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9화: 아직 내 침상에 오를 자격은 안 된다
취했다고?
달콤한 과실주를 겨우 두어 모금 마셨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어지러울 리가 없다.
윤서린은 서둘러 들고 있던 백자 접시를 내려놓았다. 몸속에서 치솟는 열기를 억지로 참으며,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서이현을 찾아 되돌아가려 했다.
서이현은 멀지 않은 곁채 대청에 있었다. 그러나 아첨하러 몰려든 상인과 관리들에게 둘러싸여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때 갑자기 키 큰 사내의 그림자가 불쑥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단옷을 걸친 부잣집 도령 하나가 앞을 막고 서서,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낭자,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우시군요. 저와 함께 몇 잔 드시는 영광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소녀는 급한 일이 있어서요."
윤서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억지로 버티며 그를 돌아서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사내는 경박하게 킥 웃더니, 그녀의 발걸음이 휘청이는 틈을 타 대담하게 두 손으로 흔들리는 몸을 붙들었다.
"제가 보기엔 술기운을 못 이기신 것 같은데요. 오늘 밤 달빛이 좋으니, 제가 후원의 조용한 정자로 모시고 가서 바람도 쐬고 술도 깨시게 해 드리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억세게 감아쥐었다. 그러고는 반쯤 끌고 반쯤 잡아당기며 주루의 뒷문 쪽으로 억지로 데려갔다.
뒷문 밖으로 나가 회랑을 지나면, 굽이굽이 깊은 후원과 귀한 손님들이 쉬는 객방이 이어져 있었다.
윤서린은 온몸의 뼈가 녹아내리듯 늘어져, 주먹 한 번 쥘 힘조차 나지 않았다.
"이거 놔!"
그녀는 다급한 나머지 이를 악물고 작은 주먹으로 그를 힘껏 때리고 밀쳤다. 하지만 사내의 몸에 닿는 주먹은 솜처럼 힘이 없었다.
소리쳐 도움을 청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악취 나는 사내의 다른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읍!"
윤서린은 겁에 질려 발버둥 쳤다. 물기 어린 눈에 절망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렇게 그녀는 어두컴컴한 뒤쪽 회랑 안으로 억지로 끌려 들어갔다.
……
그때, 후원 고대 위에서 뒷짐을 지고 담뱃대를 물고 있던 심희연이 우연히 이 장면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곧바로 몸종을 손짓해 불렀다.
"앞 대청에 가서 서 사또께 전해라. 마음속에 품은 어린 양이 누군가에게 물려 갔다고."
향 한 대 피울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이현이 천지를 무너뜨릴 듯한 한기를 온몸에 두른 채 성큼성큼 달려 나왔다!
"어디 있지?!"
그의 목소리는 뼈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전장에서 피를 마신 살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심희연이 회랑 끝을 가리켰다.
"맨 안쪽 객방으로 끌고 들어갔어."
그는 미친 듯이 달려가려는 서이현의 팔을 붙들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마 이렇게 빨리 저 여자한테 넘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때 자네가 그 여자 병든 아버지를 위해 관외에서 혼자 위험을 무릅쓰다 목숨까지 잃을 뻔했는데, 그 여자는 돌아서서 이혼서를 내밀었잖아. 자네 앞날이 불투명하고 같이 고생하며 살기 싫다면서 말이야. 그 피눈물 나는 장부, 잊은 건 아니지?"
서이현은 차갑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눈 속에는 한 점의 온기도 없었다.
"본관은 저 여자가 이렇게 쉽게 나를 얻게 해 줄 생각은 없다."
그는 차갑게 한마디를 던졌다.
"뒷수습은 자네가 맡아라."
말을 마치자 그는 검은 번개처럼 재빨리 달려갔다. 방문에 다다르자마자 방 안에서 윤서린의 공포에 질린 비명이 들려왔다.
"누구야! 저리 가! 만지지 마! 놔!"
"쾅!"
서이현이 다리를 들어 걷어찼다. 무쇠로 만든 방문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문 안의 광경에 서이현은 순간 눈이 찢어질 듯 뒤집혔다. 눈동자에는 섬뜩한 핏발이 가득 섰다.
흰 비단 도포를 입은 건달 하나가 옷이 반쯤 흘러내린 윤서린을 푹신한 침상 위에 짓눌러 놓고, 더러운 손으로 그녀의 비단 치맛자락을 거칠게 걷어 올리고 있었다!
서이현은 완전히 미쳐 날뛰는 성난 수사자처럼 달려들었다. 그 사내의 뒷덜미 옷깃을 낚아채 비틀고, 파죽지세의 주먹을 내리꽂았다!
"퍽! 퍽!"
