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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편전(便殿)

Autor: moominkiller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7-28 22:25:24

편전으로 드는 회랑은 대전 뜰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내관은 문 앞에서 물러났다. 편전 안에는 등촉이 여섯. 황제는 용포의 어깨끈을 반쯤 늦춘 채,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 연회의 낯이 아니었다. 연회의 낯보다 다섯 살은 젊고, 열 살은 지쳐 보였다. 서안 위에는 장계가 세 무더기. 붉은 인주 함이 뚜껑 열린 채였고, 곁의 찻잔은 바닥이 말라 있었다. 마른 잔을 갈아 줄 손도 물려 둔 방이었다.

"가까이."

온보요는 격식대로 나아가 부복했다.

"평신. 자리를 주어라— 아, 물릴 사람이 없지." 편전 안에 내관 하나 두지 않은 것을, 그 말로 처음 알았다. 황제는 저 혼자 짧게 웃고, 손수 곁의 방석을 가리켰다. "앉으라. 오래 붙들 생각은 없다."

앉는 자리가 서안에서 세 걸음. 독대라기에는 가깝고, 하문이라기에는 헐거운 거리였다. 등촉 여섯의 불빛이 그 세 걸음 사이에 얕은 강처럼 깔렸다.

"삭왕은."

첫 물음이 그것이었다.

"강녕하시옵니다."

"그것을 물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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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80화. 밤손님

    밀려난 기와는 밤새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침 볕에 그 틈이, 지붕 위에 가는 그림자 한 줄을 그었다.이튿날 호위 아이는 말없이 마당의 물건들을 옮겼다. 장독 둘을 담 밑으로, 빨랫줄을 반 자 낮게, 마른 살구 가지가 꽂힌 물병을 창가에서 안쪽 서안으로. 옮기는 손이 야무져서, 사가의 시비들은 봄맞이 청소로만 알았다. 저녁상을 물리며 아이는 마마의 방에 화로 부젓가락을 하나 더 들여놓았다. 들여놓으며, 눈으로 서안과 창 사이의 거리를 한 번 쟀다.온보요는 그날 밤 등불을 일찍 껐다. 끄고,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삼경이 넘어, 마당의 소리가 한 겹 얇아졌다.풀벌레가 먼저 그쳤다. 다음은 바람. 담 위에서 무언가가 젖은 종이처럼 소리 없이 내려앉았고— 방문의 창호지에 사람 그림자가 스몄다. 하나. 처마 쪽에서 둘.문이 열리는 것과 그림자가 방바닥을 딛는 것과 호위 아이의 단검이 어둠을 긋는 것이, 한 호흡 안에 있었다. 어둠 속의 칼은 소리로 먼저 왔다. 천이 갈리는 소리.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 서안 모서리가 한 뼘 날아갔다.쇠와 쇠가 물리는 소리. 등불 없는 방 안에서 소리만이 싸움의 꼴을 그렸다. 온보요는 이불을 걷어 첫 그림자의 낯을 향해 던지고, 서안 뒤로 물러났다. 서안 위의 벼루가 손에 잡혔다. 두 번째 그림자가 창을 넘던 순간— 벼루가 날았고, 이마에 맞은 그림자가 창틀에서 반 호흡 무너졌다.그 반 호흡 사이로, 마당에서 흰 것이 들이쳤다.소월백의 검은 그믐밤의 그 검이 아니었다. 살기가 실려 있었다. 첫 합에 한 자루가 꺾이고, 둘째 합에 비명이 났다. 그림자 둘이 담을 되넘어 달아나는 소리가 지붕 위로 흩어졌다. 쫓지 않았다. 소월백의 검끝이 문께의 어둠을 반 바퀴 훑고서야, 내려왔다. 그리고— 방 안에는 피 냄새와, 향 냄새가 남았다."등불."소월백의 목소리에 앵무가 덜덜 떨며 불을 붙였다.호위 아이가 문설주에 기대앉아 있었다. 왼팔 소매가 검게 젖어 갔다. 낯은 태연한데, 단검을 쥔 오른손이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79화. 겉봉 두 장

