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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겉봉 두 장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8 22:25:44

네가 고른 답을 보내라. 그 말은 사가의 밤까지 따라와, 등불 곁에 오래 앉아 있었다.

답을 고르려면, 먼저 판을 골라야 했다. 온보요는 서안 위에 나무패를 놓았다. 황상의 패. 태후전의 패. 허가의 패. 경성에 와서 새로 깎은 패가 둘— 편전의 지친 웃음과, 회랑의 야윈 저울. 패와 패 사이에 명주실을 걸며, 그녀는 북강 서재의 밤들을 생각했다. 그때는 등 뒤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실을 혼자 걸었다. 거는 손끝이 마르면, 물병의 살구 가지를 한 번 보았다. 마른 가지는 마른 채였고— 물병의 물만 조금씩 줄고 있었다.

혼자 거는 실은, 대신 가벼웠다. 가볍게— 그녀는 실 하나를 위가의 패에서 허가의 패로 옮겨 걸었다.

이튿날,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 앵아가 저자 심부름을 나갔다. 왕비의 분부로 남쪽 침향을 사러— 북강 저자의 그 향 가게와 같은 물건을 파는, 경성 서시(西市)의 향 가게로. 앵아는 심부름을 반겼다. 반기는 낯이 아침 볕에 발그레했고, 나서는 뒷모습의 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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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43화. 남은 약

    타 버린 약 냄새가 밤까지 옷에 붙었다.폐역의 방은 하나뿐이었다. 소월백과 익위들은 마구간에 자리를 잡았고, 진묵은 묻지도 않고 온보요를 안아 방 안으로 들였다. 문이 닫히기 전 그가 소월백에게 말했다."포로 눈 떼지 마. 죽으면 네가 대신 불어.""왕야께서 들을 만한 말은 모릅니다.""그럼 더 오래 살겠네."문이 닫혔다.방 안에는 깨진 약탕기와 마른 쑥 한 줌뿐이었다. 진묵이 솥에 물을 붓고 쑥을 던졌다. 해검원 의원이 연기를 마신 자에게 뜨거운 김을 쐬라 하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었다.온보요가 웃었다."다 들으셨네요.""쓸 말만."물이 끓자 그가 그녀 겉옷의 고름을 풀었다. 손끝은 익숙하고 느렸다. 젖은 옷을 어깨에서 벗겨 내고 얇은 중의만 남긴 뒤, 제 겉옷으로 등을 감쌌다. 뜨거운 김이 목과 쇄골에 물방울로 맺혔다.진묵의 엄지가 그 물방울을 훔쳤다."숨 쉬어."온보요가 천천히 들이마셨다. 쑥 냄새가 목을 긁었다. 기침이 터지자 진묵이 등을 쓸어 내렸다. 거친 손바닥이 중의 위를 오르내릴 때마다 젖은 천이 살에 붙었다 떨어졌다."왕야도 벗으세요.""왜.""어깨에 피가 났습니다.""내 피 아니야.""거짓말은 제 앞에서 하지 마시고요."그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등을 돌렸다. 온보요가 갑주 아래 끈을 풀었다. 검은 옷이 내려가자 어깨 뒤로 화살이 스친 붉은 자국이 드러났다. 얕았으나 길었다."앉으세요."진묵은 침상 끝에 앉아 등을 내주었다. 그녀가 남은 쑥물을 무명에 적셔 상처를 닦았다. 문밖에서는 포로 신음과 소월백의 낮은 문초 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방 안에서는 젖은 무명이 살을 지나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났다.쓱. 다시, 쓱.진묵이 뒤로 손을 뻗어 그녀 허리를 끌었다. 온보요의 무릎이 그의 넓적다리 양옆에 닿았다. 상처를 보려 가까이 간 자세가 한순간 다른 것이 되었다."왕야.""닦아."명령은 퉁명스러웠으나 고개는 그녀가 보기 좋게 낮아졌다. 온보요가 상처 끝을 누르자 그의 숨이 짧게 새었다. 그녀 목덜미에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42화. 검은 깃