피가 튀는 주먹이 몇 번 꽂히자, 건달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얼굴뼈가 부서져 핏물 속에 기절해 쓰러졌다.
"서린아!"
서이현은 바닥의 폐인을 넘어, 서둘러 몸을 숙이고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윤서린의 두 뺨은 이상하리만큼 요사스러운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눈동자에는 물안개가 서려 초점이 풀려 있었다.
눈앞의 서늘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본 순간, 그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은 듯했고, 또 불길에 타들어 가는 사람이 치명적인 해독제를 찾은 듯했다.
"서이현……."
그녀는 나른하게 중얼거리며 그의 넓고 뜨거운 품속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입을 벌려 그의 단단한 턱을 깨물었다!
그 힘은 아주 약하고 보드라워서, 괴로울 만큼 간지럽고 사람을 홀리는 데가 있었다.
이어서 그녀의 촉촉하고 여린 붉은 입술이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이성을 잃은 듯 그의 불거져 오르내리는 우뚝한 목울대를 깨물기 시작했다. 숨결 하나하나에 치명적이고 강렬한 욕정이 배어 있었다.
서이현의 심장이 크게 흔들렸다.
꼬박 삼 년이었다.
이 혼을 쏙 빼놓는 작은 것이, 이렇게 끈질기게 그의 목울대에 입을 맞춘 것이 꼬박 삼 년 만이었다.
그는 온몸에서 하늘을 뒤덮듯 치솟는 충동과 소유욕을 미친 듯이 눌렀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거세게 움직였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호통쳤다.
"윤서린, 똑바로 봐라. 지금 네가 뭘 하는지 알고 있나?!"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몸에서 떼어 내려 했다. 목소리에는 억누른 꾸짖음이 배어 있었다.
윤서린에게 남아 있던 이성이 한순간 되돌아왔다. 그러나 몸속에서 미친 듯 날뛰는 사악한 불길이 그녀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그녀는 본능을 따라 다시 그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몸은 뼈가 없는 듯 흐물흐물했고, 두 팔로 그의 단단하고 가는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는 작은 얼굴을 뜨거운 관복 가슴팍에 마구 비벼 댔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요염했고, 무너질 듯한 울음기까지 섞여 있었다.
"몸이 너무 뜨거워……. 이상해……. 제발……나 좀 살려 줘……."
이 질문은 아무 예고도 없이 날아왔다.윤서린은 멍해졌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강 총관은 연봉이 천 냥인 데다 인물도 훤칠한데, 어떤 여자가 안 좋아하겠어요?"농담처럼 들렸지만, 도발의 기색은 분명했다.서이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본관이 꼼꼼히 비교해 봤다."그가 몹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그자는 본관보다 키도 작고, 인물도 못하고, 권세는 더더욱 못하다."윤서린: “……”이 사람은 대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물론 당신처럼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요.얼굴에는 오히려 더 환한 웃음을 지었다."그야 당연하지요. 서 사또는 지금 강남에서 권세가 으뜸인 명문 귀공자시니, 강 총관이 어찌 감히 견줄 수 있겠어요."더없이 가식적인 아첨이었다.서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윤 수행원, 눈을 본관 쪽으로 돌려 보는 게 어떠냐."윤서린은 멈칫하더니 이내 실소했다."사또도 참, 소녀가 어찌 감히요.""해 보지도 않고 감히 못 하는지 어찌 아느냐?"서이현이 몸을 일으켜 한
서 사또가 왜 또 내려왔지?설마 천하의 관리란 관리는 다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취미인가?"예, 서 사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소소가가 황급히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다방으로 달려갔다.서이현이 의미심장하게 윤서린을 훑어보았다.윤서린은 영문도 모른 채 마주 노려보았다.뭘 봐?또 시비 걸 거리를 찾는 거야?"본관이 듣기로, 이달 말에 상인회가 나들이를 간다던데?"서이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예, 서 사또."윤서린이 사실대로 대답했다."본관도 간다."세 시녀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현령 나리가 직접 상인회 나들이에 간다고?그러면 누가 마음 편히 놀 수 있겠는가. 다들 메추라기처럼 잔뜩 움츠러들 텐데.서이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본관의 명을 전해라. 급한 공무가 없는 한, 누구도 휴가를 낼 수 없다."말을 마친 그의 입꼬리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 그는 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올라갔다.얼마 뒤, 소소가가 우려낸 차를 들고 서재에 들어갔다.서이현은 찻잔을 받아 들고도 곧바로 마시지 않았다.
