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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책상 위를 두 번 두드리는 소리.
이어서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지안은 위를 올려다 보았다.
”...“
‘이 씹새끼가. 오늘도 나 괴롭히려고 찾아왔지.‘
지안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쟤는 친구도 많으면서 왜 자꾸 귀찮게 찾아오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때 위에서 아까보다 살짝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안아, 내 말 안 들려? 지금 내가 인사하고 있잖아. “
말투도 일진같기 짝이 없었다.
'역시 양아치 아니랄까 봐.'
지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며 중얼거렸다.
”…져. “
”뭐? “
”좀 꺼지라고! “
참다못한 지안이 그에게 소리치자, 그는 벙찐 눈치였다. 지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인기가 많다는 거야. 재수 없기만 한데.’
그는 첫 만남부터 별로였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 반듯하고 진한 눈썹,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이는 치켜 올라간 고양이 같은 눈.
'누구는 기생오라비라고 불리는데 쟤는 딱 잘 생겼네.'
그뿐이랴, 하얀 피부와 운동할 때 살짝씩 보이는 잔 근육, 드러낸 배로 보이는 복근까지.
마지막으로 또래 애들보다 월등히 큰 키까지. 학교에서 저 놈보다 큰 놈을 본 적이 없다.
'아마 교내에서는 저 놈이 가장 클 지도...'
그야말로 딱 순정만화에서 나올 것 같은 남주상이었다.
'남자가 봐도 반하겠다, 야. 물론 내가 반한 건 아니지만.’
한 마디로 잘생겨서 싫었다.
‘물론 그것만 싫기만 한 건 아니고.’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저 놈의 실체를 안다는 것이다.
‘가장 아리송한 건 그거라고.’
웃을 때 보면 상냥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무표정으로 있을 때는 속내를 하나도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다른 애들이랑 있을 때는 묘하게 친절한 듯 심드렁했다.
그런데 자신이랑 있을 때만 이상하게 장난스럽게 변하는 게 꼭 초등학교 때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남자애들이 여자애를 좋아한답시고 괴롭히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까. ‘
아무튼 그 점이 좀 띠꺼웠다. 지안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하 씨…’
그에 비해 자기 몸은 작고 말라서 볼품없기만 했다.
‘어렸을 때 운동 좀 많이 하고 밥 좀 팍팍 먹을 걸. 잠도 좀 많이 자고.’
그래서 그런가, 어렸을 때부터 반 애들이 자신은 축구에 부르지 않았다.
가끔 별로 안 친하지만 착한 남자애가 친절을 베풀어줘도, 결국 골키퍼 신세를 면치 못했다.
‘흥, 됐다. 나도 냄새 나는 남자새끼들이랑 땡볕에서 땀 흘리기는 싫으니까.’
일종의 정신승리였다.
이번에는 학교생활을 잘해보고자 반장 선거를 나가보기도 했다.
물론 다 자신의 완벽한 생기부를 위해서였다.
“자, 반장선거 나갈 사람.”
“선생님, 저 나가고 싶습니다.”
“그래.”
지안이 손을 번쩍 들자 잘생긴 양아치 새끼도 손을 들었다.
명찰에는 노란 금실로 적힌 이름이 햇빛에 반짝였다.
“저도 나가 보겠습니다.”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X발. 차도윤, 차도윤, 차도윤!’
그때부터 그에 대한 평판은 안 그래도 낮은데 더 최악으로 떨어졌다.
선거에 나온 인원은 겨우 두 명밖에 없었다.
다들 공부에 집중하는데 그게 쟤는 아니었나 보다.
지안은 이를 갈았다.
‘고3이면 고3답게 공부나 하란 말이야.’
그런데도 류지안은 반장선거에서 광탈했다.
그래도 조금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받은 표수를 보고 낮게 읊조렸다.
“썅…”
지안이 받은 표는 단 두 표밖에 없었다. 이것도 한 표는 자기 자신이 투표해서 얻은 표였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야? ‘
비밀투표라서 알 수도 없었다.
