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낯익은 천장이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 한참을 눈만 깜빡였다. 천장이 세 번쯤 흔들리고 나서야 시야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억도. 아니. 기억 비슷한 것이 돌아왔다. “…….” 낮게 가라앉은 눈빛.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던 거리. 제 뺨을 감싸던 뜨겁고 단단한 손. 그리고— ‘……선우야.’ 쿵.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너 부정맥인 것 같아.’ 선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이 어렴풋한 기억이 제발 꿈이길 바랬건만. 선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머릿속에 들어 있던 납덩어리가 한 박자 늦게 따라 올라왔다. 우욱. 누가 머리채를 양손으로 휘어잡아 흔드는 것 같았다. 숙취였다. 아니. 숙취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어제의 자신이 오늘의 자신에게 저지른 테러였다! ”아, 제발…….“ 선우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꿈이야.” 그래. “꿈이겠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제발요!” 선우가 이불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자신의 해마는 친절하지 않았다. 권윤오의 품에 기대었던 감각. 눈앞까지 내려왔던 짜증나는(잘생긴) 얼굴. ‘너 부정맥인 것 같아.’ Replay. ‘너 부정맥인 것 같아.’ “아아아악!” 이불을 휙 걷어차 버렸다. 침대 위에서 미친 몸부림이 시작됐다. “미친 김선우!” 퍽. “왜 그랬어!” 퍽. “왜 하필 권윤오야!” 베개가 무고하게 구겨졌다. “왜 하필 권윤오냐구우…….”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말간 얼굴이 무고하게 이리저리 구겨졌다. 괴로웠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키스할 뻔했다. 그것도 누구와? 그런데 더 끔찍한 건 그 순간 불쑥 들었던 불결한 생각이…… “……미쳤나 봐.” 선우가 손가락 사이로 천장을 노려봤다. 이건 사고였다. 술이 저질렀고. 감정이 공범이었으며. 자신은 피해자였다. ……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침대 옆에 놓인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 [윤오] 부재중 전화 2통 그 아래로. [민재] 부재중 전화 6통 선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 현실이 돌아왔다. 어젯밤의 키스 미수 사건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인간이 있었다. ㄴ [선우야 다 오해야 진짜.] ㄴ [어제는 상황이 좀 그랬어.] ㄴ [내가 설명할게.] ㄴ[진짜 설명할 수 있어.] 아주 줄줄이 소세지구만. 선우의 손이 무미건조하게 스크롤을 넘겼다. ㄴ [전화 좀 받아봐.] ㄴ [선우야 제발…….] ㄴ [나 진짜 너 많이 사랑해.] “…….” 별안간 두 눈이 마지막 문장에서 멈췄다. 사랑해. “…….” 픽. 웃음이 났다. “사랑은 무슨.” 처음에는 그럴듯했다. 이번에는 정말 다를 수도 있다는 가련한 자기최면. 늘 똑같았다. 언제나 그랬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얼굴은 늘. “…….” 핸드폰을 대충 침대에 던진 선우가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문제지.” 그러니까 선우는 가끔 다른 남자를 만났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권윤오보다 더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는 정말 이 지독한 짝사랑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애석하게도 선우의 연애는 번번이 도돌이표를 찍었다. 마치 원을 그리듯. 도망쳐도 결국 같은 자리. “지긋지긋하다.” 그 순간.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화면에 뜬 이름은 그놈의 권윤오. “…….” 받지 말까. 선우의 머릿속에서 온갖 재난 시나리오가 순식간에 펼쳐졌다. 그러나 권윤오 거부권같은 게 존재할 리가 만무했다. “여보세요.” ㅡ “일어났어?” 권윤오의 목소리는 어제와 똑같았다. 낮았고. 차분했고. ‘너 부정맥인 것같아.’ 선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 ㅡ “머리는?” “죽겠어.” ㅡ “어쩐지 혼자 달리더라.” 선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 선우가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ㅡ “일단 와.” “……어디를?” ㅡ “어디긴.” 선우의 눈썹이 폭삭 찌푸려졌다. 아니지? ㅡ “병원.” 내 심장소리를 진단이라도 하겠다는 거냐고. “나 출근해야 돼.” ㅡ “반차 써.” “야!” 뚝. 통화가 끊겼다. “…….” 한동안 휴대폰을 바라봤다. “미친놈이.”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쿵.쿵.쿵.쿵. 참 정직하게도 뛰어댄다. “……너 때문에 그런 거잖아.” 물론 들을 사람은 없었다. 선우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가 뭐. 지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야 돼?“ 결국 옷장을 열고 있었다. 그놈의 병원에 가기 위해. *** “아, 선우 씨. 원장실로 바로 들어가시면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병원 복도는 지나치게 밝았다.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조명 아래에서, 선우의 발걸음은 몇 번이고 멈췄다.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돌아가. 이 냄새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선우는 결국 여기까지 왔다. 권윤오면 만구땡이었다. 권윤오라는 이름 세 글자면 늘 그랬다. 머리는 가지 말라고 하는데, 발은 항상 권윤오가 있는 곳을 향했다. 피하려고 할수록 더 깊이 끌려 들어갔다. 오래전부터 제 안에 박혀 있던 거대한 관성이,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윤오에게 밀어 넣는 것처럼. “…….” 선우가 복도 바닥에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꼭 포로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걸음을 질질 끌었다. [권윤오 대표원장] 애석한 두 발이 결국 결국 진료실 앞에 도착했다. 권윤오.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왼쪽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숨이 가까웠던 거리. 시선이 부딪히던 순간. 그리고— ”…….“ 으악. 선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잊어! 제발 잊으라고!” 