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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남편이 질투하는 것 같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1 08:58:54

“한 곡 청해도 되겠습니까?”

은발의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옆을 봤다.

레오나르드가 웃고 있었다.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내 허리를 감싼 손에도 조금 힘이 들어가 있었다.

“…….”

이거.

설마.

나는 다시 은발의 남자를 바라봤다.

짙은 회색 눈동자.

단정한 은발 사이로 살짝 드러난 늑대의 귀.

귀족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얼굴이었다.

에드윈 클레멘트 후작.

서부를 다스리는 은빛늑대 일족의 수장.

발테리온과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닌.

정확히 말하면.

경쟁 관계에 가까운 가문이었다.

“영광이에요, 후작님.”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

왜 이래.

나는 레오나르드를 슬쩍 올려다봤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레오나르드?”

“왜.”

“손.”

“응.”

“놓아야 제가 춤을 추죠.”

“…….”

잠시 정적.

그러다.

“그래야 하나?”

“당연하죠.”

“꼭 춰야 하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공작님.”

“왜.”

“지금 설마.”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다른 남자랑 춤추는 게 싫으세요?”

“그래.”

“…….”

너무 즉답이었다.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왜요?”

“싫으니까.”

“그러니까 왜 싫냐고요.”

“…….”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에드윈이 흥미롭다는 듯 우리를 바라봤다.

“혹시 제가 방해한 겁니까?”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동시에.

“그런 것 같군.”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공작님!”

“왜.”

“방해 아니거든요?”

“내 기준에는 맞아.”

“또 공작님 기준!”

“내 기준이 중요한데.”

“왜요?”

“내 아내니까.”

“……계약.”

“알아.”

레오나르드가 먼저 잘랐다.

“계약 아내.”

그런데도.

그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사교계에서 첫 춤 이후에는 다른 상대와 춤춰도 아무 문제 없어요.”

“알아.”

“그럼 놓으세요.”

“싫다.”

“왜요?”

“저 늑대가 마음에 안 들어.”

에드윈이 웃었다.

“제가 다 듣고 있습니다만.”

“들으라고 한 말이다.”

“레오나르드!”

내가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

단단하다.

아니.

왜 옆구리까지 이렇게 단단해?

꼬집히기는 하는 건가?

레오나르드가 천천히 나를 내려다봤다.

“지금.”

“뭐요.”

“나 꼬집었나?”

“네.”

“왜?”

“말을 안 들으니까.”

“…….”

그의 눈빛이 묘해졌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왜 그렇게 봐요?”

“아무것도.”

또.

저 아무것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드의 손등을 톡톡 쳤다.

“놓으세요.”

“…….”

“사람들 봐요.”

그 말에야 레오나르드가 주변을 둘러봤다.

실제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주 대놓고.

누군가는 부채 뒤에서 속닥거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웃음을 참았다.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것 봐요.”

“보라고 해.”

“저는 싫어요.”

그 말에.

레오나르드가 멈췄다.

잠시 후.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풀렸다.

“알았다.”

나는 조금 놀랐다.

이렇게 쉽게?

그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정말 싫다고 하면 결국 놓는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내가 목을 움츠리자 바로 물러났다.

……이상한 사자.

나는 에드윈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

으르렁.

나는 굳었다.

에드윈도 멈췄다.

주변의 육식계 수인들이 동시에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나는 천천히 뒤돌았다.

“……공작님.”

“왜.”

“방금.”

“뭐.”

“으르렁거렸죠?”

“아닌데.”

“했잖아요.”

“안 했다.”

“저도 들었거든요?”

에드윈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들었습니다.”

레오나르드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넌 빠져.”

“이래서야 춤을 청한 보람이 있군요.”

“뭐?”

“제국의 황금사자가 질투하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도 멈췄다.

레오나르드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질투.

……설마.

나는 그를 바라봤다.

“공작님.”

“아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아니까.”

“질투해요?”

“아니.”

