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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신당한 남편

Author: Nayko Ayasam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2 17:49:09

 

메시지를 보내고도 한동안 엄지손가락을 화면 위에 띄워 둔 채 움직이지 못했다.

‘블랙우드 씨. 당신의 아내가 제 집에서 제 남편과 함께 있습니다.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 설리번.’

그 아래에는 내가 침실 문을 열었을 때 찍었던 사진이 그대로 첨부되어 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속이 뒤틀렸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밴스가 그 사진을 보길 바랐다. 조비가 잔과 내 침대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때 내가 느꼈던 충격을 그도 똑같이 느끼길 바랐다.

자신이 아내를 찾아 헤매는 동안, 그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그가 이걸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 사람의 결혼은 무너질 것이다.

밴스의 명성 역시 이 일에 휘말릴 것이다.

그리고 조비는 자신을 폭로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척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마음을 바꾸기도 전에 화면을 눌렀다.

메시지 옵션을 열고 전송을 취소했다.

사진이 방금 전까지 있던 문장과 함께 화면에서 사라졌다.

나는 텅 빈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들을 상처 입힐 완벽한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결국 물러섰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때와 똑같은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5년 동안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용서했던 여자.

잔은 남편이 되기 전부터 내 가장 친한 친구였고, 조비는 나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그들을 무너뜨리는 건 결국 내 일부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가 싫었다.

나는 휴대폰을 잠그고 조수석에 던져 놓은 뒤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망가뜨린 두 사람과 마주 앉을 수 없다는 것만 확실했다.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모르게 차를 몰았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침실도, 침대도, 조비의 얼굴도, 내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 잔이 지었던 표정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떠올랐고, 눈을 뜰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이 되살아났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거의 와 본 적 없는 동네에 들어서 있었고, 처음 보는 바 앞에 차를 세웠다.

별다른 생각 없이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텐더가 자리에 앉는 나를 바라보았다.

“진토닉 말고, 스트레이트로 주세요.”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첫 잔이 목을 태웠다.

나는 그 감각을 오히려 반겼다.

가슴 안쪽의 공허함보다 몸 안으로 번지는 뜨거움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한 잔을 더 주문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잔을 거의 비웠을 무렵,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화면을 뒤집었다.

조비: 네리, 제발. 실수였어. 순간적으로 약해졌던 것뿐이야. 우리 얘기하자.

곧바로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잔: 자기야, 제발. 어디야? 나 미칠 것 같아. 설명할게.

나는 그의 메시지를 한참 바라보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자기야.

5년 동안 그가 나를 부르던 말이었다.

아침에 키스할 때도, 퇴근해서 돌아왔을 때도, 어둠 속에서 나란히 누워 있을 때도.

그런데 이제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속이 쓰렸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술을 한 잔 더 주문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싶었다.

머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주변 공기도 전보다 뜨겁게 느껴졌다.

멍하니 바 뒤의 술병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이봐, 혼자 온 거야? 우리랑 재미 좀 볼래?”

남자의 손이 허리에 닿았다.

나는 즉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취한 몸은 생각만큼 빠르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가세요.”

남자가 웃었다.

맥주와 값싼 향수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성깔 있네. 마음에 드는데?”

다른 남자가 반대편에서 다가왔다.

나는 그들을 밀어내려 했지만 손끝에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만……”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약했다.

“그만하라잖아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서린 차가운 기세에 남자들은 곧바로 나에게서 손을 뗐다.

나는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밴스였다.

블랙우드 가문의 후계자는 몇 시간 전 봤던 고급스러운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조금 느슨해져 있었고, 회색 눈동자는 아침보다 훨씬 차가워 보였다.

아내를 찾고 있던 그에게 나는 조비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술에 취한 나를 바에서 발견했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7년 전, 조비가 그와 결혼했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들러리 드레스를 입고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잔 대신 그녀가 선택한 남자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진을 위해 웃고 있었다.

그때 식장 안에서 밴스가 나를 한 번 바라봤다.

아주 짧은 시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그 순간이 떠올랐다.

“혼자 걸을 수 있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기억보다 낮았다.

평소의 차분한 말투와 달리 어딘가 거칠었다.

“아마도요.”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휘청이는 순간 밴스가 나를 붙잡았다.

그의 팔이 허리를 감싸며 내 몸을 지탱했다.

단단한 손아귀가 느껴졌다.

내가 그를 올려다봤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놀랄 만큼 침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부축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나는 그의 팔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걸었고, 결국 그는 거의 나를 안다시피 해서 차까지 데려갔다.

밴스는 나를 호텔로 데려갔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방에 도착한 그는 나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재킷을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내 손을 내려다봤다.

나는 옷자락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왜 그러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제발…… 그냥 혼자 두지 마세요.”

밴스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다만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놓으세요.”

나는 놓지 않았다.