    말 두 필 사이에 맨 들것은 수레보다 느리고, 관보다 조용했다.진묵은 오른쪽 말의 고삐를 잡고 걸었다. 온보요가 기침할 때마다 그의 걸음이 느려졌다. 뒤따르던 익위들은 왕야의 등을 보며 속도를 맞췄다. 누구도 늦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소월백이 앞길을 살피고 돌아왔다."금룡기는 고개 너머에서 사라졌습니다. 말굽은 열둘입니다.""황제의 친위가 열둘씩 움직일 때는 둘 중 하나지. 사람을 데려가거나, 입을 없애거나."진묵의 말에 온보요가 눈을 떴다."왕야. 들것을 세워 주세요.""누워 있어.""말굽 소리가 없습니다."앞은 바위가 양쪽에서 오므라든 좁은 길이었다. 흙에는 새 발굽 자국이 선명한데 바람 속에는 말의 숨도, 재갈 소리도 없었다. 열두 필이 길을 건넜다면 고요할 수 없는 자리였다.진묵이 손을 들었다. 행렬이 멎었다.그 순간 검은 깃이 바위 위에서 떨어졌다.금실 용이 온보요 얼굴을 덮기 직전, 진묵의 검이 깃대를 두 동강 냈다. 바위 뒤에 엎드렸던 자들이 일제히 쇠뇌를 들었다.퉁. 퉁퉁.진묵이 들것을 뒤집어 제 몸으로 덮었다. 화살 셋이 나무틀에 박혔다. 소월백의 검이 흰 선을 그으며 왼쪽 비탈을 올랐다. 익위 둘이 오른쪽으로 갈라졌다."여자부터 잡아! 동패는 그 여자에게 있다!"외침이 골짜기에 부딪혀 돌아왔다.온보요는 뒤집힌 들것 아래서 손을 옷섶에 넣었다. 동패는 없었다. 떠나기 전 마숙의 붕대 안에 넣어 서쪽 보루로 보냈다. 왕부를 서두르는 자라면 보요가 지녔다고 여길 터였다.그 믿음이 지금 칼 열둘을 전부 이쪽으로 불렀다.진묵이 들것 밖으로 나갔다. 먹빛 자락이 한 번 돌아갈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흙 위에 누웠다. 살려 두라는 명을 받은 익위들이 칼등을 썼으나, 진묵의 검에는 그런 자비가 없었다."왕야, 셋은 살리세요!"검끝이 사내 목 한 치 앞에서 멎었다."셋."그 한마디에 익위들이 세 사람의 턱을 꺾어 입 안을 막았다. 나머지는 달아나지 못했다.짧은 싸움이 끝났을 때 약 수레에 불이 붙어 있었다. 마지막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41화. 숨값

    왕부로 가는 길은 열렸으나, 온보요의 숨이 먼저 닫혔다.마른기침 끝에 흰 무명 위로 핏빛 한 점이 떨어졌다. 진묵의 손이 그녀 턱을 들었다. 해검원 의원은 맥을 짚다 말고 바닥에 이마를 붙였다."연기를 깊이 마셨사옵니다. 이틀은 수레도 타시면 아니 되옵니다. 배 속 아기까지 놀랄 수 있사옵니다.""놀라면.""피가 비칠 수도······."진묵의 눈이 서늘해졌다."왕야. 의원에게 화내지 마세요.""안 냈어."의원의 어깨가 더 낮아졌다. 온보요가 그 등을 보자 진묵이 혀를 차고 한마디를 덧붙였다."살려 준다. 일어나."그제야 의원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창밖에서 매의 날갯소리가 났다. 일영이 검은 깃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왕부 파발매의 꼬리깃이었다. 매의 발목에는 쪽지 대신 상엄이 쓰는 곳간 열쇠의 반쪽이 매여 있었다.열쇠는 가운데가 잘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칼날로 세 번 찍어 부러뜨렸다. 왕부 안에 칼 든 자가 들었다는 상엄의 옛 신호였다.일영이 무릎을 꿇었다."어젯밤 동루를 비우라는 황명이 닿았사옵니다. 총관이 문을 잠근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해검원에서 왕부까지 꼬박 이틀. 빠른 말은 하루 반. 불을 지른 자들 가운데 먼저 떠난 말이 있다면 이미 성문을 넘었을 때였다.진묵이 몸을 돌렸다."말 내라.""전하."소월백이 핏기 없는 온보요를 보았다."마마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그래서 본왕만 간다."온보요가 진묵의 소매를 잡았다."동패는 제가 읽었고, 옥패는 월백 공자가 가졌습니다. 왕야 혼자 가시면 칼부터 쓰실 테고요.""잘 아네.""그러니 함께 갑니다.""안 돼."그녀는 대답 대신 그의 손을 제 배 위에 얹었다. 아직 아무 움직임도 느낄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진묵의 손가락은 닿자마자 힘을 잃었다."달리는 수레는 안 됩니다. 말 사이에 들것을 매달면 흔들림이 줄어요. 다친 이들은 서쪽 보루에 맡기고, 걸을 수 있는 사람만 데려갑니다."마숙이 붕대 감은 손을 들었다."동패도 제가 지니고 서쪽으로 가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40. 동쪽 계단

