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아버지보다 더 무서워해요— 그 떨리던 목소리가 사흘째 귓가에 남아 있던 낮이었다. 낮것상을 물리기도 전에, 상엄이 저자에서 주운 소문 하나를 문밖에서 아뢰었다.소금과 비단을 부린 남쪽 배가 하구에 닿았고, 뱃사람들의 입이 국밥집에서 풀렸다. 관보다 소문이 언제나 사흘 빨랐다.온 시랑이 조회에서 탄핵을 받았다더라. 시랑은 인수를 반납하고 집에 들었고, 큰아들은 금부에 불려가 사흘째 나오지 못했다더라.온보요는 수저를 놓지 않았다. 국을 마저 뜨고, 상을 물리고, 시비들을 내보내고— 문이 닫힌 뒤에야, 서안 모서리를 짚은 손끝이 희어졌다.아버지. 오라버니.겨울 전 마지막 서신에서 아버지는 매화 화분을, 오라버니는 조카의 백일 잔치를 길게 적었다. 태평하던 문장들이 지금 와서 목에 걸렸다.죄목은 남방 물길의 세— 우스웠다. 온가의 물길 연은 이십 년 전에 끊긴 것을, 끊은 자들이 더 잘 알 것이었다. 죄목이 우스울수록 뜻은 무거웠다. 죄가 있어 치는 것이 아니라, 칠 때가 되어 죄를 지어낸 것이니.칠 때. 어째서 지금인가. 돌 궤짝이 돌아가고 철장산이 파헤쳐진 다음— 북강의 판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자, 판 밖의 말을 잡은 것이다. 왕비의 손이 닿지 않는, 가장 아픈 말을.문이 열렸다. 진묵이었다. 갑주도 벗지 않은 채였고, 어깨에 조련장의 흙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군무 중일 시각이었다. 누가 알렸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고, 알리라고 시킨 적 없는 것도 알았다."들었느냐.""들었사옵니다.""낯이 그 모양인데, 상은 다 물렸다더구나."사내는 서안 앞에 앉은 그녀 곁에 서서, 희어진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위로의 말을 고르는 낯이 아니었다. 위로를 골라 본 적 없는 사내가, 고르는 법을 몰라서 그냥 서 있는 낯이었다."여인이 울면 소매를 내주라— 책에는 그리 나오던데. 여인들은 어째서 그 대목에서 낯을 붉히는 것이냐." 이윽고 그가 말했다. "본왕은 소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이 품을, 전부 내어주마. 이리 오거라.""······책도 읽
문을 연 것은 온보요 자신이었다.시비를 깨우지 않은 것은 손님의 격식에 맞춘 것이었다. 자정에 담장을 타 넘듯 온 손님에게는, 자정의 격식이 있는 법이니.달이 반쯤 나온 밤이었다. 마당의 살구나무 그림자가 문 앞까지 길게 누워 있었다.허연교는 겉옷도 없이 서 있었다. 연분홍 침의 위에 얇은 배자 하나. 등롱도 시비도 없이, 밤바람에 반쯤 흐트러진 머리로. 경성의 모란이 이 꼴로 남의 처소 앞에 선 그림은, 어떤 화공도 그려 본 적 없을 것이었다."차는 못 드려요. 불 피우는 소리가 나니.""찬물이면 됩니다."들어와 앉은 허연교는 찬물을 정말로 받아 마셨다. 두 손으로 잔을 쥐고, 소리 나지 않게 한 모금. 그 손이 잔을 내려놓지 못하고 오래 쥐고 있었다."마마.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오라버니가 무슨 일로 북강에 왔는지, 아세요?""감찰의 일이라 들었습니다만.""저는 몰라요." 허연교는 웃었다. 모란 같은 웃음이 아니었다. "알려 주지를 않으니까. 알려 주지 않는 일에 쓰이는 것이— 저희 집 여식의 소임이거든요."방 안의 화로는 재만 남아 미지근했다. 온보요는 제 무릎덮개를 밀어 건넸고, 허연교는 사양하다가 받았다. 받은 덮개 밑에서 언 발끝을 녹이며, 경성의 이야기가 나왔다.혼담이 세 번 오갔다 했다. 한 번은 황자에게, 한 번은 늙은 상서에게, 한 번은— 북강의 삭왕에게. 세 번 다 저울에 올랐다가 세 번 다 저울에서 내려졌고, 이번에는 벗이 되라는 명을 받았다 했다. 왕비의 벗. 명을 내린 것은 아비였고, 명의 출처는 아비가 아니라 했다."누구의 뜻입니까.""그건 말할 수 없어요. 말하면— 저는 돌아가서 살 수가 없으니."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반은 말한 것이었다. 아비 위의 뜻. 온보요는 찬물 잔을 채워 주며, 저울질을 계속했다. 진심인가, 수인가. 눈물 없이 하는 하소연은 눈물로 하는 것보다 가리기 어려웠다. 잔 속의 찬물이 등불을 받아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것이 물인지, 쥔 손인지부터 가려야 했다."한데 어
