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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Author: 조십일

제1화

Author: 조십일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

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

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

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유현진 씨?”

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

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

“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

“아뇨. 누구죠?“

“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

“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

“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를 가졌다면 온몸에 보험을 들었을 거예요.”

“참! 그분 남자친구도 내가 봤어요! 얼마 전에 둘이 엘 하트 펜션에서 파파라치에게 사진 찍혔잖아요!”

유현진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잘생긴데다 키도 크더라고요. 돈도 많아 보였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송민영에게 잘해주는 게 제일 부러워요. 사고가 난 후 남자친구가 가장 먼저 달려왔어요. 병원의 VIP 병실에 입원시키고 한시도 옆에서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다 같은 여자지만 왜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 가진 걸까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유현진은 손에서 핏기가 가셔질 정도로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16번 병실 밖에서 강한서는 송민영의 매니저와 연락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유현진의 귀에 대화 내용이 들리진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송민영의 사고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한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이미 찌푸려진 미간을 한층 더 구겼다.

전화를 받아든 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야?”

유현진의 목소리는 맥없이 갈라졌으나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듯 강한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강운 그룹이 언제부터 병원 사업까지 발을 들여놨어?”

강한서가 흠칫 놀라더니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날 미행했어?”

유현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눈가에 눈물이 맴돌았다. 그의 무신경하고 짜증 섞인 어조와 행동은 그녀의 심장을 서늘하게 조여왔다.

“강 대표님, 날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

“뉴스에서 본 사람이 널 닮은 것 같아서 물어봤을 뿐이야.”

“시시하긴.”

그는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바로 전화를 끊더니 병실 안으로 사라졌다.

유현진은 자신이 우스워 보였다. 확실히 시시하긴 했다. 모든 걸 보았으면서도 굳이 전화를 걸어 스스로 우스운 꼴이 되도록 자초했으니까.

결국 유현진을 데리러 온 사람은 차미주였다. 만약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이 있었더라면 그녀도 친구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비참한 생활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웃음이든 동정이든 모두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강한서는?”

차미주가 물었다.

“회사에 있어.”

‘그가 그렇게 얘기했지.’

차미주는 운전대를 잡고 한바탕 시원하게 욕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놈.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안 와?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뭐 하려고? 죽기 전에 금으로 만든 관이라도 사려고 그래?”

그러자 유현진이 농담을 던졌다.

“어쩌면 내 관을 으리으리한 거로 사주려고 그러는 걸지도.”

차미주가 눈을 부릅떴다.

“너 농담할 기분이 있어? 너 뒤에 있던 차에서 사상자가 나왔어!”

“그러게.”

유현진은 고개를 살짝 내리깔며 홀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차미주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녀를 데려다준 후 바로 떠나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유현진이 가정부와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북부 환형 육교의 교통사고 소식은 이미 실시간 검색에 올라와 있었다.

다만 연관 검색어가 거의 다 송민영과 관련 있을 뿐이었다.

주요 방송사에서 이번 교통사고의 심각성을 다루고 있을 뿐, 연예계 언론사는 오직 송민영의 비밀스러운 남자친구에게 관심이 쏠려있었다.

언론사들은 강한서의 신분을 공개할만한 배짱이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송민영의 남자친구가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은근하게 드러냈다. 송민영의 팬들은 발벗고 나서서 스캔들을 부인하는 동시에 여러 언론사의 웹사이트 댓글창에 다친 송민영을 걱정해달라는 댓글을 도배했다.

유현진은 그 모든게 웃겼다. 간호사가 분명 송민영은 팔에 스친 상처가 있었을 뿐이라고 했었다.

‘이렇게 날뛸 일인가?’

하지만 송민영이 인스타그램에 임신 검사표를 올린 것을 보게된 그녀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졌으며 그와 동시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신 6주차. 6 주라면 마침 강한서가 엘 하트 펜션에서 사진 찍힌 그 날이었다.

‘시간이 맞아 떨어져.’

유현진은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3년의 결혼이 백지장과 다름 없어보였다.

강한서는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송민영과 사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할머니인 정인월은 송민영의 집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둘을 억지로 갈라놓았다.

자신의 뜻이 꺾이자 강한서는 많고 많은 이름 좀 날렸던 가문의 딸들 중에서 집안 형세가 가장 안 좋은 여자를 골라 자기 가문의 선택에 반항했다.

유현진의 집안은 강씨 집안의 덕을 보려고 했고 강한서는 그녀의 신분을 필요로 했으니 이 결혼은 각자 원하는 것을 얻는 대가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유현진이 원했던 것은 강한서라는 사람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사랑에 있어 먼저 빠져버리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했던가. 송민영의 존재는 가시처럼 깊숙하게 그녀의 혼인에 박혀버렸다.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그 가시가 살을 파고 들어도 참다보면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에 박힌 그 가시는 뿌리를 뻗치며 자라났고 이젠 그녀의 혼인을 갈기갈기 찢으려고 했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서 있던 그녀 자신이 우습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강한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열 시가 다 될때였고 아래층은 조용했는데 가정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서는 어디갔죠?“

”사모님께서 방으로 들어가신 후, 다시 나오지 않았어요. 저녁 식사도 드시지 않았어요.”

강한서가 미간을 구겼다.

“제가 죽을 다시 데워서 사모님 방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강한서가 차가운 어조로 답했다.

“배고프면 알아서 내려올 겁니다.”

가정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샤워를 마친 강한서는 서재에 한동안 머물다가 열한시쯤 되었을 때, 시간을 확인했다.

예전엔 이 시간때가 되면 유현진이이 우유 한 잔을 들고 그를 찾아왔었다. 서로 싸우게 되면 가정부에게 부탁해서라도 보내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열한시 십 오분이 되도록 서재에 찾아오지 않았다.

강한서는 어쩐지 집중이 되지 않아 보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고 멍하니 몇 분 앉아있다가 결국 침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어보니 방안엔 불이 꺼져 있어서 캄캄했다. 어두운 가운데 흐릿하게 침대에 돌아 누운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유현진은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을 떴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침대 시트가 아래로 살짝 꺼지며 강한서가 옆에 눕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의 잠옷 속으로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닿은 그의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는 것을 느끼자 그녀는 더 대범하게 움직였다.

강한서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그녀의 손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그가 그녀의 손을 낚아채더니 돌아누워 그녀를 자신의 몸 아래에 가뒀다.

“지금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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