    네가 고른 답을 보내라. 그 말은 사가의 밤까지 따라와, 등불 곁에 오래 앉아 있었다.답을 고르려면, 먼저 판을 골라야 했다. 온보요는 서안 위에 나무패를 놓았다. 황상의 패. 태후전의 패. 허가의 패. 경성에 와서 새로 깎은 패가 둘— 편전의 지친 웃음과, 회랑의 야윈 저울. 패와 패 사이에 명주실을 걸며, 그녀는 북강 서재의 밤들을 생각했다. 그때는 등 뒤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실을 혼자 걸었다. 거는 손끝이 마르면, 물병의 살구 가지를 한 번 보았다. 마른 가지는 마른 채였고— 물병의 물만 조금씩 줄고 있었다.혼자 거는 실은, 대신 가벼웠다. 가볍게— 그녀는 실 하나를 위가의 패에서 허가의 패로 옮겨 걸었다.이튿날, 두 가지 일이 있었다.하나. 앵아가 저자 심부름을 나갔다. 왕비의 분부로 남쪽 침향을 사러— 북강 저자의 그 향 가게와 같은 물건을 파는, 경성 서시(西市)의 향 가게로. 앵아는 심부름을 반겼다. 반기는 낯이 아침 볕에 발그레했고, 나서는 뒷모습의 소매가 여느 날보다 반듯하게 여며져 있었다. 앵아의 소매에는 왕비의 서신 초 한 장이 접혀 들어 있었다. 초에는 지어낸 것 하나가 심겨 있었다. 온가의 옛 문서가— 북강 왕부의 서고에 있다는 것.둘. 같은 시각, 기별 시종이 관아 앞 저자에서 사람 하나와 어깨를 스쳤다. 스치며, 소매에서 소매로 얇은 것 한 장이 건너갔다. 북강 향 가게의 겉봉을 그대로 본뜬—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겉봉 한 장. 접은 각까지 같은. 받은 사람은 허부의 문객이었고, 문객의 주인은 요즘 저울눈을 의심하기 시작한 감찰이었다. 스침은 세 걸음이면 끝났다. 어깨가 닿고, 떨어지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방향으로 반 마장을 더 걸었다. 저자의 소음이 그 세 걸음을 덮고 지나갔다.겉봉 두 장이 각자의 길을 갔다.한 장은 향 가게의 문갑으로 들어가, 초하루의 심부름꾼을 기다릴 것이었다. 태후전은 문서가 북강에 있다고 읽고— 서고의 물목을 더 급하게 원하게 될 것이었다. 급해진 손은 서두르고, 서두르는 손은 자국을 남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78화. 편전(便殿)

    편전으로 드는 회랑은 대전 뜰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조용했다.내관은 문 앞에서 물러났다. 편전 안에는 등촉이 여섯. 황제는 용포의 어깨끈을 반쯤 늦춘 채,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 연회의 낯이 아니었다. 연회의 낯보다 다섯 살은 젊고, 열 살은 지쳐 보였다. 서안 위에는 장계가 세 무더기. 붉은 인주 함이 뚜껑 열린 채였고, 곁의 찻잔은 바닥이 말라 있었다. 마른 잔을 갈아 줄 손도 물려 둔 방이었다."가까이."온보요는 격식대로 나아가 부복했다."평신. 자리를 주어라— 아, 물릴 사람이 없지." 편전 안에 내관 하나 두지 않은 것을, 그 말로 처음 알았다. 황제는 저 혼자 짧게 웃고, 손수 곁의 방석을 가리켰다. "앉으라. 오래 붙들 생각은 없다."앉는 자리가 서안에서 세 걸음. 독대라기에는 가깝고, 하문이라기에는 헐거운 거리였다. 등촉 여섯의 불빛이 그 세 걸음 사이에 얕은 강처럼 깔렸다."삭왕은."첫 물음이 그것이었다."강녕하시옵니다.""그것을 물은 게 아니다." 황제는 서안 위의 붓을 만지작거렸다. 만지작거리는 손이, 무겁게 걸으려 애쓰던 발소리와 같은 결이었다. "짐은 그자를 아홉 살에 마지막으로 보았다. 선황 곁에 세자로 서 있던— 그때 그자가 짐에게 감꽃을 주웠다 주었지. 짐이 그걸 실에 꿰어 목에 걸었더니— 모후께서 걷어 버리셨다. 황자가 거지 목걸이를 한다고. 한데 지금 조정이 말하는 삭왕은 사람을 삶아 먹는다더군. 어느 쪽이 참이냐.""둘 다 아니옵니다.""하면.""감꽃을 줍던 손으로, 지금은 북강의 성벽을 줍고 계시옵니다." 온보요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답했다. "돌 하나가 빠지면 그 틈으로 겨울이 들어오는 까닭에— 스무 해째, 줍고 계시옵니다."편전 안의 등촉 하나가 심지를 태우며 잘게 소리를 냈다. 황제는 오래 말이 없었다."조정은 그 성벽이 짐을 향해 쌓인다 하던데.""성벽은 등이 없사옵니다. 안에서 보면 감싼 것이고, 밖에서 보면 막아선 것이지요." 그녀는 거기서 반 호흡을 두고, 마저 얹었다. "폐하께서는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77화. 어연(御宴)

