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 따뜻하다.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좋은 냄새가 났다. 익숙해져 버린 짙은 나무 향. 비가 내린 뒤의 숲. 햇빛을 머금은 털. 그리고. 레오나르드. 나는 눈을 감은 채 이불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좋다.” 포근했다. 어젯밤에도 황금빛 담요를 덮고 잤으니 당연했다.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레오나르드가 좋은 건 아니다. 절대. 그 남자의 체향이 수면에 도움이 될 뿐이다. 그것과 남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잘 자네.” “…….” 눈이 번쩍 떠졌다. 낮은 목소리. 바로 옆에서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금발. 황금빛 눈. 그리고. 너무 가까운 얼굴. “…….” “…….” 나는 눈을 깜빡였다. 레오나르드도 나를 내려다봤다. “좋은 아침.” “…….” 뭐지? 꿈인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다시 떴다. 그대로다. 레오나르드가 있다. 그것도. 바로 옆에. “……왜.” 목소리가 갈라졌다. “공작님이 여기 있어요?” “내 방이니까.” “……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검은색과 짙은 금색으로 꾸며진 침실. 처음 보는 천장. 커다란 침대. 그리고. 내가 누워 있는 곳. “…….” 레오나르드의 침대. 나는 그대로 굳었다. 잠깐. 잠깐만. 나는 천천히 이불 아래를 확인했다. 잠옷. 그대로다. 다행이다. 아니. 뭐가 다행이야! “왜 제가 여기 있어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악!” 무언가가 잡아당겼다. 뒤를 돌아봤다. 내 꼬리. 풍성한 붉은 꼬리가. 레오나르드의 허벅지 아래에 깔려 있었다. “…….” “…….” 정적. 레오나르드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공작님.” “응.” “움직이지 마세요.” “왜.” “제 꼬리.” 그도 발견했다. “……아.” “아가 아니라 비켜요!” 레오나르드가 바로 몸을 움직였다. 나는 꼬리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괜찮나?” “네.” 꼬리를 확인했다. 다행히 털이 조금 눌린 것뿐이었다. “아픈 데는?” “없어요.” “보여줘.” “안 돼요.” “확인만.” “제가 한다고요.” 레오나르드의 손이 멈췄다. 그는 바로 손을 내렸다. “알았다.” “…….” 이상하다. 어제 이후로. 정말 안 건드린다. 허락 없이 하지 않겠다는 말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미안해졌다. “진짜 안 아파요.” “그래.” “털만 눌렸어요.” “다행이군.” 나는 꼬리를 몇 번 쓸어내렸다. 그러다. 다시 본질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아니.”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래서 제가 왜 여기 있냐고요.” “기억 안 나?” “뭐가요?” “어젯밤.” 어젯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연회에서 돌아왔다. 씻었다. 붉은 리본을 발견했다. 옆방의 레오나르드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황금빛 담요를 덮고 잤다. “저 제 방에서 잤는데요.” “처음에는.” “처음에는?” 불길하다. 레오나르드가 침대 머리맡에 기대었다. 상체가 드러났다. “…….”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왜. 왜 옷을 안 입고 있어. “공작님.” “왜.” “옷.” “자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입어요.” “덥다.” “제가 있잖아요!” “내가 데려온 거 아닌데.” “……뭐라고요?”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네가 왔다.” “…….” “새벽 두 시쯤.” “거짓말.” “문 두드렸어.” “제가요?” “그래.” “왜요?” “담요 들고.” “…….” 머리가 멍해졌다. 레오나르드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 “문을 열었더니 네가 서 있었어.” “…….” “담요 안고.” “그만.” “귀랑 꼬리도 다 내놓고.” “그만하세요.” “눈도 반쯤 감고.” “레오나르드.”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가 멈췄다. “…….” 나도 멈췄다. 아. 나 지금. 공작님이 아니라. 레오나르드라고 했어. 그의 황금빛 눈이 아주 미세하게 커졌다. “……왜요?” 괜히 목소리가 작아졌다. “방금.” “실수예요.” “내 이름 불렀는데.” “실수라고요.” “한 번 더.” “싫어요.” “왜.” “지금 그게 중요해요?” 나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래서 제가 왜 찾아왔는데요?” “모른다.” “제가 말 안 했어요?” “했지.” “뭐라고요?” 레오나르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불안하다. “말하지 마세요.” “물었잖아.” “그냥 잊을게요.” “나는 기억하는데.” “공작님.” “냄새가 없어졌다고 했다.” “…….” 