끼이익-“일단 여기서 쉬자.”그녀는 로테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리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아파테에게 속아 이 빌어먹을
"그리고, 내 어머니는 밤의 여신 '닉스'지. "에리스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헬리오스의 표정이 굳었다."네가... 에레보스와 닉스의 딸이라고?”"그래"헬리오스는 닉스라는 이름을 듣자 복잡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에리스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내 아버지 에레보스가 말했어. 어머니의 깊은 잠을 깨우기 위해선 너의 힘이 필요하다고.”"나는 너에게 확인하고 싶은것이 두개 있어."에리스는 괴로운 표정으로 낮게 중얼거렸다.“첫번째. 신들은 자식을 낳을 때 품은 감정대로 아이의 본질이 정해진다고해.”“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불화’를 품었지.”“......"“왜 그랬을까.”에리스의 질문에 헬리오스의 얼굴에는 깊은 죄책감이 드리웠다.“그래... 닉스가 그런 감정을 가질법 해.”그는 힘없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그 시절... 나는 닉스를 버렸으니까.”헬리오스의 말에 에리스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믿고싶지 않았던 아파테의 말이 진실이 된 순간이었다.“하지만 그때 에레보...”헬리오스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아아.”낯선 목소리가 헬리오스의 말을 끊어내고 숲을 가르며 끼어들었다.“찾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낯선 남자가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오랜만이에요. 헬리오스.""넌 누구지?"헬리오스가 낯선 남자를 경계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남자는 뒷걸음질 치는 헬리오스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그리고 천천히, 너무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왔다.“아아, 헬리오스... 이렇게까지 날 애타게 하다니.”에리스가 멍하니 낯선 남자를 바라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뭐야 저녀석은."그순간.남자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력이 뱀처럼 허공을 가르며 쇄도하며 헬리오스의 가슴을 관통했다."커헉...!"붉은 피가 헬리오스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남자는 쓰러지려는 헬리오스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어 억지로 세웠다.“인간과의
“에리 이모? 거기서 왜 벌러덩 누워 있어?”멀리서 애드가 에리스가 누워있는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에리스는 고개를 돌린 채 재빨리 눈가를 훔쳤다.“요즘은 누워서 일광욕하는 게 건강에 좋다더군. 그래서 누워 있었다.”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이모도 이제 건강 챙길 나이지...”“......”“근데 아무리 좋은 민간요법이라도 나이 앞에서는... 아니, 아니다. 역시 힘내, 이모!”애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에리스를 진심으로 응원했다.에리스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아기일 땐 귀엽더니, 저 얄미운 주둥이는 지 아비를 닮아 가는구나.”애드는 씩 웃었다.“그게 내 매력 아닐까?”“말이나 못하면 밉기라도 하지.”“아, 맞다! 이모, 이것 좀 봐.”“뭔데?”애드는 두 눈을 감고 잠시 집중했다.이내 그의 손끝에서 따뜻한 하얀빛이 송글송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파아앗-“....!”그걸 본 에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애드는 잔뜩 으스댄 얼굴로 말했다.“어때? 예쁘지? 빛의 마법이야!”“너... 언제부터 그런 걸 쓸 줄 알았지?”“아빠가 알려 줬어!”애드는 해맑게 웃으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흔들어 보였다.“그리고 이것도 선물 받았다?”에리스의 시선이 목걸이에 꽂혔다.‘저건... 빛의 힘이 담긴 목걸이잖아.’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에리스는 애드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애드.”“응?”“절대로.”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두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그녀의 말에 애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에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욕심쟁이라서. 나만 보고 싶거든.”“아! 그렇구나!”애드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아, 맞다! 이모! 엄마가 밥 먹으래!"“.....”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버섯이겠지.”“버섯이야!”“.........”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가자, 이모
“에리 이모, 삶이란 무엇일까?” “.....하?” 찬란하고 따뜻한 봄의 아침. 어느새 일곱 살이 된 애드는 에리스와 마주 앉아,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삶 말이야. 삶. 죽음과 삶에 대하여! 이모는 어떻게 생각해?”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애드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삶은... 계란.” “.......” 에리스의 시답잖은 농담에 애드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 좀 풀어라. 농담이잖아.” “그럼 이번엔 진지하게 대답해 봐, 이모.” “삶이란...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 죽어 가는 과정이지.” 에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지금 일곱 살 상대로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아. 재미없다.” 애드는 단번에 흥미를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깥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루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어어, 그래. 애드리안.” 루카는 도끼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에리스가 또 헛소리하더냐?” “아니. 이모 수준이 낮아서 못 놀아주겠어.” “뭐?!” “푸하하하! 역시 아이들은 본질을 정확히 보는군.” “진짜 몇 년을 같이 살아도 재수 없어, 너희 둘은.”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칠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레보스도, 아파테도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리스는 이제야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이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버섯을 한가득 캐 온 로테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에리스! 이것 좀 들어 줘!” “와... 저 버섯은 대체 어디서 저렇게 끝도 없이 자라는 거야...” 에리스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로테의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아주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
다음 날 아침.“뿌애애애앵-!”애드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집 안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로테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침대에 기대 있었고, 루카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에리스는 창가에 앉아 말없이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또 운다. 이번엔 네가 좀 봐줘, 로테.”"....루카..""왜...?"“나 배도 고프고, 잠도못자서 기운도없고...""혹시 아기의 뜻이 엄마 아빠를 아사시키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라는 말이 아닐까...”“뿌애애애애앵!!!”“가요... 갑니다...”밤새 한숨도 못 잔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애드에게 다가갔다.루카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고 흔들었다.“자, 손님. 이번엔 무엇이 불만이십니까?”“으아아앙!!”“.........”“모유는 아까 드셨잖아요, 손님.”“으아아아앙!!!”그 순간, 기저귀 사이로 익숙하고도 불길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루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로테. 이번엔 똥이래.”“건조시켜 둔 기저귀 가져올게...”밤새도록 기저귀 갈기, 세탁, 건조, 다시 갈기, 다시 세탁을 반복한 두 사람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에리스는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와... 무슨 무한 가내수공업 지옥이냐.”그때였다.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스르륵.그 기운을 감지 하자마자 에리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결국 왔구나. 아파테.’육아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에리스는 조용히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집 앞 숲길.붉은 눈동자와 새하얀 긴 머리카락, 자신과 닮은 뿔을 가진 남자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누님. 오랜만입니다.”“아파테. 자리를 옮기자.”“아아, 이해합니다.”“지금 ‘가족’처럼 여기는 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신 거겠지요.”“.....!”정곡을 찔린 에리스의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곧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하. 내가 인간 따위를 가족처럼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