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에리 이모, 삶이란 무엇일까?”
“.....하?” 찬란하고 따뜻한 봄의 아침. 어느새 일곱 살이 된 애드는 에리스와 마주 앉아,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삶 말이야. 삶. 죽음과 삶에 대하여! 이모는 어떻게 생각해?”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애드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삶은... 계란.” “.......” 에리스의 시답잖은 농담에 애드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 좀 풀어라. 농담이잖아.” “그럼 이번엔 진지하게 대답해 봐, 이모.” “삶이란...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 죽어 가는 과정이지.” 에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지금 일곱 살 상대로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아. 재미없다.” 애드는 단번에 흥미를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깥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루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어어, 그래. 애드리안.” 루카는 도끼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에리스가 또 헛소리하더냐?” “아니. 이모 수준이 낮아서 못 놀아주겠어.” “뭐?!” “푸하하하! 역시 아이들은 본질을 정확히 보는군.” “진짜 몇 년을 같이 살아도 재수 없어, 너희 둘은.” 에리스는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칠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레보스도, 아파테도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리스는 이제야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이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버섯을 한가득 캐 온 로테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에리스! 이것 좀 들어 줘!” “와... 저 버섯은 대체 어디서 저렇게 끝도 없이 자라는 거야...” 에리스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로테의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아주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불안한 기운을 느낀 에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느낌은.’
‘아파테.’
에리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식탁 위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시선이 느껴지는 숲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숨지 말고 나와.”
에리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가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푸흐흐...”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나뭇가지 위 허공이 일렁였다.
연기처럼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파테였다.
붉은 눈동자와 희미한 미소.
그는 나무 위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건강해 보이셔서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누님.”
“좋은 일로 찾아온 건 아닌 것 같군.”
“아, 상황이 조금 바뀌어서요.”
“무슨 소리지?”
아파테는 여유롭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예전에 말씀드렸죠. 어머님께서 저희를 낳으실 때 품었던 감정이, 저희의 본질이 되었다고.”
“그래서?”
“그 부정적인 감정을... 누가 어머님께 심어 주었는지 아십니까?”
“궁금하지 않아.”
“아니요.”
아파테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누님은 반드시 들으셔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불행했던 이유는... 헬리오스였거든요.”
“..........”
에리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파테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누님께 선택권을 드리는 겁니다.”
“더 상처받기 전에, 그에게서 벗어날 기회를.”
“시건방지구나, 아파테.”
에리스의 입가가 비틀렸다.
“도를 넘었어.”
콰아악-!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마력이 뱀처럼 아파테의 목을 휘감았다.
숨통이 조여들었지만, 아파테는 오히려 웃었다.
“크큭...”
“내가 네 간사한 농간에 넘어갈 것 같으냐?”
그 순간이었다.
에리스의 귓불에 걸린 흑요석 귀걸이가 붉게 맥동했다.
두근.
동시에 전신이 끓는 용암 속에 던져진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에리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집중이 흐트러졌고, 아파테의 목을 조이던 마력이 스르륵 풀려 버렸다.
바닥에 내려진 아파테가 목을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고통스러우십니까, 누님?”
“아악! 뜨거워...!”
에리스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살려줘.. 너무 뜨거워...!!”
아파테는 그녀 앞으로 다가와 귀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쳤다.
순간, 불길 같은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아... 하아...”
에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님.”
아파테가 부드럽게 웃었다.
“말씀드렸잖아요. 행복을 ‘선택’하게 해 주는 귀걸이라고.”
“무슨... 뜻이지?”
“간단합니다.”
그가 허리를 숙여 에리스와 눈을 맞췄다.
“누님의 선택이 틀릴 때마다, 귀걸이가 벌을 내릴 겁니다.”
“뭐...?”
“올바른 선택을 하시면, 아프지 않을 겁니다.”
에리스는 곧장 귀걸이를 잡아 뜯으려 했다.
훽!
하지만 흑요석은 귓불에 뿌리내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떨어져...!”
