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아침.밴스는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잿빛이었다. 책상 위에는 호라이즌 관련 서류들이 펼쳐져 있었다. 진행 보고서, 자금 승인 문서, 그리고 마을의 수력 발전 시스템이 완공되었다는 보고서까지.세 곳의 새로운 지역도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했다.애슈워스는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이사회는 여전히 의견이 갈리고 있었다.문이 열렸지만 밴스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윌리엄이 들어왔다.노크는 없었다.그는 원래부터 노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윌리엄은 잡지를 밴스의 책상 위로 내던졌다.종이가 팔랑거리며 펼쳐졌다.표지에는 마을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새로 설치된 수력 발전 시스템과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그리고 큼지막한 헤드라인.「블랙우드 후계자, 가문 대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택하다」밴스는 표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손을 대지는 않았다.“이 프로젝트를 그만둬야 한다.”윌리엄이 말했다.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네가 그 멍청한 꿈을 가지고 놀도록 충분히 내버려 뒀다. 하지만 이제 넌 아버지가 됐어. 쌍둥이가 태어났고, 책임져야 할 가족도 생겼다.”윌리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이제 현실로 돌아올 때다.”“이 프로젝트는 수익성이 있습니다.”밴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충분하지 않아.”윌리엄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애슈워스의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지? 그 사람은 한 명일 뿐이야. 이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왜 블랙우드의 후계자가 회사를 키우는 대신 시골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하는지 묻고 있어.”밴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회사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문제가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윌리엄이 한 걸음 다가왔다.“내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이 제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네가 감상적인 환상 하나 때문에 내가 만든 것을 무너뜨리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어.”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프로젝트를 끝내. 당장.”“싫습니다.”짧고 담담한 대답이었다.윌리엄의 얼
병실 안은 환할 정도로 밝았다.하얀 벽과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그리고 조용히 울리는 의료기기의 알림음.조비엔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몇 시간째 진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침대 곁에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문 근처를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또 한 번 강한 진통이 밀려왔다.조비엔이 비명을 질렀다.“제인! 제발, 제인에게 연락해—”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네 남편은 곧 올 거야. 쓸데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조비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난 그 사람이 필요해—”“지금 네가 필요한 건 힘을 주는 거야.”분만은 한 시간이나 더 이어졌다.그리고 마침내, 두 개의 날카롭고 힘찬 울음소리가 거의 동시에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남자아이입니다.”간호사가 말했다.“그리고 여자아이예요. 둘 다 건강합니다.”조비엔은 베개에 몸을 기대며 힘없이 무너졌다. 천장을 바라보던 그녀의 관자놀이를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잠시 후 고개를 돌려 두 아기를 바라보았다.제인의 아이들.입가에 작고 힘없는 미소가 번졌다.“엄마야.”조비엔이 약하게 속삭였다.“우리 아가들.”블랙우드 가문 사람들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병원에 도착했다.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밴스의 부모인 윌리엄과 릴리였다.하지만 밴스는 그들과 함께 오지 않았다.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조비엔의 부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자아이를 품에 안았고, 아버지는 남자아이를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블랙우드 가문의 후계자들이군.”조비엔의 아버지가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곧 릴리가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조비엔의 어머니에게서 여자아이를 받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정말 예쁘구나. 너무 예뻐.”릴리는 아기를 바라보다 조비엔에게 시선을 돌렸다.“정말 잘했어.
밴스는 곧장 시동을 걸었다.두 사람은 네리사의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바닷가와 가까운 그녀의 고향.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마지막 결혼 이후,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났던 곳이었다.그 불륜이 시작되기 전.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레오는 이미 집에 와 있었다.새뮤얼이 연락한 모양이었다.그는 현관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네리사는 차에서 내렸다.천천히 레오에게 다가갔다.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그리고 말했다."나… 임신했어."레오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그저 두 팔을 벌렸다.네리사는 그 품으로 걸어 들어갔다.레오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들어가자."그가 낮게 말했다."엄마가 기다리고 있어."그날 밤.네리사는 어린 시절 사용하던 침대에 누워 있었다.익숙한 천장.집 냄새가 배어 있는 침구.모든 것이 오래전 기억과 같았다.새뮤얼은 떠났다.작별 인사를 하며 그녀를 꼭 안아준 뒤 말했다."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방 안은 어두웠다.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였다.밤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네리사는 배 위에 손을 올렸다.아이는 그곳에 있었다.그리고 작은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멀리 떨어진 어느 지역의 마을에서는 밴스가 다시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마을은 그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돌로 지은 집들.흙길.뛰어노는 아이들.빨랫줄에 옷을 널고 있는 여자들.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밴스는 젊은 가이드 아리스와 함께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수력 발전 시스템은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었고, 터빈도 설치되어 있었다.강물은 이전과 똑같이 매끄러운 돌 사이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아리스가 문득 말했다."그녀가 이걸 보면 정말 좋아할 텐데요."밴스가 그를 바라봤다."누구?""휘트모어 씨요."아리스가 미소 지었다.
