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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위험한 진실의 티타임 (1)

last update 公開日: 2026-05-29 21:12:13

바닥에 놓인 조그마한 검은 알이 혹시라도 깨질세라 푹신한 바구니에 옮겨 담은 후, 우리들은 자리를 옮겨 응접실로 이동했다.

​

조금 전까지 불꽃이 튀고 얼음 조각이 날리며 어둠의 파편에서 빛의 기둥까지 세상에 있는 힘없는 힘 모두 뒤엉키는 아수라장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것 같은데, 응접실에서는 이질적으로 창가를 통해 나른한 햇갈이 쏟아져 내렸다.

​

이 비현실적인 고요를 깬 것은 황제의 낮은 목소리였다.

​

“그래, 그대들은 어디까지 알고 있지?”

​

공작저의 최고급 소파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카엘루스는, 엘리노아의 부서진 아티팩트 조각을 장난감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굴려댔다. 엘리노아는 도대체 왜 저 쓸모없는 파편을 애착인형마냥 아직도 들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입을 다물기로 했다.

​

“질문을 바꿔 보지. 자네들이 쫓던 그 ‘가시 왕관’의 흔적이 얼마 전 태양궁 응접실 벽지까지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설마 정보 길드장이라는 카시안 공자가 모르진 않았겠지?”

​

카시안 오라버니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그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게…. 사실은 최근 남부 성벽 밖의 기현상들이 ‘가시 왕관’과 연관이 있다는 것까지만 파악했습니다. 그놈들이 이토록 깊숙이 황궁에 잠입해, 폐하의 곁에까지 불순물을 심어두었을 줄은….”

​

황제가 가만히 내 얼굴을 응시하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

“그래, 맞아. 사실 이 어여쁜 공작가 막내가 정체 모를 몰골로 기사단장실에 들이닥쳤을 때만 해도, 돼먹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불순물 정도로만 여겼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고.”

​

그는 즐거운 듯 입꼬리를 완만하게 말아 올렸다.

​

“카시안이 조만간 누군가를 보낼 거라 예고하긴 했지만, 그게 엘리노아 공녀일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

가만히 듣고 있던 큰오빠, 칼라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카시안을 향해 으르렁대듯 내뱉었다.

​

“그게 엘리노아가 남장까지 감행하며, 고작 황제의 시종 따위로 한 달씩이나 네 곁을 지킨 것과 무슨 상관이지? 당장 설명해, 카시안.”

“그, 그게…. 남부 조사에 인력을 다 쏟아부었더니 황궁처럼 위험한 곳에 밀어 넣을 사람이 마땅치 않더라고. 기본 소양도 갖췄겠다, 무엇보다 엘리노아는 금서인 로판 소설에 미쳐서 황궁 도서관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전적이 있….”

—콰직!

“거니…… 으억! 아, 악! 그, 그만!”

“미친 새끼.”

​

큰오빠가 옆자리에서 입을 나불대던 작은오빠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나 역시 사심을 가득 담아 반대편 작은오빠의 허벅지를 아. 주. 세. 게. 꼬집었다.

​

아니, 날 고작 ‘남는 인력’ 취급했다고? 감히 이 귀하고 유능한 인력을 그런 식으로……!

​

“크흠, 나머지는 내가 없을 때 하도록. 저놈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니까.”

​

황제가 짐짓 엄숙하게 헛기침을 하며 거들었다. 하지만 칼라일의 시선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카엘루스, 너도 마찬가지다. 만약 네가 처음부터 엘리노아의 정체를 알고도 위험에 방치했다면, 이건 우리 루체른 가문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

바닥에 구겨진 카시안 오라버니를 뒤로한 채, 두 남자의 살벌한 기싸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 숨 막히는 긴장감 사이에서 나는 그저 찻잔 속에 코를 박고 사라지고 싶을 뿐이었다.

​

‘망했다. 황제 앞에서 내 로판 덕질을 들키다니……!’

—뀨! 꾸룩, 꾸루룩!

​

정적을 깬 것은 바구니 속 검은 알이 내뱉은 기묘한 울음소리였다. 역시 부숴버리는 게 상책이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칼라일 오라버니를, 카엘루스가 나직하게 제지했다.

​

“아마 이미 느꼈겠지만, 엘리노아 영애가 지녔던 그 은빛 원통은 ‘루세티아의 파편’이다. 본래라면 빛의 여신이 남긴 순수함의 결정체여야 했으나…….”

​

황제는 말을 멈추고 묘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

“그 오염된 성물을 정화해 낸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하지만 성물이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는 건, 이미 ‘그들’이 마수를 뻗쳤다는 뜻이기도 해.”

​

그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

“엘리노아 공녀, 설명할 기회가 없어 제대로 못했으나 이미 짐작한 데로 어젯밤 네 방을 습격한 건 내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 이름을 사칭해 숨어든 쥐새끼들이었지.”

​

그제야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날카롭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카시안 오라버니는 황제와 손을 잡고 그 가시 왕관이라는 세력들을 쫒고 있었고, 나는 운 나쁘게 그 판에 끼어들었다가 내 ‘정화 능력’을 들키고 만 것이다.

​

‘아, 제대로 엮였다.’

​

현재 저 불순한 것을 태워 없애는 건 결국 제국의 태양인 저 남자뿐이지만, 정화의 힘으로 되돌리는 것은 결군 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묶여버린 것이다.

​

수많은 로판을 탐독하며 꿈꿔왔던 다정하고 섬세한 나의 백마 탄 왕자님은 이제 안녕. 바이바이…

​

눈앞의 얼굴만 번지르르한 악마를 마주하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바닥을 구르며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이 알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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