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지방 관원들과 하도 관아 역시 선을 지키고는 있습니다. 대규모로 범람해 큰 수해가 나지 않게 막으며, 극히 일부 백성들만 피해를 입히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큰 문제로 번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신도연이라는 자가 굳이 단번에 근본부터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일이 꼬여버린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섭정왕이 직접 지명한 인물이라 여기저기에 제약이 많습니다.”어쨌든 장 가가 가장 큰 몫을 챙긴 상황에서 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가는 불길이 제 몸을 태우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정양왕비의 말을 들은 태후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역시나 오라버니가 말하던 대로였다. 중원의 몇몇 큰 가문들의 두터운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어도 그들의 뿌리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조정의 요직과 자원이 여전히 몇몇 명문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던 것이었다.이제 막 벼슬길에 발을 들인 최문화 같은 인물, 그리고 내택에 머무는 최 씨 같은 부인이 관직의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으니 오라버니가 이 재가한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선택이 참으로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신도연이라… 어떤 자냐?”태후는 조정에서 그런 이름을 가진 관리가 있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정양왕비는 태후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차분히 답했다.“항주 출신입니다. 항주의 거상, 신병호의 셋째 아들이지요.”거상의 아들이라는 말에 태후는 잠시 멈칫했다. 이윽고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듯 그 신도연이 바로 신 씨의 셋째 오라비라는 사실이 떠올랐다.다른 이들은 몰라도 신 씨와 이도현 사이의 은밀한 관계를 태후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이도현에 대해서 잘 안다고 여겼다. 그가 아무리 여인을 총애한다 해도 결코 그 여인들이 그의 결정을 좌우하게 두지는 않을 인물이었다.그런데 이 신 씨라는 여인은 달랐다. 관직 하나 없는 백정 신분에, 그것도 상인의 집안 출신인 신도연을 단숨에 하도 감찰사로 만들어 놓다니.
신수빈이 마음 편히 지내는 것과 달리 태후는 소영이 처형된 이후 크게 앓아누웠고 열흘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차도를 보였다.태후의 오라버니인 정양왕은 두 차례나 입궐해 문안을 드렸고 그녀가 기운 없이 축 처진 모습을 보자 부인에게 서난각에 자주 들러 태후의 곁을 지키라고 일렀다.오늘의 태후는 비교적 상태가 좋아, 화랑 앞에 앉아 두 마리 사자고양이가 공을 쫓으며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시 하나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누군가 찾아왔음을 알아차린 태후는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혹시 섭정왕이더냐?”내시는 고개를 한껏 숙인 채 조심스럽게 아뢰었다.“태후 마마, 정양왕비께서 오셨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태후의 눈빛이 곧바로 어두워졌다.태후는 문득, 조정의 중대한 일이 아니면 이곳에는 오지 않겠다고 했었던 이도현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이토록 오래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들라 하거라.”태후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곁에 서 있던 여관 황상궁에게 다시 물었다.“내가 병석에 있던 동안 섭정왕이 사람을 보내 안부라도 물은 적이 있느냐?”비록 황상궁이 소영만큼 태후의 곁에서 중용되던 인물은 아니었으나 오래된 심복으로 태후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없었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태후의 얼굴에 있는 쓸쓸함이 더욱 가려지지 않았다.이윽고 정양왕비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태후의 안색이 한결 좋아 보이자 그녀 역시 마음을 놓는 기색이었다. 지금의 천자는 아직 나이가 어렸고 장 씨는 외척이었기에 일가의 모든 영광은 태후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태후에게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곧 장 가의 가장 큰 손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를 마친 뒤, 태후는 정양왕비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재가하여 장 가로 들어온 몸이었지만 최 씨 가문은 중원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이자 인재가 끊이지 않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 장 가가 권세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뿌리가 얕은 만큼 최 씨와의 혼인은 그들에게
서 씨는 이때 몹시 수척해 보였다. 얼굴빛은 창백했고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떠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고작 스무 날 남짓한 사이에 어찌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서 씨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하지만 딸 하나는 황명을 기다리며 남은 인생을 몇몇 환관들과 함께 보내야 할 처지가 되었고, 유일한 아들 또한 중풍에 걸렸다.서 씨는 윤서원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녀들에게서 한마디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붉힌 채 신수빈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이 망조 든 년아! 집에 들어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윤 가를 이렇게 뒤흔들어 놓는 것이냐! 게다가 내 아들까지 병들게 하고, 서화의 뱃속 아이까지 잃게 만들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느냐? 오늘 내가 너 같은 천한 년을 가만두지 않겠다!”서 씨는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손을 치켜들어 내리치려 했다. 그 순간 금자와 은보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서 씨는 두 사람을 향해 더욱 거칠게 악을 썼다.“이 천한 계집종들이 감히 나를 막아서는 것이냐?”그때 큰 마님이 지팡이를 바닥에 세차게 내려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낮고 엄한 음성이 울렸다.“이제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집안이 이만하면 충분히 어지럽지 않으냐!”그제야 서 씨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그 눈물이 윤서령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윤서원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큰 마님의 시선이 신수빈의 배로 옮겨 갔다.그녀는 가느다란 허리와 옷차림 덕분에 배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회임한 기색은 분명히 보였다.“이 일은 본래 네 잘못이 아니니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제 몸에 아이도 있으니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몸부터 잘 돌보거라.”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신수빈의 배로 쏠렸다. 과연 아랫배가 살짝 불룩해져 있었다.그때 호위들이 들것을 들고 와 마차에서 윤서원을 내려놓았다. 그가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아