“그런데 왜 으르렁거려요?”

“본능.”

“왜 제 허리에 손 올려요?”

“본능.”

“왜 향 묻혔어요?”

“본능.”

“왜 다른 드레스 입으라고 했어요?”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도 본능?”

잠시 침묵.

“그래.”

“거짓말.”

“…….”

“공작님 지금 거짓말했죠?”

황금빛 귀가.

아주 잠깐.

나타났다.

그리고.

움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귀.”

레오나르드가 바로 감췄다.

“봤어요.”

“못 봤어.”

“봤거든요!”

“착각이다.”

“움직였어요!”

“춤이나 춰.”

그가 몸을 돌렸다.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아.

이 남자.

귀가 솔직하구나.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중요한 약점을 발견한 기분으로 에드윈과 무도회장 중앙으로 향했다.

⸻

음악이 시작됐다.

에드윈은 생각보다 춤을 잘 췄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두 분.”

그가 웃었다.

“정말 정략결혼 맞습니까?”

발이 순간 꼬일 뻔했다.

“왜 그런 걸 물으세요?”

“사교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으니까요.”

계약결혼이라는 것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황금사자와 붉은여우 가문의 정략결혼.

그 정도였다.

“맞아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뭐가요?”

에드윈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로 향했다.

“저렇게 보는 정략 남편은 처음이라.”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는데요?”

“궁금하십니까?”

“조금.”

에드윈이 낮게 웃었다.

“제가 부인의 허리에 손을 올리면 죽이겠다는 얼굴입니다.”

“…….”

나는 결국 뒤를 돌아봤다.

레오나르드는 연회장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손에는 샴페인 잔.

표정은 무심했다.

하지만.

황금빛 눈은.

정확히.

에드윈의 손을 보고 있었다.

내 허리에 얹힌 손.

“…….”

정말이네.

나는 황급히 앞을 봤다.

“원래 사자들은 영역의식이 강하잖아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럼요?”

“짝에게 보이는 반응에 가깝죠.”

발이 멈출 뻔했다.

“……짝이요?”

“예.”

“아니에요.”

나는 바로 부정했다.

“저희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네.”

“그런데 공작 전하의 체향이 부인에게 상당히 진하게 배어 있는데.”

“그건!”

목소리가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

나는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저 인간이 마음대로 묻힌 거예요.”

“마음대로?”

“네.”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네.”

에드윈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

나는 멈칫했다.

그가 말했다.

“수인에게 체향 표시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니까요.”

“알아요.”

“특히 목덜미 가까이에는.”

“목에는 안 했어요.”

“다행이군요.”

에드윈이 내 손을 잡은 채 한 바퀴 돌렸다.

“배우자라 해도 원하지 않는 표식은 남겨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이 묘하게 남았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작 전하께서도 그 선은 아실 겁니다.”

“……그런 것 같아요.”

이상하게도.

그 부분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드는 계속 장난치고.

향을 묻히고.

나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내가 정말 싫다고 말한 순간에는 멈췄다.

그렇다면.

아까의 체향은.

“…….”

내가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아서?

아니.

그렇다고 마음대로 묻혀도 된다는 건 아니지.

나중에 제대로 이야기해야겠다.

음악이 끝났다.

에드윈이 내 손등에 입을 맞추려 했다.

그 순간.

“거기까지.”

낮은 목소리.

동시에.

내 손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레오나르드가 내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

몸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익숙한 향이 확 밀려왔다.

“공작님!”

“춤 끝났잖아.”

“인사는 해야죠.”

“했다.”

“누가요?”

“내가.”

에드윈이 웃었다.

“질투가 아니라더니.”

“꺼져.”

“예. 오늘은 이만 물러나 드리죠.”

에드윈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즐거웠습니다, 공작부인.”

“저도요.”

“다음에 또—”

“없다.”

레오나르드가 잘랐다.

“…….”

에드윈은 결국 웃으며 떠났다.

나는 레오나르드의 가슴을 밀었다.

