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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침대에서 눈을 떴습니다

Penulis: 유월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21 14:01:22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

따뜻하다.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좋은 냄새가 났다.

익숙해져 버린 짙은 나무 향.

비가 내린 뒤의 숲.

햇빛을 머금은 털.

그리고.

레오나르드.

나는 눈을 감은 채 이불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좋다.”

포근했다.

어젯밤에도 황금빛 담요를 덮고 잤으니 당연했다.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레오나르드가 좋은 건 아니다.

절대.

그 남자의 체향이 수면에 도움이 될 뿐이다.

그것과 남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잘 자네.”

“…….”

눈이 번쩍 떠졌다.

낮은 목소리.

바로 옆에서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금발.

황금빛 눈.

그리고.

너무 가까운 얼굴.

“…….”

“…….”

나는 눈을 깜빡였다.

레오나르드도 나를 내려다봤다.

“좋은 아침.”

“…….”

뭐지?

꿈인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다시 떴다.

그대로다.

레오나르드가 있다.

그것도.

바로 옆에.

“……왜.”

목소리가 갈라졌다.

“공작님이 여기 있어요?”

“내 방이니까.”

“……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검은색과 짙은 금색으로 꾸며진 침실.

처음 보는 천장.

커다란 침대.

그리고.

내가 누워 있는 곳.

“…….”

레오나르드의 침대.

나는 그대로 굳었다.

잠깐.

잠깐만.

나는 천천히 이불 아래를 확인했다.

잠옷.

그대로다.

다행이다.

아니.

뭐가 다행이야!

“왜 제가 여기 있어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악!”

무언가가 잡아당겼다.

뒤를 돌아봤다.

내 꼬리.

풍성한 붉은 꼬리가.

레오나르드의 허벅지 아래에 깔려 있었다.

“…….”

“…….”

정적.

레오나르드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공작님.”

“응.”

“움직이지 마세요.”

“왜.”

“제 꼬리.”

그도 발견했다.

“……아.”

“아가 아니라 비켜요!”

레오나르드가 바로 몸을 움직였다.

나는 꼬리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괜찮나?”

“네.”

꼬리를 확인했다.

다행히 털이 조금 눌린 것뿐이었다.

“아픈 데는?”

“없어요.”

“보여줘.”

“안 돼요.”

“확인만.”

“제가 한다고요.”

레오나르드의 손이 멈췄다.

그는 바로 손을 내렸다.

“알았다.”

“…….”

이상하다.

어제 이후로.

정말 안 건드린다.

허락 없이 하지 않겠다는 말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미안해졌다.

“진짜 안 아파요.”

“그래.”

“털만 눌렸어요.”

“다행이군.”

나는 꼬리를 몇 번 쓸어내렸다.

그러다.

다시 본질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아니.”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래서 제가 왜 여기 있냐고요.”

“기억 안 나?”

“뭐가요?”

“어젯밤.”

어젯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연회에서 돌아왔다.

씻었다.

붉은 리본을 발견했다.

옆방의 레오나르드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황금빛 담요를 덮고 잤다.

“저 제 방에서 잤는데요.”

“처음에는.”

“처음에는?”

불길하다.

레오나르드가 침대 머리맡에 기대었다.

상체가 드러났다.

“…….”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왜.

왜 옷을 안 입고 있어.

“공작님.”

“왜.”

“옷.”

“자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입어요.”

“덥다.”

“제가 있잖아요!”

“내가 데려온 거 아닌데.”

“……뭐라고요?”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네가 왔다.”

“…….”

“새벽 두 시쯤.”

“거짓말.”

“문 두드렸어.”

“제가요?”

“그래.”

“왜요?”

“담요 들고.”

“…….”

머리가 멍해졌다.

레오나르드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

“문을 열었더니 네가 서 있었어.”

“…….”

“담요 안고.”

“그만.”

“귀랑 꼬리도 다 내놓고.”

“그만하세요.”

“눈도 반쯤 감고.”

“레오나르드.”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가 멈췄다.

“…….”

나도 멈췄다.

아.

나 지금.

공작님이 아니라.

