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Penulis: 정대천
오상댁은 똑똑히 보았다.

좀 전에 윤서원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는 여인이었고 그 여인을 보자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는 걸.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기에 오상댁은 수없이 많이 봐왔었다. 이는 분명 외도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오상댁은 신수빈이 소란을 피울까 걱정돼 그녀를 말렸다.

"마님, 나리께서 이곳에 공무가 있으신 듯하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신수빈은 태연한 얼굴이 아닌 화가 난 모습으로 오상댁을 돌아봤다.

"오상댁, 그럴 필요 없네. 방금 서방님께 문을 열어 준 이는 분명 여인이었어. 공무로 오신 거라면 이리 몰래 올 필요도 없었겠지. 만에 하나 사창(私娼:관아의 허가 없이 비밀리 매음하는 창녀)이기라도 하면 서방님의 몸에 분명 해가 될 테야!"

오상댁은 그 말에 안색이 굳어졌다. 신수빈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고, 정말 사창이면 일은 더욱이 커질 터였다.

그래서 오상댁은 따라온 문지기에게 문을 열라 시켰고 신수빈을 부축해 집 안으로 들어섰다.

회임 중인 주서화 때문에 윤서원은 그동안 쾌락을 즐기지 못했었다. 그러다 때마침 가족을 찾으러 온 여인을 만났고 그녀의 가족이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에 오갈 데 없는 여인은 윤서원의 뒤를 따랐다. 윤서원은 그 여인을 만난 뒤에야 간만의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엔 단지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처녀의 몸인 데다 침상에서의 솜씨가 뛰어나 윤서원은 낮에 관직에 있을 때도 그녀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랬기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했던 윤서원은 다른 사람의 인기척은 듣지 못했다.

신수빈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의 옷은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문소리에 윤서원은 눈치 없는 하녀인 줄로만 알고 몸을 돌려 호통을 치려고 했다. 그러다 들어온 이를 확인한 그는 깜짝 놀라 품 안의 여인을 감싸 뒤로 숨겼다.

"여긴 어떻게 왔느냐?"

윤서원이 눈썹을 찌푸린 채 문 앞에 서 있는 신수빈에게 물었다.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서방님께선 왜 여기 계시는 겁니까?"

상황이 심각해지자 오상댁이 가벼운 기침 소리를 냈다.

"나리, 작은 마님께선 대관음사에 가시려고 이곳을 지나시다 우연히 나리를 뵈어 들르신 겁니다."

오상댁은 윤서원이 이런 망측한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오상댁은 제 어머니의 사람이었기에 윤서원은 그녀의 말을 믿었다. 다만, 이런 상황을 남들에게 보인 게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향이나 올리러 갈 것이지 쓸데없이 돌아다녀서는!"

흥이 완전히 깨진 윤서원은 옷을 정돈하며 신수빈을 꾸짖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신수빈은 화가 났지만 애써 삼켰다.

"제가 시집온 지도 벌써 석 달입니다. 서방님께서 절 연모하지 않는 걸 알기에 절 돌봐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헌데, 서화는 시집온 지 얼마 안 됐고 홑몸도 아니지 않습니까. 서방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셔야지 어찌 이런 사창에게 마음을 쓰시는 겁니까? 혹, 회임한 몸이라 불편하신 거라면 제가 계집종을 얼마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서화라는 이름에 윤서원은 순간 마음이 움찔거렸으나 사창이라는 단어에 다시 반박에 나섰다.

"소인배 주제에 대인배인 척하지 말거라! 연이는 양갓집 여식이지 사창 따위가 아니다!"

신수빈은 속으로 비웃었지만 얼굴에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양갓집 여식이라면 왜 집으로 들이지 않는 겁니까? 서방님께서는 지금 저 아이에게 홀려 대낮에 공무를 제치고 이리로 뛰어오신 것 아닙니까?"

신수빈의 말대로 그는 공무를 제치고 온 것이었기에 그녀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바깥일은 아녀자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집으로 돌아가 할 일이나 하거라!"

하지만 신수빈은 오늘 단단히 결심이라도 한 듯 자리를 뜨지 않고 오히려 의자에 굳혀 앉았다.

"바깥일은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집안일은 제 몫이지요. 저 아이가 연이든 뭐든 모르겠고 평범한 양갓집 여식이라면 이는 절대 저지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뭐든 변명해 보십시오. 아니면 지금 당장 어머님과 아버님께 사실대로 고하러 가겠습니다. 전 안주인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만입니다."

윤서원은 신씨 가문의 막대한 재산과 그녀가 가져온 혼수 때문에 그녀와 자신의 가문이 틀어지는 꼴은 원치 않았다.

