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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꽃님이

Penulis: 소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8 19:15:58

축축한 강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고, 마음마저 어지럽혔다.

삼 년 전 그가 떠나던 날을 그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거액의 은표가 든 문서와, 강남의 삼진 대저택을 남겼다. 그때까지 두 사람이 몇 해 동안 모은 재산의 전부였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손목에는 핏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홍마노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가 오랜 세월 전장에서 한시도 벗지 않던 호신물이었다.

그날 그녀는 어린 시절 정을 맺었던 은행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온 땅을 뒤덮은 누런 낙엽이 그녀를 삼켜 버리도록 내버려 둔 채로.

당장 뛰쳐나가 그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아랫배의 은은한 통증 때문에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마음먹고 자신을 놓아주었다는 것을. 그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었다.

그 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크게 앓아누웠다. 꼬박 이틀 밤낮을 고열에 시달리며 반쯤 목숨을 잃을 뻔했고, 바로 그 병을 치르고 나서야 자신이 서우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성에 있던 시절, 서이현의 어머니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회유와 협박으로 그녀에게 떠나라고 종용했다. 제국공 댁 영애만이 아들의 앞길에 어울리며, 조정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도록 도울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때의 그녀는 진심 하나로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그러다 아버지가 중병으로 자리에 누웠고, 그녀는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그런데 멀리 나가 있던 서이현은 영문도 모른 채 사흘 밤낮 연락이 끊겼다.

그가 보낸 소식 대신 그녀의 손에 도착한 것은 한 통의 밀서와 그림 한 폭이었다. 그림 속에서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화려한 비단 침상에 누워 있었고, 침상 곁에는 여인의 가냘픈 수놓은 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재가 되어 버렸다. 그가 마침내 현실에 고개를 숙이고, 백씨 가문 영애와 바람이 나 더는 깨끗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가 관외에서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그는 차갑게 한마디만 했다. "군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더는 아무 설명도 없었다. 그녀는 그제야 모든 희망을 잃고 합의 이혼서를 내밀며 말했다. 당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밤바람이 뼈를 찌르는 듯했다. 윤서린의 눈시울이 무섭도록 붉어졌다. 그녀는 어금니를 악물고 눈물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서이현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이튿날 아침, 윤서린이 상인회 내청에 막 들어서자마자 관졸이 그녀를 삼층 서재로 안내했다.

나무문을 밀었다.

책상 뒤의 사내는 윤곽이 한층 더 차갑고 깊어 보였다.

먹빛 관복이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태사의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얼굴을 덮쳐 왔다.

그가 마침내 눈을 들었다. 어조는 온기 하나 없이 평평했다.

"오늘부터 네 발령이 내려졌다. 이제 네가 직접 본관의 근접 상무 수행원을 맡는다."

"언제든 분부를 기다려라."

윤서린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웃는 듯 마는 듯한 가짜 미소를 지었다.

"서 사또께서 참 통이 크시네요. 소녀에게 녹봉을 두 배로 주시려는 건가요?"

서이현은 포개 놓은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리고, 긴 손가락으로 규칙적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불만이냐?"

"삼 년 만에 실력은 늘지 않았는데, 본관에게 흥정하는 법은 배웠군."

"당치 않습니다."

윤서린은 더없이 모범적인 직업적 가짜 미소를 돌려주었다.

"소녀는 그저 궁금해서요. 서 사또께서 이러시는 게 공과 사를 뒤섞은 보복이십니까, 아니면 소녀가 없으니 현령 노릇이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지경이라서입니까?"

서이현의 입꼬리가 아주 얕게 올라갔다. 장난기와 위험이 한데 섞인 웃음이었다.

"이걸 공과 사를 뒤섞은 보복이라고 하나?"

그는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넓은 책상을 돌아, 한 걸음씩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본관은 이걸 물건을 끝까지 쓴다고 한다."

그가 그녀 앞에서 멈춰 섰다. 익숙하고 맑은 소나무 향이 거침없이 숨결 속으로 파고들었다.

윤서린은 코웃음을 치며 곧장 허리에 찬 수행 영패를 떼어 책상 위에 쾅 내리쳤다!

"서이현, 나 이제 때려치울 거야!"

"모시기 싫으면 피하면 되지, 내가 못 피할 줄 알아?!"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는 몸을 돌려 문턱을 넘으려 했다.

"서라."

서이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높은 자리에 있던 자만이 지닌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는 서랍에서 붉은 수결이 찍힌 문서 한 부를 꺼내 그녀 앞으로 던졌다.

"네가 서명한 상인 협약서를 똑똑히 읽어 봐라."

윤서린은 집어 들어 두어 줄 훑어보았고, 머릿속이 "윙" 하더니 그 자리에서 터져 버렸다!

망했다!