    물병의 살구 가지에서 마른 꽃받침 하나가 떨어진 아침, 성수 본연회의 부름이 왔다.대전 앞뜰에 상이 삼백이었다. 붉은 융단이 계단을 타고 내려와 뜰을 가로질렀고, 처마마다 홍사초롱이 줄지어 걸렸다. 악공만 마흔. 향로의 연기가 뜰 위로 얇은 지붕을 한 겹 더 만들었다. 북강의 연회가 냄새부터 먹였다면, 경성의 연회는 눈부터 먹였다. 상마다 오른 것도 눈요기부터였다. 통째로 쪄 낸 잉어가 비늘에 금가루를 입고 눕고, 두부로 빚은 봉황이 국화 꽃잎 위에 앉았다. 젓가락을 대기 아까운 것들이, 젓가락을 대라고 삼백 상에 깔렸다.온보요의 자리는 서열대로— 대전 계단에서 상 아홉 개 거리였다. 아홉 상 너머의 계단은, 볕이 먼저 올라가 기다리고 있었다.황제는 미시 정각에 나왔다.용포의 노란빛이 계단 위에서 번쩍했고, 삼백 개의 상이 일제히 엎드렸다. 온보요는 이마를 조아린 채,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를 세었다. 젊은 발소리였다. 무겁게 걸으려고 애쓰는, 젊은 발소리. 발소리가 지나는 자리마다, 엎드린 등들이 물결로 낮아졌다 일어났다."평신하라."낯을 들어도 되는 거리에서 처음 본 황제는, 용포가 아직 어깨에 큰 사내였다. 서른 초입. 눈매가 예리한데, 예리함이 자주 태후전 쪽 처마를 다녀왔다.잔이 세 순배 돌고, 축수의 서문이 낭독되었다. 명부들이 한 문장씩 이어 적은 그 두루마리였다. 낭독하는 학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문장을 지날 때— 서툰 글씨로 적힌 그 문장을 지날 때— 태후의 눈이 뜰을 건너 그녀에게 잠깐 다녀갔다. 온보요는 잔을 들어 입술만 적셨다. 금가루 잉어에는 끝내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연한 살을 골라 얹어 주던 손이, 이 삼백 상 어디에도 없었다.일은 술이 다섯 순배째 돌 때 났다.내관 하나가 그녀의 상 곁을 지나다 발이 걸렸고, 쟁반의 술 주전자가 기울었다. 기운 주전자의 술이 그녀의 소매를 향해 쏟아지는— 찰나, 곁상의 허연교가 제 부채를 펴며 반 걸음 일어섰다. 술은 부챗살을 타고 흘러 융단에 떨어졌다. 연분홍 부채 한 자루가 흠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76화. 살구 가지

