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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作者: 정대천
이도현은 석 달 전 그날 밤, 신수빈이 원해서 그의 침상으로 올라왔는지 아니면 강제로 보내졌는지 여태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빛은 이상하리만치 흐릿했고 그를 서방님이라 불렀으니.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할 뿐 아니라 눈가에 웃음기 어린 표정을 띤 채 침착한 태도로 그를 마주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신수빈은 그날 밤 자신과 함께 있던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순간, 이도현은 흥미를 잃었다.

이도현은 원래 그녀가 자의가 아닌 윤서원의 강요로 그에게 보내진 거라면 신씨 가문이 아닌 그녀가 자신의 첫날밤을 내준 것을 봐서라도 곁에 데려와 그녀를 지켜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윤서원은 그녀를 이용해 자신에게 아첨하여 관직에 오르려 했다는 걸 신수빈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여인들처럼 정조를 잃은 것에 대해 분노하거나 자결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히 그를 대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도현의 눈에 비웃음이 떠올랐고 말투도 한층 차가워졌다.

"조정으로 돌아오자마자 윤서원이 내게 순찰영 지휘관 자리를 달라고 하더군 배포도 참 크지."

이도현은 신수빈을 흘깃 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그날 밤 하루로 그 자리에 오를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신수빈은 그의 눈동자 속 조롱과 경멸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전생에 그녀는 입궐한 적이 없었기에 이도현과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를 만난 건 사당에서였고 그때 그는 왕부로 자신을 데려가려 했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신수빈은 그저 그가 희롱한다고 여겨 단호히 거절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 그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신수빈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윤서원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럴 자격 없다고 봅니다."

신수빈이 옅은 웃음을 짓자 길고 가늘게 그려진 눈꼬리가 올라가며 달빛 같은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왕야께서 절 이리 부르신 건 이 얘기를 하시기 위함이었습니까?"

이도현은 그런 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그날 밤 흐릿한 눈빛으로 서방님이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본디 그녀와 윤서원 같은 저열한 수법으로 아첨하는 자들을 싫어했고 신수빈이 신씨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수빈이 매혹적인 여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오직 눈빛 하나만으로도 그의 욕망을 들끓게 했으니.

이도현은 한 걸음 더 다가가 신수빈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리고 그녀의 얼굴을 훑기 시작했다.

"그럼 나와 몇 밤을 더 보내야 순찰영 지휘관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토록 노골적인 암시는 바보가 아닌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말이었다.

신수빈은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사내와 마주한 적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권세로 천하를 휘어잡는 이도현이었다.

사람을 압박해 오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그녀를 층층이 벗겨내 꿰뚫으려는 것 같았다.

순간 목이 메는 느낌에 신수빈은 무심코 입술을 한번 핥았다.

하필 그 동작이 이도현의 눈에 띄었고 그게 일종의 암시인 줄 알았던 그는 속으로 비웃으며 본능에 따라 몸을 숙였다.

뜨거운 그의 숨결이 신수빈의 숨결과 뒤섞여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전생의 일들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윤서원과 주서화는 죽어 마땅했다. 그렇다면 권모술수를 부리는 섭정왕은 과연 결백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을 태후의 대역으로 삼아 그녀의 순결을 짓밟았고 관직 하나로 윤서원을 매수했다. 그날 밤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아들 연우도 그런 비참한 운명은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입술이 닿으려는 찰나 신수빈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그의 뜨거운 숨결은 그녀의 목덜미에 닿게 됐다.

이도현은 멈칫했으나 그것조차 애매한 거절이라 여겨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목을 살짝 깨물었다.

밀려오는 통증에 신수빈이 낮은 신음을 흘리자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손을 뻗어 그녀의 예복을 벗기려 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궁궐의 외진 별전이긴 하나 대낮에 이런 노골적인 욕정을 드러내는 것은 그녀를 얼마나 가볍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셈이었다.

