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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作者: 정대천
태후의 위엄 앞에, 신수빈은 몸을 일으켜 사죄했다.

"태후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인은 태후마마께서 서화 낭자의 몸을 염려하신다 들었사옵니다. 그간 두 달 동안 낭자는 서방님을 따라 밖에서 지낸 탓에,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인이 시집올 때, 소인의 집안에서 수많은 귀중한 약재를 보내 주었고 그중 많은 것이 태아를 안정시키는 약이었습니다. 하여 돌아가서 약재를 낭자에게 보내 태후마마의 염려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는 생각에 그만 실례를 범하였나이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신수빈의 말은 일 점 의혹 없이 치밀하여 옆에서 구경하던 귀부인들조차 흠잡을 데가 없었다.

전각 안에 앉은 부인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태후가 오늘 신수빈의 정실부인의 기세를 꺾어 주서화의 첩실 자리를 굳히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들 고개를 숙여 차를 마시거나 소매를 매만지며 태후의 반응을 은밀히 살폈다.

신수빈 역시 알고 있었지만 전각에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내리뜨렸다.

냉엄한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 호갑(护甲:손가락에 착용하는 장신구)을 쓰다듬는 태후에게서는 상위자의 압도적인 위엄이 풍기고 있었다.

"하면, 내 너를 오해했구나."

"아니옵니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태후는 여전히 공손한 자세로 꿇고 있는 신수빈을 한참 빤히 바라봤다. 흠을 잡고 싶었으나 마땅한 구석이 없었던 태후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라."

신수빈은 소매 아래에 쥔 두 손을 더욱 굳게 쥐었다.

상좌에 앉은 이는 다름 아닌 이 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으로 모든 이의 생사를 쥐고 있는 권력자였다. 더군다나 지고지상한 권력 아래 그 어떤 도전도 허락되지 않는 법이었다.

신수빈은 어두운 눈빛을 거두고 오직 경의와 흠모만이 담긴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태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든 순간 태후는 순간 멈칫했다.

윤서원이 맞이한 부인이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그녀가 자신과 닮아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자신보다 미모가 더 빼어났다.

"참으로 빼어난 모습이로구나."

태후의 입가가 살짝 움찔거리다 이내 담담히 말했다.

"일어나거라."

"서화의 일로 자네 마음이 불편한 건 알겠으나 일부다처는 흔한 일이지 않느냐. 그러니 두 사람은 서로 돕고 힘을 합해, 지아비를 보필하여 대를 번성케 하는 것이야말로 가문의 근본이지 않겠느냐."

"소인, 태후마마의 가르침을 명심하겠나이다."

신수빈은 시종일관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였다.

주서화는 그런 신수빈이 딴사람이 된 듯 낯설기만 했다.

윤서원은 그녀에게 신수빈은 상인가의 여식으로서 제멋대로인 데다 대갓집 규수의 예절을 알지 못해 정실부인이 갖춰야 할 기품조차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어제 자신의 명예를 무심코 더럽히고 지금 태후 앞에서 당당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처신하는 신수빈의 모습은 윤서원의 말과는 전혀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임자는 먼저 돌아가거라. 난 서화와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태후는 신수빈에게만 물러가라는 명을 내렸다. 반면, 귀부인들은 여전히 고개 숙여 차를 마시며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이는 태후가 일부러 그녀만 홀로 내보내 난처하게 만들려는 뜻임을 신수빈은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정실부인이라지만 태후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세가 귀부인들의 무리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주서화가 혼전에 정조를 잃어 음탕하다고 귀부인들이 아니꼽게 본다지만 상인가 여식인 그녀 역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터였다.

"그럼, 소인 물러가겠나이다."

신수빈은 예를 올리며 태후의 궁전을 나섰다.

영수궁을 나서자 인도를 맡은 어린 내시가 그녀를 이끌었다.

"부인, 이쪽으로 드시지요."