    한 장은, 너한테. 그 끊긴 말을 안고 돌아온 저녁— 사가의 부엌 시비가 저자에서 떡을 사 왔다.남문 밖 그 집의 수수떡이었다. 채반에 담긴 떡이 이번에는 두 켜였다. 시비는 떡집 앞이 하도 붐벼 겨우 샀다고 자랑을 했다. 붐비는 떡집이 굳이 두 켜를 낸 아침이었다. 떡은 어제 것보다 콩고물이 두터웠다. 두터운 고물이, 손끝에 묻어났다.두 켜면 담을 넘어라.담은 그날 밤 넘어왔다. 삼경, 마당의 어둠 속에서 호위 아이가 그림자 하나를 맞아들였다. 물상 차림의 중년 사내— 스무 해 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사내는 절도 인사도 없이 기름종이 꾸러미 하나를 내밀고, 담을 도로 넘어 사라졌다. 온 시간을 다 합쳐도 차 한 모금 식을 시간이 못 되었다. 사내가 넘어간 담 위로 기와 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마당의 어둠이 도로 고요해질 때까지, 호위 아이는 단검 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꾸러미 안에는 밀서 한 통과, 마른 가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살구 가지였다. 꽃이 피었던 자리마다 마른 꽃받침이 별처럼 남은, 한 뼘 길이의 가지. 왕부 담장의 그 나무의 것이었다. 부러뜨린 자리가 칼로 벤 듯 매끈했다. 꽃받침 하나 다치지 않은, 벤 자리였다.밀서의 문면은 군령이었다. 겉봉도 없이 세 번 접힌 종이. 접은 각이 낯익었다. 왕부 서재의 그 손이 접는 각이었다.강녕한가. 사가의 담은 높은가. 떡집의 켜는 늘 세어 보아라— 그리고 줄이 바뀌고, 먹이 조금 진해진 자리에 넉 자가 있었다.위가의 화덕이 꺼졌다.철장산의 폐광이 비워졌고, 숯가마 다섯이 헐렸고, 밤수레의 길에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 넉 자 뒤에 붙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것뿐인 것으로, 북강의 사내가 봄내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가 다 보였다. 장계를 자르던 그 속도로 산을 자르고 가마를 헐었을, 반듯한 손도.서신의 끝에는 아무 말도 없이, 획 하나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무엇을 쓰려다 만 자리인지, 쓰지 않기로 한 자리인지— 먹이 종이 뒤까지 눌린, 낯익은 필압이었다.온보요는 등불을 당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75화. 면회(面會)

    저울을 배우지 못한 아이. 그 말을 온보요는 사가로 돌아오는 가마 안에서 내내 뒤집어 보았다. 앞으로 읽으면 경고였고, 뒤로 읽으면— 오라비가 누이에게 하는 부탁 같기도 했다.이튿날, 금부에서 기별이 왔다. 면회를 윤허한다는 것이었다.태후전의 성의였다. 성의는 빚이고, 빚에는 값이 붙는다. 알면서도 그녀는 채비를 서둘렀다. 가마가 금부 골목에 들어서자 길가의 소리가 낮아졌다. 금부 담장은 이끼도 마른 잿빛이었고, 문 앞의 아전들은 왕비의 문첩을 받고도 반 각을 세워 두었다. 세워 두는 것까지가 이 집의 격식이었다. 문첩을 돌려주는 아전의 손에, 노잣돈 한 꿰미가 얹혔다 사라졌다. 어머니가 들려 보낸 옷 보퉁이와, 사가 부엌에서 새로 찐 수수떡 한 합을 챙겼다. 세 켜짜리였다. 떡집 것이 아니라 부엌 것이니, 신호가 아니라 그냥 떡이었다. 그냥 떡인 것이, 오라비에게는 나을 것이었다.금부의 면회방은 창이 하나였다.창으로 든 볕이 바닥에 좁고 긴 금을 그었고, 그 금 이쪽과 저쪽에 남매가 앉았다. 방에서는 묵은 종이와 곰팡이 냄새가 났다. 오라비는 수염이 자라 있었다. 자란 수염 아래로, 웃는 입매만 예전 그대로였다. 오라비는 야위어 있었다. 야윈 낯으로 웃는 것부터 했다."우리 보요가 왕비마마가 되어 오셨네.""오라버니.""절은 안 한다. 옥살이 몸이 구겨져서, 절을 하면 도로 못 편다."우스개가 예전 그대로라, 눈이 먼저 뜨거워졌다. 온보요는 옷 보퉁이를 금 너머로 밀었다. 옥리가 보퉁이를 풀어 헤집고, 도로 밀어 주었다. 수수떡 합도 같은 길을 다녀왔다. 오라비는 떡 한 점을 그 자리에서 베어 물었다."집 맛이다. 안에서는 소금이 귀하거든." 오라비는 두 점째를 집었다. "귀한 것 치고— 눈물나게 흔한 것이 또 소금이지.""사가 부엌 것입니다.""네가 시킨 맛이면 집 맛이지." 오라비는 떡을 마저 삼키고, 목소리를 반 눈금 낮췄다. "아버지는 강녕하시다. 난 치시는 솜씨가 늘었어. 하도 쳐서— 화선지가 동이 났다더라.""그래서— 그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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