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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감정은 대개 끝나기 전에 다 써버리거든요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0 15:03:59

아침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시작됐다.

지연은 눈을 뜨고도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잠을 설친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피곤한 것도 아니었는데

움직여야 할 이유가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전에는 아침마다 오늘을 어떻게 버틸지를 먼저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질문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컵에 따르며 지연은 어제의 일을 머릿속에서 다시 꺼내 보았다.

로비, 보안 요원의 목소리,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자기 이름이 공간에 퍼지던 순간.

그 모든 장면이 이미 조금 먼 일처럼 느껴졌다.

감정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관리팀에서 지연을 불렀다.

회의실에는 법무팀 직원이 함께 있었고,

탁자 위에는 이미 정리된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지연 씨,”

담당자가 말했다.

“어제 상황은 공식적으로 기록됐습니다.”

“접근금지 조치와 업무 방해 관련해서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연은 서류를 하나씩 넘겨보았다.

날짜, 시간, 행동 요약.

어디에도 감정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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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248. 역류

    비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 잦아들었지만, 공기 속에 남은 습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도시는 젖은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고, 그 위에 얹힌 긴장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미용실 문은 닫혀 있었다.전등은 켜져 있었지만, 손님은 받지 않았다.유리창에 붙어 있는 ‘영업 종료’ 안내문은 평소보다 일찍 걸려 있었다.이수는 안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거울을 마주 보고 있었지만, 시선은 그 너머에 머물러 있었다.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고,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하빈은 맞은편에 서 있었다.조금 전까지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정적이 먼저 흐르고 있었다.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디까지 나왔어.”하빈은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증언… 기사화 준비 중이래.”그는 이어서 말했다.“복도에서 들은 내용, 그대로는 아니고… 정리해서 나갈 거야.”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방향은.”하빈은 잠시 망설였다.“두 갈래.”이수의 눈이 움직였다.“하나는…”그가 말했다.“…네 선택에 외부 압박이 있었을 가능성.”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남자의 개입.”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이야기가 바뀌고 있었다.지금까지는 ‘이수가 무엇을 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이제는 ‘그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로 이동하고 있었다.하빈이 조용히 말했다.“이건… 네가 방어하는 구조가 아니야.”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알아.”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이제는…”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갔다.“…밀어야 하는 쪽이지.”그 말이 끝나자 공기의 방향이 바뀌었다.하빈은 그 변화를 느꼈다.“이수.”그가 말했다.“확실해?”이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 짧은 순간 안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병실.복도.민준의 목소리.그리고 그날, 자신의 손.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응.”짧은

  • 불륜해드립니다.   247. "시간 끌지 마"라던 그날의 목소리

    여자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문 앞에 서서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고, 결국은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머리를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부의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계속 이수에게 머물러 있었다.“그때… 병원 복도에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요.”여자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저도 보호자였고, 다른 병실에서 나왔다가 잠깐 서 있었는데…”그녀는 손에 쥔 휴대폰을 더 꽉 쥐었다.“그 남자가… 문 앞에서 멈춰 있었어요.”하빈이 낮게 물었다.“어떤 남자였죠.”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기억을 끌어올리는 표정이었다.“정장 입고 있었고… 말투가 좀…”그녀는 단어를 고르듯 천천히 말했다.“누군가에게…명령하는 느낌이었어요.”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설명도 아니었다. 단순한 인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날의 공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여자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문 안을 보면서 계속 얘기했어요.”“뭐라고 하던가요?”하빈이 물었다.여자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정확히는 기억 안 나요. 근데…”그녀는 이수를 바라봤다.“…선택을 강요하는 말 같았어요.”그 말이 떨어지자, 공간의 온도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갔다.이수의 시선이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깊이가 달라졌다.그날의 기억이 더 또렷하게 이어졌다.문이 반쯤 열린 병실.기계 소리.아버지의 호흡.그리고 문 밖에서 들려오던 낮은 목소리.“시간 끌지 마.”그녀의 손이 그날처럼 다시 차가워지는 느낌이 스쳤다.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받아들였다.그 기억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혹시…”하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남자 얼굴… 기억나세요.”여자는 잠시 망설였다.“확실하진 않은데…”그녀는 천천히 말했다.“사진에 있는 사람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그 대답은 결정적이지 않았지만, 충분했다.이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왜