나는 굳었다. “뭐라고요?” “담요에서.”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내 냄새가 약해져서 잠이 안 온다고.” “…….” 죽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침대 아래로 들어가서 영원히 나오지 않고 싶다. “제가.” “그래.”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정확히는.” “더 있어요?” “냄새 다시 묻혀 달라고.” “…….”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세리아.” “저 없어요.” “있는데.” “죽었어요.” “잘 살아 있는데.” “방금 죽었어요.” 밖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요.” “안 웃었다.” “웃고 있잖아요!” “조금.” 나는 이불 안에서 얼굴을 감쌌다. 미쳤어. 내가 미쳤지. 잠결이라고 해도. 남편 방에 담요를 들고 찾아와서. 냄새를 다시 묻혀 달라고? 이건. 수인 사회에서 거의— “…….” 생각하지 말자. 절대. 그런 의미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불 속에서 물었다. “어떻게 했어요?” “뭘.” “담요.” “다시 줬지.” “냄새 묻혀서?” “그래.” “그럼 왜 제가 여기서 자요?” 정적. 나는 슬쩍 이불을 내렸다. 레오나르드와 눈이 마주쳤다. “공작님?” “네가 안 갔어.” “…….” “담요 받고도.” “왜요?” “내 침대가 더 좋다고.” “…….”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만.” “네가 물었잖아.” “이제 안 물어볼 거예요.” “그리고.” “더 있어요?!” “나보고 옆으로 가라고 했다.” “…….” “자리 좁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발테리온 공작의 침실에 쳐들어와서. 그의 담요를 빼앗고. 침대까지 빼앗고. 본인에게 옆으로 가라고 했다고? “공작님.” “응.” “왜 안 쫓아냈어요?” “졸려 보여서.” “그래도!” “그리고.” 그가 잠시 멈췄다. “싫지 않았어.” “…….” 심장이. 이상하게 한 번 뛰었다. 나는 이불을 조금 내렸다. 레오나르드는 장난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뭐가요?” “네가 찾아온 거.” “…….” “내 냄새가 필요하다고 한 것도.” 황금빛 눈이 나를 바라봤다. “싫지 않았다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는 잠결이었어요.” “알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요.” “그것도 알아.” “그러니까 의미 두지 마세요.” “…….” 레오나르드가 잠시 침묵했다. “알았다.” 왜. 저렇게 쉽게 대답하는데. 기분이 묘하지? 나는 괜히 꼬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거죠?” “어떤 일.” “…….” “말해봐.” “알면서 묻지 마요.” 레오나르드가 피식 웃었다. “없었다.” “정말?” “네가 자는데 내가 뭘 해.” “…….” “그리고 허락도 안 했잖아.” 그 말에. 나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또다. 이 남자는. 이런 데서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그런데.”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문제는 있었지.” “무슨 문제요?”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내 꼬리. “네가 자면서 자꾸 나한테 붙더군.” “……거짓말.” “진짜다.” “제가 왜요?” “내가 아나.” “공작님이 끌어당긴 거 아니에요?” “안 만졌다.” “…….” “네 허락 없이는.” 심장이 또. 쿵. 왜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지. “그래서.” 나는 괜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일정은요?” “도망가나?” “뭐가요.” “화제.” “아니거든요.” 레오나르드가 웃었다. “오전에는 상단 회계 자료가 도착할 거다.” “벌써요?” “어제 요청했다.” 나는 놀랐다. “공작님이요?” “그래.” “왜요?” “네 작은아버지가 다시 움직일 것 같아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데미안은 어제 한 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황궁.” “또요?” “황제가 부른다.” “왜요?” 레오나르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후계 문제.” 나는 굳었다. “…….” 아. 그게 있었지. 이 결혼의 또 다른 목적. 레오나르드는 결혼 압박을 피하기 위해 나와 계약했다. 하지만. 결혼했다고 해서 황실이 가만히 있을까? 오히려. 이제는. “아이 언제 가질 거냐고 묻겠네요.” “아마.” 나는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할 거예요?” “아직 계획 없다고.” “그걸로 넘어갈까요?” “안 넘어가겠지.” “그럼요?” “적당히 둘러대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어차피 1년 뒤에는 이혼할 거니까.” 정적. “…….” 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요?” “아무것도.” 