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부부 침실이 하나뿐이라더군.”
“…….” “…….” 황제의 말이 떨어진 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부 침실이. 하나. 그 말은. “침대도 하나인가요?” 생각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다. “…….” 황제가 눈을 깜빡였다.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아니.”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 “침대가 궁금했나?” 황제가 물었다. “아니요!” “방금 물었는데.” “그건…….” 뭐라고 변명하지? 나는 레오나르드를 봤다. 도와줘.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 배신자.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웃어요?” “안 웃었다.” “웃고 있잖아요.” “조금.” “레오나르드.” 또.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실수가 아니었다. 화가 나서. 그런데. 레오나르드가 멈췄다.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 왜 저렇게 봐? “뭐요.” “아무것도.” “또 아무것도.” “계속 그렇게 불러.” “뭘요?” “이름.” “…….” 내 입이 닫혔다. 황제가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뭘요?” “후계자.” “폐하!” “알았네. 알았어.”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침대가 몇 개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하게.” “…….” 그렇게. 정말 쓸데없는 궁금증 하나를 남긴 채. 황궁을 나왔다. ⸻ “왜 말 안 했어요?” 마차에 타자마자 물었다. 레오나르드가 맞은편에 앉았다. “뭘.” “별궁이요.” “뭘 말해야 했는데.” “신혼부부가 보름 동안 단둘이 지내는 전통이 있다는 거요.” “나도 잊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잊어요?”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 아. 그건 그렇네. 나는 팔짱을 꼈다.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까 안 간다고 하면 안 돼요?” “폐하가 명령했다.” “명령까지는 아니었잖아요.” “원로원도 알고 있을 거다.” “…….” “안 가면 더 귀찮아져.” 맞는 말이다. 우리가 계약결혼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 특히 발테리온 원로들에게. 그들은 황금사자의 혈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레오나르드가 결혼 자체를 거부했을 때도 몇 년을 들볶았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계약결혼이라니. 알게 되는 순간. 난리가 날 게 뻔하다. “그럼 가긴 가야겠네요.” “그래.”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조건이 있어요.” “말해.” “각방.” “방 하나라는데.” “다른 방 쓰면 되잖아요.” “별궁에 방이 하나뿐일 리가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공작님은 다른 방.” “싫은데.” “…….”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부부가 신혼 별궁에 갔는데 각방을 썼다는 소문이 나면?” “누가 알아요?” “관리인.” “입단속시키면 되죠.” “원로원 사람이다.” “…….” 젠장. “그럼.” 나는 잠시 고민했다. “같은 방.” “그래.” “침대는 따로.” “가능하면.” “가능하게 만드세요.” “알았다.” 순순히 대답했다.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세리아.” “왜요?” “만약 침대가 하나면?” “공작님이 바닥에서 자면 되죠.” “왜 내가?” “제가 여자니까.” “나는 공작인데.” “저도 공작부인이거든요?” “그럼 반씩.” “침대를요?” “그래.” 나는 입을 벌렸다. “싫어요.” “왜.” “같이 자는 거잖아요.” “어제 같이 잤는데.” “…….” 치사하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 “그건 제가 잠결에 실수한 거고요.” “같이 잔 건 사실이지.”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그럼 또 같이 자도 문제없겠네.” “그거랑 그거는 다르죠!” “뭐가.” “그냥 달라요.” 레오나르드가 나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무서워?”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가요?” “나랑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거.” “…….” 무섭냐고? 나는 그를 바라봤다. 