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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뜨거운 열기가 귓가에 뿜어지고 달아오른 체온까지 더해 유현진의 귓불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만 그녀는 복부에 난 멍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다행히 불이 꺼져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목젖에 키스했다. 강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짙은 눈빛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다. 곧이어 유현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나 오늘 배란기야, 할 때가 됐어.”

강한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눈가에 스친 욕망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

“네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야?”

유현진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귓불도 서서히 열기가 식었다.

“너희 엄마가 계속 날 다그치잖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너 정자 기증할래? 그럼 내가 시험관시술 할게.”

강한서가 비난 조로 되물었다.

“엄마가 재촉한 게 아니라 네가 사모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봐 아이라도 낳으려는 거 아니야?”

유현진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만 지었다.

“맞아, 네가 날 버리면 어떡해?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강한서는 단추를 채우고 짜증 섞인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런 데 신경 쓰지 마. 난 아이 안 가질 거야.”

유현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녀는 문밖을 나서려는 강한서를 불러세웠다.

“강한서, 넌 대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면 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강한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뭐가 다른데?”

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같은 뜻이라면 결혼도 아무 의미 없겠지. 이혼해 그냥.”

“네 마음대로 해.”

강한서는 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

유현진은 베개를 문에 힘껏 내던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서는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

아침을 준비한 지 반나절이 됐지만 그는 도통 수저를 들지 않았다. 이에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음식을 데워드릴까요?”

강한서는 시계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현진이더러 내려와서 밥 먹으라고 해요.”

위층으로 올라갔던 가정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 내려왔다.

“대표님, 사모님이... 안 보여요. 이런 걸 남기셨어요.”

“뭔데요?”

그는 물으며 물건을 건네받았다.

종잇장엔 ‘이혼합의서’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적혀있었다.

강한서는 굳은 얼굴로 한 장씩 펼쳐보더니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집, 차 그리고 주식까지 반반으로 나눈 걸 보자 화가 나서 실소를 터트렸다.

“생각은 야무지네!”

다만 이혼 사유를 본 순간, 그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남편의 난임으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부부관계가 깨졌습니다.”

강한서는 어두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유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는데 조금은 얄밉게 들렸다. 강한서는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

“서류에 적힌 그대로야.”

유현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인하면 알려줘. 가서 수속 마치고 앞으론 남남으로 지내.”

강한서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올랐다.

“이혼 사유가 무슨 뜻이냐고 묻잖아!”

유현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네가 볼 땐 우리 관계가 정상적인 것 같아? 사실 진작 너한테 얘기하려 했어, 한서야. 시간 될 때 병원에 한번 가봐. 어머님이 맨날 나한테 한약을 지어주시는데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무슨 소용이겠어? 문제 있는 사람은 바로 너잖아.”

“유현진!”

말을 마친 그녀는 강한서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강한서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고 이에 가정부가 화들짝 놀라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 유현진은 줄곧 얌전하고 온순한 사모님인데 왜 아무 말 없이 이혼을 결정한 걸까? 게다가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했길래 대표님이 이토록 화를 내시는 걸까?

유현진은 말을 내뱉은 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 3년 동안 그녀는 한주 강씨 가문에서 줄곧 억눌려있었다.

다만 후련했던 기분도 잠시, 그날 저녁 호텔 매니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더는 이 방에 묵을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이곳에 묵을 때 사용한 것이 강운 그룹에서 주문 제작한 룸 키였기 때문이다. 룸 키가 정지됐으니 그녀도 더는 이 스위트룸에 묵을 수 없었다.

유현진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물론 그 룸 키는 더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고객님께서 직접 재결제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고객님, 재결제해드릴까요?”

매니저가 상냥하게 말했다. 이 또한 비즈니스라 손님을 밖으로 몰아낼 리는 없었다.

유현진은 입술을 꼭 깨물며 모든 것이 강한서의 복수라고 굳게 믿었다.

오전에 통화를 마치자 저녁에 바로 그녀의 룸 키를 정지시키다니, 이보다 더 비겁할 순 없었다.

‘내가 전에 눈이 멀었지. 어떻게 저런 녀석을 좋아할 수가 있어?’

“네, 결제해요.”

유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며칠 더 결제해드릴까요?”

“일단 한 달만 해주세요.”

“네. 모두 2억3320만 원입니다. 30일을 채우지 못하신 부분은 예약 취소 수수료가 30% 부과됩니다. 지금 바로 로비로 이동하셔서 비용을 지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현진은 입이 쩍 벌어졌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실례지만 아까 첫 번째 질문을 다시 해주시겠어요?”

매니저는 그녀의 웃음에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유현진은 안 웃을 땐 몹시 도도해 보이지만 미소를 짓는 순간 농염한 자태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데 가히 절색이라 할 수 있다.

매니저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몇 초 뜸 들인 후에야 질문을 반복했다.

“고객님, 재결제해드릴까요?”

유현진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체크아웃하죠.”

매니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좀 더 저렴한 스위트룸으로 바꿔 매달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지만 잠시 고민한 그녀는 체크아웃하기로 했다.

강한서가 그녀의 룸 키를 정지했으니 아마 그녀의 신용카드도 정지할 게 뻔하다.

재산분할을 반반으로 한 것은 그녀가 홧김에 쓴 내용이다. 결혼 전에 유현진은 집이며 차며 일전 한 푼 내놓지 않았기에 그녀의 몫은 아예 없었다. 혼후 재산은... 사실 그녀는 강한서의 혼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반반으로 나누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그녀의 노고를 생각하여 몇십억을 나눠준다면 당연히 좋을 테지만 일전 한 푼 없이 빈몸으로 내쫓는 것도 강한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에 그녀는 반드시 나중을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쨌거나 사치스러운 생활에서 검소한 생활로 돌아오는 건 힘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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