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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Penulis: 정대천
평양 후부.

신수빈은 시어머니인 서씨 부인 옆에 서서 화청 안에 무릎 꿇고 있는 유이연과 표정이 다소 복잡한 윤서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이런!"

화가 난 서씨 부인은 윤서원을 보며 더더욱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주서화가 비록 귀첩이긴 하나 태후의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주서화가 첩으로 들어온 지 보름도 안 됐고 게다가 회임까지 한 몸인데 벌써 다른 여인을 집으로 들이는 것은 명백히 태후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짓이었다.

화를 풀 길이 없었던 서씨 부인은 신수빈을 향해 호통을 쳤다.

"넌 정실부인이면서 말리지는 못할망정 어찌 저 아이를 집으로 들인 것이냐? 우리 가문이 망하길 바라는 것이냐?"

서씨 부인의 목소리가 커서 문밖에 있던 하녀들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신수빈을 가엽게 여겼다.

혼인을 올린 지 석 달 만에 태후가 새 혼사를 하사한 것도 모자라 이젠 이도현이 밖에서 여인을 데려왔으니.

그럼에도 신수빈은 억울한 기색은커녕 여전히 공손한 모습이었다.

"다 제가 못나서 서방님을 말리지 못한 탓입니다. 저도 서화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서방님께서 서화와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 돈으로 저 아이를 보내려 했으나 감싸고도는 서방님을 말리지 못했고 오히려 서방님께 소인배라는 소리마저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저 아이를 집으로 들여 명분을 주는 게 밖에서 몰래 만나다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빈틈없는 그녀의 말에 시어머니도 더 이상 트집 잡을 구실을 찾지 못했다.

서씨 부인은 꿇고 있는 유이연을 바라봤다.

'지금 저 아이를 내친다 해도 서원이가 다시 제 발로 찾아갈 텐데... 밖에서 살림을 차리는 것보다야 첩으로 들이는 게 낫지.'

어쩔 수 없는 서씨 부인은 머리가 아파 났다.

"됐다. 네들이 알아서 하거라."

나가라는 서씨 부인의 손짓에 몸을 돌린 윤서원과 신수빈은 화청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주서화를 발견했다.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윤서원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애처롭게 흐느끼는 모습이 너무나 가여워 보였다.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한 윤서원이 다가가려 했으나 미안한 마음에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상함을 감지한 유이연도 서씨 부인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마님. 소인, 나리를 잘 모셔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전 오갈 데 없는 몸인 데다 나리의 인품과 재능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 그 어떤 명분도 바라지 않으며 나리의 몸종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양주 출신의 유이연도 귀하게 자란 몸인지라 그 기품은 대갓집 규수 못지않았으나 그들보다 허리를 굽힐 줄 알았다.

타고난 용모로 그런 말을 하니 유이연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윤서원의 마음을 울렸다. 게다가 유이연을 막 품은 윤서원으로서는 연약한 그녀의 모습이 마냥 애처롭고 애틋하기만 했다.

반면, 주서화는 윤서원의 무심한 모습에 가슴을 감싸 쥐며 눈물 맺힌 얼굴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놀란 하녀가 부축하자 주서화는 그대로 하녀의 품에 쓰러졌다.

주서화와 정이 더 깊었던 윤서원이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서화야, 서화야... 괜찮느냐?"

주서화가 끝없는 슬픔과 애틋함이 맺힌 눈으로 울먹였다.

"오라버니, 결국 저를 저버리셨군요..."

윤서원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느덧 유이연이 그들의 곁에 다가와 흐느끼며 말했다.

"언니, 나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탓입니다... 나리께서는 그저 절 가여이 여겨 절 거둔 것뿐입니다. 전 그 어떤 명분도 바라지 않습니다. 언니의 몸종으로라도 남아 먼발치에서 나리를 볼 수 있다면 전 그걸로 족합니다."

윤서원의 품에서 흐느끼는 주서화의 모습에 그녀의 몸종은 더는 참지 못하고 유이연의 어깨를 향해 발길을 날렸다.

가냘픈 몸을 지닌 유이연은 발길 한 번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뒤로 넘어졌고 머리가 계단에 부딪히는 바람에 금세 피를 흘렸다.

"네까짓 게 우리 마님 몸종 노릇을 하려고?"

윤서원은 유이연에 대해 그리 깊은 정은 없지만 그녀에게 빠져있던 참인 데다 몸종이 제멋대로 구는 모습에 화가 났다. 개를 때릴 때도 본디 개 주인을 봐야 하는 법이거늘.