그때 지안의 옆에 앉은 도윤은 속도 없이 헤실거리면서 지안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부반장, 잘 부탁해.”
“뭔 개소리야. 방금 나 너한테 발렸거든? “
당연하게도 지안은 그 손을 내쳤다.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쳐냈지만 그는 잠깐 무표정으로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평소의 웃음기가 가득한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피식거리면서 말했다.
”투표수가 무슨 상관이야. “
”난 부반장이잖아. “
”반장이나 부반장이나. “
지안이 계속해서 부들거리자 보고 있던 도윤이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알겠어, 오늘은 별로 기분이 안 좋은가보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너무 그러진 마, 난 너 마음에 들거든. 앞으로 잘 해보자, 지안아?”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지안이 잘 벼려진 칼처럼 단답했다. "싫은데? 내가 왜." "아, 좀 그러지 말고." "진짜 안돼." "왜 안되는데." 지안이 말을 더듬거리면서 할 말을 똑똑히 전했다. "나, 나 바빠." "안 바쁜 거 다 알고 있어." "...너도 참 너다." "응, 그래. 나도 알아." 도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하는 대답에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친 지안이 말했다. "너는 내가 그렇게 싫어해도 자꾸 또 다가오고 싶냐? 내가 뭐가 좋다고..." "그야 처음으로 사귄 친구니까." "이제 이 말도 질린다. 근데 너 친구 많잖아." "그건 그냥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고." 그 말에 지안은 문득 궁금증이 확 일었다. 그래서 도윤에게 툭 하고 물었다. "그럼 나는 뭔데?" "으음... 글쎄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사람?" 갑작스런 질문에도 도윤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런 오글거리는 대답을
도윤의 말에 지안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얘가 이제는 별 미친 소리를 다 하네, 진짜.”“...치, 진짠데.” 도윤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모르겠네.' 그러자 끝내 그가 실토했다. “사실 왁스 바르다가 잘못 발라서 너 오기 전에 샤워 한 번 더 했어.”“아니 야, 근데 우리 오늘 집에서 공부만 하는 거 아니었냐.”“맞는데.”“그럼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아, 그런 거였어?”“그래.” 이게 도대체 무슨 대화인지 모르겠다. '...슬슬 뇌가 망가질 것 같아.' 어쩌면 줄줄 녹아서 사라질지도 모른다.상상이 또 과한 망상이 되어 괴상한 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기 전에 지안은 일단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 잠깐 화장실 좀.”“화장실 저쪽이야.” 지안이 손을 씻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저 놈이 보인 행적으로 따지면 꼭 날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 따먹히는 거 아니냐.’ 살면서 게이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지안은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금이
“뭐, 나름.“ 이번에는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뭐, 사실이었으니까.' 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고, 야자에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도 수업은 물론 학원도 개인 과외도 받지 않는 듯한 저 놈이 자신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불공평했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하다지만, 이제라도 그 비결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언제 알려줄 건데?”“우리 주말에 만날까?” 그 제안에 떨떠름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주말까지 너를 봐야 하냐.”“싫어? 아니면 말고. 이번 시험에 또 나한테 지겠네.” 이번에도 또 발리기는 죽어도 싫었다. 지안은 석차 1등이라는 숫자에 눈이 멀어 도윤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같이 공부할게.” 그게 자신에게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꿈에도 모르고. 그러자 도윤이 말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와.”“뭐? 그냥 독서실 가면 되지.”“독서실은 조용해서 가르쳐줄 수가 없잖아.” 조용히 납득한 지안은 다음 대안을 떠올렸다. “카페 가자.”“시끄러워.”“그럼 도서관은?”“슬슬 시험기간이라 자리 없을 걸.” 하여간 그의 말재간에는 당해낼 턱이 없었다. “알았다, 알았어.”“그럼 나