  • 불륜해드립니다.   246. 겹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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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245. 숨을 고르는 정적 뒤로 쏟아질 다음 파장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처음에는 창문에 작은 점처럼 맺히던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골목 전체를 흐릿하게 덮기 시작했다. 미용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천천히 번져 보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조금씩 빠르게 옮기고 있었다.이수는 창가 근처에서 빗줄기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하루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미용실에는 평소처럼 손님들이 들어왔고, 평소처럼 머리를 자르고 계산을 하고 돌아갔다. 어제 올라온 인터뷰 기사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묻고, 누군가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그 변화는 미묘했지만 분명했다.사람들은 이제 사진만 보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하빈이 뒤쪽에서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비 꽤 오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잠시 후 하빈이 말을 이었다.“오늘은 조용하다.”그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인터뷰 기사가 올라온 뒤 예상했던 것처럼 큰 파장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새로운 기사 몇 개가 더 올라오기는 했지만, 내용은 대부분 인터뷰를 인용하거나 상황을 정리하는 수준이었다.이수는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잠깐 숨 고르는 거겠지.”하빈이 물었다.“누가.”“민준.”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저 사람은 항상 이렇게 해.”이수는 말을 이어 갔다.“한 번 던지고, 잠깐 멈춰.”“그리고?”하빈이 물었다.“사람들이 생각하게 놔두지.”그녀의 시선이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을 따라 내려갔다.“그 다음에… 다시 던져.”잠시 정적이 흘렀다.하빈이 조용히 말했다.“다음이 복도 사진일까.”이수는 잠깐 생각했다.“그럴 수도 있고.”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아니면 전혀 다른 걸 수도 있어.”하빈이 물었다.“예를 들면.”이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증언.”그 단어가 공기 속에 떨어졌다.하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진은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증

  • 불륜해드립니다.   244. 틈

    인터뷰 기사가 올라온 다음 날 아침,도시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깨어난 느낌이었다.이수는 미용실 문을 열며 잠시 골목을 바라봤다. 밤사이 비가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아스팔트 위에 얇게 남아 있는 물기가 햇빛을 받아 흐릿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공기도 평소보다 차분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미용실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드라이어의 열기, 샴푸 향, 오래된 나무 선반의 냄새가 섞여 있는 공간이었다. 이수는 전등을 켜고 커튼을 절반쯤 걷었다. 거울에 빛이 닿자 실내가 천천히 밝아졌다.그녀는 가위를 정리하며 잠시 생각했다.어젯밤 이후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 사진이 먼저 던져지고, 그 다음에 인터뷰가 나왔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게 된 상태였다.문 위의 종이 가볍게 울렸다.하빈이었다.그는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아침 먹었어?”이수가 고개를 저었다.“아직.”하빈은 컵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그래도 커피는 마셔.”이수는 컵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에 전해졌다.잠시 후 하빈이 말했다.“기사 반응 계속 올라오고 있어.”이수는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어때.”하빈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어제보다 균형 잡힌 느낌이야.”인터뷰가 올라온 이후 댓글의 흐름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사진만 봤을 때는 단정적으로 말하던 사람들도 인터뷰 내용을 읽은 뒤에는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완전히 바뀐 건 아니야.”하빈이 덧붙였다.“근데 한쪽으로 쏠리진 않네.”이수는 화면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그녀의 대답은 짧았다.하빈이 물었다.“그게 목표였어?”이수는 잠시 생각했다.“아니.”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냥… 내가 말해야 할 걸 말한 거야.”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이야기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니까.”