술은 평소의 자제심을 모두 빼앗아 갔다.

침실 문을 열었던 순간부터 억눌러 왔던 상처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왜 다들 그녀를 선택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왜 나는 한 번도 부족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나는 그를 바라봤다.

“내 침대까지 가져가야 했어요? 잔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내 침대까지?”

밴스의 턱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흐릿한 시야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유치하고 잔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조비는 내 남편과 잤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의 남편에게 키스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그의 재킷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를 끌어당겼다.

내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

순간 밴스의 몸이 굳었다.

그의 놀라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진과 눈물이 뒤섞인 키스였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가슴을 찢어 놓은 고통 말고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잠시 후 그의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키스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부드럽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가 억누르고 있던 분노 같은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언제나 완벽하게 통제하던 남자에게서 처음 보는 감정이었다.

그의 엄지가 내 턱선을 스쳤고, 나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끌려갔다.

몇 초 동안 나는 잔도, 조비도, 산산이 부서진 결혼도 잊었다.

그러나 밴스는 갑자기 나에게서 떨어졌다.

숨이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그의 눈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볼 근처에 머물러 있던 그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당신은 나를 원해서 키스한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전보다 거칠었다.

“아니면…… 남편에게 배신당해서 그런 겁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에 완전히 당황했다.

잠시 밴스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자신이 그 질문을 한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그는 내 시선을 피하고 턱을 굳힌 채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흐트러진 재킷을 다시 정리했다.

차갑고 완벽했던 표정이 돌아왔다.

하지만 전과 같지는 않았다.

“방금 질문은 잊으세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왜 그의 질문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흔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밴스는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다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잠이나 자요.”

그리고 그는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침대에 앉은 채 한동안 그 문만 바라봤다.

술기운이 여전히 머릿속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마신 술의 양을 후회하게 만드는 두통이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침대는 지나치게 푹신했고, 방 안에서는 고급 호텔 특유의 비누 향이 희미하게 났다.

나는 한동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젯밤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술에 취했고,

밴스 블랙우드에게 키스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급히 내 몸을 내려다봤다.

옷은 그대로였다.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잠든 탓에 구겨져 있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창피함과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

밴스가 걸어 나왔다.

샤워를 마친 듯 머리카락은 아직 젖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이미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차분한 표정이 돌아와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

그리고 그는 테이블로 걸어가 시계를 집어 들었다.

어젯밤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당신은 나를 원해서 키스한 겁니까, 아니면 남편에게 배신당해서 그런 겁니까?

나는 시선을 피했다.

정신이 맑아진 지금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를 원해서 키스한 게 아니었다.

조비가 내 남편과 잤고, 나도 그녀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가 내 것을 가져갔다면, 나도 그녀의 것을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웠다.

밴스가 내 표정을 알아챘다.

“술집 바닥 냄새가 나는군요.”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샤워해요. 9시 30분에 회의가 있습니다. 리디아에게 듣기로 해링턴 프로젝트 최종 수치를 가지고 있다던데.”

너무나 평범한 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고요?”

“샤워부터 해요.”

그는 셔츠 소매를 정리했다.

“……알겠어요.”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의 시선을 피한 채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셨다.

나는 물이 어젯밤의 키스와 배신의 기억까지 전부 씻어 내주길 바랐다.

입술이 따가울 정도로 문질렀다.

하지만 키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15분 뒤 우리는 호텔을 나섰다.

복도는 조용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정면만 바라봤다.

그가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어젯밤 일을 저지른 뒤 어떻게 그의 회색 눈을 마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도는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잔과 조비가 제빙기 근처에 서 있었다.

잔의 팔은 조비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조비는 그의 곁에 기대어 있었다.

조비가 먼저 우리를 발견했다.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서 밴스로, 그리고 구겨진 내 옷으로 내려갔다.

다시 밴스를 바라봤다.

놀람은 잠시였다.

곧 그녀의 얼굴에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잔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우리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내 옷을 훑었다.

그리고 밴스의 아직 조금 젖어 있는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이의 거리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변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조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나를 향한 분노가 얼굴에 서서히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자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비난할 생각을 하다니.

나는 본능적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밴스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지만 곧 어젯밤 찍었던 사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밴스에게 보냈다가 취소했던 문자도.

밴스의 시선은 오직 아내에게 향해 있었다.

“조비엔.”

그녀의 몸이 굳었다.