솔직히. 무섭지는 않았다. 레오나르드가 나를 억지로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건 이제 알고 있었다. 내가 싫다고 하면 멈춘다. 허락하지 않은 선은 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서운 건. 그게 아니었다. “…….” 그의 냄새. 체온. 바로 옆에서 들리는 숨소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봤던 얼굴. 이불 아래에서 느껴졌던 온기. 그리고. 옷을 입지 않았던 상체까지. “……!” 나는 황급히 창밖을 봤다. “안 무서워요.”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지지?” “더워서.” “마차 안 추운데.” “저는 더워요.” “그래?” “네.” 침묵. 그러다. 레오나르드가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확 들어왔다. “…….” 나는 그를 바라봤다. “뭐 해요?” “덥다며.” “그렇다고 창문을 왜 열어요!” “식으라고.” “닫아요!” 레오나르드가 웃었다. “일부러 그랬죠?” “조금.” “진짜!” 나는 쿠션을 집어 던졌다. 그가 한 손으로 잡았다. “폭력적인 여우네.” “누구 때문인데요.” “결혼 전에는 얌전한 줄 알았는데.” “누가요? 제가요?” “그래.” “사람 잘못 보셨네요.” “그런 것 같군.” 그런데. 그가 웃었다. 이상했다. 잘못 봤다면서. 왜 저렇게 기분 좋은 얼굴이지? 나는 괜히 창밖을 바라봤다. ⸻ 별궁으로 떠나는 날은 사흘 뒤로 정해졌다. 그동안 나는 로제니아 상단의 장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게 전부예요?” 나는 책상 위의 서류를 내려놓았다. 상단의 회계 담당자가 고개를 숙였다. “예, 부인.” “동부 지점에서 빠져나간 돈이 너무 많아요.” “저희도 확인 중입니다.” “누가 승인했죠?” 침묵.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작은아버지?” “……예.” 역시. 데미안은 내가 결혼 준비를 하는 사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인장도 사용됐네요.” “그 부분이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지금 의식이 없는데.” “그래서 저희도…….” 위조. 나는 서류를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그때.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지.” 레오나르드였다. 나는 서류를 덮었다. “별일 아니에요.” 그의 눈썹이 움직였다. “별일 아닌 얼굴이 아닌데.”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그건 안 물었다.” “…….” 그가 다가왔다. 내 앞에 놓인 서류를 보려다. 멈췄다. 손도 대지 않았다. “봐도 돼?”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허락. 사소한 것인데. 이 남자는 내가 한 말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서류를 내밀었다. “보세요.” 레오나르드가 받았다. 한 장. 두 장.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인장 위조?” “아마도요.” “데미안 로제니아?”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어요.” “있으면?” 나는 웃었다. “끌어내야죠.” “가문에서?” “상단에서부터.” “…….” “그리고 아버지가 깨어나시면 가문에서도.”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할 수 있겠어?” 나는 눈썹을 올렸다. “절 뭘로 보는 거예요?” “여우.” “그거 말고요.” “붉은여우.” “레오나르드.” 그가 웃었다. 이제 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조금씩 웃는 것 같다. “도움 필요하면 말해.” “괜찮아요.” “그래.” “…….” 왜 바로 물러나지? “끝이에요?” “네가 할 수 있다며.”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믿어야지.” “…….” 그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대신 위험한 일이 생기면 말해.” “왜요?” “그때는 내 일이니까.” “왜 공작님 일이에요?” “남편이잖아.” 또. 저 말. 나는 괜히 펜을 만지작거렸다. “1년짜리면서.” 레오나르드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아. 또.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왜요?” “뭐가.” “제가 1년이라고 말할 때마다 표정 이상해져요.” “안 이상하다.” “이상한데.” “착각.” “귀 보여줘요.” “싫어.” “거짓말하는지 보게.” “내 귀는 거짓말 탐지기가 아니다.” “저한테는 맞는 것 같은데.”