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빈 장터의 첫 증인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종이 장수 강씨의 아내입니다."닫힌 포목전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온보요는 좌판 위에 종이를 펴고 그대로 받아 적었다."남편은 언제 잡혀갔습니까.""그제 오시였습니다. 운수 상단에 종이를 판 적이 있느냐 묻더니, 있다 하자 데려갔습니다. 열 해 동안 종이를 팔았습니다. 어느 종이에 역모가 적힐지 장사꾼이 어찌 압니까.""관아에서 끌고 간다는 문서를 받았습니까.""못 받았습니다."첫 줄 아래에 `구금 문서 없음`이 적혔다.다음 목소리는 지붕 너머에서 왔다. 떡장수의 오라비였다. 그다음은 우물 안쪽 담장 뒤, 그다음은 닫힌 술집 이층. 사람들은 모습을 보이면 잡혀갈까 숨어서 가족 이름을 불렀다.예순넷 가운데 스물일곱이 붙잡힌 때가 맞춰졌다. 관아가 명부를 붙이기 전날 밤에 이미 잡힌 이도 있었다. 감찰어사는 교지가 오기 전에 사람부터 가두고, 뒤늦게 죄를 붙였다.장문도가 군졸을 이끌고 장터로 나왔다."불법 집회를 당장 거두시오."진묵이 좌판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칼도 갑옷도 없었으나 군졸들은 세 걸음 밖에서 멈췄다."거둬 봐.""왕야께서 관무를 방해하시면 삭왕부까지—""내 부인이 글 쓰는데 시끄럽잖아. 입 다물어."장문도가 얼굴을 붉혔다. 보요가 진묵의 소매를 한 번 당겼다."왕야, 의자를 옆으로 조금만 옮겨 주세요. 등불을 가리십니다."그는 군말 없이 의자를 들고 옆으로 갔다. 군졸들 사이에서 작게 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 황명도 비웃던 사내가 아내의 한마디에는 얌전히 등불을 비켰다.소월백은 쇠사슬을 찬 채 장터 바닥에 섰다. 그는 예순넷의 명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아이 이름 다섯에 닿았을 때 목소리가 한 번 갈라졌다."이 사람들은 나를 황자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충성을 맹세하지도 않았습니다. 종이를 팔고 떡을 주고 길을 본 죄뿐입니다."닫힌 문 뒤가 조용해졌다."내가 황자가 아니라면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내가 황자라면 더더욱 내 백성에게 죄가 없
서령현의 성문은 사람을 막지 않았다.대신 사람을 감췄다.장터의 좌판은 펼쳐진 채였고 생선전 얼음은 녹아 물이 흘렀다. 국밥집 화덕에는 불씨가 남았으나 솥은 비었다. 누군가 명을 받고 급히 사라진 거리였다. 호송대 수레바퀴 소리만 처마마다 부딪혀 돌아왔다.진묵은 온보요의 가마 휘장을 내렸다."얼굴 내밀지 마. 매복이면 지붕부터 온다.""화살이 없어요.""뭘 보고 알아.""개가 짖지 않습니다. 사람과 함께 집 안에 묶여 있는 겁니다. 죽이려 비운 거리가 아니라, 보지 못하게 만든 거리예요."그 말이 끝나자 오른편 약방 문틈에서 아이의 울음이 새었다. 곧 어른 손에 막혀 뚝 끊겼다.소월백이 빈 장터 가운데 멈췄다."운수 상단과 거래한 자를 전부 잡으라는 명이 왔겠군요."노강이 관아 벽의 방문을 떼어 왔다. 사흘 전 서령현에 도착한 감찰어사 명의였다. 황자 사칭범의 행렬을 구경하거나 말을 섞거나 종이 한 장을 받는 자는 공모자로 문초한다. 이미 잡아들인 자 예순넷의 이름이 아래 적혀 있었다.온보요는 명부를 읽었다. 객주 셋, 마부 열한, 종이 장수 둘, 글방 아이 다섯. 여덟 살 여자아이 이름도 있었다. 회주 분점에서 얻은 떡을 먹었다는 죄였다."예순넷은 어디 있습니까."대답 대신 관아 뒤편에서 북이 울렸다. 한 번, 쉬고 두 번. 옥에서 밥을 들인다는 기별이었다.일행이 관아로 향하자 집집마다 빗장 거는 소리가 이어졌다. 살고 싶어 닫은 문인데, 소리는 마치 죄를 고백하는 것처럼 떨렸다.관아 대문에는 붉은 봉인이 세 겹 붙었다. 현령은 병을 핑계로 직무를 그만두었고 관인은 감찰어사가 거두었다는 글이 걸렸다. 뜰에는 푸른 휘장을 친 공청이 급히 세워져 있었다.감찰어사 장문도가 차를 마시며 그들을 맞았다."죄수는 역원에 들이고 삭왕비는 별채에 머무르십시오. 삭왕 전하는 경성 교지를 기다리시면 됩니다."진묵이 웃었다."내 부인한테 네놈 별채가 왜 필요하지.""왕야께서는 병부를 반납하셨습니다. 이곳에서는 관법을 따르셔야 합니다.""병