또. 아무것도.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 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레오나르드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나는 빵을 자르며 그를 흘끗 바라봤다. “공작님.” “왜.” “화났어요?” “아니.” “기분 안 좋아요?” “아니.” “그럼 왜 말이 없어요?” “원래 말이 많지 않은데.” 그건 맞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아까까지는 잘 놀렸잖아요.” “…….” “제가 침대에 들어왔다느니.” 레오나르드의 손이 멈췄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냄새가 필요했다느니.” “사실인데.” “그러니까 아까는 그렇게 말 많더니.” “세리아.” “네.” “밥 먹어.” “…….” 수상하다. 아주.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혹시.” 그가 나를 봤다. “이혼 얘기 때문에 그래요?” “…….” 맞네.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또 그 말.” “계약 내용이니까.”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년 후 합의 이혼.” 레오나르드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여러 번 말할 필요 있나?” “왜요?” “나도 기억한다.” “확인하는 거죠.” “뭘.” “공작님이 자꾸 계약 남편답지 않게 행동하니까.” “…….” “가문 일도 도와주고.” “그건.” “제 옷에도 신경 쓰고.” “…….” “다른 남자랑 춤추는 것도 싫어하고.” “그건 그 늑대가—” “그리고 담요까지 만들어주고.” 레오나르드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웃었다. “그러다가 정들겠어요.” 장난이었다. 정말. 가벼운 농담. 그런데. 레오나르드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요?” “정들면.” 그가 물었다. “어떻게 되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 “계약 기간 동안.” 그가 천천히 말했다. “정들면 어떻게 할 거냐고.” “…….” 생각해 본 적 없다. 왜냐하면. 그럴 일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끝내야죠.” “왜.” “계약이니까.” “계약은 바꿀 수 있는데.” “…….” 내 손이 멈췄다. 레오나르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잠시. 아주 묘한 정적이 흘렀다. “공작님.” “…….” “방금.” “잊어.” “아니.” “세리아.” “계약을 바꿀 수 있다고 했죠?” “일반론이다.” “무슨 일반론을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요?” “밥 먹어.” “도망가네요?” “안 간다.” “눈 피했는데.” “안 피했다.” 그 순간. 툭. 황금빛 귀가 나타났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귀 하나가. 뒤로 슬쩍 눕는 것을 봤다. “…….” 레오나르드가 바로 감췄다. 늦었다. 나는 봤다. “공작님.” “못 봤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 “귀 나왔어요.” “착각.” “또 거짓말.” 나는 웃음을 참았다. “당황했죠?” “아니.” “맞네.” “아니다.” “귀 보여줘요.” “싫어.” “왜요?” “네가 놀리니까.” 나는 결국 웃었다. 조금 전까지 묘하게 무거웠던 분위기가 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했던 말만은 머릿속에 남았다. 계약은 바꿀 수 있는데. 나는 괜히 차를 마셨다. 아직. 결혼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고작 이틀. 그런데 왜. 1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조금 짧게 느껴졌을까. ⸻ 오후. 황궁.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황제가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후계자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나는 웃었다. “폐하.” “왜.” “결혼한 지 이틀 됐습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벌써 후계자를 물으시면…….” “발테리온의 원로들은 결혼식 다음 날부터 나를 찾아왔어.” 황제가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황금사자의 후계가 어쩌고, 혈통이 어쩌고.” 레오나르드가 무심하게 말했다. “무시하십시오.” “자네가 직접 무시하라고 말해.” “그러고 있습니다.” “안 들으니까 문제지.” 황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공작부인.” “네, 폐하.” “고생이 많겠군.” “……네?” “저놈 성격 받아주려면.” 나는 순간 웃음을 참았다. 옆에서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폐하.” “왜. 틀린 말인가?” “…….” 나는 결국 입가를 가렸다. “괜찮습니다.” “정말?” “생각보다.” 