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웃었다. “걱정 마세요.” “뭘.” “1년 동안은 제대로 공작부인 역할 할 테니까.” “…….” “별궁에서도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 서로 계약만 잘 지켜요.” 레오나르드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공작님?” “……그래.” 이상하게. 대답이 늦었다. ⸻ 그리고 사흘 뒤. 우리는 북부 별궁으로 출발했다. 마차로 반나절.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풍경이 달라졌다. 건물이 줄고. 숲이 깊어졌다. 나는 처음 보는 풍경에 창문 가까이 붙었다. “우와.” 멀리 산이 보였다. 정상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저기가 발테리온 영지예요?” “경계다.” “별궁은요?” “숲 안쪽.” “예뻐요?” “글쎄.” 나는 뒤를 돌아봤다. “공작님 별궁인데 안 가봤어요?” “어릴 때 몇 번.” “그 뒤로는요?” “안 갔다.” “왜요?” “신혼부부가 가는 곳이니까.” “아.” 그러네. 나는 다시 창밖을 봤다. 그런데. 마차가 흔들렸다. 덜컹! “앗!” 몸이 옆으로 쏠렸다. 순간. 팔이 허리를 감쌌다. “조심해.” “…….” 레오나르드. 나는 그의 가슴에 부딪힌 채 멈췄다. 가까웠다. 아주. 짙은 체향이 코끝을 채웠다. “괜찮아?” “……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편했다. 따뜻하고. 익숙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 숨을 들이마셨다. “…….” 좋다. 어젯밤 담요보다. 훨씬 진하다. 그 순간. “세리아.” “네?” 낮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지금.” “…….” “내 냄새 맡았어?” 나는 굳었다. “아닌데요.” “맡았는데.” “안 맡았어요.” “코 움직였어.” “…….” 이 인간은 그런 것도 봐? 나는 황급히 떨어지려 했다. 그런데. 마차가 다시 흔들렸다. 덜컹! 이번에는 더 크게. “악!” 그대로 레오나르드의 품으로 넘어갔다. 정확히는. 그의 허벅지 위로. “…….” “…….” 정적.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레오나르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왜. 눈빛이 저래. “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허리를 잡았다. “잠깐.” “왜요?” “마차 아직 흔들린다.” “그래도…….” “떨어지면 다쳐.” “…….”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너무 가까웠다. 그의 팔 안에 완전히 들어와 있었다. 허리를 감싼 손바닥의 열기가 얇은 드레스 너머로 느껴졌다. 그리고. 내 허벅지 아래로 느껴지는 단단한 체온. 나는 꼼짝하지 못했다. “레오나르드.” “응.” “……손.” “허리?” “네.” “놓으면 넘어질 텐데.” “조금만 느슨하게.” 그가 바로 힘을 풀었다. “이 정도?” “……네.” 그런데. 왜. 놓으라고는 못 하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레오나르드가 숨을 들이마셨다. “…….” 나는 바로 그를 노려봤다. “지금 냄새 맡았죠?” “…….” “맞죠?” “그래.” “왜요?” “네가 먼저 했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뭐가 다른데.” “저는 그냥…….” “그냥?” 말문이 막혔다. 그가 웃었다. “내 냄새가 좋아?”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리아.” “안 들려요.” “바로 앞인데.” “그래도 안 들려요.” “귀 나왔다.” “뭐?” 황급히 머리 위를 만졌다. 정말이다. 붉은 귀. 언제 나온 거야!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눌렀다. 그러자. 레오나르드가 웃었다. “귀엽네.” “…….” 내가 했던 말이다. 며칠 전. 그의 사자 귀를 보고. 귀엽다고 했다. “복수예요?” “아니.” “그럼요?” “진짜 귀여워서.” “…….” 심장이. 쿵. 나는 그의 허벅지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마차가 또 흔들렸다. “앗.” 이번에는 레오나르드가 먼저 잡았다. 그리고. 몸이 더 깊이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 얼굴이 목 가까이에 닿았다. “…….” 짙은 향.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바로 눈앞. 그의 목선. 맥박이 뛰는 자리. 그리고. 나도 모르게. 코끝을 아주 조금 가까이 댔다. “세리아.” 낮은 목소리. 나는 멈췄다. “……네.” “그렇게 가까이에서 냄새 맡으면.” 목소리가 아까보다 낮았다. “나도 참기 힘들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황금빛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뭘…….” 말하려다. 멈췄다. 알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그리고. 목. 어깨. 다시 눈. “…….” 공기가 달라졌다. 