참을 수 없었던 윤서원은 몸종에게 발길질을 날리며 호통치기 시작했다.

"네가 감히 주인의 일에 끼어들려는 것이냐? 노비 주제에 네까짓 감히!"

주서화의 몸종 연이는 밀려오는 고통에 배를 감싸안고 일어서지 못했다.

연이는 주서화와 같이 자란 몸종인지라 연이가 맞자 주서화는 윤서원을 밀치고 연이를 감쌌다.

"제가 싫으신 거면 사실대로 말하면 그만이거늘 연이를 무엇 하러 때리십니까? 본디 사내의 정은 얕은 법이라지만 서방님은 그들과 다르다 생각하여 군주의 신분을 버리고 서방님의 첩으로 이 집에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고작 보름 만에 어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으십니까!"

"서화야, 난 그런 뜻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유이연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윤서원을 부르며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유이연은 피를 닦아내지 않고 그에게 큰절을 올렸다.

"나리, 언니께서 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니 전 이만 떠나겠습니다. 이번 생에는 청등고불(青灯古佛)을 벗 삼아 평생 홀로 지내겠습니다. 이 며칠 간의 기억은 제가 평생 기억하겠나이다."

"이연아, 너..."

윤서원의 연민 어린 마음이 또 한 번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하필 오늘 서씨 부인의 안뜰에는 수많은 하녀가 있었고 여러 관리가 이달의 외곽 점포의 장부를 확인하러 온 참이었다. 아마 그들도 이런 재밌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지아비가 새로운 첩을 들이는 데에 정실 부인조차 아무런 말이 없는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첩실인 주서화가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후부 같은 집안에 여러 첩이 있는 건 흔한 일이었다. 같은 첩인 데다 회임까지 한 마당에 지아비를 몰아세우는 주서화의 모습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마땅해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서씨 부인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신수빈에게로 향했다. 고요하고 품위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대체 윤서원이 왜 미모가 빼어난 정실부인을 두고 저 두 사람을 총애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정작 신수빈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만족해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나를 보지 말고, 어서들 구경이나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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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란
이혼하고 복수해도 될텐데 답답사네 임신도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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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72화

    그의 품 안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에 잠기다니…“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신수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자,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그녀는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눈가에는 은은한 웃음이 어렸고, 봄빛을 머금은 얼굴에는 부드러운 기색이 번졌다.“왕야께서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셨으니… 오늘 오후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제대로 보답해 드릴까 생각하고 있었어요.”그 말에 이도현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이제 와서 이렇게 알아서 챙긴다고? 그것도 스스로 나서서 보답까지 해 주겠다고?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그는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태연한 얼굴을 유지한 채, 약간은 거만한 기색까지 얹어 물었다.“그래? 생각은 해 보았느냐?”“네, 다 생각해 봤어요.”신수빈은 발끝을 들어 그의 귀 가까이 다가갔다.숨결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오늘 오후… 왕야를 배부르게 해 드릴게요.”그 한마디에 순간, 이도현의 숨이 걸렸다.단 한 문장뿐이었는데도 뱃속에서부터 불꽃이 치솟듯 열기가 번져 나갔다. 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달아오르는 듯했다. 호흡은 저도 모르게 무거워졌고, 목소리마저 낮게 잠겼다.“어떻게 배부르게 해 준다는 것이냐?”신수빈은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웃고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정자에서 내려오며 말했다.“그건… 여 귀비 마마의 이 정원을 좀 빌려야겠네요.”이도현은 온돌방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그녀가 무언가 하녀들에게 지시하러 간 듯했는데, 생각보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그의 몸은 이미 완전히 나아 있었다. 두 달이 넘었으니 더는 문제 될 것도 없었다.조금 더 기다려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결국 직접 찾아 나섰다.정원을 지키는 관리에게 묻고서야 그녀가 뒤편 부엌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이도현은 의아한 마음으로 그쪽으로 향했다.그리고 그곳에서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71화