레오나르드를 슬쩍 봤다. “귀여운 면도 있어서요.” “세리아.” 황제가 눈을 크게 떴다. “귀엽다고?” “네.” “저놈이?” “폐하.” 레오나르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황제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뭐가 귀엽지?” “귀가요.” “세리아.” “사자 귀가 생각보다 둥글어서—” “그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레오나르드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안 미안해 보이는데.” “조금은 미안해요.” 황제는 한참 웃다가 겨우 진정했다. “좋아. 후계 문제는 당분간 내가 막아주지.” “감사합니다.” “대신.” 불길하다. 황제가 우리를 바라봤다. “이번 달 말까지 두 사람이 북부 별궁에 다녀오게.” “……별궁이요?” “발테리온의 혼인 전통이라더군.” 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전통인데요?” 황제가 웃었다. “신혼부부가 보름 동안 단둘이 지내는 거라던데.” “…….” “…….” 단둘이. 보름. 나는 천천히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도 나를 봤다. 황제가 덧붙였다. “그리고 별궁에는.” 왜. 뒤에 더 있을 것 같지? “부부 침실이 하나뿐이라더군.” “…….” “…….” 정적. 내 귀가. 통제할 틈도 없이. 툭. 나타났다. 그리고. 쫑긋. 솟았다. 황제가 그것을 봤다. 레오나르드도 봤다.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귀를 눌렀다. “아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순간. 옆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레오나르드였다. “웃지 마요.” “안 웃었다.” “웃었잖아요!” “조금.” “공작님!” 그런데.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레오나르드의 뒤로. 황금빛 꼬리가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기분 좋은 듯. 천천히. 한 번 흔들렸다는 것을.“같이 다녀요.”내가 먼저.레오나르드의 손을 잡았다.그리고.황금빛 귀가.툭.나왔다.나는 웃었다.“또 나왔다.”“신경 쓰지 마.”“좋아하면서.”“그래.”이번에는.그가 부정하지 않았다.손가락이.내 손 사이로 들어왔다.천천히.깍지를 꼈다.“좋아.”심장이.따뜻해졌다.나는.잡힌 손을 바라봤다.처음에는.1년만 버티려고 했다.그런데.이제는.하루가 지날수록.다른 생각이 들었다.1년 뒤.헤어지지 않는 방법을.먼저.내가 찾게 되는 건 아닐까.그리고.그 사실이.이전만큼 무섭지는 않았다.⸻문제는.그날 밤부터였다.“……왜 따라와요?”나는 침실 문 앞에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레오나르드가 너무도 태연하게 서 있었다.“어디를.”“제 뒤요.”“같은 방 쓰잖아.”“아.”맞다.별궁에서는.같은 방.같은 침대.그리고.어젯밤.계약서는 생각하지 말자고 했고.체향 의식까지 했다.나는 괜히 헛기침했다.“그렇죠.”문을 열었다.그런데.들어가자마자.또 문제가 생겼다.침대.정확히는.침대 위에 놓인 것.“…….”나는 천천히 다가갔다.붉은 꽃잎.황금빛 리본.그리고.침대 한가운데 놓인 작은 카드.“이건 또 뭐예요?”레오나르드가 카드를 집었다.읽었다.그리고.표정이 묘해졌다.“뭔데요?”“…….”“줘봐요.”나는 카드를 빼앗았다.그리고.읽었다.신혼 의식 둘째 날.불길하다.아래.작은 글씨.부부는 서로의 체향을 온전히 받아들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밤새 같은 이불을 사용합니다.“…….”나는 카드를 뒤집었다.뒷면에도 글이 있었다.가능하다면 서로의 품 안에서 잠드십시오.“…….”나는 그대로 굳었다.레오나르드가 낮게 웃었다.“웃지 마요.”“안 웃었다.”“웃고 있잖아요.”“조금.”“이 가문은 대체 신혼부부한테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요?”“나도 처음 알았다.”“진짜요?”“그래.”“거짓말 아니죠?”“귀 보여줄까.”나는 그를 바라봤다.“……요즘 그거 이용
“두 분이.”엘로디아가 웃으며 말했다.“1년 뒤 헤어지기로 했다는.”정적.방 안의 공기가.완전히 식었다.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그도.나를 보고 있었다.1년.그건.우리 둘만의 계약이었다.정확히는 계약서를 작성한 변호사와 극소수의 측근들만 알고 있는 내용.외부에 알려질 이유가 없었다.특히.과거 레오나르드와 혼담이 오갔던 여자가 알 이유는.더더욱.없었다.내 꼬리가.그의 다리를 더 세게 감았다.이번에는.나도 일부러 풀지 않았다.레오나르드가 아주 천천히 시선을 엘로디아에게 돌렸다.“누구에게 들었지.”목소리가 차가웠다.엘로디아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그게 중요한가요?”“중요하다.”“그냥 소문이에요.”“소문에는 시작점이 있어.”레오나르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잠깐.”그가 나를 봤다.“제가 물을게요.”“세리아.”“괜찮아요.”나는 엘로디아를 바라봤다.그리고.웃었다.“영애.”“네.”“그 소문.”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어디서 들으셨어요?”엘로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사교계에서요.”