“놔요.”

이번에는 바로 놓아주었다.

나는 그를 노려봤다.

“저희 얘기 좀 해요.”

“여기서?”

“조용한 곳으로 가요.”

“…….”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왜인지.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래.”

⸻

우리는 연회장과 연결된 작은 테라스로 나왔다.

문이 닫히자 음악 소리가 멀어졌다.

밤공기가 시원했다.

나는 난간 앞에 섰다.

레오나르드가 뒤따라왔다.

“말해.”

“공작님.”

“응.”

“앞으로.”

나는 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제 허락 없이 체향 묻히지 마세요.”

레오나르드의 표정이 굳었다.

“…….”

“들었죠?”

“그래.”

생각보다 바로 대답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안 따져요?”

“네가 싫다잖아.”

“…….”

“그러면 안 해야지.”

또.

이렇다.

나는 괜히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미안하다.”

이번에는 더 놀랐다.

“……네?”

“아까 마차에서.”

“…….”

“네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

나는 레오나르드를 올려다봤다.

그는 장난치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앞으로 안 할게.”

“……네.”

“네가 허락하기 전에는.”

마지막 말이 묘했다.

“허락할 일 없을 건데요.”

“그건 모르는 거지.”

“공작님.”

“왜.”

“또 시작이네.”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이게 차라리 익숙하다.

나는 난간에 기대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해.”

“아까.”

“응.”

“질투했어요?”

레오나르드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왜 대답 안 해요?”

“아니라고 했잖아.”

“에드윈 후작이 제 손 잡았을 때 으르렁거렸잖아요.”

“…….”

“허리 볼 때도 계속 쳐다보고.”

“…….”

“춤 끝나자마자 데려왔고.”

“세리아.”

“네.”

“재미있나?”

“조금?”

“…….”

나는 결국 웃었다.

“공작님도 당황하긴 하는구나.”

“당황 안 했다.”

“귀 나왔잖아요.”

“안 나왔다.”

“봤다니까요?”

“착각.”

“또 거짓말.”

나는 그의 머리 위를 빤히 바라봤다.

“귀 보여줘요.”

“싫어.”

“왜요?”

“네가 놀릴 거니까.”

“안 놀릴게요.”

“못 믿겠는데.”

“한 번만.”

“싫다.”

나는 괜히 오기가 생겼다.

“저는 어제 결혼식 내내 귀랑 꼬리 다 보여줬잖아요.”

“그건 결혼식이니까.”

“공작님도 보여줬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못 봤어요.”

“…….”

“한 번만 보여줘요.”

레오나르드가 나를 내려다봤다.

“보고 싶어?”

“네.”

대답하고 나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렇게 보고 싶나.”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내 귀가?”

“……네.”

레오나르드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

“…….”

“너도 보여줘.”

“제 귀요?”

“그래.”

“왜요?”

“나도 보고 싶으니까.”

“…….”

이상하다.

분명 귀 얘기인데.

왜 분위기가 이렇지?

나는 침을 삼켰다.

“그냥 귀인데요.”

“그러게.”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그냥 귀인데.”

목소리가 낮아졌다.

“왜 그렇게 긴장하지?”

“누가 긴장했다고…….”

“냄새가 달라졌는데.”

“……!”

나는 코를 막았다.

레오나르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거 한다고 안 나는 거 아니다.”

“정말 불공평해.”

“뭐가.”

“공작님은 제 감정 다 알잖아요.”

“전부는 몰라.”

“냄새로 알면서.”

“대충.”

“그게 어디예요.”

“그럼.”

그가 말했다.

“나도 보여줄 테니까.”

황금빛 빛이 그의 머리 위로 희미하게 번졌다.

그리고.

툭.

금빛 귀 두 개가 나타났다.

“…….”

나는 말을 잃었다.

사람 모습에서 보니까.

결혼식 때와 또 달랐다.

짙은 금발 사이로 솟은 사자의 귀.

생각보다 둥글고.