“소용없습니다.”
아파테는 피식 웃었다.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그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헬리오스 때문에 우리는 불화, 기만, 죽음, 안식으로 갈라져 태어났다는 것을.”
“이 개자식... 날 속였구나...”
“푸흐흐.”
아파테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동안은 즐거우셨잖아요.”
“이제부터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 직접 행복을 찾아보시죠.”
“그딴 건 안 해!”
아파테는 대답 대신 귀걸이를 다시 한번 툭 건드렸다.
그 순간.
수만 개의 칼날이 동시에 살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이 에리스의 몸을 꿰뚫었다.
“아아아아악-!!!”
에리스는 바닥에 쓰러진 채 몸부림쳤다.
아파테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누님께는 시간이 없습니다.”
“참고로 제가 없어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마다 귀걸이는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헬리오스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어떤것이 진실이고,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태어날수밖에 없었는지를요..”
스르륵.
그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아파테는 숲속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에리스는 떨리는 손으로 귀걸이를 움켜쥐었다.
아파테에게 속았다는 분노.
헬리오스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을 낳을 때 ‘불화’를 품었다는 말.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껏 그의 곁에서 웃고 지낸 자신은 무엇이었는지.
모든 생각이 뒤엉켜 그녀를 짓눌렀다.
행복은 끝났다.
아니.
처음부터 허락된 적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흑...”
끝내 에리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다.”마음에 치명상을 입은 노인은 휘청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하지만 곧 무언가를 결심한 듯 천천히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그럼…”“이번엔 내가 먼저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네.”그 순간이었다.노인의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방금 전까지 흐리멍텅하던 눈빛이 서늘하게 날카로워졌고,허술해 보이던 노인의 분위기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마치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검성이 다시 깨어난 것처럼.그리고 노인의 몸에서, 묵직한 위압감이 천천히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파앗—!손잡이에서 찬란한 빛이 폭발했다.허공에 검기가 궤적을 그렸다.“흐아아압!!”콰아아앙!!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수련장에 세워져 있던 허수아비들이 동시에 갈라졌다.세 사람은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와.”노인은 다시 맹한 얼굴로 돌아와 검을 바닥에 툭 던졌다.빛이 사라지며 검날도 스르륵 허공으로 녹아내렸다.“이것이 이 성검의 힘이다.”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마음속 빛의 힘이 약하면 베이지 않는다.”“하지만 그 힘이 강할수록 태양처럼 폭발하지.”아이테르가 두눈을 반짝이며 감동에 빠졌다.“와… 형님! 다시 봤습니다!”갑자기 달라진 아이테르의 태도에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까는 영감이라 하지 않았느냐?”아이테르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강하면 형님이죠.”“고얀 놈…”메티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영감님! 기왕 오신 거 애드한테 검술 좀 가르쳐 주세요!”“영감이라 안 가르쳐 준다네.”“에?”그 순간.아이테르가 메티스를 향해 몰래 입모양을 움직였다.영감님 말고 오빠라고 불러줘.“….”메티스는 그 입모양을 읽고 한동안 굳어 있었다.“…오.”“오?”“…아빠.”“아빠?”애드와 아이테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메티스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빠!”노인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그리고 묘하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아빠라.”“크흠. 나는 아직 자식이 없는데.”