    신수빈은 이곳이 이도현의 어머니인 여 귀비의 옛 거처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가 여 귀비를 입에 올릴 때마다, 눈썹 사이에 계속 부드럽고 따뜻한 기색이 스쳤다. 그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부친과 모친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그리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여 귀비 마마께… 다른 가족은 없으셨나요?”신수빈은 그의 품에 기대 부드럽게 물었다.“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다만 모친께서 말씀하시길… 금릉을 빠져나오던 그날, 외조모와 함께 달아나다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하더군. 그때 뒤쫓는 자들이 있어… 외조모께서는 이를 악물고 그 아이를 버린 채, 모친만 데리고 도망치셨다.”“그 뒤로는… 찾지 않으셨나요?”“찾았다. 헌데 강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져 있었고, 서로 왕조가 달라 탐문이 쉽지 않았다. 모친께서는 평생 그 여동생을 마음에 품고 사셨지. 재작년에 남쪽의 난이 평정된 뒤, 내가 사람을 보내 찾아보았으나… 전조의 신하들도 이미 몇 번이나 바뀌어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지금까지도 소식은 없다.”신수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은 채 조용히 심장 소리를 들었다.그러면서 전생을 떠올려 보았지만, 이도현의 이모에 대한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나이에 그런 혼란 속에 떨어졌다면… 아마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을 조금 더 붙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그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왕야에게는… 저도 있습니다.”이도현은 그녀를 끌어안은 채 낮게 웃음을 흘렸다.“진하빈의 일은 걱정하지 말거라. 봄 과거가 끝나면… 그 측비 신분은 내가 정리하겠다.”신수빈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그러나 그의 단단한 이목구비에는 조금 전의 부드러움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더 묻지 않았다.그가 어떻게 ‘정리’할지, 그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70화

    지금 이도현과 신수빈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보고도 어찌 측비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단 말인가!이도현의 곧게 다물린 입술과 말없이 신병호를 노려보는 시선만으로도, 마차 안의 공기가 금세 얼어붙는 듯했다.“본왕의 후실을… 언제부터 신 후작이 정해 주게 되었습니까?”차갑게 가라앉은 음성이 울렸다. 조금 전까지의 사람과는 전혀 다른 기색이었다.신병호는 숨이 턱 막힌 듯 굳어버렸고, 얼굴에는 난처한 빛이 스쳤다.신수빈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 비웃음이 어린 눈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그녀는 이도현의 분노를 달랠 생각도, 신병호의 말을 수습해 줄 마음도 없었다.자신은 아직 윤서원과의 문제도 끝내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관아를 나오자마자 여기서 진하빈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결국 부녀의 정이라는 것도 가까운 쪽과 먼 쪽이 있는 법이었다.신 가로 향하는 길 내내, 마차 안에는 더 이상 말이 오가지 않았다.신수빈은 차양 사이로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 중 하나는 불안하게 굳어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마차가 신 가에 도착하자마자, 신병호는 거의 도망치듯 먼저 내려 버렸다.신수빈도 치마를 들어 마차에 내리려는 순간, 이도현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빈아, 할 말이 있다.”신수빈이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안에 들어가서 하면 안 됩니까?”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안에 들어가면 네 어머니를 마주치게 되겠지. 만약 그분까지 본왕에게 측비 이야기를 꺼낸다면, 본왕은 뭐라 답해야 하겠느냐?”그의 눈빛은 진지했다.“네 어머니는 네 아버지와는 다르다. 본왕은 너를 존중하고, 신 가 역시 존중한다. 너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오늘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 나와 다른 곳에서 잠시 이야기하겠느냐?”신수빈은 고개를 숙였다.내일이면 호국사로 떠난다. 그곳은 성 밖이라, 바쁜 그가 오가기에는 번거로운 거리였다.게다가 아이가 그의 손에 있는 이상, 자신은 언제나 불리한 입장이었다.결국 그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69화

    신수빈은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한 번 흘겨보았다.“제가 싫다고 해도 이미 타셨잖아요. 설마 제가 여기서 왕야를 밀어내기라도 하겠습니까?”이도현은 살짝 흘겨보는 그녀의 눈매에 괜히 가슴이 달아올랐다.요즘은 서로 얼굴을 보는 날도 드물었다. 그는 매일 밤늦게까지 바빠서 따로 그녀를 찾을 틈조차 없었다.그래서 순간 마차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그러자 옆에서 신병호의 꾸짖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빈아, 어찌 왕야께 그리 무례하게 말하느냐!”이도현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그는 곧 손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신수빈을 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본왕과 부인은 원래 이렇습니다. 신 후작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신병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딸과 섭정왕 사이의 관계는 알고 있었지만, 사석에서까지 이 정도로 그녀를 봐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예전에 이도현이 남하했을 때, 그는 부친을 따라 그의 군영을 찾은 적이 있었다.그때의 이도현은 아직 젊었지만, 이미 온몸에 왕후장상의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신 가가 그를 도운 바 있었음에도, 발아래 무릎 꿇은 신 가 사람들을 향한 그의 얼굴은 끝까지 담담하기만 했다.그런 사람이 지금은 이렇게 온화한 얼굴로 딸을 대하고 있다니.신병호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그는 문득 또 다른 딸을 떠올렸다.진하빈은 지금 궁 안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분명 신분은 얻었지만, 깊숙한 궁궐 안에 갇혀 지내는 처지라 결국 세월만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시간은 이미 꽤 흘렀고, 이제 신 가에서도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신병호는 집안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진씨를 장안의 한 골목에 따로 머물게 하고, 늙은 유모 하나를 붙여 돌보게 했다.비록 탐욕스러운 성격을 가진 여인이었지만 그래도 한때 정을 나누었고, 두 아이까지 낳아 주었으니, 노년을 쓸쓸히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며칠 전 찾아갔을 때, 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진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68화

