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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한낮무심
다음 날 아침.

유현길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고, 나는 보온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이미 우리의 결혼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평소처럼 시내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심각한 신부전으로 반년 넘게 입원 중이었다.

그동안 나는 밤낮없이 병상을 지키며 극진히 간호해 왔다.

이번 방문이 며느리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이자, 12년간 이어진 인연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시어머니는 같은 병실의 다른 보호자에게 한창 내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버틴 건 전부 우리 며느리 덕분이야. 친딸보다도 백배는 더 효녀라니까.”

나를 발견한 시어머니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으며 얼른 앉아 쉬라고 손짓했다.

나는 밤새 푹 고아 온 생선탕을 그릇에 담아 시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님, 뜨거울 때 드세요. 현길 씨는 어젯밤 열이 나서 조금 있다가 집에 돌아가 봐야 해서요.”

시어머니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던 그때, 작은 테이블 위에 TV 대신 올려 둔 휴대폰에서 갑자기 알림음이 울렸다.

영상 통화였다.

화면에는 ‘설연’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양손에 국물이 묻어 휴대폰을 집을 수 없었던 시어머니는 턱짓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

“지희야, 나 대신 좀 받아 줄래? 아마 현길이 사촌동생일 거야.”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화면에 익숙한 젊은 여자의 얼굴이 나타난 순간, 내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반년 전, 유현길과 술에 취해 알몸으로 뒤엉켜 있던 여자.

바로 백설연이었다.

화면 속 백설연의 품에는 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아이는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외쳤다.

[할머니! 아빠가 나한테 자동차 사줬어!]

백설연은 애교 섞인 표정으로 화면을 향해 투덜거렸다.

[어머님, 현길 오빠가 어젯밤 여기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열이 났어요. 그래서 조금 더 자게 했어요.]

[그 미친 여자가 현길 오빠 늦게 들어왔다고 또 난리 친 건 아니죠?]

순식간에 병실 안의 공기가 죽은 듯 얼어붙었다.

시어머니는 놀라 손을 떨었고, 들고 있던 뜨거운 생선탕은 그대로 이불 위로 쏟아졌다.

“지, 지희야! 내 말 좀 들어 봐!”

시어머니는 화상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황급히 달려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화면 속 아이는 유현길을 빼닮아 있었다.

그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온몸이 차갑게 식었고, 손끝부터 서서히 떨려 왔다.

“사촌동생이라면서요? 어머님은 말한 현길 씨의 사촌동생이 바로 이 사람이에요?”

현장에서 들통나자 시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시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얼굴에는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가득했다.

“지희야, 현길이 너한테 숨긴 걸 너무 원망하지는 마.”

“설연이는 지난 4년 동안 참고 또 참으면서 단 한 번도 명분을 요구한 적이 없어.”

‘4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쾅 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장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반년 전, 술에 취해 벌어진 단 한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내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난 널 어릴 때부터 봐 왔잖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그래도 현길이 입장도 생각해 봐야지.”

“넌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열흘, 보름이 지나도 현길이가 손 한 번 못 대게 했잖아. 현길이도 혈기 왕성한 멀쩡한 남자고.”

“너 때문에 평생 그렇게 외롭게 살게 할 순 없잖니? 설연이도 그랬어. 아이는 앞으로도 너한테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겠다고.”

“너는 여전히 유씨 집안의 며느리야.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어. 설연이는 절대 너희를 방해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된 거 아니겠니?”

“...”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말에 다리의 힘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뒤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뒤로 시어머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한마디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기억과 현실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뒤엉키며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만 같았다.

지난 4년 동안 유현길은 지방으로 구조 임무를 떠날 때마다 밤새 나와 음성 통화를 이어 갔다.

내가 불안감이 심하고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편히 잠들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한 번은 재난 현장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조차 목숨을 걸고 보조 배터리를 구해 밤새 연락을 이어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 보니, 내가 믿었던 그 지독한 사랑은 결국 거대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나를 안심시키겠다며 밤새 이어졌던 그 모든 통화... 그때마다 그 사람의 곁에는 백설연이 누워 있었던 건가?’

‘심지어 그 아이도 그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을까?’

‘다른 여자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다정하게 달래주고 있었던 걸까?’

말할 수 없는 허망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시어머니를 돌아보지 않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말하는 완벽한 행복 속에 내 이름이 없다면, 나도 아내라는 자리 역시 이제는 내어주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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