레오나르드라고 했어.

그의 황금빛 눈이 아주 미세하게 커졌다.

“……왜요?”

괜히 목소리가 작아졌다.

“방금.”

“실수예요.”

“내 이름 불렀는데.”

“실수라고요.”

“한 번 더.”

“싫어요.”

“왜.”

“지금 그게 중요해요?”

나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래서 제가 왜 찾아왔는데요?”

“모른다.”

“제가 말 안 했어요?”

“했지.”

“뭐라고요?”

레오나르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불안하다.

“말하지 마세요.”

“물었잖아.”

“그냥 잊을게요.”

“나는 기억하는데.”

“공작님.”

“냄새가 없어졌다고 했다.”

“…….”

나는 굳었다.

“뭐라고요?”

“담요에서.”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내 냄새가 약해져서 잠이 안 온다고.”

“…….”

죽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침대 아래로 들어가서 영원히 나오지 않고 싶다.

“제가.”

“그래.”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정확히는.”

“더 있어요?”

“냄새 다시 묻혀 달라고.”

“…….”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세리아.”

“저 없어요.”

“있는데.”

“죽었어요.”

“잘 살아 있는데.”

“방금 죽었어요.”

밖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요.”

“안 웃었다.”

“웃고 있잖아요!”

“조금.”

나는 이불 안에서 얼굴을 감쌌다.

미쳤어.

내가 미쳤지.

잠결이라고 해도.

남편 방에 담요를 들고 찾아와서.

냄새를 다시 묻혀 달라고?

이건.

수인 사회에서 거의—

“…….”

생각하지 말자.

절대.

그런 의미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불 속에서 물었다.

“어떻게 했어요?”

“뭘.”

“담요.”

“다시 줬지.”

“냄새 묻혀서?”

“그래.”

“그럼 왜 제가 여기서 자요?”

정적.

나는 슬쩍 이불을 내렸다.

레오나르드와 눈이 마주쳤다.

“공작님?”

“네가 안 갔어.”

“…….”

“담요 받고도.”

“왜요?”

“내 침대가 더 좋다고.”

“…….”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만.”

“네가 물었잖아.”

“이제 안 물어볼 거예요.”

“그리고.”

“더 있어요?!”

“나보고 옆으로 가라고 했다.”

“…….”

“자리 좁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발테리온 공작의 침실에 쳐들어와서.

그의 담요를 빼앗고.

침대까지 빼앗고.

본인에게 옆으로 가라고 했다고?

“공작님.”

“응.”

“왜 안 쫓아냈어요?”

“졸려 보여서.”

“그래도!”

“그리고.”

그가 잠시 멈췄다.

“싫지 않았어.”

“…….”

심장이.

이상하게 한 번 뛰었다.

나는 이불을 조금 내렸다.

레오나르드는 장난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뭐가요?”

“네가 찾아온 거.”

“…….”

“내 냄새가 필요하다고 한 것도.”

황금빛 눈이 나를 바라봤다.

“싫지 않았다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는 잠결이었어요.”

“알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요.”

“그것도 알아.”

“그러니까 의미 두지 마세요.”

“…….”

레오나르드가 잠시 침묵했다.

“알았다.”

왜.

저렇게 쉽게 대답하는데.

기분이 묘하지?

나는 괜히 꼬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거죠?”

“어떤 일.”

“…….”

“말해봐.”

“알면서 묻지 마요.”

레오나르드가 피식 웃었다.

“없었다.”

“정말?”

“네가 자는데 내가 뭘 해.”

“…….”

“그리고 허락도 안 했잖아.”

그 말에.

나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또다.

이 남자는.

이런 데서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그런데.”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문제는 있었지.”

“무슨 문제요?”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내 꼬리.

“네가 자면서 자꾸 나한테 붙더군.”

“……거짓말.”

“진짜다.”

“제가 왜요?”

“내가 아나.”

“공작님이 끌어당긴 거 아니에요?”

“안 만졌다.”

“…….”

“네 허락 없이는.”

심장이 또.

쿵.

왜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지.

“그래서.”