신수빈은 처음 입궐하는 것이라 길을 알지 못했지만 좀 전에 오던 길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의아함이 들어 물었다.

"출궁하는 길은 이쪽인 듯 한데."

"부인께서 가마를 타고 오실 때는 대로로 온 것이고 이쪽 샛길이 걷기에 더 가깝사옵니다."

신수빈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 내시를 보며 그를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궁궐에서 길을 잃어 누군가와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벌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내시를 따라 여러 샛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한 궁전 앞에 도착해 있었다.

순간 불길한 마음이 든 신수빈이 물었다.

"여긴 어디냐?"

"부인,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말을 마친 내시가 몸을 돌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엄습해 오는 불안한 기운에 신수빈이 돌아서려 할 때 낮고 거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내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오게 한 것이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에 그녀의 몸이 굳어졌다.

굳건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그가 자신에게로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신수빈은 이번 생에 이런 식으로 그를 만날 줄은 몰랐었다.

"몸을 돌리거라."

그의 숨결이 마치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 잊지 못할 기억들이 순간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지아비의 품에 안겼다고 생각했던 그날, 흐릿한 정신이었지만 저를 매만지던 그의 손길과 정신을 잃기 직전에 그가 귓가에 속삭였던 말만큼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몸을 돌리거라."

그 후 기억은 뒤죽박죽이었다. 지치지 않는 그와 달리 그녀는 힘이 빠져 기절을 해버렸으니.

하지만 신수빈은 그날 밤을 마음 깊이 새겼었다.

그녀와 윤서원 사이에도 한때 애틋함이 있었다는 생각 하나로 수많은 밤을 홀로 지켜왔었는데 그 모든 게 음모였음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게다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지난 생에 이도현이 사당에서 했던 말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앞에서 열녀인 듯 행세했으니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침상에서 노리개처럼 그에게 다뤄지고, 내려와서는 오직 윤서원만을 사모한다는 말을 한 꼴이라니.

신수빈은 그동안 배웠던 예법과 함께 발가벗겨진 채 이도현의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다시 말하길 바라는 것이냐?"

노여움과 애틋함 그 사이의 감정이 깃든 목소리와 함께 숨결이 귓가를 간질거리자 신수빈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럼에도 애써 태연한 척 몸을 돌려 눈을 내리깐 채 우아한 자태로 예를 올렸다.

"소인, 섭정왕을 뵙사옵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그의 허리에 두른 청옥 띠였다. 그와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코끝에 그의 옷에서 전해지는 냉목향이 맡아졌다.

그 순간, 신수빈은 문득 깨달았다.

'난 지옥에서 걸어 나왔고 예전의 내가 아닌데 권세 높은 이자에게 밉보일 이유가 없지. 내 가족과 아이를 지키려면 이 자가 쥐고 있는 황권이 필요해.'

이도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목선을 바라봤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았기에 그 감촉이 얼마나 고운지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햇빛 아래서 더욱 빛나 보였다.

신수빈이 고개를 들지 않고도 자신임을 알아채자 이도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묻은 목소리를 냈다.

"내 목소리를 아직 기억하다니."

그 말투 속에 깃든 경박한 농락은 너무나도 뚜렷해 신수빈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손수건을 움켜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고 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는 조롱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왕야께서는 소인이 기억하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잊길 바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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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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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9화