애드가 평화롭게 해변에서 잠이 든 무렵…빛조차 존재할 수 없는 공간. 아니, 빛이라는 개념 자체를 삼켜버린 심연의 중심.그곳의 왕좌에 에레보스가 앉아 있었다.붉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봤다.그 시선 끝에는 에리스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에레보스의 손 위에는 목걸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에리스가 애드에게서 회수한 목걸이였다.깨지지도, 훼손되지도 않은 완벽한 상태였다.하지만…“…이상하군.”에레보스가 낮게 중얼거렸다.“이 목걸이에서 빛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툭.그가 손가락을 펼치자 목걸이가 차가운 바닥 위로 떨어졌다.에레보스의 시선이 천천히 에리스를 향했다.“설명해라.”짧은 한마디.하지만 그 순간 공간 전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압도적인 압박감.“…분명 확인했습니다.”에리스는 겁에 질렸지만 겨우 짜낸 목소리로 대답했다.에레보스가 작게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은 비웃음에 가까운 소리였다.“확인?”그의 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니년은…”에레보스의 위압감에 주변 공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그 아들놈이 죽은 걸 직접 확인했단 말이냐?”순간 에리스의 숨이 턱 막혔다.그건 질문이 아니었다.이미 실수를 확신한 자의 목소리였다.“…네, 그 아이는 분명히—”쾅!!!!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리스 주변 지면이 그대로 내려앉았다.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으윽…!”에리스의 어깨가 떨렸다.에레보스는 여전히 왕좌에 앉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대답은 짧게.”낮고 음산한 목소리.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음성.“살아 있다는 건가.”에리스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아닙니다.”“…….”에레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에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쉬온 왕궁 정원]애드의 기도가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를 그 시각.정원사로 변장한 아이테르는 태연한 얼굴로 잔디를 다듬으며 왕궁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심지어 휘파람까지 불 만큼 여유로워 보였다.하지만.정원이 이상했다.꽃 모양 나무판자.분수대 모양 나무판자.심지어 나무 모양 나무판자까지.아이테르는 꽤 오래 살아왔지만 이런 정원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뭔데 이 나무판자 밭은.”그때였다.맞은편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 하나가 터덜터덜 걸어왔다.아이테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관리인인가?’그는 괜히 친근한 척 웃으며 다가갔다.“안녕하세요~ 신입입니다.”노인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되물었다.“뭐어? 임신?”“신입이요.”“네가 임신했다고?”……짧은 침묵.아이테르의 인내심이 살짝 끊어졌다.그는 노인이 듣지않을만큼 작은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귀 막혔나… 이 노인네…”노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말했다.“노인네라 하지 마라.”“아직 102살이다.”“잘 들리네?!”아이테르가 화들짝 놀랐다.하지만 노인은 다시 못 들은 척 딴소리를 했다.“뭐? 들러리?”아이테르는 순간 대화를 포기하고 싶어졌다.그런데 그때.노인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형님이라 불러라.”“…네?”“형님.”그 압도적인 기세에 아이테르는 본능적으로 쫄았다.“…네, 형님.”“그래.”노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왜 부르지?”갑자기 또렷해진 반응에 아이테르는 다시 희망을 품고 물었다.“…혹시 왕가의 보물이 뭔지 아십니까?”“알지.”“어디 있는지도요?”노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그걸 왜 묻지?”노인의 날카로운 질문에 아이테르는 살짝 긴장했다.거짓말도 안 통할 것 같았다.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그냥 궁금해서요.”“음.”노인은 의외로
애드의 희생 아닌 희생 덕분에, 아이테르와 메티스는 왕궁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왕궁 창고까지 도착했다.두 사람은 벽에 딱 붙은 채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그때 메티스가 아이테르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아이테르.”“응?”“아무리 그래도 왕국 보물이 이런 창고에 있겠어?” 아이테르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원래 오래된 보물은 잊혀져서 창고에 처박히는 법이야.”“성검이라며. 근데 왜 창고에 있는데?”“몰라.”아이테르는 당당하게 가슴을 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냥 내 직감이 여기라고 말하고 있어!”……잠시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메티스는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그리고 아이테르의 뻔뻔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갑자기 때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퍽-!!!“악!! 왜 때려?!”“꺅! 미안!”메티스가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때리고 싶다 생각했는데 손이 먼저 나갔어!”“그게 더 무섭거든?!”아이테르가 뒤통수를 감싸 쥔 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바로 그 순간이었다.창고 구석 어딘가에서 무언가 반짝였다.반짝.반짝이는 상자를 먼저 발견한 메티스가 눈이 커지며 아이테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아이테르, 저기 봐!”“저게 성검의 빛 아닐까?”“오, 가 보자!”두 사람은 숨을 죽인 채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동시에 심호흡을 한 뒤,끼이익-천천히 상자를 열었다.그리고 안을 들여다본 순간.“……….”“……….”상자 안에는.아까 애드를 안고 다니던 왕의 얼굴을 본뜬 인형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메티스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뭔데 이 쓰레기들은?”메티스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설명서를 조심스럽게 읽었다.[자체 발광 마법 인형! 밤에도 무섭지 않아요!] [엘쉬온 왕 타입]“……….”메티스는 말없