나는 괜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일정은요?”

“도망가나?”

“뭐가요.”

“화제.”

“아니거든요.”

레오나르드가 웃었다.

“오전에는 상단 회계 자료가 도착할 거다.”

“벌써요?”

“어제 요청했다.”

나는 놀랐다.

“공작님이요?”

“그래.”

“왜요?”

“네 작은아버지가 다시 움직일 것 같아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데미안은 어제 한 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황궁.”

“또요?”

“황제가 부른다.”

“왜요?”

레오나르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후계 문제.”

나는 굳었다.

“…….”

아.

그게 있었지.

이 결혼의 또 다른 목적.

레오나르드는 결혼 압박을 피하기 위해 나와 계약했다.

하지만.

결혼했다고 해서 황실이 가만히 있을까?

오히려.

이제는.

“아이 언제 가질 거냐고 묻겠네요.”

“아마.”

나는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할 거예요?”

“아직 계획 없다고.”

“그걸로 넘어갈까요?”

“안 넘어가겠지.”

“그럼요?”

“적당히 둘러대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어차피 1년 뒤에는 이혼할 거니까.”

정적.

“…….”

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요?”

“아무것도.”

또.

아무것도.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

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레오나르드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나는 빵을 자르며 그를 흘끗 바라봤다.

“공작님.”

“왜.”

“화났어요?”

“아니.”

“기분 안 좋아요?”

“아니.”

“그럼 왜 말이 없어요?”

“원래 말이 많지 않은데.”

그건 맞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까까지는 잘 놀렸잖아요.”

“…….”

“제가 침대에 들어왔다느니.”

레오나르드의 손이 멈췄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냄새가 필요했다느니.”

“사실인데.”

“그러니까 아까는 그렇게 말 많더니.”

“세리아.”

“네.”

“밥 먹어.”

“…….”

수상하다.

아주.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혹시.”

그가 나를 봤다.

“이혼 얘기 때문에 그래요?”

“…….”

맞네.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또 그 말.”

“계약 내용이니까.”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년 후 합의 이혼.”

레오나르드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여러 번 말할 필요 있나?”

“왜요?”

“나도 기억한다.”

“확인하는 거죠.”

“뭘.”

“공작님이 자꾸 계약 남편답지 않게 행동하니까.”

“…….”

“가문 일도 도와주고.”

“그건.”

“제 옷에도 신경 쓰고.”

“…….”

“다른 남자랑 춤추는 것도 싫어하고.”

“그건 그 늑대가—”

“그리고 담요까지 만들어주고.”

레오나르드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웃었다.

“그러다가 정들겠어요.”

장난이었다.

정말.

가벼운 농담.

그런데.

레오나르드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요?”

“정들면.”

그가 물었다.

“어떻게 되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

“계약 기간 동안.”

그가 천천히 말했다.

“정들면 어떻게 할 거냐고.”

“…….”

생각해 본 적 없다.

왜냐하면.

그럴 일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끝내야죠.”

“왜.”

“계약이니까.”

“계약은 바꿀 수 있는데.”

“…….”

내 손이 멈췄다.

레오나르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잠시.

아주 묘한 정적이 흘렀다.

“공작님.”

“…….”

“방금.”

“잊어.”

“아니.”

“세리아.”

“계약을 바꿀 수 있다고 했죠?”

“일반론이다.”

“무슨 일반론을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요?”

“밥 먹어.”

“도망가네요?”

“안 간다.”

“눈 피했는데.”

“안 피했다.”

그 순간.

툭.

황금빛 귀가 나타났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귀 하나가.

뒤로 슬쩍 눕는 것을 봤다.

“…….”

레오나르드가 바로 감췄다.

늦었다.

나는 봤다.

“공작님.”

“못 봤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

“귀 나왔어요.”

“착각.”

“또 거짓말.”

나는 웃음을 참았다.

“당황했죠?”

“아니.”

“맞네.”

“아니다.”

“귀 보여줘요.”

“싫어.”

“왜요?”

“네가 놀리니까.”

나는 결국 웃었다.