그때, 침상에서의 여인이 옷을 정돈한 채 부랴부랴 신수빈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마님, 제발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소인은 소주 출신이고 가족을 찾으러 이곳에 온 겁니다. 하나, 이곳에 와서야 가족은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오갈 데 없는 저를 나리께서 구해주신 겁니다. 소인은 가진 게 없어 이 몸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 것뿐입니다. 소인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다면 이만 떠날 테니 나리의 화를 푸시옵소서."

유이연의 자태는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데다 울먹이는 목소리마저 애절하게 떨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윤서원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럴 필요 없다. 넌 이제 내 여인이니 내 곁에 머물 거라."

윤서원은 그녀의 뒷배라도 돼주겠다는 듯 유이연을 꽉 안았고 유이연 또한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리…"

신수빈은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그들을 지켜봤다. 보아하니 자신이 그들의 매파가 된 꼴이었다.

'이 아이랑 주서화, 누가 더 한 수 위일까?'

신수빈의 생각도 모른 채 윤서원은 유이연의 숭배 어린 눈빛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눈빛에 그는 한껏 고양되어 있었고 오직 연약한 그녀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넌 아무 걱정 말고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구나. 아무도 너를 함부로 못 대하게 할 테니!"

윤서원은 말하며 옆에 앉아 있는 신수빈을 쳐다봤다.

그는 신수빈이 당연히 안 된다며 소란을 피울 줄 알았다. 주서화를 첩으로 들일 때도 그랬으니.

하지만 신수빈은 분명 화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화를 삼키는 모습이었다.

"서방님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 저도 더할 말은 없습니다. 넌 그만 짐을 챙겨 저택으로 갈 채비를 하거라.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서화가 회임 중이라 나도 서방님을 모실 첩을 알아보는 중이었으니."

유이연은 신수빈의 말에 기쁨을 감추지 않고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그제야 윤서원은 집에 주서화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방금은 유이연을 지키겠다는 성급한 마음에 미처 주서화를 생각지 못한 것이다.

사실 윤서원은 유이연을 집으로 들일 생각이 없었다.

밖에서 만나는 게 훨씬 수월했고 집으로 들여서 주서화의 심기를 건드려 그녀가 태후에게 고한다면 그것도 큰일이었으니.

하지만 기쁜 표정으로 짐을 챙기는 유이연의 모습과 지켜주겠다고 한 자신의 말이 떠오르자 윤서원은 도무지 안 된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수빈은 그런 윤서원의 표정 변화를 보며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띠었다.

'윤서원, 앞으로 모든 게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고 되돌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서화… 너도 내가 지난 생에 겪었던 고통 그대로 겪어봐야지.'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82화

    ”지방 관원들과 하도 관아 역시 선을 지키고는 있습니다. 대규모로 범람해 큰 수해가 나지 않게 막으며, 극히 일부 백성들만 피해를 입히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큰 문제로 번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신도연이라는 자가 굳이 단번에 근본부터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일이 꼬여버린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섭정왕이 직접 지명한 인물이라 여기저기에 제약이 많습니다.”어쨌든 장 가가 가장 큰 몫을 챙긴 상황에서 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가는 불길이 제 몸을 태우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정양왕비의 말을 들은 태후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역시나 오라버니가 말하던 대로였다. 중원의 몇몇 큰 가문들의 두터운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어도 그들의 뿌리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조정의 요직과 자원이 여전히 몇몇 명문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던 것이었다.이제 막 벼슬길에 발을 들인 최문화 같은 인물, 그리고 내택에 머무는 최 씨 같은 부인이 관직의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으니 오라버니가 이 재가한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선택이 참으로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신도연이라… 어떤 자냐?”태후는 조정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관리가 있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정양왕비는 태후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차분히 답했다.“항주 출신입니다. 항주의 거상, 신병호의 셋째 아들이지요.”거상의 아들이라는 말에 태후는 잠시 멈칫했다. 이윽고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듯 그 신도연이 바로 신 씨의 셋째 오라비라는 사실이 떠올랐다.다른 이들은 몰라도 신 씨와 이도현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태후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이도현에 대해서 잘 안다고 여겼다. 그가 아무리 여인을 총애한다 해도 결코 그 여인들이 그의 결정을 좌우하게 두지는 않을 인물이었다.그런데 이 신 씨라는 여인은 달랐다. 관직 하나 없는 백정 신분에, 그것도 상인의 집안 출신인 신도연을 단숨에 하도 감찰사로 만들어 놓다니.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81화

