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이방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그리 단언하십니까?”
“내가 아는 붉빛미르와, 지금 네놈을 탐하고 있는 붉빛미르는 차원이 다르다.”
이성계의 말에, 이방원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붉빛미르는 이 나라 왕가에 내려오는 유일무이한 권능! 아바마마의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과연 그러하다 생각하느냐?”
캐묻는 말에, 이방원은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이성계는 그런 아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꿰뚫어보는 듯한 아버지의 시선을 차마 견디기 힘들었던지 이방원은 칼날 뒤로 자기 얼굴을 감췄다.
“혹시
“흠.”양녕이 슬며시 옆을 돌아보았다.거기에는 양녕과 함께 왔던 여인이 쥐죽은 듯이 서 있었다.쓰개치마를 쓴 채로 그 아래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찌 된 것인지 몸집 자체가 사내와 비할 바가 아닌데도 옆자리 양녕보다 더 압도하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고된 일을 하고 계시는군.”양녕이 말문을 열었다.“그렇잖아도 지난번 대화재 이후로 불 끄는 사람들 엄청나게 바빠졌다는 얘기를 들었어. 참으로 고생이 많겠군.”“대감마님의 노고에 비하겠습니까?”“나야 뭐. 하는 일 없는 한량이니 초목산천 돌아다니며 놀러 다니는 것이 일인데 무어가 힘이 들겠나? 이러다 술독에 빠져죽거나 호랑이한테나 안 잡혀먹히면 다행이지.”“무슨 말씀을……. 망극하옵니다!”이포교가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누가 같은 핏줄 아니랄까봐. 폐세자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솜씨 하나만큼은 주상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신랄하고 익살이 넘쳤다.“망극하기는. 하하!”양녕이 피식 웃으며 이번에는 슬쩍 옆의 천우에게로 눈을 돌렸다.이포교를 볼 때보다 훨씬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듯한 눈이었다.“함께 오신 분도 금화도감이신가?”“그렇습니다, 대감마님.”그러자 이포교가
김초시는 바깥 별채에 빈방이 있으니 그곳을 쓰면 된다 말하였다.오랫동안 손님이 없어 청소가 되어 있지 않으니, 대충 치워주겠다며 부산을 떨기도 했다.“아, 그리고 두 사람은 식사들은 하셨는가?”“마침 들고 오는 길입니다.”“그거 아쉽군.”김초시가 씁-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마침 대감마님 몰래 쟁여놓은 술이 한독 있어서 말이지. 저기 강원도 산속 냉골에서 솟은 샘물로 담근 것인데, 맛이 마침 딱 들던 참이거든.”“그거 듣기만 해도 설레는데요.”“그렇지?”이포교가 호응하자, 김초시는 신이 나는지 침까지 튀겨가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술이라는 게 말이야. 도통 혼자 마셔서는 향기며 맛이 온전하게 나오질 않아서 말이야. 아무래도 같이 어울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 말이지.”“김초시 어르신 여전히 술 좋아하십니다.”“자네 여기서 지낼 때도 우리 둘이서 꽤 마시지 않았던가? 북어 말린 것에 대추도 곁들여다가…….”“그러다 대감마님께 혼나고 금주령을 받기도 했었죠. 기억나십니까?”두 사내가 킬킬거리며 안쪽으로 걸어갔다.천우는 그런 둘을 조용히 뒤따랐다.그러는 사이에, 김초시의 유혹은 계속되었다.“어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볍게 한
가게를 나와 꽤 오래 걸어가니 어느덧 밤 기찰을 돌 때가 가까워졌다.앞서 걷던 이포교는 조금만 더 서두르자며 발길을 두 배는 더 빨리 했다.어림잡아 한양 반 바퀴는 돈 것 같았다. 집, 저자, 우물, 골목을 지나 북편으로 내려가다 보니 가득 들어차있던 가옥들은 온데간데없고 제법 한적한 공터가 하나 나왔다.양옆으로 논과 밭이 늘어서 있어 육지 속의 섬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그 앞에 제법 운치가 깃든 기와집 한 채가 서 있었다.“따라오게.”이포교가 기와집을 향해 걸어갔고, 뒤따르던 천우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흐르는 물만 하나 앞에 두었으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절경이었겠군.’두 사람이 기와집 앞에 다ᄀᆞ 섰다.용건이 없는 한,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대문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쿵- 쿵-이포교가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초립을 쓴 사내 하나가 퉁명스런 표정이 되어 내다보았다.“뉘시오?”“저올시다.”이포교가 초립 쓴 사내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아, 이포교! 오랜만이군.”그러자 초립 쓴 사내도 얼굴이 제법 풀린 채로 이포교를 맞았다.“그간 강녕하셨습니까?”“여기야 뭐 항상 별일 없네만. 그래,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일인가?”“염치없지만 여기서 신세를 좀 질까하여 왔습니다.”“신세?”초립 쓴 사내가 앞에 서 있던 두 포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두 사람 모두 말인가?”“아, 저는 금방 떠날 것입니다. 여기 있는 이 친구는 이번에 새로 금화도감 포교가 된 백천우인데, 아직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부득불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딱한 사연이군.”“받아주시겠습니까?”“손을 물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초립 쓴 사내가 뒤로 물러나며 문을 크게 열었다.“들어오시게.”“감사합니다.”두 포교는 기와집 안으로 들어섰다.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안채, 사랑채, 별채까지 합하여 식객 다섯 정도는 충분히 머물 수 있을만한 공간이 마련된 곳이었다.담장이 높고 두터웠으며, 기와는 이끼