마차 안이 갑자기 너무 좁게 느껴졌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의 시선이 순간 입술에 머물렀다. 그것을 보고.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레오나르드.” “응.” “저 내려갈래요.” 그는 바로 손을 놓았다. “그래.” 나는 맞은편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창밖만 바라봤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얼굴의 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 해가 기울 무렵. 마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문이 열렸다. 나는 밖을 바라봤다. “……와.” 별궁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숲 한가운데 자리한 흰색 저택. 뒤로는 설산. 앞으로는 작은 호수. 그리고 곳곳에 피어난 붉은 꽃. “예쁘다.” 나도 모르게 말했다. 레오나르드가 내 옆에 섰다. “마음에 들어?” “네.” “다행이군.” 우리는 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인사했다.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길한 말을 덧붙였다. “신혼 침실도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나는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그도 나를 봤다. “침대.” 내가 속삭였다. “확인부터 하자.” 레오나르드가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계단을 올랐다. 관리인이 방문을 열었다. “이곳입니다.” 나는 안을 봤다. 넓다. 아주 넓은 침실. 벽난로. 소파. 테라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침대. “…….” 하나. 그것도. 엄청나게 큰. 하나. 나는 눈을 감았다. “관리인.” 레오나르드가 불렀다. “예, 전하.” “다른 침대.” “……예?” “하나 더 가져와.” 관리인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이…….” 왜. 왜 저런 얼굴이지? “없나?” “있기는 합니다만.” “가져와.” “하지만 전하.” 관리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신혼 별궁의 침실에 침대를 둘 놓는 것은.” “…….” “발테리온의 전통상.” 아. 제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나는 이마를 짚었다. 레오나르드가 물었다. “소파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좋아. 소파. “잠을 자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관리인이 답했다. 우리 둘의 시선이 동시에 소파로 향했다. ……정말 작다. 레오나르드에게는 특히. 다리가 절반은 밖으로 나갈 것 같다. 나는 침대를 봤다. 다시 레오나르드를 봤다. 그도 침대를 봤다. “…….” “…….” 관리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부르십시오.” 그리고. 도망쳤다. 문까지 닫고. 철컥. 침묵. 나는 천천히 레오나르드를 바라봤다. “공작님.” “왜 다시 공작님이지.” “지금 그게 중요해요?” “조금.” “침대가.”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나잖아요.” “그러네.” “어떻게 할 거예요?” 레오나르드가 침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반씩?” “안 돼요.” “그럼 내가 바닥.” “…….” 나는 멈칫했다. “진짜요?” “네가 싫다며.” 너무 쉽게 말한다. 나는 바닥을 봤다. 북부. 밤이면 꽤 추울 것이다. 벽난로가 있다고 해도. “……아프잖아요.” “뭐가.” “허리.” “괜찮아.” “공작님 덩치에 바닥에서 어떻게 자요.” “그럼?” 나는 침대를 바라봤다. 크다. 정말 크다. 둘이 누워도. 사이에 사람 둘은 더 누울 수 있을 만큼. “……선을 그어요.” “뭐?” 나는 침대로 다가갔다. 베개를 집어 들었다. 하나. 둘. 셋. 침대 중앙에 길게 늘어놓았다. “여기.” 베개로 만들어진 벽. “넘어오지 마세요.” 레오나르드가 그것을 내려다봤다. “…….” “왜요?” “이게 선?” “네.” “내가 자다가 넘어가면?” “밀어낼 거예요.” “네가 넘어오면?” “제가 왜 넘어가요?” “지난번에는 네가 먼저 붙었는데.” “…….” 나는 베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맞을래요?” 그가 웃었다. “알았다.” “그리고.” “또?” “옷 입고 자기.” “…….” 레오나르드가 미간을 좁혔다. “그건 왜.” “왜긴 왜예요!” “더운데.” “안 돼요.” “세리아.” “최소한 셔츠.” “…….” “안 그러면 저 다른 방 갈 거예요.” “알았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완벽하다. 침대는 크고. 선도 그었다. 