  • 불륜해드립니다.   243. 사진 한 장에 담기지 않은 진실과 기사의 파장

    인터뷰가 기사로 올라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늦은 시간이라 거리의 소음은 대부분 가라앉아 있었지만, 휴대폰 화면 안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듯했다. 기사 알림이 몇 번 연달아 울렸고, 같은 내용을 다루는 다른 매체들도 조금씩 기사를 올리고 있었다.이수는 소파에 앉아 화면을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제목은 크게 자극적이지 않았다.『사진 당사자 인터뷰… “보내 주는 것도 사랑이었다.”』본문에는 인터뷰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병원에서 들었던 설명, 그날의 상황,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말까지 비교적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하빈은 주방 쪽에서 물을 한 잔 들고 나왔다.“올라왔어?”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녀는 휴대폰을 잠깐 들어 보였다.“생각보다 담담하게 썼네.”하빈이 화면을 들여다봤다.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긴 형태에 가까웠다.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지만, 기사 자체의 분위기는 공격적이지 않았다.잠시 후 하빈이 말했다.“댓글 봤어?”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직.”하빈은 화면을 아래로 내려 보았다.댓글 수는 이미 몇 천 개를 넘어 있었다. 다양한 의견이 올라와 있었지만, 흐름은 사진이 공개된 직후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누군가는 여전히 비난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인터뷰 내용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하빈이 말했다.“완전히 한쪽으로 쏠리진 않네.”이수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그럴 거야.”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사진이 던져졌을 때 사람들은 그 장면 하나에 집중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다른 정보가 나오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사진 하나로는…”이수가 말을 이어 갔다.“…모든 걸 설명할 수 없으니까.”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소파 옆에 앉으며 말했다.“민준이 예상한 흐름은 아닐 수도 있겠다.”이수는 잠시 생각했다.“그래도 아직 몰라.”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

  • 불륜해드립니다.   10. 탐색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닿았다.커피가 아니라, 커피가 오래 머문 자리의 냄새였다.하루 이틀 사이에 바뀔 수 없는 공기였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끈을 묶는 손길이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속도를 찾았는데, 매듭을 완전히 당긴 뒤에도 손이 한 번 더 머물렀다.단단히 묶어두는 습관은, 이미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진상은 카운터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닦을 필요가 없는 잔이었다.투명했고, 얼룩도 없었다.그럼에도 그는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오늘은 조

  • 불륜해드립니다.   9. 거리

    잔의 수위는 더 이상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마시지 않아도, 시간은 잔을 비워 갔다.술집 안의 시간은 사람의 선택과 상관없이 흘렀다.진상은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그는 그 반을 오래 바라봤다.채우지 않은 선택과, 비우지 않은 선택 사이에서 사람은 자주 멈춘다.“이상하죠.”그가 말했다.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충동은 아니었다.“뭐가요.”이수는 잔을 내려놓은 채로 물었다.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흐리지 않았다.“이런 날은…”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말을 삼킨다기보다, 말을 고르는 얼굴이

  • 불륜해드립니다.   8. 느려진 생각

    잔의 수위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수는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테이블에 닿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 공간에서는 충분히 또렷했다.진상은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마시지도, 내려놓지도 않은 채로. 손가락이 유리 표면을 따라 미끄러졌다.의미 없는 동작처럼 보였지만, 의미 없는 동작은 대개 마음을 숨길 때 나온다.“원래…”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이번엔 서두가 길었다.“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거, 잘 안 해요.”설명 같았고, 변명 같았고, 고백 같았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

  • 불륜해드립니다.   7. 문 앞

    문 앞에 불이 켜져 있었다.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불빛이었다.간판은 작았고, 글자는 오래돼서 몇 글자가 흐릿했다.진상은 문을 바로 열지 않았다.손이 손잡이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여기… 시끄럽진 않아요.”그가 말했다.설명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변명이었다.이수는 간판을 한 번 봤다.술집이라는 건 분명했지만, 어떤 술집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건 지금 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괜찮아요.”그녀는 그렇게 말했다.들어가겠다는 뜻도, 거절하겠다는 뜻도 아닌 말.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다.안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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