    신수빈이 마음 편히 지내는 것과 달리 태후는 소영이 처형된 이후 크게 앓아누웠고 열흘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차도를 보였다.태후의 오라버니인 정양왕은 두 차례나 입궐해 문안을 드렸고 그녀가 기운 없이 축 처진 모습을 보자 부인에게 서난각에 자주 들러 태후의 곁을 지키라고 일렀다.오늘의 태후는 비교적 상태가 좋아, 화랑 앞에 앉아 두 마리 사자고양이가 공을 쫓으며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시 하나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누군가 찾아왔음을 알아차린 태후는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혹시 섭정왕이더냐?”내시는 고개를 한껏 숙인 채 조심스럽게 아뢰었다.“태후 마마, 정양왕비께서 오셨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태후의 눈빛이 곧바로 어두워졌다.태후는 문득, 조정의 중대한 일이 아니면 이곳에는 오지 않겠다고 했었던 이도현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이토록 오래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들라 하거라.”태후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곁에 서 있던 여관 황상궁에게 다시 물었다.“내가 병석에 있던 동안 섭정왕이 사람을 보내 안부라도 물은 적이 있느냐?”비록 황상궁이 소영만큼 태후의 곁에서 중용되던 인물은 아니었으나 오래된 심복으로 태후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없었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태후의 얼굴에 있는 쓸쓸함이 더욱 가려지지 않았다.이윽고 정양왕비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태후의 안색이 한결 좋아 보이자 그녀 역시 마음을 놓는 기색이었다. 지금의 천자는 아직 나이가 어렸고 장 씨는 외척이었기에 일가의 모든 영광은 태후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태후에게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곧 장 가의 가장 큰 손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를 마친 뒤, 태후는 정양왕비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재가하여 장 가로 들어온 몸이었지만 최 씨 가문은 중원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이자 인재가 끊이지 않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 장 가가 권세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뿌리가 얕은 만큼 최 씨와의 혼인은 그들에게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80화

    서 씨는 이때 몹시 수척해 보였다. 얼굴빛은 창백했고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떠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고작 스무 날 남짓한 사이에 어찌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서 씨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하지만 딸 하나는 황명을 기다리며 남은 인생을 몇몇 환관들과 함께 보내야 할 처지가 되었고, 유일한 아들 또한 중풍에 걸렸다.서 씨는 윤서원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녀들에게서 한마디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붉힌 채 신수빈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이 망조 든 년아! 집에 들어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윤 가를 이렇게 뒤흔들어 놓는 것이냐! 게다가 내 아들까지 병들게 하고, 서화의 뱃속 아이까지 잃게 만들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느냐? 오늘 내가 너 같은 천한 년을 가만두지 않겠다!”서 씨는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손을 치켜들어 내리치려 했다. 그 순간 금자와 은보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서 씨는 두 사람을 향해 더욱 거칠게 악을 썼다.“이 천한 계집종들이 감히 나를 막아서는 것이냐?”그때 큰 마님이 지팡이를 바닥에 세차게 내려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낮고 엄한 음성이 울렸다.“이제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집안이 이만하면 충분히 어지럽지 않으냐!”그제야 서 씨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그 눈물이 윤서령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윤서원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큰 마님의 시선이 신수빈의 배로 옮겨 갔다.그녀는 가느다란 허리와 옷차림 덕분에 배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회임한 기색은 분명히 보였다.“이 일은 본래 네 잘못이 아니니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제 몸에 아이도 있으니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몸부터 잘 돌보거라.”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신수빈의 배로 쏠렸다. 과연 아랫배가 살짝 불룩해져 있었다.그때 호위들이 들것을 들고 와 마차에서 윤서원을 내려놓았다. 그가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아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79화

    이도현 역시 어딘가 멋쩍은 기색을 띠고 있었고, 더는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말도, 왕부에 들어와 첩이 되라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신수빈의 말대로 그녀의 신분은 확실히 낮았다. 방금 전, 그 한마디 역시, 그 자신도 어찌하여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여운이 짙게 남아 있었다. 이도현은 그녀를 끌어안은 채,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그녀는 다른 여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은 이도현 역시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귀족이든, 재물이 넉넉한 집안이든, 심지어는 장터의 평범한 백성조차 약간의 여유만 생기면 첩 한 명쯤은 두려 했다. 그들의 아내가 된 여인은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됐고 설령 불만을 드러내더라도 질투 많은 여인이라는 이유로 내쳐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어디를 보아도 현숙한 여인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내조차 견디지 못하는 일을 여인이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신 씨, 본왕은…!”이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자신에게는 다른 여인은 없다고, 젊은 시절부터 전장을 전전하며 살았기에 다른 세가의 자제들처럼 어린 나이에 통방 시녀를 둔 적도 없었다고, 이후 몇 차례 일을 겪고 나서는 정사에 마음을 둘 여유조차 없이 십수 년을 남과 북의 전장을 오갔다고… 올해에 이르러서야 전쟁이 조금 잠잠해졌을 뿐이라고… 만약, 그날 밤, 암계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녀와 이런 인연이 생길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가 침상에서는 어떤 여인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친왕들처럼 어느 명문가의 여인을 왕비로 맞아 몇 명의 첩을 들이며 무난한 일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는 그녀의 첫 사내였고 그녀 또한 그의 첫 여인이었지만, 그는 이제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세를 쥔 인물이 되었다. 스물일곱의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내들은 이미 모두 아이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78화