……귀엽다.

“…….”

“왜.”

“아니.”

“왜 웃지?”

“안 웃었어요.”

“웃었는데.”

“조금.”

“…….”

귀 하나가 뒤로 눕혀졌다.

나는 결국 참지 못했다.

“귀여워.”

정적.

레오나르드의 얼굴이 굳었다.

“뭐?”

“귀요.”

“…….”

“생각보다 귀여운데요?”

황금빛 귀가 완전히 뒤로 눕혀졌다.

“세리아.”

“네.”

“그 말 취소해.”

“왜요?”

“사자한테 귀엽다고 하지 마.”

“귀여운데 어떡해요.”

“…….”

나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만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허락 없이 체향을 묻히지 말라고.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손을 내렸다.

“왜.”

레오나르드가 물었다.

“아니에요.”

“만지고 싶었나?”

“……조금.”

“그럼 만져.”

나는 눈을 깜빡였다.

“돼요?”

“허락했잖아.”

“…….”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손끝이 황금빛 귀 끝에 닿았다.

부드러웠다.

생각보다 훨씬.

“……우와.”

살짝 쓸어보았다.

귀가 움찔했다.

“움직였어요.”

“당연하지.”

“한 번 더.”

“세리아.”

“잠깐만요.”

이번에는 귀의 둥근 부분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 순간.

탁.

손목이 잡혔다.

“……?”

레오나르드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까와 달랐다.

눈빛이 짙었다.

호흡도 조금.

정말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왜 그래요?”

“……그만.”

“아팠어요?”

“아니.”

“그럼.”

레오나르드가 내 손목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거기.”

“네.”

“계속 만지면.”

잠시 침묵.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참기 힘들어.”

“……뭘요?”

그가 눈을 떴다.

황금빛 눈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

그런 의미구나.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 저는 그냥…….”

“알아.”

“귀가 귀여워서…….”

“그 말도 그만.”

“왜요?”

“더 이상 귀여운 상태가 아니니까.”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레오나르드가 천천히 내 손목을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가까웠다.

너무 가까웠다.

그의 체온.

숨결.

체향.

모든 것이 선명했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나려고 했다.

그 순간.

테라스 문이 열렸다.

“공작 전하.”

시종이었다.

우리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시종이 굳었다.

왜?

나는 의아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레오나르드의 귀는 아직 나와 있었고.

나는 그 바로 앞에 서 있었으며.

내 손은 조금 전까지 그의 귀를 만지고 있었다.

시종의 얼굴이 묘해졌다.

“……죄송합니다.”

“잠깐.”

“방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쾅.

문이 닫혔다.

나는 멍하니 문을 바라봤다.

“…….”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오해했군.”

“누구 때문인데요!”

“네가 내 귀 만졌잖아.”

“허락했잖아요!”

“그래.”

“그런데 왜 제 탓처럼 말해요?”

“탓한 적 없는데.”

“표정이 그렇거든요?”

그가 피식 웃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들어가요.”

“잠깐.”

“또 뭐예요?”

레오나르드가 내 머리 위를 바라봤다.

“약속.”

“무슨 약속?”

“나만 보여줬잖아.”

“…….”

아.

내 귀.

“꼭 보여줘야 해요?”

“싫으면 안 보여줘도 돼.”

그런데.

저렇게 말하니까 더 보여줘야 할 것 같잖아.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수인화를 억누르던 마력을 풀었다.

붉은빛이 머리 위로 번졌다.

툭.

붉은 여우 귀가 나타났다.

뒤이어.

풍성한 꼬리도 드레스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됐죠?”

대답이 없다.

“공작님?”

레오나르드는 내 얼굴이 아니라.

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꼬리.

다시 귀.

“……왜 그렇게 봐요?”

“세리아.”

“네.”

“나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뭔데요?”

그가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꼬리도 만져도 돼?”

“안 돼요.”

즉답했다.

레오나르드의 눈썹이 움직였다.