반년 전 상인회 재계약서에, 전임 회장이 수를 써서 관아 제한 조항을 끼워 넣어 두었던 것이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탈퇴하면 관아에 막대한 위약금 은자 이만 냥을 배상해야 한다! 그녀가 가산을 탕진해도 마련할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이 천하의 나쁜 관리 놈!

윤서린의 분노가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그녀는 눈앞에 크게 다가온 잘생긴 얼굴을 죽일 듯 노려보며, 달려들어 그를 확 물어뜯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씩씩거리며 홱 돌아섰다.

"쾅!"

이마가 묵직한 조각 문틀에 제대로 부딪혔다.

서이현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번개같이 달려들어, 따뜻한 큰 손으로 그녀의 빨개진 이마를 부드럽게 눌렀다.

"꽃님아."

그가 불쑥 그 시절 그녀만을 부르던 애칭을 입에 올렸다.

윤서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꽃님이 좋아하네!

"가까이 오지 마!"

윤서린은 그의 손을 확 쳐 내고 문을 밀치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 남자는 분명 일부러 그녀를 모욕하고 있는 거야!

경성에서 뜨겁게 사랑하던 시절, 그는 정에 겨울 때면 늘 그녀의 귓가에 대고 "꽃님아"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 금의환향해 높은 벼슬에 올라 놓고, 이런 옛 애칭으로 그녀를 조롱하다니!

미시 삼각, 상인회 관졸이 윤서린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서이현이 사람을 시켜 보낸 것이었다. 주소 하나와 연락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간결하고 명료했으며, 군더더기 한마디가 없었다.

윤서린은 체념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마차를 불러 그 주소로 곧장 향했다.

가는 내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고, 위약금 이만 냥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잠시 후 마차는 성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보석 상점, 금해각 앞에 멈췄다.

인수 절차는 지극히 번거롭고 엄격했다.

행수는 흰 비단 장갑을 낀 손으로 묵직한 칠 상자 하나를 공손하게 그녀 앞으로 밀었다.

"윤 낭자, 이곳에서 목록을 대조하시고 서명해 주십시오."

윤서린의 시선이 계약서 말미의 거래 은자 항목에 꽂혔다.

그 길고 긴 영의 행렬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 연기를 할 뻔했다.

무려 은자 팔만 냥!

펜을 쥔 윤서린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게 가는 길에 도둑에게 털리거나 깨지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환생해서 다음 생엔 소나 말이 되어 남 밑에서 일해야 한다.

그녀는 조심조심 그 나무 상자를 받아 들고, 두 팔로 자기 목숨이라도 되는 양 꽉 끌어안았다.

관아로 돌아가는 마차에 앉아서도 윤서린은 온몸의 근육이 꼿꼿하게 굳어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만 피어올랐다. 이렇게 비싼 보석 장신구라면, 분명 이 신임 현령이 경성의 어느 높은 집 규수에게, 아니면 새로 들인 첩에게 줄 선물이겠지?

귀인들의 세계는 화려하기도 하지. 한 번 손을 쓰면 몇만 냥이라니.

그녀는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경성에서 곤궁하게 지내던 시절, 그가 그녀에게 준 것은 기껏해야 몇십 냥짜리 작은 물건이었다. 가장 비쌌던 옥비녀조차 겨우 은자 열여섯 냥이었다.

이혼하던 날, 그녀는 그의 앞에서 그 옥비녀를 집 밖 화단으로 모질게 내던졌다.

단호했고, 미련이라곤 없는 몸짓이었다.

그런데 그가 떠난 뒤에, 그녀는 결국 못나게도 한밤에 등롱을 들고 다시 찾으러 나갔다. 흙을 온통 헤집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지금……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가 떠나며 남긴 그 핏빛 홍마노 팔찌 하나뿐이었다.

그 홍마노가 얼마짜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팔찌는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사 년을 함께 버텨 주었고, 아이를 낳던 생사의 고비도 함께 넘겼다.

이번 생에, 그녀는 절대로 그것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관아 내청으로 돌아왔을 때는 신시 말이었다. 윤서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표정을 가다듬은 뒤, 서이현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사내는 여전히 공문을 결재하고 있었다. 촛불 아래 드러난 옆얼굴이 유난히 차갑고 단단했다.

"서 사또, 분부하신 목걸이입니다."

그녀는 묵직한 나무 상자를 그의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임무 완료.

"오늘 밤 본관을 따라 본 성 상인들의 만찬에 참석해라."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분부하더니, 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돌아가서 화사하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눈에 띄게 꾸며라."

눈에 띄게? 꽃병 노릇을 하라는 건가?

서이현은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차갑게 한 방을 더 꽂았다.

"걱정 마라. 교태를 부리라는 게 아니다. 너는 그만한 값어치가 없으니까."

윤서린: !!!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서, 독약을 한 봉지 사다가 이 나쁜 관리 놈의 입을 영영 막아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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