    불 속에서 두 번 살아남은 동칠은 해검원 동쪽 돌계단의 일곱째 칸이었다.비가 그친 새벽, 푸른 돌은 씻긴 듯 차가웠다. 온보요가 탄 나무패를 계단 옆에 대었다. 뒷면의 긁힌 선 일곱 개와 돌 가장자리의 홈이 맞았다.진묵은 이미 일곱째 계단 앞에 서 있었다.온보요가 그 장화를 보았다. 다른 이들이 글자를 헤아리기도 전에 멈춘 자리였다. 그는 시선을 느끼고도 비키지 않았다."왕야는 우연도 빠르십니다.""네가 느려.""그러시겠지요."그녀가 더 묻지 않자 진묵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소월백과 익위들이 쇠지렛대를 끼웠다. 일곱째 돌이 들리자 안쪽에서 검은 물이 흘렀다. 돌 아래에는 기름 먹인 나무함 하나가 들어 있었다. 마숙은 화상 입은 손으로 함의 매 문양을 쓸었다."선대왕께서 직접 맡기신 것입니다."함 안에는 칼이 아니라 칼집 하나가 누워 있었다. 마숙이 메고 온 것은 길을 여는 빈 껍데기였고, 이것이 진규의 진짜 칼집이었다. 검은 가죽 안쪽에 얇은 동패가 끼워져 있었다.칼집 끝에는 마른 핏자국이 손가락 길이만큼 남아 있었다. 마숙은 닦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진규가 마지막으로 칼을 넣던 날의 피라 했다. 소월백은 무릎을 굽혀 칼집에 한 번 절했다. 자신을 살려 보낸 무장의 남은 물건 앞에서였다.진묵은 절하지 않았다. 다만 칼집이 젖은 돌에 닿지 않도록 제 겉옷 자락을 아래에 깔았다.온보요가 손을 넣으려 하자 진묵이 먼저 칼집 입구를 넓혀 주었다. 그녀 손가락이 동패를 꺼낼 때까지 손등 아래에 제 손바닥을 받쳤다.동패 앞면에는 왕부 동쪽 성루, 뒷면에는 셋째 계단이 새겨져 있었다. 가장자리의 작은 홈은 소월백의 백옥 패와 맞을 만한 반달 모양이었다."밀지는 왕부에 있어."소월백이 낮게 말했다.마숙이 고개를 저었다."길 하나만 더 남은 겁니다. 동패와 옥패를 함께 써야 문이 열릴 테지요."소월백이 백옥 패를 동패 곁에 댔다. 반달 홈은 정확히 맞았지만 두 물건 사이에는 손톱 하나 들어갈 틈이 남았다. 셋째 조각이 더 있어야 완전한 원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39화. 불속

