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른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하지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안내해 주세요. 직접 가서 봐야겠어요.”양재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감사합니다, 하 대표님.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집무실 안, 함우민은 피로로 가득한 미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잘생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권태로움과 지친 기색이 서려 있었다.그때, 비서 연유나가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요청하신 자료입니다.”“음.”나직하게 대답하며 서류를 받아 든 함우민은 바로 자료를 살피려 했다.“대표님.”연유나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잠시라도 쉬시는 게 어떨까요.”하지만 돌아온 함우민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필요 없으니 이만 나가봐요.”“대표님...”“나가라고 했습니다.”함우민의 음성이 한층 더 낮게 가라앉았다.연유나는 눈동자에 어린 안쓰러움과 애틋한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함우민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내뱉었다.“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별일 아니라면 방해하지 말고 나가세요.”“...”그러나 집무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뿐, 문 앞에 선 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불쾌한 기색으로 고개를 든 함우민은 눈앞의 상대를 확인한 순간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하지율 씨? 지율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무언가 짐작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양재혁이 지율 씨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하지율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함우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함우민 씨가 최근 쉬지도 않고 식사도 거른다던데요.”그 말에 함우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지율 씨도 바쁜 사람인데 재혁이 그놈이 쓸데없는 소리를...”하지율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손형원이 왜 갑자기 함우민 씨를 공격하는 거예
‘손화 그룹이 곧 손형원이라면...’하지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손화 그룹이 왜 갑자기 육진 그룹을 공격한 거죠?”하지율은 손형원이 단순히 함우민이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육진 그룹을 공격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손형원이 잔인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지언정 결코 무모하거나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그가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아무런 명분 없이 함우민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함우민보다 고지후나 정기석이 자신을 도운 적이 훨씬 많았으니 손형원이 고지후를 제쳐두고 함우민을 먼저 공격할 리는 만무했다.‘설마... 고지후 쪽에도 무슨 일이 생긴 건가?’불안한 예감이 스친 하지율은 곧장 내선 전화를 들어 올렸다.“서준 씨, 지금 당장 최근 한 달간의 주요 경제 뉴스들을 정리해서 제게 가져다줘요.”표서준은 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정리된 자료를 들고 나타났다.유능한 비서답게 그가 갈무리한 정보들은 핵심을 찌르고 있어 한눈에 파악하기 쉬웠다.하지율은 표서준이 연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그의 업무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표서준이 가져온 자료를 훑어 내려가던 하지율의 시선이 멈췄다. 육진 그룹의 경영 판단 착오에 관한 기사였다.‘손형원은 이 실책을 빌미 삼아 육진 그룹을 몰아붙이고 있던 거였어!’다행히 고성 그룹과 유심 그룹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고 주식 시장의 흐름도 평온했다.혼란의 중심에 선 곳은 육진 그룹뿐이었다.그때, 양재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하 대표님, 제발 저희 대표님 좀 말려 주세요! 최근 한 달 동안 매일 서너 시간밖에 못 주무시고 끼니도 거르세요... 이러다가 몸이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하 대표님만 아니었다면 저희 대표님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텐데...”“...”“!”순간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양재혁의 목소리가 급히 잦아들었다.하지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죠?”“그, 그게
연상진이 먼저 물었다.“무슨 일인데?”“형서 사건, 너도 알지? 우리가 정미를 구하러 간 날에 형서가 납치당해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어. 그리고 상대는 지금 형서를 협박해서 손화 그룹의 경영 기밀을 훔치려고 해.”연상진은 손형서의 일에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형서를 납치한 사람은 하지율 주변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손형원은 본인의 계획은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연상진은 귀찮다는 듯이 듣고 있다가 점점 손형원의 말을 들으며 눈동자가 밝아졌다.‘이렇게 쉽게 하지율을 처리할 수 있다니.’게다가 연경 그룹의 주주들이 하지율에게 실망하게 만들어야 연씨 가문에서 하지율의 초기 지분을 가져올 확률이 더 높았다.연상진이 얘기했다.“하지율이 박원 그룹 주식을 매수할 수 있었던 데는 고지후와 정기석의 도움이 있었을 거야. 그러니 지금 두 사람의 회사를 공격하는 게 좋아. 운이 좋으면 두 사람의 회사를 인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율은 그 둘의 도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더는 나대지 못할 거야.”연상진은 아까 연태훈과 연재영에게 그들의 회사를 공격하자고 얘기했지만 명확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지후가 하지율에게 자금을 지원해 줬다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연상진은 모든 게 다 연태훈과 연재영의 핑계라고 생각했다.그저 가족이라는 단어에 갇혀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연상진이 할 생각이었다.어차피 이런 악역은 익숙하니까....계약식은 순조롭게 끝났다.하지율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정말 박원 그룹 주식을 손에 넣었어.’돌아가는 길, 주용화가 물었다.“100조에서 72조 정도 썼으니 아직 20조 정도 남았어요. 어떻게 쓸 생각인가요?”“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요. 