신수빈은 이도현에게 안겨 정원의 돌 탁자에 앉혀졌다. 힘이 얼마나 센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앞섶을 벗기려 하자 신수빈은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내며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은 그의 욕망을 속절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자신의 몸과 얼굴이라는 걸 신수빈은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점을 노려 그와 거래할 심산이었다.

"그날 밤으로 관직을 바꾸기에 부족하시다 생각하시면 제게 은혜를 베푸시는 건 어떠시려는지요? 윤서원에게만 좋은 노릇하게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도현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녀가 윤서원을 거쳐서가 아닌 직접적으로 거래를 청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신수빈은 옷이 흐트러져 어깨를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윽한 눈빛에 목소리는 또 얼마나 달콤한지 그야말로 절세의 요녀가 따로 없었다.

"그날 밤 이후로, 왕야의 기개와 풍채가 제 마음속 깊이 남아 잊히질 않더이다. 하여 왕야를 다시 뵙는 날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윤서원은 상관하지 마시고 왕야께서 제 면수(面首:귀부인들이 노리개로 삼는 미남자)가 되어 저와 긴 세월을 함께 보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이도현의 몸이 굳어졌다. 그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얼굴로 눈앞의 아리따운 여인을 바라봤다.

"뭐라? 지금 나더러 무엇이 되라고 했느냐?"

신수빈이 손을 들어 이도현의 얼굴을 감싸며 황홀한 욕망이 어린 표정을 띠었다.

"면수라 하였습니다."

그녀는 몸을 곧게 세워 이도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옷 한쪽이 흘러내렸음에도 그녀는 손끝으로 그의 얼굴에서부터 목젖을 지나, 가슴팍에 이른 후 그의 겉옷을 가볍게 젖혔다.

"왕야께서 면수가 체통에 맞지 않다 여기시면 제 외실이 되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시간이 나면 왕야를 뵈러 오겠습니다."

면수에 외실이라니!

신수빈이 거듭해서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도현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천하에 감히 이런 말을 그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

곧 그의 눈에 아른거리던 욕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지분대는 신수빈의 손을 뿌리쳤다.

여인을 갖고 노는 것과 여인에게 놀아나는 건 본디 다른 일이었다.

이도현은 기개가 넘친다느니, 잊지 못했다느니 같은 천박한 말과 함께 그를 하찮은 면수 따위로 취급하는 신수빈에게 화가 났다.

무엇보다 신수빈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시선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그녀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무엄하다!"

그는 차가운 눈빛과 함께 호통을 쳤다.

"신씨 가문에 너 같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식이 있다니... 집안 망신이 따로 없구나!"

그 말에 신수빈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웃긴 말인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졌다.

"제 신혼 첫날 밤에, 제 순결을 짓밟아 시댁 사람들에게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한 건 누구고, 저를 이곳으로 유인해 희롱하고 모욕한 자는 또 누구입니까? 절 기생 취급하고 대낮에 제 옷을 벗긴 왕야께서 망신을 논하시다니. 진정 그리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녕 우스갯소리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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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0화