흐릿한 각인을 읽는 데 이틀이 걸렸다.이틀 사이 왕비의 오전은 두 번, 반 시진씩 늦게 열렸다. 늦는 까닭은 왕부의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하나 더 있었다. 왕비의 깃은 봄이 깊어도 목까지 여며졌다. 여며도— 목욕 시중까지 여밀 수는 없어서, 어깨며 쇄골의 붉은 자국들은 탕에 뜬 꽃잎처럼 시비들의 눈에 낱낱이 떠올랐다. 보는 눈들은 입을 다물었고, 다문 입들 사이에서 왕야 혼자— 감쪽같이 감춰진 줄 알고 흡족해했다.첫날은 실패했다. 먹을 짙게 먹였더니 획이 뭉개졌다. 이튿날 온보요는 먹 대신 주사(朱砂)를 기름에 개어 얇게 먹이고, 매미 날개 같은 남지(南紙)를 눌렀다. 종이를 들어내자 붉은 바탕에 흰 획이 떠올랐다. 음각의 골에 남은 것이 글자가 되는 이치였다.붉은 탁본 위에서, 마모된 획이 마침내 자리를 드러냈다. 위(魏). 서안 앞의 세 사람이 그 한 자를 오래 내려다보았다."위씨 성의 대장장이야 천지에 널렸사옵니다." 노강이 조심스레 말했다."널렸지요. 한데 낙관 곁의 이 문양은 널리지 않았습니다."각인 곁에 바늘 끝만 한 꽃문양이 함께 파여 있었다. 돋보기 수정을 대고서야 잎의 수가 세어지는, 좁쌀만 한 꽃. 다섯 잎의 매화. 장인이 제 손을 밝히는 낙관에 꽃을 곁들이는 것은 관물(官物)을 지어 본 손의 버릇이었다. 그리고 다섯 잎 매화를 물표로 쓰는 곳을, 온보요는 알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태후전의 내탕(內帑). 태후 친정— 위씨 가문이 대대로 맡아 온, 궁 안의 곳간. 궁의 향을 사르고 궁의 초를 굽고 궁의 그릇을 굽는 돈이, 전부 그 곳간을 지난다."겉봉이 이어졌사옵니다."향 가게로 흘러들던 앵아의 실. 초하루마다 온다던 궁의 향 심부름꾼. 허도위를 지나쳐 더 위로 뻗어 있던 실 끝이, 폐광의 인두와 한 매듭에서 만났다. 실의 임자도, 인두의 임자도, 같은 문을 드나드는 손이었다.서안 위의 나무패가 다시 놓였다. 황상의 패, 허가의 패, 왕부의 패— 그리고 이제, 위가의 패가 새로 깎
인두는 서안 한가운데 놓였다.산에서 내려온 지 이틀. 그 이틀 사이 왕부는 겉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 봄 조운 장부가 오가고, 살구꽃이 벌어지고, 허연교의 별채에서는 거문고 소리가 담을 넘었다. 군무에서 돌아오는 말발굽 소리가 담 밖을 지나는 시각이면, 곡은 어김없이 새로 시작되었다. 말발굽 소리는 한 번도 느려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낮들의 밑에서, 밤마다 서재의 등불만 오래 살았다.등불 넷. 문은 걸었고, 방 안에는 셋뿐이었다. 진묵과 온보요, 그리고 상 끝의 노강. 온보요는 인두를 들어 등불에 비췄다. 금군 낙인. 획 하나, 이지러진 각 하나까지, 궤짝의 것과 같았다. 같아야 했다. 한 어미에게서 난 도장이니까."위조이옵니다. 전부."말이 떨어지자, 노강의 목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겨우내 쌓아 온 그림이 소리 없이 다시 그려졌다.금군의 병기가 북강으로 새어 들어온 줄 알았다. 무기고 임자의 수결을 좇으면 외척의 목줄이 잡히는 줄 알았다. 한데 병기는 처음부터 금군의 것이 아니었다. 북강의 폐광에서 두들겨 만든 쇠에, 북강의 화덕에서 태어난 가짜 낙인을 찍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어낸 물건이었다."어째서······." 노강이 마른 입을 뗐다. "가짜 병기에 가짜 도장을 찍습니까. 팔지도 못할 것을.""팔 물건이 아니니까요." 온보요는 인두를 내려놓았다. "찾을 물건입니다."온보요는 인두를 노강 쪽으로 돌려놓았다."노 부관. 어느 날 감찰이 북강 땅에서, 이 낙인이 찍힌 병기 무더기를 찾아냈다 치지요.""금군 병기가 나왔으니······ 도둑을 잡겠지요.""낙인이 가짜인 것까지 함께 밝혀지면요."노강의 입이 벌어진 채 멎었다. 훔친 것이 아니라, 지어낸 것. 금군을 사칭해 병기를 지어낸 자가 북강에 있다— 는 그림이, 그의 낯 위에서 천천히 완성되어 갔다. 완성된 낯이 잿빛이 되었다."사병······." 갈라진 목소리가 셋을 다 세지 못했다. "금군 사칭에······.""그 다음 글자는 입에 담지 마세요.""쌀 도둑