레오나르드는 약속을 지키는 남자다.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밤. 눈을 감기 전까지는. ⸻ 새벽. “…….” 나는 잠에서 깼다. 따뜻했다. 이상할 정도로. 그리고. 익숙한 향이 났다. “…….” 설마. 눈을 떴다. 바로 앞. 단단한 가슴. 검은 셔츠. 그리고.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팔.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레오나르드가 자고 있었다. 아주 평온하게. “……미쳤어.” 속삭였다. 선을 봤다. 베개들은.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전멸. 그리고 나는. 레오나르드의 품에 완전히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의 손. 내 허리에 있던 손이. 아주 조금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정확히는. 붉은 꼬리 바로 위. “…….” 아직 꼬리에는 닿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닿는다. 나는 숨을 죽였다. 손을 치워야 한다. 그런데. 괜히 움직였다가. 꼬리에 닿으면?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탁. 내 손목이 붙잡혔다. “……!” 황금빛 눈이 열렸다. 잠이 덜 깬 눈. 평소보다 훨씬 짙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눈빛. “세리아.”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낮고. 거칠었다. “왜.” “손.” “…….” “치워줘요.” 레오나르드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손이 즉시 떨어졌다. “미안.” “……괜찮아요.” 그는 바로 몸을 뒤로 물렸다. 거리를 만들었다. “자는 동안인 것 같다.” “알아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알아요.” 나는 꼬리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레오나르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가. 바로 피했다. “안 만졌어.” “……네.” “정말이다.” “안다니까요.” 이상하게. 그가 더 당황한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왜 웃지?” “공작님.” “응.” “귀 나왔어요.” “…….” 머리 위. 황금빛 귀가 나와 있었다. 둘 다 완전히 뒤로 눕혀진 채. 나는 결국 웃었다. “왜 웃어.” “귀가 지금 너무 솔직해서.” “…….” “진짜 미안한가 봐요.” “미안하니까.” “알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황금빛 귀 하나가 조금 올라왔다. 그걸 보니. 괜히 손이 근질거렸다. 지난번. 만져봤던 부드러운 감촉이 떠올랐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다. 멈췄다. “……만져도 돼요?” 레오나르드가 나를 바라봤다. “귀.” “…….” “조금만.” 잠시 침묵. 그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허락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손끝이 부드러운 귀에 닿았다. 한 번. 살짝. 쓸었다. 귀가 움찔했다. “…….” 레오나르드가 눈을 감았다. 나는 한 번 더 만졌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지난번처럼. “그만.” “벌써요?” “그래.” “왜요?” 레오나르드가 눈을 떴다. “전에 말했잖아.” 낮은 목소리. “계속 만지면 참기 힘들다고.” “…….” 아. 그제야. 현재 상황이 다시 보였다. 한 침대. 새벽. 얇은 잠옷 차림의 나. 셔츠 차림의 레오나르드. 그리고. 우리는 너무 가까웠다. 내 손목을 감싼 그의 손. 황금빛 눈동자. 짙어진 체향. “……뭘 참는데요?”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말이 떨어진 순간. 레오나르드의 눈빛이 달라졌다. “세리아.” “……네.” “그 질문.” 그가 천천히 말했다. “대답해도 돼?” 심장이. 쿵.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레오나르드는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대답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아니요.” 말했다. 그 순간.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바로 풀렸다. “알았다.” 그뿐이었다. 레오나르드는 몸을 뒤로 물렸다. 더 멀리. “자.” 그리고 등을 돌렸다. 나는 멍하니 그의 등을 바라봤다. ……왜. 안심해야 하는데. 왜 조금. 아쉬운 것 같지? 미쳤나 봐.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한참 뒤. 잠이 들기 직전.