“왜.”

“왜긴 왜예요!”

“나는 귀 만지게 해줬는데.”

“귀랑 꼬리가 같아요?”

“뭐가 다른데.”

나는 입을 벌렸다.

이 남자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여우 수인에게 꼬리는.

귀보다 훨씬 민감했다.

특히 꼬리의 뿌리 가까이는.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연인이 아니라면 손을 대지 않는 부위였다.

“안 돼요.”

“알았다.”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데.

레오나르드의 시선은 여전히 내 꼬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보지도 마세요.”

“그건 너무하지 않나.”

“왜요?”

“눈앞에서 흔들리는데.”

나는 뒤를 봤다.

정말.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

나는 황급히 꼬리를 붙잡았다.

레오나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분 좋나?”

“아니거든요.”

“꼬리가 그런데.”

“바람 때문에!”

“실내인데.”

“테라스잖아요!”

“바람 안 부는데.”

“…….”

정말.

이 남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

“들어가요.”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레오나르드가 갑자기 말했다.

“세리아.”

“왜요?”

“다음에는.”

나는 돌아봤다.

그의 황금빛 귀가 아직도 나와 있었다.

“내가 만져도 된다고 생각되는 날이 오면.”

시선이 천천히 내 꼬리로 향했다.

“네가 먼저 말해.”

“…….”

“그전에는 안 건드릴 테니까.”

나는 멈칫했다.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었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거다.

허락 없이 하지 말라고.

“……네.”

나는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을 통과하는 순간에도.

꼬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살랑.

살랑.

기분 좋은 것처럼 움직였다.

나는 황급히 붙잡았다.

정말이지.

이 꼬리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

그날 밤.

연회가 끝난 뒤.

나는 침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멈췄다.

“……?”

침대 위.

어제의 황금빛 담요 옆에.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붉은색 리본이 있었다.

그리고 짧은 쪽지.

꼬리 묶으라고.

“…….”

나는 한참 쪽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미친 사자!”

옆방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 들려요!”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붉은 리본을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 비단.

꼬리를 상하지 않게 묶는 수인 전용 리본이었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대.

나는 한동안 리본을 바라봤다.

그리고 결국.

피식.

웃어버렸다.

“진짜 이상한 남자야.”

그런데.

그날 밤에도.

나는 그의 담요를 덮고 잤다.

이번에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냥.

따뜻했으니까.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은.