조금 전까지 묘하게 무거웠던 분위기가 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했던 말만은 머릿속에 남았다.

계약은 바꿀 수 있는데.

나는 괜히 차를 마셨다.

아직.

결혼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고작 이틀.

그런데 왜.

1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조금 짧게 느껴졌을까.

⸻

오후.

황궁.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황제가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후계자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나는 웃었다.

“폐하.”

“왜.”

“결혼한 지 이틀 됐습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벌써 후계자를 물으시면…….”

“발테리온의 원로들은 결혼식 다음 날부터 나를 찾아왔어.”

황제가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황금사자의 후계가 어쩌고, 혈통이 어쩌고.”

레오나르드가 무심하게 말했다.

“무시하십시오.”

“자네가 직접 무시하라고 말해.”

“그러고 있습니다.”

“안 들으니까 문제지.”

황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공작부인.”

“네, 폐하.”

“고생이 많겠군.”

“……네?”

“저놈 성격 받아주려면.”

나는 순간 웃음을 참았다.

옆에서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폐하.”

“왜. 틀린 말인가?”

“…….”

나는 결국 입가를 가렸다.

“괜찮습니다.”

“정말?”

“생각보다.”

레오나르드를 슬쩍 봤다.

“귀여운 면도 있어서요.”

“세리아.”

황제가 눈을 크게 떴다.

“귀엽다고?”

“네.”

“저놈이?”

“폐하.”

레오나르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황제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뭐가 귀엽지?”

“귀가요.”

“세리아.”

“사자 귀가 생각보다 둥글어서—”

“그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레오나르드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안 미안해 보이는데.”

“조금은 미안해요.”

황제는 한참 웃다가 겨우 진정했다.

“좋아. 후계 문제는 당분간 내가 막아주지.”

“감사합니다.”

“대신.”

불길하다.

황제가 우리를 바라봤다.

“이번 달 말까지 두 사람이 북부 별궁에 다녀오게.”

“……별궁이요?”

“발테리온의 혼인 전통이라더군.”

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전통인데요?”

황제가 웃었다.

“신혼부부가 보름 동안 단둘이 지내는 거라던데.”

“…….”

“…….”

단둘이.

보름.

나는 천천히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도 나를 봤다.

황제가 덧붙였다.

“그리고 별궁에는.”

왜.

뒤에 더 있을 것 같지?

“부부 침실이 하나뿐이라더군.”

“…….”

“…….”

정적.

내 귀가.

통제할 틈도 없이.

툭.

나타났다.

그리고.

쫑긋.

솟았다.

황제가 그것을 봤다.

레오나르드도 봤다.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귀를 눌렀다.

“아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순간.

옆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레오나르드였다.

“웃지 마요.”

“안 웃었다.”

“웃었잖아요!”

“조금.”

“공작님!”

그런데.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레오나르드의 뒤로.

황금빛 꼬리가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기분 좋은 듯.

천천히.