호송대는 그날 한 걸음도 가지 못했다.일영은 밤새 열이 올랐다. 화살이 스친 뼈에 염증이 붙으면 팔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고 의원이 말했다. 금오위 교위 유삼도 칼상이 터져 자꾸 피를 쏟았다. 쫓고 쫓긴 두 사람이 천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약탕을 마셨다.남은 약재는 한 사람 몫뿐이었다.노강이 저울추를 놓고 말했다."일영에게 전부 쓰겠습니다."진묵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삼이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살려 두겠다는 말이 약까지 나눠 준다는 뜻은 아니었다.온보요가 약첩을 절반으로 갈랐다."둘에게 씁니다.""마마, 그러면 약효가 모자랍니다.""한쪽을 죽게 두면 다른 한쪽 진술도 원한 때문에 꾸민 말이 됩니다. 둘 다 경성까지 살아가야 해요."진묵의 눈썹이 험해졌다."내 사람 약을 저놈한테 줘?""왕야께서 살려 두셨잖아요.""네가 시켜서.""그럼 끝까지 제 말을 들으세요."그는 유삼을 노려보다 약탕기 두 개를 불 위에 올렸다. 입으로는 욕을 삼켰지만 물의 양은 정확히 같았다.소월백은 마른 도랑 너머 마을로 들어갔다. 약을 더 구해 오겠다며 나섰으나 한 시진 뒤 빈손으로 돌아왔다. 관아가 호송대에 약을 판 의원도 역모로 다스린다는 방문을 먼저 붙여 두었다. 대신 마을의 늙은 여인이 담 너머로 버드나무 껍질과 깨끗한 무명천을 던져 주었다."값을 치르겠습니다."소월백이 말하자 담 안에서 대답이 왔다."돈 받으면 판 것이 됩니다. 주운 것으로 하십시오."그는 절하지도 이름을 묻지도 못한 채 물건만 주웠다. 돕는 사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갚는 일이었다.해가 지자 온보요는 가마 안에서 아버지의 문초를 세 번 베꼈다. 원문은 아직 없었다. 일영이 들은 한 문장과 첫 죄목, 문초가 열린 때뿐이었다. 모르는 자리는 비워 두었다.소월백이 빈 줄을 보며 물었다."온 대인의 말씀대로라면 왕비마마는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아버님 혼자 죽으시면 빠져나간 것이 아닙니다.""그 거짓말을 뒤집으실 겁니까.""아버님이 숨기신 제
일영의 어깨에서 화살촉이 나온 것은 해가 기운 뒤였다.의원은 버드나무 아래에 천막을 치고 칼을 불에 달궜다. 진묵은 일영의 멀쩡한 어깨를 눌렀고, 노강은 다리를 잡았다. 온보요는 가마 안에서 약재 이름을 불러 주었다.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 때마다 속이 뒤집혔으나 토하지 않았다.쇠가 살을 빠져나오는 순간 일영의 발뒤꿈치가 땅을 팠다.달각.의원이 쟁반에 떨어진 화살촉을 닦았다. 금오위에서 쓰는 세모촉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는 흔한 물건이었으나, 홈 안에 푸른 가루가 끼어 있었다."독은 아닙니다."일영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문서에 묻히는 푸른 안료입니다. 저들이 형부 안에서 곧장 나온 자들이라는 표겠지요."진묵이 포박한 군졸을 끌어왔다. 사내는 배의 칼상을 꿰맨 뒤였고, 눈에는 죽을 각오보다 버려진 자의 공포가 짙었다."이름.""금오위 말단 교위 유삼입니다.""명을 준 놈.""옥문 밖 푸른 가마의 내관이었습니다. 얼굴은 못 봤습니다. 벼루를 가져오면 가족의 군적을 지워 준다 했습니다."유삼의 두 동생은 북강 보충병으로 뽑혀 있었다. 금오위 교위에게 벼루 조각은 충성도 음모도 아니었다. 동생 둘을 전장에 보내지 않을 값이었다.진묵이 차갑게 물었다."그래서 내 사람을 죽여?""죽이라는 명은 아니었습니다. 되찾으라 했습니다. 저자가 칼을 뽑아서—""쫓아오는 넷을 보고 절부터 했어야 하나."일영이 눈도 뜨지 않고 중얼거렸다.보요는 유삼 앞에 종이와 붓을 놓게 했다. 본 내관의 옷, 명을 받은 때, 함께 간 사람의 이름을 적으라 했다. 유삼은 붓을 들지 못했다. 글을 몰랐다."제가 묻고 다른 사람이 받아 적겠습니다. 틀리면 그 자리에서 고치세요.""살려 주시는 겁니까.""살아야 형부 앞에서 같은 말을 하겠지요.""제 동생들은요."보요는 답을 주지 못했다. 월백이 쇠사슬을 끌고 가까이 왔다."이름을 대시오. 북강으로 간 명부에 있다면 내가 갚아야 할 빚에 올리겠습니다."유삼이 고개를 들었다. 황자로 인정받지 못한 죄수