    국공 부인이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들어 서씨 부인과 윤서령을 바라보았다. "윤 아가씨 머리 위의 비녀에는 ‘빈’ 자가 새겨져 있지 않으십니까?"윤서령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얼음천지에 홀로 선 듯, 주위의 모든 시선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자신을 베어오는 듯했다. 남월정에 모인 이들은 이제야 일의 전말을 모두 알아차렸고, 서씨 부인 모녀에 대한 경멸이 더욱 깊어졌다. 주서화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의미심장한 빛이 어렸다. 내실의 이런 암투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윤가처럼 이렇게 보기 흉하게 구는 집안은 드물었다.국공 부인은 금비녀를 신수빈에게 돌려주며, 부채를 가볍게 흔들었다. 윤서령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경멸의 빛이 역력하였다.신수빈은 금비녀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윤서령 앞으로 다가갔다. 손에 든 비녀를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지금은 제가 윤가의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한 식구입니다. 아씨께서 이 비녀를 좋아하거든 가져다 쓰시지요. 원래 한 쌍이니, ‘수’ 자가 없는 건 온전치 못하답니다."신수빈의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는 정원의 온갖 꽃도 무색하게 하였다.윤서령은 더 이상 이 자리에 남아 있을 면목이 없었다. 머리의 비녀를 뽑아 바닥에 내던지고, 얼굴을 감싼 채 울면서 달아났다.서씨 부인는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딸이 달아나는 모습을 보자, 분노와 수치가 한꺼번에 밀려와 신수빈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바로 그때, 뜰 밖에서 누군가 인사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씨 부인의 욕설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졌다."불효 손자 윤수혁, 할머니께 문안드립니다. 할머니,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문밖에서 부는 바람과 함께, 검푸른 옷차림의 한 인물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준수한 이목구비에 시원스러운 기운이 감돌았고, 걸음걸이마다 늠름하고 당당한 풍채가 흘렀다. 우뚝 솟은 산처럼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속박받지 않는 가운데 세상의 풍파를 겪은 듯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9화

    주서화가 나서서 말하자, 자리에 있던 부인들이 신수빈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당당한 말에 거의 속을 뻔했으나, 이제 와서는 사실이 아닌가 싶어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서씨 부인는 요즘 주서화의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서화가 자기 편을 들어주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 서씨 부인는 기세가 등등해져 목소리를 높였다."신씨 집안의 가풍이니, 절개이니, 내가 보기엔 제 분수를 모르는 천한 집안일 뿐이다. 내 아들은 본래 서화처럼 황실의 귀한 규수를 맞이해야 했거늘, 너희 신씨가 더러운 수를 써서 우리 후부의 정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후부에 들어와서는 본분도 모르고, 손버릇도 나쁘며, 감히 큰소리로 남을 모함하다니! 우리 윤가에는 너 같은 여인이 집안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자리에 있던 부인들은 모두 구경거리가 생겨 즐거워하며,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서씨 부인이 신수빈을 마음껏 조롱하게 내버려두었다.윤 노부인은 평소부터 자신의 며느리가 재물을 탐하고 우매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어미와 딸이 한 말이며, 주서화가 한 말까지도,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이 ‘며느리의 혼수를 탐내 훔쳤다’는 소문이 서씨 부인 모녀에게 씌워진다면, 윤가의 어린 딸들은 앞으로 좋은 혼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았다.서씨 부인이 실컷 퍼붓자, 윤 노부인은 지팡이로 ‘쾅’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내리쳤다. 그 소리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졌다."이제 그만들 하거라! 오늘 일은 여기서 끝이다. 더는 입에 올리지 말라!" 윤 노부인이 단호히 말하자, 서씨 부인도 더 이상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할 말도 없었다.한편, 청하는 옆에서 속이 타들어 갔다. 분명히 아씨의 금비녀인데, 윤가 사람들은 도둑이나 다름없었다!청하가 앞으로 나서서 변명하려 하자, 신수빈이 슬쩍 그녀를 붙잡았다. 신수빈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화난 기색 없이, 차분하고 당당하게 윤 노부인 앞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8화