한 번 흔들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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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제 이름을 그 자리에 쓰지는 않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다시 세 걸음을 걸었다.전날 네 걸음을 안정적으로 끝냈다고 해서 오늘도 네 걸음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치료사는 오른쪽 무릎과 발목을 차례로 확인한 뒤 종아리를 눌러보고, 발가락 감각까지 점검한 다음 오늘의 훈련량을 정했다.“세 걸음 하겠습니다.”리시안은 잠깐 치료사를 바라봤다.“네 걸음 뒤라서요?”“그것도 있고, 어제 오후에 오래 앉아 있었으니까요. 계약 서류를 봤다고 들었습니다.”리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아주 오래 봤어요.”“두 시간이 안 됐어.”“쉬는 시간 빼고도?”리시안이 입을 다물었다.치료사가 웃음을 삼키며 새 보행화의 오른쪽 지지대를 확인했다.“앉아 있는 것도 피로입니다. 오늘은 세 걸음으로 반응을 확인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이번에는 다섯 번째를 묻지도 않았다.기립은 다섯 번이었다.첫 번째에는 오른쪽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확인했고, 두 번째에는 양쪽 무릎의 높이를 맞췄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안정적이었다. 다섯 번째에는 손에 실리는 힘을 조금 줄였지만 몸이 기울지 않았다.잠깐 쉬고 걷기를 시작했다.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리시안은 세 번째 발이 바닥에 완전히 닿은 것을 확인한 뒤 멈췄다.“끝.”아쉬움은 있었다.하지만 몸이 앞으로 쏠리지는 않았다.다음 발을 내딛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다음 발을 내딛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치료사가 기록했다.신규 보행화 11일 차.기립 5회.3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전일 4보 수행 후 부하 조절. 우측 무릎·발목 안정. 종아리 긴장 증가 없음. 감각 정상 범위 유지.리아가 기록을 내려다봤다.“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하네.”“뭘.”“왜 세 걸음이냐고.”“들었잖아.”“다섯 걸음은 언제냐고도 안 물었고.”리시안은 잠깐 검은 보행화를 내려다봤다.“물어도 오늘 걸을 건 아니니까.”리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오.”“왜.”“그냥.”“그 표정 뭔데.”“우리 오빠가 참을성을 배웠구나 싶어서.”“나 원래 있었어.”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남겨야 하는 것은 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은 걷지 않았다.아침에 치료사가 오른쪽 종아리를 확인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통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발목도 안정적이었고, 발가락 감각에도 변화가 없었다. 전날의 세 걸음 뒤 특별한 이상 반응도 없었다.그런데 그래서 더 걸을 이유도 없었다.“오늘은 근력과 균형만 하겠습니다.”리시안은 예전처럼 곧바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한 번 확인했다.“어제 상태가 나빠져서요?”“아닙니다.”“그럼 부하 조절입니까?”“맞습니다. 새 보행화로 네 걸음까지 확인했고, 다음 날 세 걸음으로 조절했습니다. 오늘은 보행 없이 발목과 무릎의 반응만 보겠습니다.”리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리아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제 오빠가 먼저 답을 거의 다 말하네.”“확인한 거야.”“그게 그거지.”“달라.”“어떻게?”리시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내가 정한 게 아니잖아.”리아가 눈을 깜빡였다.치료사가 웃음을 참듯 입가를 움직였다.리시안은 조금 민망해져 시선을 돌렸다.오늘 걸을지 말지를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치료사가 무엇을 확인했고 왜 오늘 걷지 않는지 들었다.그 정도면 됐다.오전 재활은 예정대로 근력과 균형 훈련만 했다. 오른쪽 발목을 천천히 굽혔다 펴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체중을 옮겼다. 보행은 없었다. 기립 횟수로 세는 훈련도 하지 않았다.기록은 짧았다.신규 보행화 9일 차.보행 없음.근력·균형 훈련 시행.우측 종아리 긴장 감소. 발목·감각 안정.리시안은 기록을 읽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어제 세 걸음.오늘은 영 보.그런데도 이상하게 뒤로 돌아간 느낌은 들지 않았다.오히려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멈춘 것인지 알고 있으니 기다릴 수 있었다.문제는 재활실에서 나와 서재로 돌아왔을 때였다.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자 리시안의 시선이 곧바로 가장 위의 종이에 꽂혔다.제3호 매각 협의 — 통행로 현장 실측 결과.어제 자신이 요청했던 자료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제가 승인한 것은 이 문장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다섯 번째 걸음을 묻지 않았다.치료사가 먼저 새 보행화를 벗겨 오른쪽 발목을 확인했다. 복사뼈 주변에 눌린 자국은 없었고, 발가락 감각도 전날과 같았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 동안 통증도 없었다. 다만 종아리 뒤쪽을 눌렀을 때 전날보다 아주 조금 단단한 부분이 있었다.“아픕니까?”“아니요.”“당기는 느낌은요?”리시안이 발목을 천천히 움직여봤다.“조금 있습니다.”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세 걸음 하겠습니다.”리아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말했다.“어제 네 걸음 했으니까 오늘 세 걸음.”치료사가 웃었다.“꼭 그것만으로 정하는 건 아닙니다.”“그래도 맞았잖아요.”“오늘은 맞았습니다.”리시안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신발을 다시 신었다. 오른쪽 신발의 지지대를 조절한 뒤 천천히 일어섰다.오늘 기립은 다섯 번이었다.첫 번째에는 체중이 왼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두 번째부터 바로잡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안정적이었다. 다섯 번째에는 일어난 상태로 열을 셀 동안 오른쪽 다리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했다.잠깐 쉬고 걷기를 시작했다.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어제 네 번째를 밟았던 자리보다 한 발 앞에서 멈췄다.“끝.”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리시안은 돌아와 앉았다.이번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전날보다 덜했다. 네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매일 네 걸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치료사는 오른쪽 종아리를 다시 확인한 뒤 기록했다.신규 보행화 8일 차.기립 5회.3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전일 4보 반복 수행 후 부하 조절. 우측 종아리 경미한 긴장. 보행 후 증가 없음. 발목·감각 안정.리아가 기록을 보다가 말했다.“이제 오빠도 익숙해졌지?”“뭐가.”“어제보다 적게 했다고 뒤로 간 게 아니라는 거.”리시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치료사가 신발을 벗기는 동안 오른쪽 발을 내려다봤다.“조금.”“조금?”“알기는 아는데. 기분까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이제는 제가 결정할 차례입니다