핏방울은 버드나무 세 그루를 지나 마른 도랑으로 내려갔다.온보요의 가마가 앞장섰다. 진묵은 그 곁을 걸으며 몇 번이나 발을 내리지 말라 했다. 피는 땅에만 있지 않았다. 나무껍질 어깨 높이에도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 일영은 걸었고, 몸을 숨기면서도 뒤따를 사람이 알아보게 흔적을 남겼다."저쪽입니다."보요가 마른 갈대가 한 방향으로 눕힌 곳을 가리켰다. 진묵은 대답도 없이 도랑 아래로 뛰어내렸다.무너진 수문 밑에서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챙.일영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왼쪽 어깨에는 부러진 화살이 박혔고, 오른손의 칼은 수문 안쪽을 향했다. 그 앞에는 검은 융복의 사내 하나가 배를 움켜쥔 채 쓰러져 있었다. 죽지는 않았다. 일영은 제 피를 흘리면서도 마지막 추격자를 산 채로 막고 있었다."왕야."그가 진묵을 알아보고서야 칼끝을 내렸다."말은 돌아갔습니까.""네놈보다 먼저 왔어.""명을 잘 듣는 놈입니다."일영이 웃다가 기침했다. 입술 사이로 피가 번졌다. 진묵은 그의 멱살을 잡듯 받쳐 눕히고 의원을 불렀다. 거친 손이 상처 둘레를 누르는 힘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편지는.""온 대인께 닿았습니다. 옥졸에게 은전 셋을 먹이고 창살 사이로 벼루를 보였습니다. 대인께서 오른손을 못 쓰셔서 왼손으로 쓰셨습니다."보요의 손이 가마 발 위에서 굳었다."오른손을 왜 못 쓰셨습니까."일영은 곧장 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말보다 먼저 닿았다."손가락 두 개가 부어 있었습니다. 뼈가 성한지는 못 보았습니다. 그래도 정신은 맑으셨습니다. 왕비마마가 길을 바꾸지 않을 줄 아신다고 했습니다."의원이 화살대를 잘랐다. 일영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으나 비명은 없었다. 대신 낮은 신음 하나가 이 사이로 샜다."읏."진묵의 턱이 굳었다."누가 쐈어.""형부를 나선 뒤부터 넷이 붙었습니다. 편지가 아니라 벼루 조각을 내놓으라 했습니다. 둘은 따돌리고, 하나는 강에 빠졌고, 저놈은 여기까지 왔습니다."쓰러진 사내의 허리에는 금오위 패가 달
내관의 이름은 그날 저녁 세 갈래로 남쪽을 향했다.하령현 장꾼 하나는 소금값 장부 여백에, 농부 하나는 쟁기 주문서 뒤에, 떠돌이 의원은 약첩 봉투 안에 적었다. 자녕궁 내관 조복. 현령의 발을 때리고 처자를 수레에 묶은 자.온보요는 그 세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본 것을 본 대로 적고, 보지 못한 것은 비워 두라 했다. 똑같은 증언은 한 사람이 시킨 글처럼 보였다. 서로 다른 눈이 같은 매 자국을 가리켜야 했다.소금 장수는 내관의 죄목을, 농부는 아이의 잠옷 색을 기억했다. 의원은 현령의 상처가 하루 된 것이 아니라는 소견을 덧붙였다. 셋의 글은 달랐으나 한 사람의 이름에서 만났다.증언 한 벌은 하령현 사당 들보에 감추고, 한 벌은 동쪽으로 가는 장꾼에게, 마지막 한 벌은 호송대 문서 궤에 넣었다. 내관이 뒤쫓아 와 한 사람을 막아도 나머지 두 갈래는 살아남을 방식이었다.소월백이 마지막 종이를 접었다."왕비마마의 길은 사람을 많이 빚지게 합니다.""살아 있는 빚은 갚을 수 있습니다. 죽은 증인은 못 갚고요.""제가 황제가 되면 첫째로 무엇을 갚아야 합니까.""오늘 이름을 써 준 사람들입니다."진묵이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왕 되기 전부터 갚을 놈이 천지네. 오래 살긴 글렀어.""왕야께서는 빚이 없으십니까.""하나."그의 손이 온보요 가마 발을 들었다."평생 갚아도 모자라."소월백은 더 묻지 않았다. 온보요는 가마에 오르며 진묵의 손등을 한 번 눌렀다. 그 짧은 접촉만으로 사내의 입매가 느슨해졌다.하령현을 벗어난 행렬은 가벼웠다. 버린 짐 자리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노강은 남은 식량을 세어 저녁마다 죽의 물을 늘렸다. 진묵은 불평 없이 먹었으나 온보요 그릇에만 건더기를 골라 놓았다."왕야 그릇이 물뿐입니다.""물도 죽이야.""거짓말하실 때 목소리가 더 퉁명스러워집니다."보요가 건더기 절반을 도로 덜어 주자 그는 싫다는 말 없이 먹었다. 노강이 놀라 쳐다보았다. 북강에서는 의원이 세 번 청해도 약 한 사발을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