지안은 제 손등에 닿는 말캉거리는 촉감이 소름돋았다. “아, 좀!”“아하하-!” 그러자 도윤의 낮은 웃음소리가 퍼졌다.어째 이상하게 자신이 싫어하면 할수록 도윤은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제 이놈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이골이 날 정도야.' 지안이 골머리를 앓으면서 말했다. “제발 좀 부탁인데 좀 닥쳐주면 안 되냐.”“와아- 나한테 육성으로 그런 부탁하는 애 처음 봐.” ‘그야 그렇겠지. 지금까지 너한테 그렇게 말하는 애는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이어진 도윤의 부탁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한테 입 맞춰봐. 그럼 조용히 해줄게.” 만약에 도윤을 맨 처음에 만났을 때 그런 요청을 들었다면 당황했을 터였다.하지만 변덕이 심한 그의 행동에도 이제는 질릴 대로 익숙해진 상황이었다.지안은 전에 도윤이 했던 대로 그의 하얗고 혈관이 도드라진 손등에 입을 맞췄다. 쪽- ‘이 정도면 됐겠지 뭐.’ 별 감흥도 없었다. 생각보다 그의 손이 차가웠다는 것만 빼면? 그리고 이제 슬슬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조금 건조했달까. “우리 벌써 서로 입 맞추는 사이가 된 거야?”“말은 똑바로 해라. 네가 협박만 안 했어도 난 안 했어.”“그럼 앞으로도 협박만 하면 해주겠다는 의미?”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치 머리에 빠직 마크가 달리는 것 같았다.도윤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참다 못한 지안이 그만 버럭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아, 좀! 하지 말라고!""하여간 쪼끄만 게 성질은." 도윤이 그리 말하는 통에, 지안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지안의 표정이 썩어들어가자 그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랑 가기 싫으면 지금 말해, 물론 안 들어줄 거지만.""알겠어, 알겠다고..." 지안이 도윤의 손을 잡을 기색이 영 없어보였다.그러자 도윤은 곧바로 지안의 팔을 지그시 끌어당겼다. '결국 모든 게 제멋대로라니까.' 지안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듯 급식실로 갔다. ‘누가 보면 어떡하지.’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연신 주위를 힐끗거렸다.다행히 그들이 늦게 출발한 터라 복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사람이 거의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지안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너는 남자애들끼리 손도 잡아?”“아니. 너한테만 그러는 건데 싫어?”“당연히 싫지.”“그럼 좀 익숙해져봐. 원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래. 너도 할 수 있어.” ‘유캔두잇 같은 대답이 듣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눈치 없는 거야, 아님 눈치 없는 척 하는 거야?’ 그게 끝이었다.도윤은 더 이상 이런 대화
지안은 앙칼지게 그의 말을 비비 꼬았다. “지랄, 네가 깨물면 나는 사망이다.”“너 그렇게 개복치였어? 이거 몰랐는데. 일단 알았어, 염두에는 둘게.“ 일부러 배알 꼴리라고 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어보였다.결국 지안이 자신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많이 쉬면 복이 날아간다고 하던데.""어, 너 때문에 이미 내 복 다 없어졌어.""괜찮아. 그럼 네가 채워주면 되지, 뭐." 도윤은 쓸데없이 이럴 때에만 긍정적이기 그지없었다.지안은 도윤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게 전부 다 이 새끼 때문에…!' 지안이 계속 쳐다보자, 도윤의 볼이 살짝 발그레해더니 그가 말했다. “...그렇게 열렬하게 쳐다보면 아무리 나라도 좀 부끄러운데.” 그 모습에 질린 지안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한 마디 한 마디 짓씹듯이 말했다. “그냥 그런 말 따위를 애초에 하지 말라고, 같은 남자끼리 진짜 징그럽게.”“다시 한 번 말해봐.”“뭐?”“내가 징그러워?” 도윤이 그렇게 물으면서 지안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지안은 그제서야 그에게 위압감을 느끼며 한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야, 야아. 거기서 딱 멈춰라.”“내가 왜?“”니 덩치 존나게 커서 무서우니까 더 다가오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