"그러니까요!"이수연의 두 눈이 반짝였다."근데 우리 상인회 제일가는 미남 자리도 주인이 바뀌었어. 다들 입을 모아 서 사또를 뽑았거든. 강 총관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이등으로 밀려났지."강사는 한때 상인회에서 이름난 고고한 꽃이었고, 지금은 상인회 제이사를 맡아 연봉이 천 냥에 이르렀다. 수많은 여자 관졸들이 몰래 흠모하는 상대였다.외모가 수려하고 일 처리도 수완이 좋았다.그가 눈여겨본 계약은 성사시키지 못한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점심엔 우리 식당 위층에 가서 먹자. 우리 강 총관이 요즘 더 잘생겨졌는지 구경도 하고."이수연이 기대에 부푼 얼굴로 말했다.상인회 식당은 삼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일 층은 관원과 각 부서 책임자가 쓰고, 이 층은 일반 관리, 삼 층은 평범한 일꾼들이 식사했다.근접 수행원인 그녀들은 원래 일 층에 갈 수 있었지만, 평소에는 마음 편한 이 층에 머무르는 걸 더 좋아했다."나도 찬성."진열도 옆에서 웃으며 맞장구쳤다."밥은 못 먹어도 멀리서 두어 번 보면 눈요기는 되니까."여기까지 말하던 이수연
이튿날.현아 뒤뜰, 서재 안.서이현은 조각이 새겨진 큰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잘생긴 얼굴을 굳힌 채 온몸에서 소름 끼치는 한기를 뿜고 있었다.곁에서 시중을 들던 관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자칫 사또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그 자신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툭하면 말대꾸를 하던 그 작은 독초가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서재가 고요해지자 오히려 온몸이 불편했다.뭔가가 빠진 것 같았다.그 여자가 어젯밤 그렇게 취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좀 깨어났는지도 모르겠다.시중드는 몸종 소소가가 문서 책자를 받쳐 들고 조마조마하게 오늘 상인회 일정을 보고했다."진시 말, 과영 상단의 성 행수가 수로 계약 건으로 찾아오십니다…….""오시 이각, 상인회 쪽은……."그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서이현이 불쑥 눈을 들어 차갑게 말을 끊었다."며칠 전 상인회 사무처 회랑에 놓여 있던 그 값비싼 꽃들은 누가 보낸 것이냐?"소소가는 멈칫했다.사또가 갑자기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기에 서둘러 대답했다."그건 윤 수행원을 쫓아다니는 상욱 도련님이 보내신 겁니다."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소인의 정인이
동부 명원.하주는 마차를 세우자마자 서둘러 저택의 여집사를 불렀다. 두 사람은 힘을 있는 대로 써서 만취해 곤죽이 된 윤서린을 겨우 집 안으로 부축해 들였다.어렵사리 객방 푹신한 침상에 눕히고 나니, 하주는 허리를 짚고 지칠 대로 지쳐 길게 숨을 내쉬었다.침상 위의 사람이 불쑥 몸을 뒤척였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욕을 했다."서이현……. 이 나쁜 놈…….""나는……우리 서우를……당신한테 안 줄 거야…….""그때……왜 나를 배신했어……."하주는 곁에 서서 한숨만 나왔다.취한 윤서린은 그야말로 닫히지 않는 취중 진담 기계였다. 아까 죽을힘을 다해 막지 않았다면, 서이현이 이 사람을 데려갔을 것이다.그랬다면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었다.그녀는 서둘러 몸을 돌려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꿀물 한 사발을 떠 왔다.그런데 사발을 들고 돌아와 보니, 침상 위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하주는 가슴이 철렁해 병풍 뒤로 돌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이 마침내 조용해졌다.서이현이 목욕을 마치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허리에는 깨끗한 수건 한 장만 느슨하게 둘렀고, 흠뻑 젖은 머리칼 끝에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물방울은 날렵한 턱선을 타고 흘러내려, 살짝 벌어진 옷깃 속으로 스며들었다.사내는 곁방 문 앞으로 가서 손을 들어 문고리를 돌려 보았다.역시 잠겨 있었다.그는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 문틀 위쪽을 쓱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대들보 위 비밀 칸에서 여분 열쇠를 더듬어 꺼냈다."딸깍."자물쇠가 순순히 열렸다.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갔다.창밖에서 스며드는 달빛 아래, 침상 위에 크고 작은 두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윤서린이 서우를 끌어안은 채, 모자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서이현은 침상 곁에 오래도록 서 있다가, 결국 몸을 숙여 잠든 윤서린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그녀는 말도 안 되게 가벼웠다.그는 그녀를 안고 안방으로 돌아와, 큰 침상 위에 살며시 눕혔다.달빛이 그녀의 평온한 잠든 얼굴에 내려앉았다. 눈매는 부드럽고 입술은 살짝 다물려 있어, 낮에 이를 세우고 덤비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서이현의 눈빛이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는 홀린 듯 몸을 숙여, 그녀의 뺨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