그 냄새가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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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다시 세 걸음을 걸었다.전날 네 걸음을 안정적으로 끝냈다고 해서 오늘도 네 걸음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치료사는 오른쪽 무릎과 발목을 차례로 확인한 뒤 종아리를 눌러보고, 발가락 감각까지 점검한 다음 오늘의 훈련량을 정했다.“세 걸음 하겠습니다.”리시안은 잠깐 치료사를 바라봤다.“네 걸음 뒤라서요?”“그것도 있고, 어제 오후에 오래 앉아 있었으니까요. 계약 서류를 봤다고 들었습니다.”리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아주 오래 봤어요.”“두 시간이 안 됐어.”“쉬는 시간 빼고도?”리시안이 입을 다물었다.치료사가 웃음을 삼키며 새 보행화의 오른쪽 지지대를 확인했다.“앉아 있는 것도 피로입니다. 오늘은 세 걸음으로 반응을 확인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이번에는 다섯 번째를 묻지도 않았다.기립은 다섯 번이었다.첫 번째에는 오른쪽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확인했고, 두 번째에는 양쪽 무릎의 높이를 맞췄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안정적이었다. 다섯 번째에는 손에 실리는 힘을 조금 줄였지만 몸이 기울지 않았다.잠깐 쉬고 걷기를 시작했다.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리시안은 세 번째 발이 바닥에 완전히 닿은 것을 확인한 뒤 멈췄다.“끝.”아쉬움은 있었다.하지만 몸이 앞으로 쏠리지는 않았다.다음 발을 내딛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다음 발을 내딛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치료사가 기록했다.신규 보행화 11일 차.기립 5회.3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전일 4보 수행 후 부하 조절. 우측 무릎·발목 안정. 종아리 긴장 증가 없음. 감각 정상 범위 유지.리아가 기록을 내려다봤다.“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하네.”“뭘.”“왜 세 걸음이냐고.”“들었잖아.”“다섯 걸음은 언제냐고도 안 물었고.”리시안은 잠깐 검은 보행화를 내려다봤다.“물어도 오늘 걸을 건 아니니까.”리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오.”“왜.”“그냥.”“그 표정 뭔데.”“우리 오빠가 참을성을 배웠구나 싶어서.”“나 원래 있었어.”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남겨야 하는 것은 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은 걷지 않았다.아침에 치료사가 오른쪽 종아리를 확인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통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발목도 안정적이었고, 발가락 감각에도 변화가 없었다. 전날의 세 걸음 뒤 특별한 이상 반응도 없었다.그런데 그래서 더 걸을 이유도 없었다.“오늘은 근력과 균형만 하겠습니다.”리시안은 예전처럼 곧바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한 번 확인했다.“어제 상태가 나빠져서요?”“아닙니다.”“그럼 부하 조절입니까?”“맞습니다. 새 보행화로 네 걸음까지 확인했고, 다음 날 세 걸음으로 조절했습니다. 오늘은 보행 없이 발목과 무릎의 반응만 보겠습니다.”리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리아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제 오빠가 먼저 답을 거의 다 말하네.”“확인한 거야.”“그게 그거지.”“달라.”“어떻게?”리시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내가 정한 게 아니잖아.”리아가 눈을 깜빡였다.치료사가 웃음을 참듯 입가를 움직였다.리시안은 조금 민망해져 시선을 돌렸다.오늘 걸을지 말지를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치료사가 무엇을 확인했고 왜 오늘 걷지 않는지 들었다.그 정도면 됐다.오전 재활은 예정대로 근력과 균형 훈련만 했다. 오른쪽 발목을 천천히 굽혔다 펴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체중을 옮겼다. 보행은 없었다. 기립 횟수로 세는 훈련도 하지 않았다.기록은 짧았다.신규 보행화 9일 차.보행 없음.근력·균형 훈련 시행.우측 종아리 긴장 감소. 발목·감각 안정.리시안은 기록을 읽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어제 세 걸음.오늘은 영 보.그런데도 이상하게 뒤로 돌아간 느낌은 들지 않았다.오히려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멈춘 것인지 알고 있으니 기다릴 수 있었다.문제는 재활실에서 나와 서재로 돌아왔을 때였다.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자 리시안의 시선이 곧바로 가장 위의 종이에 꽂혔다.제3호 매각 협의 — 통행로 현장 실측 결과.어제 자신이 요청했던 자료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제가 승인한 것은 이 문장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다섯 번째 걸음을 묻지 않았다.치료사가 먼저 새 보행화를 벗겨 오른쪽 발목을 확인했다. 복사뼈 주변에 눌린 자국은 없었고, 발가락 감각도 전날과 같았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 동안 통증도 없었다. 다만 종아리 뒤쪽을 눌렀을 때 전날보다 아주 조금 단단한 부분이 있었다.“아픕니까?”“아니요.”“당기는 느낌은요?”리시안이 발목을 천천히 움직여봤다.“조금 있습니다.”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세 걸음 하겠습니다.”리아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말했다.“어제 네 걸음 했으니까 오늘 세 걸음.”치료사가 웃었다.“꼭 그것만으로 정하는 건 아닙니다.”“그래도 맞았잖아요.”“오늘은 맞았습니다.”리시안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신발을 다시 신었다. 오른쪽 신발의 지지대를 조절한 뒤 천천히 일어섰다.오늘 기립은 다섯 번이었다.첫 번째에는 체중이 왼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두 번째부터 바로잡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안정적이었다. 다섯 번째에는 일어난 상태로 열을 셀 동안 오른쪽 다리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했다.잠깐 쉬고 걷기를 시작했다.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어제 네 번째를 밟았던 자리보다 한 발 앞에서 멈췄다.“끝.”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리시안은 돌아와 앉았다.이번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전날보다 덜했다. 네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매일 네 걸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치료사는 오른쪽 종아리를 다시 확인한 뒤 기록했다.신규 보행화 8일 차.기립 5회.3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전일 4보 반복 수행 후 부하 조절. 우측 종아리 경미한 긴장. 보행 후 증가 없음. 발목·감각 안정.리아가 기록을 보다가 말했다.“이제 오빠도 익숙해졌지?”“뭐가.”“어제보다 적게 했다고 뒤로 간 게 아니라는 거.”리시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치료사가 신발을 벗기는 동안 오른쪽 발을 내려다봤다.“조금.”“조금?”“알기는 아는데. 기분까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이제는 제가 결정할 차례입니다