밴스가 천천히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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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햇살이 병실 창문을 타고 흘러들었다. 희미하고 무심한 빛이었다.윌리엄 블랙우드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다리에는 아직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두 손은 매트리스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마침내 퇴원 허가가 떨어졌다. 심장마비는 그의 목숨을 앗아 가지 못했지만, 그가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을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더는 자신의 몸조차 마음대로 부릴 수 없었다.릴리는 남편의 곁에서 옷가지를 작은 가방에 차곡차곡 접어 넣었다. 움직임은 차분하고 익숙했다. 그녀는 각종 검사와 말없는 시간을 견디며 매일 남편의 곁을 지켰다.그때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태블릿이 진동했다.윌리엄은 손을 뻗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화면에 뜬 기사를 읽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아스테라 스파이어의 신임 CEO 밴스 블랙우드가 임원진의 급여를 60퍼센트 삭감하고, 절감한 비용을 하위 직급 직원들에게 재분배하겠다고 발표했다. 파격적이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큰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임원들의 줄사퇴가 이어지고 있다.관련 기사는 어디에나 있었다.「밴스 블랙우드, 혁신가인가 무모한 도박꾼인가?」「아버지가 일군 제국을 불태우려는 아들」「임원진 집단 퇴사로 혼란에 빠진 아스테라」윌리엄의 얼굴이 잿빛으로 굳었다.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을 움켜쥐더니 매트리스 위로 내던졌다. 기기는 힘없이 튕겨 오른 뒤 화면이 바닥을 향한 채 떨어졌다.그는 릴리를 노려보았다.“네 아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봐.”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우리 가족을 무너뜨리고 있어. 내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난 분명히 말했어. 그 녀석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도 당신은 계속 내게 기회를 주라고 했지.”그의 목소리가 원망으로 갈라졌다.“대체 저 고집은 누구한테 물려받은 거야?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저 모양이냐고!”릴리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손에 든 사과 껍질을 천천히 벗겨 냈다. 칼날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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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스는 창가에 서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나가고 싶다면 나가라고 해.”“회장님…….”“우리가 무너지는지 시험하는 거야.” 밴스가 몸을 돌렸다. “우리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우린 무너지지 않아.”네리사는 책상 위에 쌓인 사직서를 내려다보았다.“그 아래 직원들은 급여 개편안에 고마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르고 있어요. 이끌어 줄 임원들이 사라졌으니 업무만 계속 쌓이고 있잖아요.”밴스는 그녀의 책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그럼 우리가 하면 돼. 우리 모두가 함께.”그날은 밤까지 길게 이어졌다.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갔고, 복도의 불도 차례로 꺼졌다. 하지만 밴스와 네리사, 리디아는 자리를 지켰다.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서류를 검토하고,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았다. 쏟아지는 혼란을 하나씩 감당하며 계속 움직였다.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진척이 있었다. 그래도 앞에 놓인 일은 여전히 산처럼 높았다.재킷을 벗어 둔 리디아가 느슨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문가에 섰다.“나머지는 내일 마무리하겠습니다. 두 분은 이제 집에 가세요.”밴스는 네리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여전히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가자.” 그가 말했다. “집에 가자.”에어리는 조용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불빛은 두 사람의 피로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반짝였다.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노트북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거실 테이블 위에는 서류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사무실을 떠났다고 일이 저절로 끝나는 건 아니었다.네리사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문질렀다.“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네요.”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야.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어.”네리사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당신은 괜찮아요?”밴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회색 눈동자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흔들림은 없

  • 복수의 불장난 - 내 최고의 친구의 남편이 나에게 불륜을 제안했다   210. 그래도 노력할 것이다

    조비는 복도 너머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들었다. 셀레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오스틴이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설명하는 소리도 들렸다. 제인은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의 하루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온전히 그 순간에 함께하고 있었다.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자신의 관심을 애타게 구하던 아내를 두고도.조비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부드러운 카펫이 무릎을 감쌌지만 방 안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한때 제인은 자신을 그렇게 사랑했다. 세상에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바라보곤 했다. 네리사를 떠나 자신을 선택했고, 바다 건너까지 따라왔으며, 언제나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다.그런데 이제는 돌아서서 떠나 버렸다.조비는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손으로 입을 막았다. 울음소리마저 삼키려 애썼다.제인은 여전히 쌍둥이들을 사랑해.하지만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아.그녀는 홀로 울었다.복도에서 셀레네는 제인의 오른손을, 오스틴은 왼손을 잡고 있었다. 두 아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마커스가 내가 누구보다 공을 세게 던진대요.” 오스틴이 말했다.“릴리는 내 바이올린 소리가 노래 같대요.” 셀레네가 덧붙였다.제인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었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그러다 셀레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아빠.”“왜, 우리 예쁜 딸?”“사생아가 뭐예요?”제인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빠르게 스쳐 갔다. 혹시 조비와 다투던 말을 아이들이 들은 걸까? 생각만으로도 두려웠다. 아이들만큼은 그 모든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오스틴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누나를 올려다보았다.“뭐라고?”“제이콥이 선생님한테 물어봤어. 우리보고 사생아라고 했어. 그게 무슨 뜻이야?”제인의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한 손은 셀레네의 팔에, 다른 손은 오스틴의 팔에 올렸다. 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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