    한 사람이 말을 꺼내자, 다른 윤 가 어른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 모습을 본 윤서원은 더는 모를 수가 없었기에, 붙잡고 있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소리쳤다.“당신들, 도대체 신 가에서 얼마를 받았기에 이런 양심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신씨가 화이를 하겠다면, 그럴 만한 이유를 내놓으라 하세요! 못 내놓으면 그건 곧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뜻입니다!”그는 대청 안을 둘러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저는 화이하지 않을 겁니다! 신씨는 제 부인입니다! 이 생이 다할 때까지, 제 부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화이하겠다고요? 꿈도 꾸지 마세요!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윤서원은 아예 막무가내로 나섰다.신수빈이 그 일을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동시에 이도현이 어디까지 끼어들 수 있는지도 지켜보려 했다.만약 이도현이 나선다면, 훗날 신수빈과 다시 혼인하더라도 결코 떳떳할 수 없게 된다.세상이 그 일을 어떻게 떠들어댈지, 윤서원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평소 온화한 사람이었던 신병문도, 지금 윤서원의 말을 듣자마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남자가 첩을 들이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하지만 자신의 여동생을 다른 이의 침상으로 밀어 넣으려 했던 그 짓만큼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일이었다.신수빈 역시 윤서원의 뻔뻔함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그는 가문 사람들과 등을 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화이만은 하지 않으려 했다.할 말을 모두 쏟아낸 윤서원은 대청 안을 훑어보며 냉소를 흘렸다.대주 왕조의 법이 아무리 엄격하다 해도, 그가 끝까지 화이를 거부하는 이상 관아에서도 억지로 화이를 성립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신수빈은 여전히 윤 가의 며느리로 남게 된다.그는 대청 위에서 이 모든 일을 구경하듯 지켜보던 부윤에게 예를 올렸다.“일은 이미 밝혀졌으니, 더는 대인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신씨와의 화이 문제는 저희 집안일이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는 마지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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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서원은 그 말을 듣고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빈아, 혼수를 기부하는 일은 우리 둘 사이의 오해였을 뿐이다. 이제 다 풀렸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어째서 어른들까지 부른 것이냐?”그는 일부러 다정한 기색을 담아 말했다.신수빈은 속에서 치미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신병문은 옆에 선 이도현을 힐끗 보았다.검고 깊은 그 눈 속에서 금방이라도 칼날 같은 기세가 튀어나올 듯했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언가 드러날까 염려된 그는 재빨리 한 발 앞으로 나서 윤서원과 누이 사이를 가로막았다.신수빈은 그에게서 풍겨오는 역한 기운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두 걸음 물러선 뒤에야 겨우 숨이 트여, 차갑게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어른들을 모신 건, 당연히 우리 둘의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죠.”윤서원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고 있었다.그는 ‘그 사람’에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신수빈을 윤 가에 붙잡아 두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더 말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더 있겠느냐? 내가 예전에는 어리석어서 첩을 들이고, 너에게 상처를 주었지. 하지만 이제는 다 깨달았고,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가려 한다. 너는 지난해 조산으로 우리 아이를 잃었으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빈아, 두려워할 것 없다. 앞으로 내가 반드시 아이를 다시 갖게 해, 그 상처를 메워주겠다.”신수빈은 이도현 발밑의 청석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것조차 보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그의 연기를 지켜보다가 비웃음을 흘렸다.가문의 체면과 자신의 명성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윤 가 안에서 벌어진 더러운 일들을 모조리 까발리고 싶었다.윤서원이 어떻게 그녀를 몇 번이나 다른 사람의 침상으로 밀어 넣으려 했는지, 그의 아버지라는 늙은 짐승이 어떻게 부귀영화를 위해 그녀를 넘보려 했는지.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세상은 남의 불행을 제멋대로 부풀리기 좋아하는 곳이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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