    이렇게 말하며 신수빈은 청하를 시켜 미리 준비해두었던 금비녀를 내오게 하였다.자리에 있던 부인들은 모두 세상 물정에 밝은 이들이라, 신수빈 머리 위 장신구를 한번 훑어보고, 윤서령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속으로 모든 사정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신씨 집안은 재물이 나라에 견줄 만큼 부유하여, 신씨가 윤가에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는 그야말로 실로 십리홍장이라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이제 겨우 넉 달 남짓 시집온 사이에, 머리의 비녀며 몸의 장신구가 모두 이처럼 소박해진 것이다.반면에 윤서령은 몸에 걸친 비단이며, 패옥과 진주, 비녀까지 하나같이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신수빈의 이 한마디는 분명히 윤서령이 남의 물건을 묻지도 않고 가져갔다는 뜻이었다. 부인들은 모두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들어, 고개를 숙이고 차를 음미하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윤서령은 설마 신수빈이 이렇게 대놓고 망신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으나, 이 자리에서 당황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오늘 이 자리는 각 가문의 부인들이 미혼 처녀들을 살피는 중에, 만약 새언니의 혼수를 강제로 빼앗았다는 평판이 돌아버리면, 좋은 혼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윤서령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마치 놀란 듯 말했다."이 금비녀는 어머니께서 제 계례식 때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새언니께 있습니까?"신수빈은 윤서령이 체면을 중히 여길 줄 알고, 느긋하게 대답했다. "이 비녀가 아씨의 계례 예물이란 말입니까?"서씨 부인도 덩달아 당황하여, 신수빈이 윤서령과 다툴까 두려워 얼른 중재에 나섰다. "그래, 이 금비녀가 어찌 네 손에 들어갔느냐? 서령이가 찾느라 애를 먹었겠구나. 네가 마음에 들면, 내가 장차 사람을 시켜 한 쌍 더 만들어줄 것이니, 굳이 서령이 것을 가져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서씨 부인는 평소 신수빈이 뭐든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반박하지 않는 성격임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이 금비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7화

    윤 노부인은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밖에서 들어왔고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일어나 윤 노부인께 생신을 축하드렸다. 윤 노부인은 환한 미소로 모두를 맞이하였다.이때 시녀들이 연이어 과일과 다과를 내오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손 가까이에 놓인 신선한 여지와 더위를 식혀주는 양매 여지 음료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 시절의 여지는 매우 귀한 것이거늘, 하물며 남쪽 지방은 얼마 전까지도 전왕조의 잔당이 들끓고, 도적과 도망병이 횡행하여 세상이 어지러웠다. 진상되는 여지도 극히 적어 오직 태후의 궁에만 바쳐지는 법이었다.그런데 이 평양 후부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데 이렇게 귀한 여지를 내놓다니!주서화는 사람들 눈빛에 담긴 놀람과 부러움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얼굴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어렸다."여러분, 천천히 드십옵소서. 이 양매 여지 음료는 오늘 아침에 막 들어온 신선한 양매와 여지로, 전왕조 궁중의 어용 양조 대가가 친히 빚은 것이옵니다. 여지도 막 도착하여 빙고에 한 시진 담가두었으니, 시원하고 맑으니 부디 맛보시옵소서."새 왕조가 세워진 지 불과 이십 년, 전왕조는 장강의 험준함을 의지해 강을 경계 삼아 나라를 나누어 다스렸으니, 이 수년간 조정에서는 끊임없이 전조를 토벌하고 각지의 난을 평정하였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섭정왕이 조정으로 돌아와 천하가 겨우 안정되었다.왕후나 공작 집안이라도 이처럼 정교한 연회는 보기 힘들었다. 이것이 그저 더위를 식히는 음료일 뿐이니, 뒤에 어떤 호화로운 음식들이 이어질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사람들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고, 역시 황실의 군주는 다르다며, 이런 호사는 평범한 집안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라 속삭였다.이때 자리한 이들은 너도나도 주서화을 칭찬하기 바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서화가 혼례도 치르지 않고 먼저 아이를 가져 첩이 된 것을 손가락질하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하였다.정국공 부인은 서씨 부인 곁에 앉은 소녀가 단아하고 얌전하며 자태가 고운 것을 보고, 그가 서씨 부인의 적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6화