꽃이 반이나 벌어진 살구 가지를 물병에 남겨 두고, 사내들은 그 아침 북쪽 산으로 떠났다. 산은— 이름값을 했다.능선의 바위마다 쇠 빛이 돌았고, 골짜기의 개울물은 바닥의 돌이 붉었다. 검붉은 산흙— 돌 틈에 말라붙어 있던 그 흙이, 예서는 발밑에 지천이었다. 진묵은 말에서 내려 흙 한 줌을 쥐어 보았다. 손안에서 부서지는 결까지 같았다.산 초입의 숯가마 터에서 일행은 숯장수 노인 하나를 만났다. 노인은 왕야의 융복을 알아보지 못했고, 알아보지 못해서 말이 술술 나왔다. 겨우내 밤수레가 능선을 오르내렸다는 것, 수레꾼들이 숯도 안 사면서 불만 쬐고 갔다는 것, 그중 하나가 두고 간 술병의 술이 경성 것이더라는 것까지. 말 값으로 소월백은 숯 두 섬을 시세의 갑절로 샀다.숯장수의 말은 값을 했다. 남쪽 능선의 소로에는 겨우내 다져진 수레 자국이 아직 살아 있었다. 무거운 짐이, 여러 번, 밤에 다닌 자국. 자국은 폐광의 남쪽 갱도 앞에서 끊겼다."물이 찬 갱도는 동쪽입니다." 소월백이 말했다. "남쪽은 마릅니다. 마른 갱도는 곳간이 되지요."갱도 입구는 무너진 것처럼 보이게 막아 두었다. 보이게— 라는 것이 문제였다. 무너진 돌 틈에 낀 지렛대 자국을 진묵은 세 걸음 밖에서 읽었다. 소월백은 다섯 걸음 밖에서 읽은 낯이었다. 두 사내는 서로가 읽은 것을 알았고, 아는 것을 내색하지 않는 것으로 겨뤘다.돌을 들어내자 갱도가 입을 벌렸다. 안에서 흘러나온 공기는 겨울처럼 차고, 쇳내에 절어 있었다. 횃불이 그 공기를 만나 한 번 크게 몸을 떨었다.횃불 빛에 드러난 안은, 비어 있었다. 짐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허나 곳간은 짐이 나가도 냄새를 지니는 법이라— 기름 먹인 나무 냄새, 쇳내, 그리고 숯불의 잔향이 벽에 배어 있었다. 갱도 안쪽에 화덕 자리가 있었다. 재가 아직 푸석하게 살아 있는, 오래지 않은 화덕."대장간이군요." 소월백이 재를 헤집었다. "폐광 속의 대장간이라."진묵은 화덕 곁의 모루 자국을 보고 있었다. 병장기를 벼리는 자리 치
그날 밤 침소의 등불은 여느 밤보다 오래 살아 있었다.진묵은 서안 앞의 여인을 등 뒤에서 안아 들었다. 붓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떨어뜨렸다. 항의는 입술이 열리기 전에 막혔다. 낮의 흰 백자가, 살구나무 반 바퀴의 정원이, 서로가 서로에게 둔 수들이, 말이 되지 못한 채 숨으로만 오갔다.방 안에는 살구꽃 가지 하나가 물병에 꽂혀 있었다. 낮에 앵무가 꺾어 온 것이었다. 그 옅은 향과 등잔 기름 냄새 사이로, 사내의 숨이 섞여 들었다.입맞춤은 길고, 깊고, 어딘가 화가 나 있었다.화가 난 입맞춤이 어째서 이리 다디단지, 온보요는 생각하려 했고, 생각은 두 번째 입맞춤에서 끊겼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등을 타고 내려와 허리에서 멎었다. 멎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가— 다시 들어갔다. 힘의 오르내림이 그대로 사내의 숨이었다. 사내의 다른 손이 그녀의 머리를 받쳐, 비녀를 천천히 뽑았다. 먹빛 머리채가 소리 없이 어깨로 쏟아지고, 그 사이로 손가락이 빗처럼 지나갔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두피가 저릿하게 깨어났다. 옷고름 매듭에는 다른 손끝이 걸리고, 걸린 채로 오래 머물렀다. 풀지 않았다. 풀지 않는 것이 푸는 것보다 숨을 가쁘게 했다."자······ 잠깐, 왕야······.""잠깐이 무어냐." 목덜미에서 낮은 웃음기가 울렸다. "밤은 길다.""오늘 저녁의 그 차 말이다."귓불에 닿는 목소리가 낮게 갈라져 있었다."맛이 어떻더냐.""······기억나지 않사옵니다.""본왕은 난다." 입술이 귓바퀴의 선을 따라 내려왔다. "석 잔이 다, 썼다."쓴 차를 석 잔이나 비운 것은 누구의 수였는지. 따지려던 말은 목덜미에 내려앉은 입술에 눌려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서 나온 것은 따짐이 아니라—"아······."제 것 같지 않은 소리가 새어, 그녀는 손등으로 입을 눌렀다. 누른 손등을 사내의 손이 천천히 걷어 냈다."막지 마라." 귓가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그 소리도 본왕의 것이다." 등불이 흔들리고, 그림자 둘이 벽 위에서 하나로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