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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남자와 다시 만났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2 07:19:40

도아윤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을 믿지 않았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도,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고백도 결국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불과했다. 한때는 그런 말들이 세상을 움직일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팔고 있었다.

그것도 꽤 비싼 가격에.

“대표님, 이번 디자인은 어떠세요?”

아윤은 앞에 놓인 시제품을 내려다봤다. 작은 벨벳 받침 위에는 핑크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두 개의 날개가 감싸듯 뻗은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세공 자체는 훌륭했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날개의 곡선이 부드럽게 반짝였고, 중심석도 지나치게 튀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았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엘리스.”

“네, 대표님.”

“예쁘죠?”

엘리스가 잠깐 눈을 깜박였다.

“네. 정말 예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윤은 손끝으로 목걸이의 체인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금속이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런데 예쁜 것밖에 없어요.”

회의실에 앉아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아윤은 그 반응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제품을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고 직원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이번 컬렉션의 이름이 뭐죠?”

“언스포큰 러브입니다.”

“맞아요. 말하지 못한 사랑.”

아윤은 태블릿 화면을 돌려 처음 기획안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이 디자인을 보면 사랑을 말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아주 크게 외치는 사람 같아요. 하트에 날개, 핑크 다이아몬드까지. 너무 친절하게 다 설명하고 있잖아요.”

디자인팀 막내인 샬럿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러면 하트를 조금 더 작게 만드는 게 어떨까요?”

“좋아요. 그런데 크기만 줄인다고 해결될까요?”

샬럿이 잠시 고민했다.

“……아니요.”

“왜요?”

“의미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니까요.”

그제야 아윤이 웃었다.

“맞아요. 우리 고객들은 사랑이 뭔지 몰라서 주얼리를 사는 게 아니에요.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떤 말로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그녀는 새로운 종이를 꺼내 빠르게 선을 그었다. 하트의 형태를 완전히 없애고, 대신 서로를 향해 뻗어가는 두 개의 곡선을 배치했다. 곡선은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다가 중심에서 아주 작은 간격을 남겼다.

“여기를 보세요.”

직원들이 몸을 기울였다.

“왜 끝까지 연결하지 않으세요?”

아윤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말하지 못한 사랑이니까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직 닿지 못한 두 사람의 마음. 서로를 향하고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남아 있는 상태예요. 보석은 그 사이에 넣어요. 하트가 아니라 작은 빛처럼.”

엘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두 곡선이 보석을 감싸는 형태가 되겠네요.”

“그렇죠. 누구는 기다림으로 볼 수도 있고, 누구는 고백 직전의 순간으로 볼 수도 있겠죠.”

아윤은 완성된 스케치를 바라봤다.

“주얼리가 모든 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착용하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채울 수 있으면 되니까.”

회의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가를 기다리며 긴장하던 직원들이 저마다 수정 방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윤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면 자신이 선택한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DW JEWELRY.

런던에 문을 연 지 이제 삼 년이 조금 넘은 주얼리 브랜드였다.

처음에는 작은 작업실 하나가 전부였다. 제대로 된 쇼룸도 없었고, 주문이 들어오면 아윤이 직접 디자인부터 제작 확인, 포장까지 맡아야 했다. 낮에는 공방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스케치를 하다 책상 위에서 잠드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런던 중심가에 본사와 쇼룸을 두었고, 직원도 스무 명을 넘겼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소개하는 잡지에 이름이 실렸으며, 얼마 전에는 유명 패션 하우스와 협업 제안까지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성공한 젊은 디자이너라고 불렀다.

아윤은 그 말이 조금 민망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대표님.”

엘리스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네?”

“오늘 오후 미팅 일정 확인하셨죠?”

아윤의 손이 멈췄다.

“무슨 미팅이요?”

엘리스가 눈을 감았다.

“대표님.”

“…….”

“설마 잊으신 건 아니죠?”

아윤이 천천히 웃었다.

“우리 엘리스.”

“네.”

“오늘도 참 예쁘네요.”

“칭찬으로 넘어갈 생각 하지 마세요.”

“아니, 정말로.”

“HR 그룹입니다.”

아윤의 웃음이 멈췄다.

“……아.”

“이제 기억나세요?”

“기억났어요.”

“오늘 오후 네 시. 신규 럭셔리 편집관 입점 관련 미팅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일정표를 세 번 보내드렸고, 어제도 말씀드렸어요.”

“우리 엘리스가 없으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갈까.”

“안 돌아가겠죠.”

“정말 든든해.”

“그러니까 오늘은 늦지 마세요.”

아윤이 두 손을 모았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엘리스는 한숨을 쉬면서도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아윤은 다시 자료를 정리했다. 장난스럽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이번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HR 그룹.

영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 유통망을 가진 대기업이었다. 최근 새롭게 추진하는 럭셔리 편집관에 DW를 입점시키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고, 조건만 맞는다면 브랜드를 한 단계 성장시킬 기회였다.

물론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대기업과의 계약은 언제나 복잡했다. 독점 조건이나 납품 단가를 잘못 정하면 작은 브랜드는 순식간에 주도권을 잃을 수 있었다.

아윤은 그런 일을 절대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DW는 자신이 처음부터 쌓아 올린 브랜드였으니까.

남의 이름 아래 장식처럼 놓이기 위해 만든 회사가 아니었다.

“자료는 제 사무실로 가져다주세요. 점심 먹고 다시 검토할게요.”

“네, 대표님.”

아윤은 시계를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올리비아.

아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보세요, 비아.”

[유니이이이!]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려온 비명에 아윤이 휴대전화를 귀에서 멀리했다.

“무슨 일이야?”

[나 죽을 것 같아.]

“또 다이어트?”

[아니거든!]

“그럼 촬영?”

[그것도 아니고.]

“남자?”

[야!]

아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뭔데.”

[보고 싶어.]

“…….”

[유니, 나 보고 싶지 않아?]

아윤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맑은 런던 하늘 아래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어제도 봤잖아.”

[어제 봤다고 오늘 안 보고 싶으면 그게 친구야?]

“무슨 논리야.”

[내 논리.]

올리비아 컨덜튼.

아윤이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처음 만난 날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패션쇼 현장에서 빠져나온 올리비아가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다 아윤과 정면으로 부딪쳤고, 두 사람은 나란히 분수대에 빠졌다.

그날 아윤은 새로 산 코트를 망쳤고, 올리비아는 값비싼 구두 한 짝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상하게 친해졌다.

올리비아는 아윤이 싫다고 해도 찾아왔고, 아윤은 그런 그녀를 매번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받아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때의 아윤은 누구와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윤,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오늘 우리 집에 와.]

“오늘?”

[응.]

“나 미팅 있어.”

[끝나고 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엄마가 너 보고 싶대.]

아윤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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