“그리고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이포교는 2년 전 사건은 단순한 화재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양 곳곳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노비들은 몇 차례 국문도 거치지 않고 사형을 당했다네. 마치 입을 막으려는 듯이 말이야.”“워낙 큰 피해를 입혔으니, 신속히 엄벌에 처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그도 그렇지만, 사건 기록을 보면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가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증언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네.”“기억을 하지 못했다?”“그렇다네. 어딘지 모르게 넋이 나가있고, 눈이 풀려있어 독초를 먹었거나 독한 약재를 섭취한 것 같다는 사견이 있었지.”“그 말은…….”천우가 주위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그 방화범들이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았다는 말인가?”“그럴 가능성도 있지.”“그렇다면 약물이나 다른 수법을 동원한 것인가.”“정확하지는 않네.”이포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당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니. 하지만, 정말로 배후 세력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용의자를 추궁해 뒤를 캐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사형이 아주 급하게 진행되었다는 느
천우는 붉빛미르, 그리고 물빛미르에 대한 사실을 제외한, 세상에 비가 내림을 기원하는 집단에 대한 사실을 이포교에게 전해주었다.다 듣고 난 이포교의 얼굴에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보게.”이포교가 가만히 천우를 불렀다.“듣고 있네.”“자네 같으면, 그 기우사라는 술사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원할 때 비를 내리게 하고, 원할 때 그치게 한다는 것이 말일세.”“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네.”지금껏 그리 살아왔던 천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평범한 세상에 속해있는 이포교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그러니까, 자네 말을 정리해보면…….”이포교가 더듬더듬 말했다.“기우사였던 자네의 부친께서 2년 전에 한양 대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한성으로 오셨고, 그 와중에 변을 당해 아직까지 행방불명된 상태. 그래서 금화도감의 기록을 통해 아버님의 행방을 조사하고자 한다는 말인가?”“그렇다네.”“그리고 대화재를 일으킨 것으로 의심되는 배후 세력이 자네 아버님은 물론, 기우사 전체를 몰살시켰고. 함께 오셨던 그 지운이라는 노인장만 빼고.”포교답게 정확한 정리였다.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포교에게 전하지는 아니하였으나, 2년 전에 벌어진 대화재를 기점으로
“내 얘기를?”이포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들어봤자 별거 없는 일개 포교 나부랭이 얘기를 뭐에 쓰려고?”“내가 금화도감에 들어와야 했던 이유가, 이곳에서 일하는 당사자의 증언이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네.“알아들을 수가 없는 얘기군.”“지금은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네.”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포도대장께서는 이포교 자네를 좋게 평가하시더군.”“그래? 영감께서 뭐라 하시던가?”“자네를 신임하시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네. 금화도감에 남아있기는 아깝다고도 하셨고.”“아직도 그리 생각하시는군.”“이포교 자네가 금화도감에 남아있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네.”천우가 조심스럽게 이포교의 표정을 살폈다.그러자 이포교는 아직은 낯선 천우에게 속마음을 다 드러내고는 싶지 않은지 슬몃 허공을 쳐다보며 눈을 피했다.“살다보면…….”이포교가 문득 넋두리하듯 운을 뗐다.술기운이 조금은 올라탄 듯한 목소리였다.“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고도 나는 법이지.”“2년 전이었지? 한양에 대화재가 발생한…….”“똑똑히 기억하네. 초목이 바싹 마르고, 건조하기 이를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