    주서화가 나서서 말하자, 자리에 있던 부인들이 신수빈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당당한 말에 거의 속을 뻔했으나, 이제 와서는 사실이 아닌가 싶어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서씨 부인는 요즘 주서화의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서화가 자기 편을 들어주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 서씨 부인는 기세가 등등해져 목소리를 높였다."신씨 집안의 가풍이니, 절개이니, 내가 보기엔 제 분수를 모르는 천한 집안일 뿐이다. 내 아들은 본래 서화처럼 황실의 귀한 규수를 맞이해야 했거늘, 너희 신씨가 더러운 수를 써서 우리 후부의 정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후부에 들어와서는 본분도 모르고, 손버릇도 나쁘며, 감히 큰소리로 남을 모함하다니! 우리 윤가에는 너 같은 여인이 집안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자리에 있던 부인들은 모두 구경거리가 생겨 즐거워하며,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서씨 부인이 신수빈을 마음껏 조롱하게 내버려두었다.윤 노부인은 평소부터 자신의 며느리가 재물을 탐하고 우매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어미와 딸이 한 말이며, 주서화가 한 말까지도,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이 ‘며느리의 혼수를 탐내 훔쳤다’는 소문이 서씨 부인 모녀에게 씌워진다면, 윤가의 어린 딸들은 앞으로 좋은 혼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았다.서씨 부인이 실컷 퍼붓자, 윤 노부인은 지팡이로 ‘쾅’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내리쳤다. 그 소리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졌다."이제 그만들 하거라! 오늘 일은 여기서 끝이다. 더는 입에 올리지 말라!" 윤 노부인이 단호히 말하자, 서씨 부인도 더 이상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할 말도 없었다.한편, 청하는 옆에서 속이 타들어 갔다. 분명히 아씨의 금비녀인데, 윤가 사람들은 도둑이나 다름없었다!청하가 앞으로 나서서 변명하려 하자, 신수빈이 슬쩍 그녀를 붙잡았다. 신수빈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화난 기색 없이, 차분하고 당당하게 윤 노부인 앞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8화

    이렇게 말하며 신수빈은 청하를 시켜 미리 준비해두었던 금비녀를 내오게 하였다.자리에 있던 부인들은 모두 세상 물정에 밝은 이들이라, 신수빈 머리 위 장신구를 한번 훑어보고, 윤서령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속으로 모든 사정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신씨 집안은 재물이 나라에 견줄 만큼 부유하여, 신씨가 윤가에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는 그야말로 실로 십리홍장이라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이제 겨우 넉 달 남짓 시집온 사이에, 머리의 비녀며 몸의 장신구가 모두 이처럼 소박해진 것이다.반면에 윤서령은 몸에 걸친 비단이며, 패옥과 진주, 비녀까지 하나같이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신수빈의 이 한마디는 분명히 윤서령이 남의 물건을 묻지도 않고 가져갔다는 뜻이었다. 부인들은 모두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들어, 고개를 숙이고 차를 음미하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윤서령은 설마 신수빈이 이렇게 대놓고 망신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으나, 이 자리에서 당황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오늘 이 자리는 각 가문의 부인들이 미혼 처녀들을 살피는 중에, 만약 새언니의 혼수를 강제로 빼앗았다는 평판이 돌아버리면, 좋은 혼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윤서령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마치 놀란 듯 말했다."이 금비녀는 어머니께서 제 계례식 때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새언니께 있습니까?"신수빈은 윤서령이 체면을 중히 여길 줄 알고, 느긋하게 대답했다. "이 비녀가 아씨의 계례 예물이란 말입니까?"서씨 부인도 덩달아 당황하여, 신수빈이 윤서령과 다툴까 두려워 얼른 중재에 나섰다. "그래, 이 금비녀가 어찌 네 손에 들어갔느냐? 서령이가 찾느라 애를 먹었겠구나. 네가 마음에 들면, 내가 장차 사람을 시켜 한 쌍 더 만들어줄 것이니, 굳이 서령이 것을 가져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서씨 부인는 평소 신수빈이 뭐든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반박하지 않는 성격임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이 금비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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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6화