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세리아.” “……네.” “다음에는.” 나는 이불 안에서 눈을 떴다. “듣고 싶어지면 물어.” “…….” “그때는 대답할 테니까.” 심장이. 다시. 쿵. 나는 결국. 그날 새벽이 밝을 때까지. 다시 잠들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다시 세 걸음을 걸었다.전날 네 걸음을 안정적으로 끝냈다고 해서 오늘도 네 걸음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치료사는 오른쪽 무릎과 발목을 차례로 확인한 뒤 종아리를 눌러보고, 발가락 감각까지 점검한 다음 오늘의 훈련량을 정했다.“세 걸음 하겠습니다.”리시안은 잠깐 치료사를 바라봤다.“네 걸음 뒤라서요?”“그것도 있고, 어제 오후에 오래 앉아 있었으니까요. 계약 서류를 봤다고 들었습니다.”리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아주 오래 봤어요.”“두 시간이 안 됐어.”“쉬는 시간 빼고도?”리시안이 입을 다물었다.치료사가 웃음을 삼키며 새 보행화의 오른쪽 지지대를 확인했다.“앉아 있는 것도 피로입니다. 오늘은 세 걸음으로 반응을 확인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이번에는 다섯 번째를 묻지도 않았다.기립은 다섯 번이었다.첫 번째에는 오른쪽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확인했고, 두 번째에는 양쪽 무릎의 높이를 맞췄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안정적이었다. 다섯 번째에는 손에 실리는 힘을 조금 줄였지만 몸이 기울지 않았다.잠깐 쉬고 걷기를 시작했다.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리시안은 세 번째 발이 바닥에 완전히 닿은 것을 확인한 뒤 멈췄다.“끝.”아쉬움은 있었다.하지만 몸이 앞으로 쏠리지는 않았다.다음 발을 내딛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다음 발을 내딛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치료사가 기록했다.신규 보행화 11일 차.기립 5회.3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전일 4보 수행 후 부하 조절. 우측 무릎·발목 안정. 종아리 긴장 증가 없음. 감각 정상 범위 유지.리아가 기록을 내려다봤다.“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하네.”“뭘.”“왜 세 걸음이냐고.”“들었잖아.”“다섯 걸음은 언제냐고도 안 물었고.”리시안은 잠깐 검은 보행화를 내려다봤다.“물어도 오늘 걸을 건 아니니까.”리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오.”“왜.”“그냥.”“그 표정 뭔데.”“우리 오빠가 참을성을 배웠구나 싶어서.”“나 원래 있었어.”
다음 날은 걷지 않았다.아침에 치료사가 오른쪽 종아리를 확인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통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발목도 안정적이었고, 발가락 감각에도 변화가 없었다. 전날의 세 걸음 뒤 특별한 이상 반응도 없었다.그런데 그래서 더 걸을 이유도 없었다.“오늘은 근력과 균형만 하겠습니다.”리시안은 예전처럼 곧바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한 번 확인했다.“어제 상태가 나빠져서요?”“아닙니다.”“그럼 부하 조절입니까?”“맞습니다. 새 보행화로 네 걸음까지 확인했고, 다음 날 세 걸음으로 조절했습니다. 오늘은 보행 없이 발목과 무릎의 반응만 보겠습니다.”리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리아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제 오빠가 먼저 답을 거의 다 말하네.”“확인한 거야.”“그게 그거지.”“달라.”“어떻게?”리시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내가 정한 게 아니잖아.”리아가 눈을 깜빡였다.치료사가 웃음을 참듯 입가를 움직였다.리시안은 조금 민망해져 시선을 돌렸다.오늘 걸을지 말지를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치료사가 무엇을 확인했고 왜 오늘 걷지 않는지 들었다.그 정도면 됐다.오전 재활은 예정대로 근력과 균형 훈련만 했다. 오른쪽 발목을 천천히 굽혔다 펴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체중을 옮겼다. 보행은 없었다. 기립 횟수로 세는 훈련도 하지 않았다.기록은 짧았다.신규 보행화 9일 차.보행 없음.근력·균형 훈련 시행.우측 종아리 긴장 감소. 발목·감각 안정.리시안은 기록을 읽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어제 세 걸음.오늘은 영 보.그런데도 이상하게 뒤로 돌아간 느낌은 들지 않았다.오히려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멈춘 것인지 알고 있으니 기다릴 수 있었다.