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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돌

Author: Nayko Ayasam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2 22:55:53

 

“조비엔.”

그저 그녀의 이름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판결문처럼 복도에 내려앉았다.

밴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기 있었군요.”

조비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 온 자신감 넘치고 눈부신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밴스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꾸밀 수 없었다.

새벽의 호텔에서 함께 나온 두 사람.

자신의 남편과, 자신의 연인이었던 남자의 아내.

어느 쪽도 변명으로 덮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밴스…….”

조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분노가 그의 목소리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조비를 감싸듯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지키려는 연인의 본능적인 행동.

그 모습이 가슴을 그대로 찔렀다.

잔은 언제나 저 자리에 있었다.

그녀의 방패이자 보호자.

나는 언제나 그의 곁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뒤가 아니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네리사?”

그의 시선은 밴스를 무시한 채 오직 나에게 꽂혔다.

밴스가 대신 대답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서늘했다.

“설리번 씨, 물어야 할 건 제가 아니라 당신인 것 같은데요.”

그의 차가운 시선이 잔과 조비 사이의 좁은 거리를 훑었다.

“당신은 지금 그녀의 결혼 상담사입니까? 아니면 일이 힘들어지면 그녀가 버리고 떠날 연인입니까?”

잔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이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자격은 없어.”

“그리고 당신은,”

밴스가 천천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아내와 함께 있는 모습이 들킨 뒤에 내 직원을 추궁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명백하니까요.”

조비가 작게 신음했다.

“밴스, 제발. 잔과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이야기하다가 잠든 것뿐이야.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어.”

그 거짓말은 너무 뻔하고 초라했다.

나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밴스의 눈에도 같은 경멸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곧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신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군요, 조비엔.”

그가 손을 내밀었다.

잡으려는 손이 아니었다.

따라오라는 명령이었다.

“갑시다. 지금.”

조비가 잔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 절박한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잔의 턱이 굳어졌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과, 이제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현실이 충돌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비가 떨리는 숨을 내쉬며 잔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밴스가 내민 손을 지나쳐 고개를 숙인 채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패배한 사람처럼 보였다.

차갑고 강력한 남편의 냉정한 시선 앞에서 무너진 아름다운 여자.

밴스는 잔에게 마지막으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나에게 향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차갑고 완벽했던 CEO의 표정에 다른 무언가가 스쳤다.

강렬하지만 억제된 감정.

그리고 하나의 질문.

나와 함께하겠느냐고.

그러나 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아내에게 다가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 닫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밝고 조용한 복도에는 나와 잔만 남았다.

엘리베이터가 떠나는 순간, 잔에게서 싸울 힘마저 빠져나간 듯했다.

“네리사…….”

그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나는 그가 사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 밴스랑 뭐 하고 있었어?”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나를 추궁하고 있었다.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그를 바라봤다.

방금 전 내가 목격한 일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사람이 널 어떻게 보는지 나도 봤어. 너희 둘이 어젯밤 입었던 옷 그대로 호텔에서 같이 나오는 것도 봤고. 내가 뭘 믿어야 하는데?”

“알고 싶어?”

내 목소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난 바에 갔어. 너무 무너져서 술을 마셨고, 낯선 남자 둘에게 거의 공격당할 뻔했어.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나서 막아줬어. 그게 전부야.”

잔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쳤다.

안도.

죄책감.

그리고 다시 의심.

“그걸 내가 믿을 것 같아?”

그가 비웃듯 말했다.

“그 사람이 우연히 널 구해줬다고? 네리사, 너 밴스와 호텔방에서 밤을 보냈잖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마.”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나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죄책감과 수치심이 오히려 그의 말에 의해 불길처럼 타올랐다.

나는 억지로 웃었다.

울고 있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아팠다.

“그래.”

나는 조용히 말했다.

“진작 당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어.”

온몸에 피로가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나를 위해 싸워준 적도 없는 남자를 위해 너무 오랫동안 싸웠다.

나는 더 이상 그와 마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대로 돌아섰다.

눈물이 그 앞에서 떨어지는 건 견딜 수 없었다.

“네리사, 잠깐만! 아직 끝난 얘기가 아니잖아!”

잔의 발소리가 뒤따라왔다.

나는 계단실 문을 밀어 열었다.

차가운 공기와 세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 층을 내려가기도 전에 몸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벽을 짚었다.

속이 뒤집혔다.

차갑고 거친 콘크리트 벽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독감에 걸려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나.

잔은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뒤로 넘겨주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냥 다 토해. 내가 곁에 있을게.”

그때의 따뜻함.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봄을 받는다는 깊은 안도감.

하지만 지금 나는 더러운 호텔 계단에서 다시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아픈 건 아니었다.

잔 때문이었다.

한때 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주던 남자가 이제는 나를 구역질하게 만들고 있었다.

위쪽에서 문이 세게 열렸다.

“네리사!”

나는 입가를 닦고 몸을 일으켰다.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차가운 아침 공기 속으로 나왔다.

그의 손이 내 팔꿈치를 붙잡았다.

“제발.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나는 팔을 뿌리쳤다.

“나 출근할 거야.”

그가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본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출근?”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어떻게 지금 출근을 해? 설마…… 그 사람한테 가려는 거야?”

나는 천천히 뒤돌아봤다.

처음으로 진짜 잔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 삶도, 자존심도 없는 여자.

그저 한 남자에게 붙어 있는 존재.

“그 사람과는 아무 상관 없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 일이니까.”

그 순간 모든 게 우스워졌다.

그동안 참아 왔던 분노가 마침내 끊어졌다.

“그리고 이 결혼과 달리……”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 월급은 아직 나한테 돈을 줘.”

잔의 표정이 굳었다.

그 말이 그에게 무언가를 깨뜨린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번 돈은 내 거야.”

나는 조용히 덧붙였다.

“그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어.”

그가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5년 동안 나는 잔 설리번을 중심으로 내 삶을 만들어 왔다.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언제나 선택받기를 기다렸다.

언젠가는 그가 나를 제대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이제 진실을 알았다.

그는 이미 선택했다.

단지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끝내기로 했다.

“이 결혼이 어떻게 되든……”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확고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아침의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 돼! 네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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