    문턱을 핥은 불이 네 벽의 칼기름 냄새를 깨웠다.화르륵.검은 천에 싸인 칼들이 한꺼번에 타올랐다. 오래 잠든 장수들의 이름표가 붉은 불 속에서 뒤틀렸다. 진묵이 문을 걷어찼으나 바깥 빗장이 버텼다."물러나. 벽을 깬다."소월백이 마숙을 끌어 남쪽 벽으로 옮겼다. 온보요는 젖은 소매로 입을 가리고 바닥을 보았다. 기름은 문에서 서쪽 벽으로만 흘렀다. 동쪽 일곱째 자리는 아직 불이 닿지 않았다."동쪽부터 살펴야 합니다.""너부터 나가.""단서가 탑니다."진묵의 낯이 불빛 속에서 서늘하게 굳었다."단서는 다시 찾는다. 너는 하나야."그가 검자루로 남쪽 돌벽을 내리쳤다. 한 번, 둘. 돌가루가 쏟아지고 금이 벌어졌다. 익위들이 밖에서 같은 자리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서쪽 선반이 무너졌다. 마숙이 몸을 돌려 이름표 꾸러미를 감쌌고, 불붙은 나무가 등으로 떨어졌다. 소월백이 맨손으로 나무를 걷어 냈다. 흰 소매에 불이 옮겨붙자 바닥을 굴러 껐다."마숙 옹부터 보내."진묵이 소월백에게 명했다. 그는 온보요를 안아 들려 했다."왕야. 저 아이도요."동쪽 구석에 어린 등지기가 웅크리고 있었다. 온몸에 기름 냄새가 뱄고 손목에는 밧줄에 끌린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진묵의 팔이 멎었다. 곧 몸을 돌려 아이부터 집어 소월백 쪽으로 던지듯 안겼다."받아. 뛰어."진묵은 보요의 말에 구출 순서를 바꿨다. 소월백은 아이를 품고 벽의 틈으로 빠져나갔다. 이어 마숙이 익위들 손에 끌려 나갔다.연기가 낮게 내려앉았다. 온보요가 기침하며 무릎을 짚었다. 진묵은 더 묻지 않았다. 망토로 그녀 머리까지 감싸 품에 안았다. 돌벽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전에 어깨로 틈을 넓혀 밖으로 나왔다.찬비가 얼굴을 때렸다. 그는 마당에 무릎을 꿇고 온보요를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망토를 걷어 이마와 입술을 손바닥으로 쓸었다."숨."온보요가 기침 끝에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제야 그의 어깨가 내려갔다. 소월백과 익위들이 보는 앞에서 진묵은 그녀의 그을린 입가에 입술을 눌렀다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38화. 빈 칼집

    푸른 돌담 안에는 불만 남고 사람은 없었다.해검원 동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마숙의 철편을 넣기도 전이었다. 마당에는 젖은 말똥 여섯 덩이와 밟힌 횃불 하나가 흩어져 있었다. 검은 연기는 동쪽 전각 굴뚝에서 곧게 올랐다.말들은 없었지만 고삐를 맨 기둥 여섯 곳이 젖어 있었다. 한 자리에는 흰 말총, 다른 자리에는 금군이 쓰는 붉은 안장실이 걸렸다. 옛 군호를 든 자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태후의 눈도 같은 담 안까지 따라왔다.전각 앞 화로에는 숯이 아직 붉었다. 찻잔 여섯 개 가운데 하나만 입술 자국이 없었다. 누군가는 차를 마실 틈도 없이 급히 일어났고, 누군가는 그 뒤를 살피며 남았다.진묵이 익위들에게 턱짓했다."문마다 둘. 숨은 놈은 다리부터 잘라."거친 명이 떨어지자 창 든 자들이 흩어졌다. 온보요가 전각 문살의 가는 실을 보았다."문은 건드리지 마세요."진묵의 검끝이 자물쇠 앞에서 멎었다."왜.""열면 안에서 불이 붙습니다."그는 묻지 않고 검을 넣었다. 방금 전 다리를 자르라던 사내가 그녀의 한마디에는 칼부터 거두었다. 소월백이 마른 웃음을 삼켰다.문살에는 말총이 묶였고 끝은 안쪽 등잔 심지로 이어졌다. 온보요가 비녀로 매듭을 풀었다. 진묵은 제 검집을 그녀 무릎 아래 받쳐 흙이 치맛자락에 닿지 않게 했다."왕야의 검은 받침입니까."소월백이 물었다."내 부인 치마 지키는 데 쓰면 되지.""선대왕께서 들으시면 우시겠습니다.""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어."온보요가 돌아보았다."고인께 그러시면 안 됩니다.""알았다."진묵은 입을 다물었다. 마숙이 이번에는 국자 대신 철편을 떨어뜨렸다.말총이 끊어지자 문 안에서 작은 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딸각. 등잔 심지와 이어진 기름 그릇이 기울다 멎었다. 온보요가 한 번만 늦었어도 전각은 문을 여는 순간 탔을 터였다."잘했어."진묵이 그녀 정수리에 입술을 댔다. 소월백이 바로 뒤에 있었으나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았다.등잔 심지를 끊고 문을 열었다. 안쪽 벽 네 면에 칼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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