문제는 재활실에서 나와 서재로 돌아왔을 때였다.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자 리시안의 시선이 곧바로 가장 위의 종이에 꽂혔다.제3호 매각 협의 — 통행로 현장 실측 결과.어제 자신이 요청했던 자료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다섯 번째 걸음을 묻지 않았다.치료사가 먼저 새 보행화를 벗겨 오른쪽 발목을 확인했다. 복사뼈 주변에 눌린 자국은 없었고, 발가락 감각도 전날과 같았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 동안 통증도 없었다. 다만 종아리 뒤쪽을 눌렀을 때 전날보다 아주 조금 단단한 부분이 있었다.“아픕니까?”“아니요.”“당기는 느낌은요?”리시안이 발목을 천천히 움직여봤다.“조금 있습니다.”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세 걸음 하겠습니다.”리아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말했다.“어제 네 걸음 했으니까 오늘 세 걸음.”치료사가 웃었다.“꼭 그것만으로 정하는 건 아닙니다.”“그래도 맞았잖아요.”“오늘은 맞았습니다.”리시안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신발을 다시 신었다. 오른쪽 신발의 지지대를 조절한 뒤 천천히 일어섰다.오늘 기립은 다섯 번이었다.첫 번째에는 체중이 왼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두 번째부터 바로잡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안정적이었다. 다섯 번째에는 일어난 상태로 열을 셀 동안 오른쪽 다리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했다.잠깐 쉬고 걷기를 시작했다.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어제 네 번째를 밟았던 자리보다 한 발 앞에서 멈췄다.“끝.”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리시안은 돌아와 앉았다.이번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전날보다 덜했다. 네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매일 네 걸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치료사는 오른쪽 종아리를 다시 확인한 뒤 기록했다.신규 보행화 8일 차.기립 5회.3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전일 4보 반복 수행 후 부하 조절. 우측 종아리 경미한 긴장. 보행 후 증가 없음. 발목·감각 안정.리아가 기록을 보다가 말했다.“이제 오빠도 익숙해졌지?”“뭐가.”“어제보다 적게 했다고 뒤로 간 게 아니라는 거.”리시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치료사가 신발을 벗기는 동안 오른쪽 발을 내려다봤다.“조금.”“조금?”“알기는 아는데. 기분까
다음 날에도 다섯 번째 걸음은 없었다.치료사가 재활실에 들어오자마자 전날 기록을 펼쳤다.신규 보행화 4일 차.기립 4회.4보 1회. 추가 보행 없음.우측 발목 지지 및 감각 안정. 4보 후 이상 반응 없음.밤사이 통증과 저림은 없었다. 붓기도 없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른쪽 종아리가 조금 당겼다가 움직이고 나니 풀렸다. 치료사는 그 사실까지 기록한 뒤 발목과 종아리를 눌러보고, 발가락 감각과 무릎 움직임을 차례로 확인했다. 새 신발을 신긴 뒤에도 곧바로 걷게 하지는 않았다.“오늘은 세 걸음입니다.”리아가 먼저 눈을 크게 떴다.“어제 네 걸음 했는데요?”“그래서 오늘은 세 걸음입니다.”리시안도 치료사를 바라봤다.“상태는 괜찮은데도요?”“괜찮습니다. 하지만 어제 네 걸음을 한 번 걸었다는 것과 네 걸음이 이제 안정적인 훈련량이 되었다는 건 다릅니다.”치료사는 기록지를 리시안 쪽으로 조금 돌렸다.“한 번 가능했던 것을 곧바로 다음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리시안의 시선이 어제 기록에 머물렀다. 분명 네 걸음을 걸었다. 걸은 뒤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네 걸음은 당연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다섯 번째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그럼 다섯 걸음은요?”“네 걸음이 반복해서 안정적이라는 걸 확인한 다음입니다.”기립은 다섯 번이었다. 네 번째에 오른쪽 무릎이 아주 조금 안쪽으로 기울었지만 스스로 바로잡았고, 다섯 번째에는 일어난 상태에서 열을 셀 동안 자세를 유지했다.그다음 걷기.첫 번째.두 번째.세 번째.리시안은 세 번째 발을 완전히 디딘 뒤 멈췄다. 어제 네 번째 걸음을 내디뎠던 자리가 바로 앞에 있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한 발만 더 옮기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발목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무릎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었다.그래도 가지 않았다.“끝.”치료사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네. 돌아가겠습니다.”자리로 돌아와 신발을 벗긴 뒤에도 발목과 감각에는 이상이 없