    옹왕비의 지아비 옹왕야는 선황의 사촌 동생이자 섭정왕의 사촌 형님이기에, 예전의 일들을 자연스레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옛이야기를 꺼내니, 모두가 속으로 짐작이 갔다. 섭정왕께서 마음에 둔 이가 바로 현 태후라는 사실을, 하지만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였다."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섭정왕께서 정실을 맞으신다면야 우리가 모를 리 없지만, 첩을 들이신 일까지야 저희 같은 외인은 알 도리가 없지요." 다른 부인들은 섭정왕 이야기가 나오자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어 말을 아꼈고, 그의 내실 일을 함부로 논하지 못하였다."섭정왕께서 평소 국사를 돌보시느라 바쁘시니, 내실에 몇몇 첩실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부인들은 섭정왕의 내실에 첩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섭정왕께서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으신다 하여 감히 생각조차 못 했으나, 이제 첩이 생겼다 하니 혹여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는 이도 있었다.그 중, 녕원후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옹왕비 곁에 다가와 앉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말이 나온 김에, 저희 집에도 혼기가 찬 여식이 몇 있습니다. 감히 자랑하자면, 하나같이 꽃처럼 고우며, 단아하고 어질지요. 왕비마마님의 덕을 입어 좋은 혼처를 얻게 된다면, 평생 잊지 못할 은혜가 될 것입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섭정왕의 내실 이야기를 했는데, 녕원후 부인이 이런 말을 하니, 누가 보아도 섭정왕 저택에 딸을 들이려는 속셈이 뻔히 드러났다.옹왕비가 어찌 그녀의 속내를 모를 리 있으랴.그녀가 담담히 한마디 건넸다. "내가 알기로, 댁의 적녀는 작년에 이미 출가하였다지요? 집에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서녀들만 남았겠군요?"녕원후 부인은 개의치 않고 계속 웃으며 말했다. "왕비마마 말씀이 옳으시옵니다. 서녀들이긴 하나, 용모와 인품은 흠잡을 데 없지요. 다만 서출이라 높은 집안 정실로 들이기엔 어렵겠으나, 첩실로라도 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5화

    다음 날 아침, 신수빈이 잠에서 깨어나자 청하가 머리를 빗겨주며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주서화 부인 쪽에서 며칠 전에 저희 창란원 하녀 네댓을 내보냈사온데 오늘은 또 평양 후부에 손님이 많다며 일손이 부족하다고 사람들을 모두 불러갔습니다. 지금은 저랑 금자, 은보 세 명만 남았습니다. 방금 전에도 또 사람을 보내 소인더러 전정으로 나가 시중들라 하던데 소인은 아씨의 몸종이지 그쪽을 시중드는 자가 아니잖습니까.”신수빈은 주서화가 청하를 데려가려 사람을 보냈다는 말에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전생에 윤 노부인 생신 때 자신이 살림을 맡고 있었고 주서화가 그 틈을 타 청하를 함정에 빠뜨려 전정에서 추문을 일으켰었다.이번에도 청하를 불러 같은 수를 쓰려는 것이 분명했다.“넌 가지 말고 금자를 보내. 오늘은 내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거라.” 신수빈이 청하에게 당부했다.청하는 곧장 대답하고 금자와 은보에게도 당부했다.“오늘 누가 너희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다 하면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예, 마님.”“내가 어제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하였느냐?” 신수빈이 은보에게 물었다. 청하는 주로 내실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바깥일은 대부분 은보에게 맡겼다.“마님, 모두 처리하였습니다.”“오늘 한 가지 더 맡길 일이 있어. 잘 처리하면 상을 내릴게.”“마님, 말씀만 하십시오!”신수빈은 그녀가 주먹을 쥐고 군중 예법으로 인사 하는 걸 보고 살짝 미소 지으며 손짓해 가까이 오게 한 뒤 귓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기억해. 깔끔하게 처리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염려 마시옵소서. 이런 일쯤은 소인에게 식은 죽 먹기입니다.” 은보는 이렇게 말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신수빈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청하가 머리를 빗겨주려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청하가 금비녀를 꺼내 머리에 꽂으려 하자 신수빈은 손을 들어 막았다.“좀 더 수수한 걸로 골라줘.”“오늘은 노부인 생신이니 너무 수수하면 서씨 부인께서 아씨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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