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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딸기팝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8 18:55:14

유봄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된 것도,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들은 자신이 책임지지 못했던 과거를 들고 와, 뒤늦게 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던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느새 시간이 흘러 15년을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유철중에게 그 존재들은 여전히 낯설었다.

겉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마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감정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는 예의는 지켰지만, 거리감은 유지했다.

필요한 말만 하고, 불필요한 감정은 섞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었다.

이미 마음을 두고 있는 대상이 따로 있다는 것.

그에게 있어 진짜 가족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유봄.

손녀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확신.

그리고 이 집에서 진심으로 지켜야 할 존재라는 인식.

다른 관계들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의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유철중은 식탁에 앉은 유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덜어 그녀 앞에 놓았다.

“왜 이렇게 말랐냐.”

짧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유봄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접시에 제철 생선과 나물을 넉넉히 담아 다시 밀어주었다.

평소라면 본인이 먼저 손을 댔을 음식이었지만, 오늘은 전부 손녀 쪽으로 향했다.

“이건 다 먹어라. 제철 보약이다.”

말은 투박했지만 행동은 분명했다.

자신의 몫까지도 기꺼이 손녀에게 내어주는 태도.

유봄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모를 수는 없었다.

저녁 식탁 위에는 조용한 대화만 오가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김지숙은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님.”

잠시 타이밍을 보던 그녀는,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지원이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어서요. 혹시… 대한병원 쪽으로 자리 한 번 고려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말끝은 부드러웠지만, 의도는 분명했다.

“봄이랑 같은 병원에 있으면 서로 의지도 되고, 자매끼리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유봄을 힐끗 바라보며 덧붙이는 말투는 최대한 자연스러웠다.하지만 그 안에는 딸을 위한 자리 확보라는 계산이 은근히 깔려 있었다.

식탁 위의 공기가 잠시 미묘하게 변했다.

김지숙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갔다.

유철중의 반응을 살피면서도, 거절하기 어렵도록 부드럽게 포장된 제안이었다.

유지원은 어려서부터 각종 과외와 학원을 거치며 공부를 이어왔지만, 결과는 기대만큼 따라주지는 않았다.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고, 수차례의 도전 끝에 결국 지방 의과대학에 겨우 턱걸이로 입학할 수 있었다.

입시 과정에서 보여준 성과 역시 스스로의 노력이라기보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과 환경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시간과 비용 덕분에 가까스로 합격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의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인턴 과정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유지원은 의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객관적인 실력으로는 어느 병원에 지원하더라도 경쟁이 쉽지 않은 위치였다.

성적과 임상 역량 모두 상위권과는 거리가 있었고, 인턴 선발 과정에서 요구되는 기준을 단독으로 통과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병원 선택은 ‘실력으로 경쟁해 들어가는 것’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경로를 고려하는 문제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유지원은 스스로의 조건을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다는, 가문의 영향력과 환경을 활용해 진로를 이어가려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대한병원은 목표라기보다, 이미 확보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안정적인 선택지에 가까웠다.

김지숙의 제안이 오간 뒤, 유철중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무거워졌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심기는 분명히 편치 않았다.

아들의 선택과 그 주변에서 흘러온 관계들이 다시 한 번 현재의 식탁 위로 올라온 느낌이었다.

그때, 아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원이가 봄이랑 같은 병원에 있으면,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기엔 괜찮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판단이 담겨 있었다.

유철중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마음과는 별개로, 아들에 대한 감정은 다시 선명해졌다.

기대했던 모습과는 한참 어긋난 선택들.

책임지지 못했던 과거, 그리고 지금의 상황까지.

유철중은 결국 짧게 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말투에는 묵직한 불만이 섞였다.

“……못난 놈.”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감정이 눌려 있었다.

저녁 식사를 겨우 마치고 나온 유봄은 더 이상 그 공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기사와 차를 준비해 주었지만, 그녀는 그 권유를 조용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혼자 갈게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더 머물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집 안을 채우던 무거운 공기가 등 뒤로 멀어졌다.

유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밤공기가 폐로 스며들며 막혀 있던 숨이 풀렸다.

방금 전까지 이어졌던 시선과 말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후…”

짧게 내쉰 숨 끝에, 유봄의 어깨가 아주 조금 힘을 풀었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한 순간, 유봄의 눈이 잠시 멈췄다.

— 이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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