    다음 날에도 다섯 번째 걸음은 없었다.치료사가 재활실에 들어오자마자 전날 기록을 펼쳤다.신규 보행화 4일 차.기립 4회.4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우측 발목 지지 및 감각 안정. 4보 후 이상 반응 없음.밤사이 통증과 저림은 없었다. 붓기도 없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른쪽 종아리가 조금 당겼다가 움직이고 나니 풀렸다. 치료사는 그 사실까지 기록한 뒤 발목과 종아리를 눌러보고, 발가락 감각과 무릎 움직임을 차례로 확인했다. 새 신발을 신긴 뒤에도 곧바로 걷게 하지는 않았다.“오늘은 세 걸음입니다.”리아가 먼저 눈을 크게 떴다.“어제 네 걸음 했는데요?”“그래서 오늘은 세 걸음입니다.”리시안도 치료사를 바라봤다.“상태는 괜찮은데도요?”“괜찮습니다. 하지만 어제 네 걸음을 한 번 걸었다는 것과 네 걸음이 이제 안정적인 훈련량이 되었다는 건 다릅니다.”치료사는 기록지를 리시안 쪽으로 조금 돌렸다.“한 번 가능했던 것을 곧바로 다음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리시안의 시선이 어제 기록에 머물렀다. 분명 네 걸음을 걸었다. 걸은 뒤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네 걸음은 당연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다섯 번째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그럼 다섯 걸음은요?”“네 걸음이 반복해서 안정적이라는 걸 확인한 다음입니다.”기립은 다섯 번이었다. 네 번째에 오른쪽 무릎이 아주 조금 안쪽으로 기울었지만 스스로 바로잡았고, 다섯 번째에는 일어난 상태에서 열을 셀 동안 자세를 유지했다.그다음 걷기.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리시안은 세 번째 발을 완전히 디딘 뒤 멈췄다. 어제 네 번째 걸음을 내디뎠던 자리가 바로 앞에 있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한 발만 더 옮기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발목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무릎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었다.그래도 가지 않았다.“끝.”치료사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네. 돌아가겠습니다.”자리로 돌아와 신발을 벗긴 뒤에도 발목과 감각에는 이상이 없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팔 수 있는 집이라고 아무렇게나 팔 수는 없습니다