이도현 역시 어딘가 멋쩍은 기색을 띠고 있었고, 더는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말도, 왕부에 들어와 첩이 되라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신수빈의 말대로 그녀의 신분은 확실히 낮았다. 방금 전, 그 한마디 역시, 그 자신도 어찌하여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여운이 짙게 남아 있었다. 이도현은 그녀를 끌어안은 채,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그녀는 다른 여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은 이도현 역시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귀족이든, 재물이 넉넉한 집안이든, 심지어는 장터의 평범한 백성조차 약간의 여유만 생기면 첩 한 명쯤은 두려 했다. 그들의 아내가 된 여인은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됐고 설령 불만을 드러내더라도 질투 많은 여인이라는 이유로 내쳐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어디를 보아도 현숙한 여인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내조차 견디지 못하는 일을 여인이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신 씨, 본왕은…!”이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자신에게는 다른 여인은 없다고, 젊은 시절부터 전장을 전전하며 살았기에 다른 세가의 자제들처럼 어린 나이에 통방 시녀를 둔 적도 없었다고, 이후 몇 차례 일을 겪고 나서는 정사에 마음을 둘 여유조차 없이 십수 년을 남과 북의 전장을 오갔다고… 올해에 이르러서야 전쟁이 조금 잠잠해졌을 뿐이라고… 만약, 그날 밤, 암계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녀와 이런 인연이 생길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가 침상에서는 어떤 여인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친왕들처럼 어느 명문가의 여인을 왕비로 맞아 몇 명의 첩을 들이며 무난한 일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는 그녀의 첫 사내였고 그녀 또한 그의 첫 여인이었지만, 그는 이제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세를 쥔 인물이 되었다. 스물일곱의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내들은 이미 모두 아이가
이도현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는 것을 보자 신수빈은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음을 알아차렸다. 신수빈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왕야께서는 지금, 제가 왕야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첩이 되든 측비가 되든 누구도 감히 저를 괴롭히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한데… 과연 척희가 총애를 받지 못해서 그런 결말을 맞은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왕야께서는 언젠가 반드시 정비를 맞이하셔야 할 겁니다. 정비가 어질다면 왕부의 후택에는 그나마 숨 쉴 곳이 있겠지요. 한데 만약 정비가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면요? 그때가 된다면 왕야께서 제게 베푸신 총애는 곧 제게 씌워지는 가장 큰 죄가 될 것입니다.”이때 촛불이 툭 하고 소리를 내며 튀기 시작했다. 신수빈은 이내 탁자 위의 은침을 들어 촛심을 살짝 건드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사내들은 늘 밖의 일을 돌보느라 바쁩니다. 제가 후택에서 모욕을 당한다 한들, 그런 사사로운 일들을 매번 왕야 앞에 들고 나와야 할까요? 게다가 훗날 제가 서자나 서녀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들은 왕비에게 보내져서 길러지겠지요. 열 달을 품어 낳은 아이가 다른 여인을 어머니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생각하면 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혹여 제가 총애를 믿고 분수를 넘기면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로 어사들이 줄줄이 나서 왕야를 탄핵할 겁니다. 내실을 단속하지 못하고 첩을 총애해 정실을 업신여긴다고요. 그때면 왕야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결국은 제가 일을 키웠다 여기시며 왕야와 저 사이에 남아 있던 그 얼마 안 되는 정마저 소진되어 버리겠지요. 차라리 화이를 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재가해서 정실이 되더라도 왕부의 첩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이도현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촛불에 비친 그의 눈빛은 어둠에 잠겨 속내를 가늠할 수 없었다.신수빈이 이토록 많은 말을 꺼낸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불편을 만들기 위함도, 그를 노하게 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이도현을 화나게 한다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은 없을 테니까. 신수빈은
이도현이 행궁에서 사람을 빼냈다는 사실을 벌써 알아차린 것을 보고 신수빈은 자신에게 이미 그의 눈과 귀가 붙어 있음을 짐작했다. 그 명분이 보호이든 감시이든 결국 그녀의 모든 행적은 그의 시야 아래에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그가 이런 질문을 꺼낸 것도 십중팔구 지난 이틀간 그녀가 벌인 일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도현의 눈빛은 바다처럼 짙고 깊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강압이 담겨 있었다. 이 얼마간의 접촉을 통해 신수빈 역시 알고 있었다. 그는 성정이 강직한 인물로, 눈앞의 작은 기만조차 결코 참고 넘길 성정이 아니었다. 그를 속이려 든다면 결과는 오히려 더 나빠질 게 분명했다. 신수빈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한없이 진실한 눈빛을 장착한 채 말했다.“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마음 깊은 곳에 감춰 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 왕야께서도 그러하실 거지요. 그래서 왕야께서 일부러 이곳까지 오신 것도 제가 지난 이틀간 무엇을 했는지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만약 왕야께서 윤서원과 주서화에 관한 일을 묻고자 하신다면 저는 단 한 가지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은 왕야와는 무관하며 저는 왕야의 뜻을 거스르거나 해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요. 왕야, 이번 한 번만 제 고집을 허락해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이 일을 부디…. 더는 거론하지 말아 주십시오.”이도현은 한참동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원래라면 입 밖으로 나올 말들이 그녀의 말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그가 신수빈을 높이 평가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무척 영리한데, 그 영리함에 분명한 선도 있었다. 신수빈은 이도현이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호의를 등에 업되 지나치지 않은 요구만을 내놓았다. 설령 속내에 바람이 있다 해도 그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그는 원래 여인은 굳이 똑똑할 필요가 없고 얌전히 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