“어느 사교계요?”“…….”“수도에 있는 귀족들이 그렇게 한가한가 봐요.”나는 부드럽게 말했다.“남의 결혼 계약 기간까지 알아낼 정도로.”엘로디아의 미소가 희미해졌다.“굳이 따지실 필요가 있을까요?”“있죠.”“왜요?”“사실이 아니니까.”말해놓고.심장이 순간 움찔했다.사실이다.정확히.1년 뒤 합의 이혼.계약서에 쓰여 있다.그런데.나는.거짓말을 했다.엘로디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사실이 아니라고요?”“네.”나는 웃었다.“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그리고.일부러 레오나르드의 팔을 조금 더 끌어안았다.“저희 사이가 그렇게 보였나 봐요?”“…….”엘로디아의 시선이.내 손으로 향했다.그리고.내 꼬리.아직도 레오나르드의 다리에 감겨 있는 붉은 꼬리.“공작부인.”그녀가 천천히 말했다.“그럼.”웃었다.“1년
아침에 눈을 떴을 때.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그게.가장 큰 문제였다.“…….”바로 앞.레오나르드의 얼굴.느린 숨.흐트러진 금발.그리고.내 허리를 감싼 팔.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이제.놀랍지도 않았다.오히려.익숙했다.“……큰일 났네.”아주 작게 중얼거렸다.이 상황이.익숙해졌다는 사실이.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그런데.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자는 줄 알았는데.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레오나르드.”대답이 없다.“일어났죠?”침묵.“다 알아요.”그 순간.입꼬리가.아주 조금.올라갔다.“…….”나는 바로 그의 가슴을 밀었다.“일어났잖아요!”황금빛 눈이 천천히 열렸다.“좋은 아침.”“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조금 전.”“거짓말.”“왜.”“웃었잖아요.”“네가 귀여워서.”“또 그 말.”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런데.팔이 아직 허리에 있었다.“손.”“싫어?”“…….”이전 같았으면.바로 놓으라고 했을 텐데.이번에는.대답이 늦었다.그것을.레오나르드도 알아챘다.“세리아.”“네.”“싫으면 놓을게.”나는 잠시 그의 팔을 바라봤다.그리고.아주 작게 말했다.“……조금만 더.”말해놓고.얼굴이 뜨거워졌다.레오나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팔에 조금 힘을 주었다.몸이.다시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나도.밀어내지 않았다.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짙은 체향.따뜻한 체온.평온했다.이상할 정도로.“레오나르드.”“응.”“우리.”“그래.”“계약결혼 맞죠?”그의 몸이.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왜 갑자기.”“그냥.”나는 그의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렸다.“자꾸 잊을 것 같아서.”“…….”“이러다.”웃으려고 했는데.잘 안 됐다.“진짜 부부 같잖아요.”침묵.레오나르드가 말했다.“싫어?”“…….”또.그 질문.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을 바라봤다.“아니요.”솔직하게.
“오늘 밤.”나는 닫힌 상자를 바라봤다.“아무 일도 없기는.”시선이 옆으로 향했다.레오나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나를 바라봤다.황금빛 눈동자.조금 전까지 나와 있던 귀는 이미 감췄지만.그것만으로는 소용없었다.나는 봤다.아까.저 귀가 얼마나 바짝 서 있었는지.“…….”분명 나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나는 괜히 상자를 밀었다.“저녁부터 먹어요.”“그래.”“그리고.”“응.”“아까 그건 잊어요.”“뭘.”“귀 나온 거.”“네 귀?”“공작님 귀요!”레오나르드가 피식 웃었다.“왜.”“왜긴요.”“네 것도 나왔는데.”“저는 놀라서 그런 거고.”“나는?”“…….”말이 막혔다.그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나는 왜 나왔을까.”“모르죠.”“정말?”“네.”“냄새가 다른데.”나는 바로 코를 막았다.“그 말 금지.”“이미 나는데.”“맡지 마요.”“숨 쉬지 말라고?”“적어도 분석하지는 마요!”레오나르드가 웃었다.나는 그를 노려봤다.그러다가.결국.나도 웃고 말았다.정말.이 남자랑 있으면 자꾸 흐름이 이상해진다.⸻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조용했다.정확히는.나는 계속 음식만 봤다.레오나르드는 그런 나를 보고 있었고.“…….”또.시선이 느껴진다.나는 수프를 한 숟갈 떠먹었다.“왜 봐요?”“그냥.”“그냥 왜요.”“귀여워서.”숟가락이 멈췄다.“…….”“왜.”“그 말.”나는 그를 봤다.“자꾸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마요.”“왜.”“제가 신경 쓰이잖아요.”말해놓고.멈췄다.아.내가 지금 뭘—레오나르드도 멈췄다.“신경 쓰여?”“…….”“내가?”“그런 뜻이 아니라.”“세리아.”“밥 먹어요.”“대답.”“싫어요.”“왜.”“민망하니까.”솔직하게 말해버렸다.잠시.정적.레오나르드가 아주 조금 웃었다.“알았다.”이번에는 정말 더 묻지 않았다.……저렇게 쉽게 넘어가니까 더 신경 쓰이잖