    다음 날에도 다섯 번째 걸음은 없었다.치료사가 재활실에 들어오자마자 전날 기록을 펼쳤다.신규 보행화 4일 차.기립 4회.4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우측 발목 지지 및 감각 안정. 4보 후 이상 반응 없음.밤사이 통증과 저림은 없었다. 붓기도 없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른쪽 종아리가 조금 당겼다가 움직이고 나니 풀렸다. 치료사는 그 사실까지 기록한 뒤 발목과 종아리를 눌러보고, 발가락 감각과 무릎 움직임을 차례로 확인했다. 새 신발을 신긴 뒤에도 곧바로 걷게 하지는 않았다.“오늘은 세 걸음입니다.”리아가 먼저 눈을 크게 떴다.“어제 네 걸음 했는데요?”“그래서 오늘은 세 걸음입니다.”리시안도 치료사를 바라봤다.“상태는 괜찮은데도요?”“괜찮습니다. 하지만 어제 네 걸음을 한 번 걸었다는 것과 네 걸음이 이제 안정적인 훈련량이 되었다는 건 다릅니다.”치료사는 기록지를 리시안 쪽으로 조금 돌렸다.“한 번 가능했던 것을 곧바로 다음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리시안의 시선이 어제 기록에 머물렀다. 분명 네 걸음을 걸었다. 걸은 뒤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네 걸음은 당연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다섯 번째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그럼 다섯 걸음은요?”“네 걸음이 반복해서 안정적이라는 걸 확인한 다음입니다.”기립은 다섯 번이었다. 네 번째에 오른쪽 무릎이 아주 조금 안쪽으로 기울었지만 스스로 바로잡았고, 다섯 번째에는 일어난 상태에서 열을 셀 동안 자세를 유지했다.그다음 걷기.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리시안은 세 번째 발을 완전히 디딘 뒤 멈췄다. 어제 네 번째 걸음을 내디뎠던 자리가 바로 앞에 있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한 발만 더 옮기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발목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무릎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었다.그래도 가지 않았다.“끝.”치료사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네. 돌아가겠습니다.”자리로 돌아와 신발을 벗긴 뒤에도 발목과 감각에는 이상이 없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팔 수 있는 집이라고 아무렇게나 팔 수는 없습니다