제3호 협의에 필요한 추가 자료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목교 회의를 마친 다음 날 오전이었다. 리시안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재활실로 가기 전에 서재에 들렀다가 책상 오른쪽에 놓인 두꺼운 봉투를 발견했다.상속권자 직접 협의 요청 제3호.그 아래에는 자신이 붙여둔 표찰이 있었다.자료 확인 중.봉투 위에는 황실 재산관리국의 추가 표시가 하나 붙어 있었다.요청 자료 1차 취합 완료.리아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벌써 왔어?”“그러게.”“읽고 재활 갈 거야?”리시안은 시계를 봤다. 재활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 손은 이미 봉투 쪽으로 갔다. 봉인 끝에 손가락까지 걸렸다가 멈췄다.삼십 분이면 첫 장 몇 장은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장을 읽으면 다음 장을 펼칠 것이고, 이상한 숫자가 있으면 이유를 찾을 것이고, 확인할 것이 생기면 관련 자료까지 꺼낼 것이다. 그러다 재활 시간이 가까워지면 중간에서 끊든지, 재활실에 가서도 읽던 내용을 계속 생각하게 될 게 뻔했다.어제 목교 회의를 앞두고 치료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할 수 있는 만큼과 오늘 해도 되는 만큼은 다릅니다.당시에는 다리 이야기였다.리시안은 봉투에서 손을 뗐다.“아니.”리아가 눈을 깜빡였다.“안 읽어?”“재활 끝나고.”“삼십 분이나 있는데.”“읽을 수는 있어.”리시안은 봉투를 다시 책상 가운데에 놓았다.“그런데 끝까지는 못 볼 것 같아.”“조금만 보면 되잖아.”“그러면 나머지가 계속 신경 쓰일걸.”리아가 잠시 오빠를 바라봤다. 리시안은 표찰 아래에 작은 메모를 끼웠다.재활 후 확인.“지금은 재활부터 할래.”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요즘 진짜 잘 멈추네.”“그게 이상해?”“조금.”“너 자꾸 내가 이상하다고 하지 마.”“좋은 뜻이야.”“좋은 뜻으로도 하지 마.”리아가 웃으며 먼저 문을 나섰다.리시안은 책상 위의 봉투를 한 번 더 봤다.읽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읽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재활실로 갔다.⸻새 신
다음 날 아침, 리시안은 어젯밤 뜯지 않았던 봉투부터 확인했다.상속권자 직접 협의 요청 제3호.봉투를 열기 전에 시계를 봤다.아침 여덟 시 십 분.식사도 끝냈다.치료사가 새 신발을 확인하기로 한 시간까지는 충분했다.리시안은 어젯밤 자신이 적어둔 내일 오전 확인이라는 메모를 떼어 옆에 놓고 봉인을 잘랐다.제3호 협의는 남동쪽 작업장 인근의 주택과 부속 토지 매입 요청이었다.오래 임차해 살던 가족이 자신들이 거주 중인 주택을 사들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차 기간은 십일 년. 지붕과 외벽 일부를 거주자가 자기 비용으로 고쳤고, 뒤뜰 우물로 이어지는 통로 일부를 이웃 두 가구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매각을 검토하려면 감정가뿐 아니라 거주자가 부담한 수선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공동 통행로와 우물 이용권을 어떻게 남길지, 인접 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확인해야 했다.리아가 맞은편에서 첫 장을 읽었다.“이것도 복잡하네.”“응.”“이것도 회의할 거야?”리시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먼저 마지막 장을 봤다.긴급성: 없음.현재 임대 계약은 일곱 달 남아 있었다.거주자 역시 즉시 매입을 요구하지 않았다.희망 사항: 계약 갱신 시점 전까지 매입 가능 여부를 알고 싶음.리시안은 펜을 들었다.이번에는 사람 이름부터 적지 않았다.첫 장 오른쪽 위에 썼다.긴급 집행 없음.그 아래.현 임대 조건 유지.그리고 별도의 요청란에 적었다.감정가 산정 근거.거주자 자비 수선 내역 및 증빙.공동 통행로·우물 이용 현황.인접 두 가구 의견.매각 시 통행권 유지 가능 방식.리아가 물었다.“그럼 이것도 자료부터?”“응.”“직접 회의는?”“자료 보고.”리시안은 제3호 협의를 새 받침에 넣었다.표찰에는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잠시 생각하다 적었다.자료 확인 중.리아가 그걸 보다가 웃었다.“두 번째랑 다르네.”“다른 일이잖아.”“어제는 사람부터 불렀는데.”“어제 건은 서류에 적힌 말의 뜻을 모르겠어서 불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