“한 번 더 하면.”나는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물었다.“계약 위반이에요?”정적.레오나르드의 황금빛 귀가 바짝 서 있었다.꼬리까지.탁.바닥을 한 번 쳤다.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기분 좋구나.”“세리아.”“귀가 다 말하는데요?”“지금 그게 중요해?”“조금?”그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웃고 있었다.그리고.나도 웃고 있었다.묘한 기분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쏜 화살 때문에 온몸이 떨렸는데.지금은.전혀 다른 이유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내 손은 여전히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놓아야 하는데.왠지.놓고 싶지 않았다.레오나르드가 그 손을 내려다봤다.그리고 다시 나를 봤다.“세리아.”“네.”“한 번 더.”낮은 목소리.“정말 하고 싶어?”“…….”이번에는.내가 선택해야 했다.그가 원하는지 아닌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저 귀만 봐도 충분했다.중요한 건.내가 원하는지.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조금 전의 입맞춤이 떠올랐다.짧고.조심스러웠다.오히려 너무 빨리 끝나서.아쉬웠다.그럼.답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닐까.“……네.”아주 작게 대답했다.레오나르드의 눈빛이 짙어졌다.“확실해?”“자꾸 물어보면.”괜히 민망해져서.나는 입술을 삐죽였다.“마음 바뀔 수도 있어요.”“그건 곤란한데.”이번에는.그가 바로 다가왔다.하지만.여전히 서두르지는 않았다.한 손이 내 뺨을 감쌌다.손끝이 귀 아래를 천천히 스쳤다.그 작은 접촉만으로도.어깨가 움찔했다.“…….”레오나르드가 멈췄다.“싫어?”“아니요.”“그럼.”“그냥.”나는 시선을 피했다.“간지러워서.”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웃지 마요.”“안 웃었는데.”“웃고 있잖아요.”“조금.”“정말.”말이 끝나기도 전에.그가 몸을 숙였다.입술이 닿았다.이번에는.아까보다 조금 길었다.나는 눈을 감았다.첫 번째 입맞춤은 확인에 가까웠다면.이번에는.서로가 정말 원한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았다.레오
“다음에는.” 낮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듣고 싶어지면 물어.”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 “그때는 대답할 테니까.”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혹시 레오나르드에게 들릴까 봐.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등을 돌린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검은 셔츠. 넓은 어깨. 조금 흐트러진 금발. 조금 전까지 내 손끝에 닿아 있던 황금빛 귀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 대체. 뭘 참는다는 걸까. 아니. 사실.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묻지 못했다. 나는 성인이다. 결혼까지 했다. 아무리 계약결혼이라 해도. 남녀 사이에서. 한 침대 위에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며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레오나르드라서. 문제였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는 내게 그저 황금사자였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수인. 무뚝뚝하고. 냉정하고. 결혼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남자. 나 역시 그를 남자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계약 상대. 그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결혼한 지 며칠 만에. 이 남자의 냄새가 익숙해졌다. 품에 안기면 편했고. 귀를 만지는 것도 좋았다. 그가 다른 남자를 보고 질투하는 모습은. ……조금 귀여웠다. 그리고 오늘. “…….” 나는 내 손을 바라봤다. 아직도 손끝에. 그의 귀를 만졌던 감촉이 남은 것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했던. “미쳤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세리아.” “……!”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왜요.” “안 자?” “자고 있었어요.” “말했는데.” “잠꼬대.” “대답도 했는데.” “저 원래 잠꼬대 잘해요.” “처음 듣는데.” “오늘부터 아시면 돼요.” 잠시 침묵. 그리고. 레오나르드가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왜 웃어요.” “안 웃었다.” “또 거짓말.”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