더 생각하기 전에 문을 밀어 젖혔다.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윤오의 검은색 SUV가 선우의 집 앞에 멈춰 섰다. “김선우.” 운전석 문이 열리고 윤오가 내렸다. 단정한 셔츠에 소매를 두어 번 걷어 올린 차림이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선우가 대답하지 않자 윤오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괜찮아.” 웃는 얼굴이 영 어색했다.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눈가가 무거웠고, 평소보다 창백한 얼굴에는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몇 번이나 화면을 확인했는지 몰랐다. 혹시 새벽에라도 연락이 왔을까 싶어 눈을 뜰 때마다 손부터 뻗었다. 알림은 없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도 금세 깨어났다. 에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상하이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진 건지. 물어볼 곳도,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괜찮기는. 눈 밑이 다 꺼졌구만.” 윤오가 선우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손끝이 관자놀이를 가볍게 스쳤다. “가는 길에 좀 자. 도착하면 깨워 줄게.” “아빠 상태는 어때?” “오전 검사 결과는 다 좋대. 어제보다 안정적이고, 담당 교수님도 회복 경과를 괜찮게 보고 계셔. 너무 걱정하지 마.” 그제야 선우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다행이다…….” “그래. 이제 한시름 놔도 돼.”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에 걸렸다. 윤오가 운전하는 서울의 도로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익숙했다. 출근길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횡단보도 앞에는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는 밤새 술을 마신 듯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도로변 카페에서는 직원이 야외 입간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자신만 어딘가 잘못 도착한 사람 같았다. “…….” 상하이에 도착하면 연락하겠다고 했으면서. 물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바쁠 수 있었다. 지사에 문제가 생겨 직접 날아
고요하던 정원에 진동음이 길게 번졌다. 선우를 바라보던 시선이 잠시 휴대폰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에단이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한 번 더 꼭 쥐었다가 놓았다.“Ethan Lowell speaking.”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영어가 쏟아졌다.“Slow down. Start from the beginning.”(천천히 말하세요. 처음부터.)조금 전까지 선우를 바라보던 눈빛에서 부드러운 기색이 빠르게 걷혔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들었다. 다만 손에 들린 휴대폰을 쥔 손가락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에단의 얼굴만으로도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몇 차례 짧게 질문했고, 마지막에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Don’t send anything else. Preserve every original file. I’ll review it myself.”(추가로 아무것도 보내지 마세요. 원본 파일은 전부 보존하고요.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통화가 끝났다. 에단이 휴대폰을 천천히 내렸다.“무슨 일이에요?”에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있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방금 들은 내용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일정이 바뀌었습니다.”“네?”“오늘 오전 비행기로 서울에 돌아가세요. 항공편은 변경해 뒀습니다.”***공항 전용기 터미널 앞에 차가 멈췄다.“큰일은 아니죠?”그의 얼굴을 살폈다. 상하이 지사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 내내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 전화를 끊은 뒤 평소보다 빠르게 이어지던 지시들. 에단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정을 정리했지만, 그럴수록 선우는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전화하셨을 때 표정이…….”“선우 씨.”에단이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 걱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다독이려는 듯, 그녀의 뺨
“여기 있었군요.”에단이었다.선우는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가 다가오는 동안 화면을 끄지도, 억지로 웃지도 않았다.에단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든 휴대폰에 잠깐 머물렀다.“연락이 왔습니까?”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윤오한테서요.”에단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우는 그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무슨 일 있습니까?”“그냥 안부요.”작게 끄덕인 에단은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선우는 망설이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에단의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번졌다.“그럼 나와 조금 더 걸을까요?”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의 손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깊게 들어왔다.“오늘 밤은 제가 독점해도 되겠습니까?”선우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본부장님.”“네.”“질문이 많으세요.”에단이 낮게 웃었다.테라스 끝에는 작은 정원이 이어져 있었다.연회장의 음악은 유리문 너머로 물러나 있었다. 현악기의 선율이 간간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왔고, 정원에는 낮에 내린 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짙은 녹음을 머금은 잎사귀마다 물방울이 맺혀 달빛을 받아냈다. 이름 모를 흰 꽃들이 돌담 아래 소담하게 피어 있었고, 젖은 풀과 꽃잎에서 우러난 싱그러운 향이 밤공기 속에 번졌다.정원 너머로는 코모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마을의 불빛이 수면 위에 길게 번졌다. 검푸른 물결이 바람에 밀려왔다가 조용히 흩어질 때마다 불빛도 함께 잘게