엘쉬온으로 가던 도중,문득 궁금해진 애드가 아이테르에게 물었다. “근데 성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 아이테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 몰래 들어갈 건데.” “……” 그의 대답에 애드는 경악했다. “몰래 들어가다 잡히면 죽는다고 들었는데?!” “합법적인 방법도 있긴 해.” “뭔데?” 아이테르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나만 믿으셔.” 아이테르가 당당할수록 애드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잠시 후. 세 사람은 엘쉬온 수도 루엘에 도착했다. 아이테르는 메티스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메티스! 상자 하나 만들어 줘.” “무슨 상자?” “애드 들어갈 만한 크기.” “응! 해 볼게!” 메티스가 손을 모으자 푸른 마력이 모여들며 커다란 종이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애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이게 왜 필요해?” 아이테르는 상자를 툭툭 두드렸다. “들어가.” “뭐?” “일단 들어가.” 애드는 불안한 얼굴로 상자 안에 쭈뼛쭈뼛 들어갔다. 아이테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메티스, 상자에 글씨 적어.” 메티스는 펜을 꺼내 상자 겉면에 큼지막하게 글씨를 적었다. [키워 주세요.] “…………” 그 문구를 본 애드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고양이냐!!!!!” “쉿.” 아이테르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조용히 해.” 아이테르는 애드가 들어 있는 상자를 성문 근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잘 들어, 애드.” “누가 지나가면 최대한 슬픈 눈으로 쳐다봐.” “…진짜 그걸로 되는 거야?” “된다니까.” 아이테르와 메티스는 멀찍이 숨어 애드를 지켜봤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성문 앞으로 걸어왔다. “어? 뭐야. 버려진 건가?” 귀족 차림의 남자는 애드가 들어있는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애드는 아이테르의 말대로 최대한 처량한 눈빛으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홀린 듯 애드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이고, 이런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수평선을 바라보던 아이테르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서늘한 바람이 그의 손끝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회오리를 만들더니, 곧 그의 손안에 활과 화살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본 애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아빠랑 같은 무기 쓰네?” 애드의 말에 아이테르가 피식 웃었다. “아, 네 아버지가 헬리오스라고 했었지.” 아이테르는 활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조금 전까지 세 시간이나 훌쩍이던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잘 봐라! 나의 활 실력을.” 퉁-! 화살이 수평선 너머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촤르르르르륵-!!!!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다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바다의 물벽이 좌우로 밀려나며 한가운데 길이 열렸다.잠시후 첨벙-!! 갈라졌던 바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어…?” 애드는 넋이 나간 얼굴로 방금 전까지 갈라져 있던 바다를 바라봤다. 아이테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헬리오스와 나는 신계 활 실력 1위, 2위를 다투던 라이벌이었거든.” “진짜…?!” “그래!” 아이테르는 애드의 머리를 툭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 자식, 내가 대회에서 1등 한 뒤 갑자기 사라졌길래.” “나한테 져서 도망간 줄 알았더니 인간계에서 아버지 노릇 하고 있었던 거였네?” 그 말에 애드의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아이테르는 잠시 애드의 표정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깊게는 안 물을게.” “네가 나한테 수련을 부탁했다는 건…” 그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헬리오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겠지.” 애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며, 파도 소리만 주변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이테르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좋아.” “네가 기본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될 때까진 내가 도와줄게.” “정말?!” 애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훈훈한 분위기가 흐르던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