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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7화. 남편의 서명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6 12:46:05

페이지온은 1년 8개월 전에 만들어진 회사였다.

최유리가 서윤의 보조 작가로 들어오기 두 달 전이었다. 법인 등기상 목적에는 콘텐츠 기획, 번역, 마케팅, 저작권 중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등록 당시 주소는 월 단위로 빌리는 공유 사무실이었다.

설립 석 달째부터 해윤콘텐츠의 번역과 홍보 물량 대부분을 맡았다.

현우가 세금계산서 세 장을 나란히 놓았다. 발행한 달과 금액은 달랐지만 품목 설명은 한 글자까지 같았다. ‘해외 시장 확장을 위한 현지화 콘텐츠 기획 및 검수.’ 어느 국가의 어떤 작품인지 적힌 곳은 없었다.

“거래처를 이렇게 빨리 바꾼 이유가 보고서에 있나요?”

“제가 받은 보고서에는 거래처 이름 자체가 없었어요.”

도진은 외주비라는 항목 아래 숫자만 적어 왔다. 서윤이 작업에 필요한 비용이냐고 물으면 앞으로 해외 시장이 커질 거라고 했다.

“실제 작업물을 받은 적은요?”

현우가 물었다.

“번역 샘플이나 광고 보고서 같은 거요.”

“저한테 직접 온 건 없어요. 남편이 알아서 했으니까.”

말하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문장을 같은 방식으로 끝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진이 알아서 했다.

세금도, 계약도, 회사도. 서윤은 작품을 쓰는 것으로 자기 몫을 다한다고 믿었다.

현우는 정산표 옆에 지급 증빙을 나란히 띄웠다. 페이지온은 매달 편집 용역이나 홍보 대행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같은 달에 번역료와 마케팅비가 겹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공유 폴더 안에는 결과물도, 외부 업체에 다시 맡긴 내역도 없었다.

“용역을 실제로 했는지는 더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 전부 횡령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실제로 한 일이 있다면요?”

“그 일의 가치와 지급액이 맞는지 봐야죠. 특수관계도 숨겼고요.”

현우는 금액 옆에 실제 산출물이 확인됐는지 표시했다. 열아홉 건 가운데 첨부파일이 있는 것은 두 건뿐이었다. 그마저도 서윤의 작품 소개를 자동 번역한 네 쪽짜리 문서와, 공개된 표지 이미지를 붙인 광고 시안이었다.

“이게 3천만 원짜리 결과물이라고 보기에는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서윤은 소개문의 오탈자를 알아봤다. 유리가 보조 작가로 온 첫 달, 서윤에게 고쳐 달라고 내밀었던 문서였다. 그때는 연습 삼아 번역 업체의 테스트를 도와주는 줄 알았다.

미란은 서윤이 따로 적어 온 1704호 주소를 확인했다.

“등기부에는 집주인만 나옵니다. 임차인이 누구인지는 이것만으로 확인할 수 없어요.”

“제가 봤어요. 최유리 씨가 거기 살아요.”

“목격한 내용은 날짜와 시간, 기억나는 대화를 바로 적어 두세요. 다만 다시 찾아가거나 집 안을 촬영하려고 하지는 마시고요.”

서윤은 그날 밤을 적었다. 11시 10분 도진이 집을 나갔다. 11시 22분 1704호에 들어갔다.

최유리가 문을 열었다. 다섯 살가량의 아이가 도진을 아빠라고 불렀다.

아이의 목소리를 글자로 옮기자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현우가 다른 파일을 열다 말고 화면을 확대했다.

“이거, 주소가 같은데요.”

제목은 ‘페이지온 사업장 이전 지원’이었다. 도진이 직접 올린 지급 결의서 아래 임대차계약서 사본이 붙어 있었다.

소재지, 103동 1704호.

임차인, 최유리.

보증금은 2억 8천만 원이었다. 계약일은 석 달 전. 페이지온이 해윤콘텐츠에서 ‘해외 번역 선급금’ 2억 8천만 원을 받은 날과 같았다.

계약서 뒤에는 도진의 검토 메모도 붙어 있었다. ‘집필 인력 상주 공간으로 활용. 차기 프로젝트 종료 시 선급금과 상계.’

집필 인력은 최유리 한 명이었다.

첨부된 ‘숙소 운영비 정산표’에는 관리비 고지서와 함께 소아청소년과 영수증 한 장이 잘못 끼어 있었다. 환자 이름은 최민우, 만 다섯 살. 서윤은 그제야 아이의 이름을 알았다.

그곳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유리와 민우였다.

“회사 사무실이라고 처리한 거네요.”

서윤이 말했다.

“아파트여도 사업장 등록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돈의 목적과 실제 사용입니다.”

“저 집에는 최유리 씨랑 아이가 살아요.”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서윤은 민우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아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사는지는 아이가 정한 일이 아니었다.

미란이 계약서 사본을 증거 목록에 추가했다.

“원본 파일은 그대로 두고, 오늘 내려받은 복제본과 접속 경로를 함께 보존하겠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도진이 주방에서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병원.”

“머리 때문에?”

“응. 별거 아니래.”

도진은 안도한 얼굴로 국을 데웠다.

“나한테 말하지. 같이 갔을 텐데.”

“일 있다며.”

“그래도 네 일이 먼저지.”

도진은 서윤이 좋아하는 들깨를 국에 조금 더 넣었다. 밥이 굳었다며 새로 데워 주고, 병원에서 받은 약 봉투를 보자 복용법까지 확인했다. 약국에서 산 진통제를 옮겨 넣은 봉투였지만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엔 꼭 말해. 혼자 다니지 말고.”

“응.”

서윤은 식탁에 앉아 그가 놓아 준 수저를 보았다. 평소처럼 젓가락 끝이 오른쪽으로 가지런했다.

휴대전화에는 현우가 보낸 지급 결의서의 마지막 장이 떠 있었다.

2억 8천만 원의 집행 승인자란에 박도진의 서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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