아파트는 작았다.침실 하나에 좁은 주방.벽돌벽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창문 하나.에어리와는 달랐다.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했다.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공간이었다.네리사는 이곳에서 여섯 주째 지내고 있었다. 도시를 떠난 다음 주에 이곳으로 이사했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메스꺼움은 멈추지 않았다.어지럼증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애써 무시했다.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아지지 않았다.네리사는 배 위에 손을 올렸다.일곱 주.직접 날짜를 세어봤다.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근처 병원을 검색했다.그리고 주소를 적었다.대기실은 베이지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조용했다.네리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포개고 있었다.가방은 발밑에 바짝 붙여두었다.병원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는 한 번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않았다.옆자리에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그녀의 손을 한 남자가 꼭 잡고 있었다.맞은편에는 나이 든 여자가 혼자 앉아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창가 쪽에는 한 커플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남자는 여자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네리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아직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평평한 배.여전히 평평했다.심장박동이 있을 거야.이번에는 심장박동이 있을 거야.그때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휘트모어 씨?"네리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간호사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그리고 멈췄다.할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렸다.다시 대기실을 가로질렀다.다른 환자들 사이를 지나 접수대를 지나쳤다.그리고 출입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세게 때렸다.네리사는 빠르게 걸었다.구두 굽이 보도 위를 쉴 새 없이 두드렸다.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반 블록쯤 걸었을
밴스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떨리는 손을 애써 내리누르며 그가 물었다."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가 당신을 협박했어?"그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내가 지켜줄 수 있어. 약속할게. 사직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제발… 여기까지 떠나지는 마.""아니요."네리사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내가 내린 결정이에요. 그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그리고 이제는 여기 남을 수 없어요. 떠나야 해요."밴스가 걸음을 멈췄다.가슴이 단단히 조여 왔다."아버지가 당신에게 돈을 보냈다고 했어. 그것도 큰돈을."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제발, 그 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줘."그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그 돈을 받은 게 아니라고 말해줘. 당신은 돈 때문에 사람을 버릴 사람이 아니잖아."목소리 끝에 절박함이 묻어났다."나는 당신을 믿어.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그의 눈빛은 마치 무너져 내린 사람 같았다.네리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확인하지도 않았다.윌리엄이 송금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윌리엄이 자신에게 돈을 보내겠다고 고집했던 것이 역겨웠다.분명 그 봉투를 그의 얼굴에 그대로 던져버렸는데도.그 돈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보여줬는데도.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당장 돌려보내고 싶었다.그렇게 말하고 싶었다.아니라고.나는 돈 때문에 떠나는 게 아니라고.하지만 그녀는 밴스의 눈을 보았다.절박한 희망.부서질 듯한 표정.그는 그녀가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자신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했다.그리고 네리사는 그 믿음을 깨뜨릴 수 없었다.진짜 이유를 말할 수도 없었다.뱃속의 아이에 대해서.자신의 아이에 대해서.두려움에 대해서.그리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대해서.너도 조비와 다르지 않아.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여자.자신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바로 그
블랙우드 저택은 벽난로에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도 차가웠다.윌리엄은 책상 뒤에 앉아 두 손가락을 맞댄 채 굳은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높은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방 안을 데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눈을 감을 때마다 어젯밤의 장면이 떠올랐다.자신의 가슴을 치고 떨어진 봉투.발밑으로 흩어졌던 돈.그리고 창백하면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던 그녀의 얼굴.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등을 돌린 적은 없었다.그 누구도.윌리엄은 노트북을 열었다.은행 계좌에 접속한 뒤,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다.그가 봉투에 넣어 건넸던 금액의 세 배.그녀가 자신에게 되돌려준 돈의 세 배를 먼저 송금했다.그리고 원래 금액까지 다시 더했다.한 번.또 한 번.화면에 찍힌 숫자가 상식적인 범위를 벗어날 때까지.그녀가 그 돈을 받고도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윌리엄은 송금 버튼을 눌렀다.거래가 완료되었다.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한 시간 뒤,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인사팀 담당자에게서 온 메시지였다.[휘트모어 씨가 오늘 오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즉시 퇴사로 처리되었습니다.]윌리엄은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그리고 세 번째로 읽었다.짧고 메마른 웃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결국 그녀도 별다를 것 없군.윌리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기다렸다.늦은 오후.밴스가 저택에 도착했다.공항에서 곧장 온 탓에 정장은 구겨져 있었고, 눈가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출장 자체는 성공적이었다.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내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따로 있었다.그녀였다.대답하지 않은 메시지.받지 않은 전화.그리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침묵.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밴스는 하녀가 옆으로 비켜서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복도를 걸었다.아버지의 서재는 복도 끝에 있었다.문은 열려 있었다.밴스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