    제3호 협의에 필요한 추가 자료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목교 회의를 마친 다음 날 오전이었다. 리시안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재활실로 가기 전에 서재에 들렀다가 책상 오른쪽에 놓인 두꺼운 봉투를 발견했다.상속권자 직접 협의 요청 제3호.그 아래에는 자신이 붙여둔 표찰이 있었다.자료 확인 중.봉투 위에는 황실 재산관리국의 추가 표시가 하나 붙어 있었다.요청 자료 1차 취합 완료.리아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벌써 왔어?”“그러게.”“읽고 재활 갈 거야?”리시안은 시계를 봤다. 재활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 손은 이미 봉투 쪽으로 갔다. 봉인 끝에 손가락까지 걸렸다가 멈췄다.삼십 분이면 첫 장 몇 장은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장을 읽으면 다음 장을 펼칠 것이고, 이상한 숫자가 있으면 이유를 찾을 것이고, 확인할 것이 생기면 관련 자료까지 꺼낼 것이다. 그러다 재활 시간이 가까워지면 중간에서 끊든지, 재활실에 가서도 읽던 내용을 계속 생각하게 될 게 뻔했다.어제 목교 회의를 앞두고 치료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할 수 있는 만큼과 오늘 해도 되는 만큼은 다릅니다.당시에는 다리 이야기였다.리시안은 봉투에서 손을 뗐다.“아니.”리아가 눈을 깜빡였다.“안 읽어?”“재활 끝나고.”“삼십 분이나 있는데.”“읽을 수는 있어.”리시안은 봉투를 다시 책상 가운데에 놓았다.“그런데 끝까지는 못 볼 것 같아.”“조금만 보면 되잖아.”“그러면 나머지가 계속 신경 쓰일걸.”리아가 잠시 오빠를 바라봤다. 리시안은 표찰 아래에 작은 메모를 끼웠다.재활 후 확인.“지금은 재활부터 할래.”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요즘 진짜 잘 멈추네.”“그게 이상해?”“조금.”“너 자꾸 내가 이상하다고 하지 마.”“좋은 뜻이야.”“좋은 뜻으로도 하지 마.”리아가 웃으며 먼저 문을 나섰다.리시안은 책상 위의 봉투를 한 번 더 봤다.읽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읽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재활실로 갔다.⸻새 신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제 이름 위의 빈칸을 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어젯밤 뜯지 않았던 봉투부터 확인했다.상속권자 직접 협의 요청 제3호.봉투를 열기 전에 시계를 봤다.아침 여덟 시 십 분.식사도 끝냈다.치료사가 새 신발을 확인하기로 한 시간까지는 충분했다.리시안은 어젯밤 자신이 적어둔 내일 오전 확인이라는 메모를 떼어 옆에 놓고 봉인을 잘랐다.제3호 협의는 남동쪽 작업장 인근의 주택과 부속 토지 매입 요청이었다.오래 임차해 살던 가족이 자신들이 거주 중인 주택을 사들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차 기간은 십일 년. 지붕과 외벽 일부를 거주자가 자기 비용으로 고쳤고, 뒤뜰 우물로 이어지는 통로 일부를 이웃 두 가구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매각을 검토하려면 감정가뿐 아니라 거주자가 부담한 수선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공동 통행로와 우물 이용권을 어떻게 남길지, 인접 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확인해야 했다.리아가 맞은편에서 첫 장을 읽었다.“이것도 복잡하네.”“응.”“이것도 회의할 거야?”리시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먼저 마지막 장을 봤다.긴급성: 없음.현재 임대 계약은 일곱 달 남아 있었다.거주자 역시 즉시 매입을 요구하지 않았다.희망 사항: 계약 갱신 시점 전까지 매입 가능 여부를 알고 싶음.리시안은 펜을 들었다.이번에는 사람 이름부터 적지 않았다.첫 장 오른쪽 위에 썼다.긴급 집행 없음.그 아래.현 임대 조건 유지.그리고 별도의 요청란에 적었다.감정가 산정 근거.거주자 자비 수선 내역 및 증빙.공동 통행로·우물 이용 현황.인접 두 가구 의견.매각 시 통행권 유지 가능 방식.리아가 물었다.“그럼 이것도 자료부터?”“응.”“직접 회의는?”“자료 보고.”리시안은 제3호 협의를 새 받침에 넣었다.표찰에는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잠시 생각하다 적었다.자료 확인 중.리아가 그걸 보다가 웃었다.“두 번째랑 다르네.”“다른 일이잖아.”“어제는 사람부터 불렀는데.”“어제 건은 서류에 적힌 말의 뜻을 모르겠어서 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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