    옹왕비의 지아비 옹왕야는 선황의 사촌 동생이자 섭정왕의 사촌 형님이기에, 예전의 일들을 자연스레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옛이야기를 꺼내니, 모두가 속으로 짐작이 갔다. 섭정왕께서 마음에 둔 이가 바로 현 태후라는 사실을, 하지만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였다."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섭정왕께서 정실을 맞으신다면야 우리가 모를 리 없지만, 첩을 들이신 일까지야 저희 같은 외인은 알 도리가 없지요." 다른 부인들은 섭정왕 이야기가 나오자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어 말을 아꼈고, 그의 내실 일을 함부로 논하지 못하였다."섭정왕께서 평소 국사를 돌보시느라 바쁘시니, 내실에 몇몇 첩실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부인들은 섭정왕의 내실에 첩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섭정왕께서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으신다 하여 감히 생각조차 못 했으나, 이제 첩이 생겼다 하니 혹여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는 이도 있었다.그 중, 녕원후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옹왕비 곁에 다가와 앉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말이 나온 김에, 저희 집에도 혼기가 찬 여식이 몇 있습니다. 감히 자랑하자면, 하나같이 꽃처럼 고우며, 단아하고 어질지요. 왕비마마님의 덕을 입어 좋은 혼처를 얻게 된다면, 평생 잊지 못할 은혜가 될 것입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섭정왕의 내실 이야기를 했는데, 녕원후 부인이 이런 말을 하니, 누가 보아도 섭정왕 저택에 딸을 들이려는 속셈이 뻔히 드러났다.옹왕비가 어찌 그녀의 속내를 모를 리 있으랴.그녀가 담담히 한마디 건넸다. "내가 알기로, 댁의 적녀는 작년에 이미 출가하였다지요? 집에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서녀들만 남았겠군요?"녕원후 부인은 개의치 않고 계속 웃으며 말했다. "왕비마마 말씀이 옳으시옵니다. 서녀들이긴 하나, 용모와 인품은 흠잡을 데 없지요. 다만 서출이라 높은 집안 정실로 들이기엔 어렵겠으나, 첩실로라도 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5화

    다음 날 아침, 신수빈이 잠에서 깨어나자 청하가 머리를 빗겨주며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주서화 부인 쪽에서 며칠 전에 저희 창란원 하녀 네댓을 내보냈사온데 오늘은 또 평양 후부에 손님이 많다며 일손이 부족하다고 사람들을 모두 불러갔습니다. 지금은 저랑 금자, 은보 세 명만 남았습니다. 방금 전에도 또 사람을 보내 소인더러 전정으로 나가 시중들라 하던데 소인은 아씨의 몸종이지 그쪽을 시중드는 자가 아니잖습니까.”신수빈은 주서화가 청하를 데려가려 사람을 보냈다는 말에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전생에 윤 노부인 생신 때 자신이 살림을 맡고 있었고 주서화가 그 틈을 타 청하를 함정에 빠뜨려 전정에서 추문을 일으켰었다.이번에도 청하를 불러 같은 수를 쓰려는 것이 분명했다.“넌 가지 말고 금자를 보내. 오늘은 내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거라.” 신수빈이 청하에게 당부했다.청하는 곧장 대답하고 금자와 은보에게도 당부했다.“오늘 누가 너희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다 하면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예, 마님.”“내가 어제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하였느냐?” 신수빈이 은보에게 물었다. 청하는 주로 내실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바깥일은 대부분 은보에게 맡겼다.“마님, 모두 처리하였습니다.”“오늘 한 가지 더 맡길 일이 있어. 잘 처리하면 상을 내릴게.”“마님, 말씀만 하십시오!”신수빈은 그녀가 주먹을 쥐고 군중 예법으로 인사 하는 걸 보고 살짝 미소 지으며 손짓해 가까이 오게 한 뒤 귓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기억해. 깔끔하게 처리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염려 마시옵소서. 이런 일쯤은 소인에게 식은 죽 먹기입니다.” 은보는 이렇게 말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신수빈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청하가 머리를 빗겨주려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청하가 금비녀를 꺼내 머리에 꽂으려 하자 신수빈은 손을 들어 막았다.“좀 더 수수한 걸로 골라줘.”“오늘은 노부인 생신이니 너무 수수하면 서씨 부인께서 아씨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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