박원 그룹을 매수했으니 실적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이제는 천천히 실전 감각을 익히려고요.”주용화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일 있어? 다 몰래 하는 거지.”연상준이 얘기했다.“이런 일은 제대로 알아보는 게 좋아. 하지율의 돈이 고지후와 정기석이 빌려준 게 아니라면? 상대가 자금 부족 상태가 아닌데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면 손해는 우리가 떠안게 돼. 고지후와 정기석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두 사람이 우리를 발견한다면 절대 쉽게 놔주지 않을 거야. 게다가 하지율과의 관계도 악화할 수 있어.”연상진이 연상준을 보면서 물었다.“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이 깊었어? 고지후가 아니라면 누가 하지율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줬겠어?”연상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대답했다.“저번에 투자자 한 명 있었잖아. 거기서 투자를 받은 것일지도 모르지.”연상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고 얘기했다.“그 투자자는 나도 알아봤어. 이름은 김경환이라고 하던데 신분이 불분명해서 찾을 수도 없었어. 게다가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사람이 하지율한테 100조를 투자하겠다고 했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100조를 투자한다고 하면 너는 믿을 거야?”연상진은 김경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 사람은 사기꾼이야. 하지율도 믿지 않는 사기꾼을 네가 믿을 거야?”연상준이 대답했다.“그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해도 다른 투자자가...”연상진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연상준의 말을 끊었다.“연상준, 너 하지율한테 몇 번 당했다고 하지율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다른 투자자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겠어? 게다가 3일 안에 그만한 돈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만큼 적어. 하지율이 그런 사람을 알고 지낸다고 생각해?”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지율과 박정길은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곳곳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연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하지율은 연씨 가문의 도움 없이 돈을 모았고 박원 그룹 주식의 20%를 매수했다.회사를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실적을 내다니.이 사건으로
그 말을 들은 박정길의 눈이 약간 어둡게 빛났다.“범인? 그럼 태규의 실종이 하지율 대표 때문이라는 뜻인가?”연상진이 대답했다.“하지율에게 문제가 생기자마자 박태규 씨가 실종됐으니 의심할 만하죠.”연상진에게는 하지율을 범인으로 몰 마땅한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하지율과 박씨 가문 사이를 이간질해서 계약을 파기하게 하면 된다.연상진은 하지율에게 똑똑히 알려주고 싶었다.연씨 가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이다.‘초기 지분이 있으면 뭐 어때? 초기 지분만 손에 쥐고 평생 아무것도 못 하고 살다가 죽겠지.’박정길이 담담하게 얘기했다.“내가 조사해 본 결과 그날 하 대표는 혼수상태라 응급실에 실려 갔던데. 아무리 태규한테 몹쓸 짓을 하고 싶다고 해도 그럴만한 시간과 힘이 없었을 거야. 나도 한때는 하 대표를 의심하긴 했지만, 하 대표의 친오빠라는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니 하 대표가 한 짓이 아니라는 게 더 확신이 드네. 만약 하 대표가 정말 범인이라면 연씨 가문에도 좋을 게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 증거도 없이 이렇게 얘기하는 건... 나와 하 대표 사이를 이간질해서 오늘의 계약을 망치려는 건가?”박정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연상진을 쳐다보았다.“상진아, 넌 아직 멀었어.”역시 살아온 세월과 경험은 무시할 수 없었다.정계에서 오래 굴러먹은 박정길이 연상진의 술수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연상진은 그대로 표정이 굳어버렸다.이때 연태훈이 에둘러 얘기했다.“박 대표, 애들한테 너무 겁주지 마. 상진이도 농담이었을 뿐인데.”박정길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애들한테 그러겠어. 상진이를 잘 아는 사람은 몰라도, 상진이를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일부러 자기 친동생을 욕하는 건 줄 알겠어. 연 대표, 자식 농사 잘해야겠네. 괜히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상진이와 연씨 가문에 좋지 않잖아.”연태훈은 겨우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눈을 흘겼다.어느덧 계약 시간이 다가왔다.하지율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단정한 오피스룩으로 차려
하지율도 먼 미래를 고려해 박원 그룹 주식을 매수하겠다고 한 것이다.박원 그룹을 먼저 손에 넣어야 앞으로의 길이 순탄해질 것이다.연경 그룹에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제지를 당하고 얼마나 많은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초기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도 실권을 빼앗겨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그래서 고지후와 주용화는 다 하지율이 박원 그룹 주식을 매수 성공하길 바랐다.박원 그룹 주식 매수는 정확한 선택이다. 그래서 초기 지분을 팔아서라도 주식을 매수할 가치가 있었다.계약식 현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M국의 대기업 임원들도 오늘의 계약식에 초대받았다.다들 박원 그룹의 주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계약식 시작 10분 전.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박원 그룹에서 주식을 매각하다니. 전에는 연경 그룹에서 주식 10%를 매수하려고 했는데 박원 그룹에서 거절했잖아요.”“하지율이라고 알아요? 연씨 가문에 새로 들어온 딸이요. 그 사람한테 연경 그룹의 초기 지분이 있어서 첨단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 경영을 맡았대요.”“현재 세계 탑5 바이오테크 회사 중에서 연경 그룹이 지분을 쥐고 있는 곳이 세 곳이야. 특허 기술은 말도 안 되게 많지. 그거로 들어오는 돈만 해도 쏠쏠할 거야. 물론 연구개발에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이 판이 바뀌지 않을 거야.”“박원 그룹이 왜 주식을 매각하나 했더니만... 그것 때문이었구나?”“박원 그룹 요새 경기가 좋지 않잖아.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몰락하게 될 거야. 매각하게 된 것도 하나의 전환점이지.”“그러고 보니 연씨 가문은 무슨 일이래? 제일 중요한 초기 지분의 10%가 하지율한테 있다니.”“연태훈이 바람을 피워서 그렇게 된 거라던데... 쯧쯧. 연씨 가문 사람들도 왔네. 박원 그룹은 연경 그룹이 매수하겠다고 할 때는 거절하더니 하지율이 매수하겠다고 할 때는 바로 허락했나 보네? 연경 그룹의 체면이 말도 아니게 됐어.”연씨 가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