    제3호 협의에 필요한 추가 자료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목교 회의를 마친 다음 날 오전이었다. 리시안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재활실로 가기 전에 서재에 들렀다가 책상 오른쪽에 놓인 두꺼운 봉투를 발견했다.상속권자 직접 협의 요청 제3호.그 아래에는 자신이 붙여둔 표찰이 있었다.자료 확인 중.봉투 위에는 황실 재산관리국의 추가 표시가 하나 붙어 있었다.요청 자료 1차 취합 완료.리아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벌써 왔어?”“그러게.”“읽고 재활 갈 거야?”리시안은 시계를 봤다. 재활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 손은 이미 봉투 쪽으로 갔다. 봉인 끝에 손가락까지 걸렸다가 멈췄다.삼십 분이면 첫 장 몇 장은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장을 읽으면 다음 장을 펼칠 것이고, 이상한 숫자가 있으면 이유를 찾을 것이고, 확인할 것이 생기면 관련 자료까지 꺼낼 것이다. 그러다 재활 시간이 가까워지면 중간에서 끊든지, 재활실에 가서도 읽던 내용을 계속 생각하게 될 게 뻔했다.어제 목교 회의를 앞두고 치료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할 수 있는 만큼과 오늘 해도 되는 만큼은 다릅니다.당시에는 다리 이야기였다.리시안은 봉투에서 손을 뗐다.“아니.”리아가 눈을 깜빡였다.“안 읽어?”“재활 끝나고.”“삼십 분이나 있는데.”“읽을 수는 있어.”리시안은 봉투를 다시 책상 가운데에 놓았다.“그런데 끝까지는 못 볼 것 같아.”“조금만 보면 되잖아.”“그러면 나머지가 계속 신경 쓰일걸.”리아가 잠시 오빠를 바라봤다. 리시안은 표찰 아래에 작은 메모를 끼웠다.재활 후 확인.“지금은 재활부터 할래.”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요즘 진짜 잘 멈추네.”“그게 이상해?”“조금.”“너 자꾸 내가 이상하다고 하지 마.”“좋은 뜻이야.”“좋은 뜻으로도 하지 마.”리아가 웃으며 먼저 문을 나섰다.리시안은 책상 위의 봉투를 한 번 더 봤다.읽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읽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재활실로 갔다.⸻새 신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제 이름 위의 빈칸을 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어젯밤 뜯지 않았던 봉투부터 확인했다.상속권자 직접 협의 요청 제3호.봉투를 열기 전에 시계를 봤다.아침 여덟 시 십 분.식사도 끝냈다.치료사가 새 신발을 확인하기로 한 시간까지는 충분했다.리시안은 어젯밤 자신이 적어둔 내일 오전 확인이라는 메모를 떼어 옆에 놓고 봉인을 잘랐다.제3호 협의는 남동쪽 작업장 인근의 주택과 부속 토지 매입 요청이었다.오래 임차해 살던 가족이 자신들이 거주 중인 주택을 사들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차 기간은 십일 년. 지붕과 외벽 일부를 거주자가 자기 비용으로 고쳤고, 뒤뜰 우물로 이어지는 통로 일부를 이웃 두 가구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매각을 검토하려면 감정가뿐 아니라 거주자가 부담한 수선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공동 통행로와 우물 이용권을 어떻게 남길지, 인접 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확인해야 했다.리아가 맞은편에서 첫 장을 읽었다.“이것도 복잡하네.”“응.”“이것도 회의할 거야?”리시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먼저 마지막 장을 봤다.긴급성: 없음.현재 임대 계약은 일곱 달 남아 있었다.거주자 역시 즉시 매입을 요구하지 않았다.희망 사항: 계약 갱신 시점 전까지 매입 가능 여부를 알고 싶음.리시안은 펜을 들었다.이번에는 사람 이름부터 적지 않았다.첫 장 오른쪽 위에 썼다.긴급 집행 없음.그 아래.현 임대 조건 유지.그리고 별도의 요청란에 적었다.감정가 산정 근거.거주자 자비 수선 내역 및 증빙.공동 통행로·우물 이용 현황.인접 두 가구 의견.매각 시 통행권 유지 가능 방식.리아가 물었다.“그럼 이것도 자료부터?”“응.”“직접 회의는?”“자료 보고.”리시안은 제3호 협의를 새 받침에 넣었다.표찰에는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잠시 생각하다 적었다.자료 확인 중.리아가 그걸 보다가 웃었다.“두 번째랑 다르네.”“다른 일이잖아.”“어제는 사람부터 불렀는데.”“어제 건은 서류에 적힌 말의 뜻을 모르겠어서 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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