    이도현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는 것을 보자 신수빈은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음을 알아차렸다. 신수빈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왕야께서는 지금, 제가 왕야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첩이 되든 측비가 되든 누구도 감히 저를 괴롭히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한데… 과연 척희가 총애를 받지 못해서 그런 결말을 맞은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왕야께서는 언젠가 반드시 정비를 맞이하셔야 할 겁니다. 정비가 어질다면 왕부의 후택에는 그나마 숨 쉴 곳이 있겠지요. 한데 만약 정비가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면요? 그때가 된다면 왕야께서 제게 베푸신 총애는 곧 제게 씌워지는 가장 큰 죄가 될 것입니다.”이때 촛불이 툭 하고 소리를 내며 튀기 시작했다. 신수빈은 이내 탁자 위의 은침을 들어 촛심을 살짝 건드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사내들은 늘 밖의 일을 돌보느라 바쁩니다. 제가 후택에서 모욕을 당한다 한들, 그런 사사로운 일들을 매번 왕야 앞에 들고 나와야 할까요? 게다가 훗날 제가 서자나 서녀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들은 왕비에게 보내져서 길러지겠지요. 열 달을 품어 낳은 아이가 다른 여인을 어머니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생각하면 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혹여 제가 총애를 믿고 분수를 넘기면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로 어사들이 줄줄이 나서 왕야를 탄핵할 겁니다. 내실을 단속하지 못하고 첩을 총애해 정실을 업신여긴다고요. 그때면 왕야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결국은 제가 일을 키웠다 여기시며 왕야와 저 사이에 남아 있던 그 얼마 안 되는 정마저 소진되어 버리겠지요. 차라리 화이를 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재가해서 정실이 되더라도 왕부의 첩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이도현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촛불에 비친 그의 눈빛은 어둠에 잠겨 속내를 가늠할 수 없었다.신수빈이 이토록 많은 말을 꺼낸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불편을 만들기 위함도, 그를 노하게 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이도현을 화나게 한다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은 없을 테니까. 신수빈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77화

    이도현이 행궁에서 사람을 빼냈다는 사실을 벌써 알아차린 것을 보고 신수빈은 자신에게 이미 그의 눈과 귀가 붙어 있음을 짐작했다. 그 명분이 보호이든 감시이든 결국 그녀의 모든 행적은 그의 시야 아래에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그가 이런 질문을 꺼낸 것도 십중팔구 지난 이틀간 그녀가 벌인 일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도현의 눈빛은 바다처럼 짙고 깊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강압이 담겨 있었다. 이 얼마간의 접촉을 통해 신수빈 역시 알고 있었다. 그는 성정이 강직한 인물로, 눈앞의 작은 기만조차 결코 참고 넘길 성정이 아니었다. 그를 속이려 든다면 결과는 오히려 더 나빠질 게 분명했다. 신수빈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한없이 진실한 눈빛을 장착한 채 말했다.“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마음 깊은 곳에 감춰 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 왕야께서도 그러하실 거지요. 그래서 왕야께서 일부러 이곳까지 오신 것도 제가 지난 이틀간 무엇을 했는지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만약 왕야께서 윤서원과 주서화에 관한 일을 묻고자 하신다면 저는 단 한 가지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은 왕야와는 무관하며 저는 왕야의 뜻을 거스르거나 해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요. 왕야, 이번 한 번만 제 고집을 허락해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이 일을 부디…. 더는 거론하지 말아 주십시오.”이도현은 한참동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원래라면 입 밖으로 나올 말들이 그녀의 말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그가 신수빈을 높이 평가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무척 영리한데, 그 영리함에 분명한 선도 있었다. 신수빈은 이도현이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호의를 등에 업되 지나치지 않은 요구만을 내놓았다. 설령 속내에 바람이 있다 해도 그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그는 원래 여인은 굳이 똑똑할 필요가 없고 얌전히 제 자리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