그때였다. 셔츠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선우가 걸음을 늦추며 화면을 확인했다. [윤오] ㄴ선우야, 아버님 수술 방금 잘 끝났어. 경과도 아주 좋대. 이제 걱정 마. 한순간, 거리의 소음이 멀어졌다. “…….” 선우는 화면을 다시 읽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경과가 좋다고.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는데도 안도감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가슴 한복판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이, 그제야 몸에 와닿았다. “……하.”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점점 눈앞이 흐려졌다. 참으려고 할수록 눈물이 차올랐다. 이곳에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아버지가 괜찮아졌다는 말.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선우 씨?” 몇 걸음 앞서가던 에단이 돌아봤다. 선우가 황급히 눈가를 훔쳤다. “죄송해요. 잠깐만요.” “무슨 일입니까?” “아니, 그게…….” 말을 잇지 못했다. 에단의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진열대의 조도와 설치 일정을 따지던 눈빛에서 날카로운 업무의 기색이 걷혔다. 그가 선우에게 다가와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무슨 일이에요?” 선우는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루카 씨,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번역가가 말을 옮기자 루카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고객들이 익숙한 싱글몰트를 찾는 이유가 뭘까요? 정말 새로운 제품을 원하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를 확신할 수 없어서일까요?” 루카의 손이 멈췄다. 선우는 서두르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트비트는 익숙한 브랜드의 이름을 바꿔 붙인 제품이 아닙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원액의 역사에 무라노 장인의 기술을 더했어요. 이 병의 곡선은 단순히 눈에 띄기 위해 만든 형태가 아닙니다. 유리를 다루는 장인이 어느 각도에서 빛을 받아야 가장 깊은 색이 살아나는지 계산한 결과죠.” 선우는 시안을 펼쳐 병의 측면을 가리켰다. “이탈리아 고객에게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를 하나 더 소개하는 거라면, 루카 씨 말씀이 맞습니다.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은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를 가진 제품입니다. 원액의 역사와 유리 공예의 미학이 하나의 물건 안에서 만났다는 것. 고객은 위스키를 구매하는 동시에 그 이야기를 소유하게 됩니다.” 번역가의 손짓이 커졌다. 선우의 말이 이탈리아어로 옮겨지는 동안 루카의 시선은 다시 병의 형태를 따라 움직였다. “물론 모든 고객이 새로운 이야기에 돈을 지불하지는 않겠죠.” 선우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중 시장을 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취향에 확신이 있고, 남들과 같은 것을 고르는 데 만족하지 않는 고객부터 공략하는 겁니다. 하트비트는 익숙함을 대체하는 제품이 아니라, 익숙한 선택만으로는 부족해진 사람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제품이니까요.” 회의실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루카는 선우를 바라보다가 시안을 다시 집어 들었다. “Una nuova storia, dunque.” (그러니까 새로운 이야기라는 건가.) “Esattamente.” (정확히 그렇습니다.) 선우가 대답했다. 루카는 병의 곡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는 디자인의 결점을
무라노의 아침은 수로를 가르는 바포레토의 엔진음으로 시작됐다.물살을 밀어내는 둔중한 소리가 오래된 건물 사이를 돌아 들어왔다. 창틀에 걸린 햇빛은 밤새 식지 못한 방 안의 공기를 무심하게 밀어냈다. 여섯 월의 햇살은 유난히 투명했다. 어젯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말과 입맞춤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침대 위로 떨어진 빛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선우는 홑이불을 걷어 내고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눈을 감으면 어젯밤이 떠올랐다.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에단의 목소리. 입술이 닿기 직전, 마지막까지 대답을 기다리던 눈빛. 그리고 그가 자신을 안아 주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그의 품을 찾아 들어갔던 자신의 몸.무엇보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서로를 끌어 안았던 순간이 자꾸만 생각났다.에단.입안에서 소리 없이 이름을 굴려 본 선우는 이불을 얼굴 끝까지 끌어 올렸다.미쳤나 봐.어제까지는 본부장님이었는데.물론 지금도 회사에서는 본부장님이었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어젯밤 이후로 그 호칭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이었다.그렇다고 아침부터 달라진 얼굴로 마주할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할수록 사소한 것까지 의식하게 될 게 뻔했다.선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평소보다 꼼꼼하게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거울 속 얼굴은 다행히 멀쩡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없었다.그렇게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일어났습니까?”거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선우의 발걸음이 멎었다.에단은 테라스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완벽하게 갖춰 입은 수트에 단정한 셔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넥타이. 한 손에는 에스프레소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