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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uthor: 밤이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3 19:59:02

“뭐야?”

목소리에 당혹감이 잔뜩 묻어났다.

“…….”

“…….”

회사 정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선우야.”

선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김민재.

“너 여기까지 왜 왔어?”

“선우 네가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안 보고…….”

“차단했어.”

“그래도 얘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무슨 얘기?”

“선우야, 나 진짜 이번에는—.”

“됐어.”

선우가 단호하게 잘랐다.

“끝났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바닥까지 드러낸 관계에 미련 따위 남아있을 리 없었다.

남이야 그러던 말던 김민재는 끈질겼다.

“내가 설명할게.”

“싫어.”

“왜!”

민재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

선우의 얼굴이 굳었다.

회사 앞이었다.

“나 진짜 너 사랑해.”

“그 말 지겨워.”

“선우야.”

민재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일단 가서 얘기하자.”

“손대지 말라구.”

선우가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김민재는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선우와 민재 사이로 그림자가 하나 끼어들었다.

“그만하지 좀.”

낮고 건조한 목소리.

“권윤오?”

언제 따라왔는지,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너 안 갔어?“

윤오가 대답 대신 선우의 상태를 짧게 살폈다.

얼굴.

손.

그리고 다시 민재.

눈빛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회사까지 찾아와서 뭐 하는 짓이야.”

민재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왜 끼어들어?”

“김선우가 싫다잖아.”

“그러는 너는 좋대?”

그 질문에 선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민재가 윤오와 선우를 번갈아 보더니 비웃듯 말했다.

“나랑 헤어지고 바로 붙어먹는 게 또 권윤오야?”

“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는 무슨.

“김민재, 너 말 똑바로 해.”

“맨날 권윤오, 권윤오 하더니 결국 이거였네.”

“김민재!”

선우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올랐다.

“봐. 아니라고는 죽어도 못 하잖아.”

“김민재!”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십이 년 동안 숨기고 또 숨겨온 마음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

수치심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그만하라고 했지.”

윤오가 선우를 등 뒤로 완전히 가렸다.

“이제부터는 좋게 말할 생각 없어.”

***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철컥.

좁은 공간 안에 갇히자 기계가 돌아가는 낮은 진동음만 웅웅 울렸다.

“…….”

선우가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김민재의 얼굴이 떠올랐다.

쏟아내던 구질구질한 변명.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 한가운데.

‘봐. 아니라고 못 하잖아.’

‘그만하라고 했지.’

최악이었다.

“하……”

선우가 반사적으로 가슴을 눌렀다.

정상이라며.

그런데 왜 이렇게 난리인 건데.

“중증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하다가 정정했다.

“아니. 중독인가.”

권윤오 중독.

그딴 병명이 있다면 이미 말기였을 것이다.

띵.

생각이 더 이상해지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김 과장?”

첫마디부터 날카로웠다.

“아, 차장님.”

선우의 표정이 굳었다.

오 차장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꼭 언제 나타나나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리는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병가 낸다더니 출근은 하셨네?”

“오전에 병원을 좀 다녀왔습니다.”

“술병은 아니고?”

알면서 묻는 게 분명했다.

“그럴리가요.”

아주 건강합니다.

심장만 좀 개판이고요.

오 차장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신규 위스키 론칭 코앞인 거 알지?”

“네.”

“정신줄 놓을 때 아니에요. 개인적인 일은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회사 일에는 지장 없게 해요.”

“알겠습니다.”

선우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괜히 한마디 붙였다가는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았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익숙한 소음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꼭 전쟁터 같았다.

신제품 론칭을 앞둔 사무실은 늘 그랬다.

괜스레 소음이 반가웠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김 과장.”

“네?”

봉 부장이 기다렸다는 듯 손짓했다.

“잠깐 이리 와봐.”

봉 부장이 턱으로 회의실을 가리켰다.

“오늘 신임 본부장님 오셨으니까 인사 한번 해.”

선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본부장님이요?”

“왜 그렇게 놀라? 본사에서 파견 온다고 며칠 전부터 얘기했잖아.”

“아…….”

맞다.

신임 본부장.

그제야 기억났다.

본사에서 직접 내려오는 인물이라고 했다.

어제 봉 부장이 말을 전할 때에 훨씬 시끄러운 일이 있었던 탓에.

퇴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정이]

그날 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 한 장만 보냈다.

그게 이상했다.

압구정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수정은 선우에게 단순한 지인이 아니었다.

사원 딱지를 떼기 전, 매주 금요일이면 선우는 수정의 바를 찾았다.

수정이 내어주는 위스키를 마시며 시장의 민심을 읽었고, 술꾼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가르쳐준 스승이자 아군이었다.

수정이 설명 없이 사진부터 보냈다는 건 사고라는 것이 아닌가?

선우는 서둘러 메세지를 열었더랬다.

“…….”

그리고 손끝이 굳었다.

사진 속 장소는 너무 익숙했다.

낮게 깔린 조명.

바 테이블의 매끄러운 질감.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눈을 감고도 동선을 그릴 수 있는 장소.

그런데 사진 한가운데.

김민재였다.

그리고 그의 품 안에는.

“……허.”

웃음인지 숨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

최근 들어 연락이 뜸했던 이유도.

자꾸 약속을 미뤘던 이유도.

자신이 예민해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순간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네가.

초저녁에 다른 곳도 아닌 수정의 바에서 바람을 피우는 남자라니.

네가 이렇게 꼴통새끼였니, 민재야.

“김 과장?”

“…….”

“김 과장!”

“아……네.”

봉 부장의 목소리가 다시 선우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예, 갑니다.”

***

똑, 똑.

작게 문을 두드린 선우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들어오세요.”

대답이 떨어졌다.

선우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쿵.

“…….”

선우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김선우 과장님?”

쏟아지는 오후의 역광을 등진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얼굴의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는 순간.

“…….”

“…….”

당연하지만 몹시도 낯선 얼굴이었다.

넓게 떨어진 어깨와 군더더기 없이 곧게 뻗은 몸선. 흐트러짐 하나 없는 검은 머리칼 아래로 선명하게 자리 잡은 눈썹. 날렵하게 뻗은 콧날과, 쉽게 웃음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단정하게 다물린 입술.

빛을 받은 눈동자는 묘하게 푸른 빛이 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는 아직 알지 못했다.

십이 년 동안 한 사람에게 묶여 있던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 남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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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정맥 메이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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