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북관은 소문대로 열려 있었다.행렬은 관문에서 반 마장 떨어진 숲 그늘에 멈추었고, 사백이 기수 넷을 데리고 먼저 들어갔다. 한 식경 뒤에 돌아온 사백의 낯은, 함정을 확인한 낯도 함정이 아님을 확인한 낯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것을 본 낯이었다."비었습니다. 수문장도, 병졸도, 개 한 마리도." 사백이 보고했다. "화덕의 재가 이틀 전 것입니다. 이틀 전에 전원이 물러났습니다. 한데 — 문루에 서신이 있습니다. 못으로 박아 놓았습니다.""누구 앞으로." 혈비가 물었다."셋 앞으로. 마님과, 수장이었던 자와, 그리고 — 여인, 이라 적혀 있습니다."한낮인데도 관문 그늘은 이가 시리게 추웠다. 행렬은 관문을 통과했다. 서른 기의 말굽 소리가 빈 관문에 크게 울렸다. 지키는 자 없는 문을 지나는 일이 지키는 자와 싸워 지나는 일보다 목덜미가 서늘하다는 것을, 운설은 이날 배웠다. 열어 준 자의 셈을 모르는 채로 문지방을 넘는 것이었으므로.관문 안쪽은 살던 모양 그대로 비어 있었다. 병졸들의 침상에 개어 놓은 이불, 반쯤 두다 만 장기판, 벽에 걸린 채 마르는 빨래. 도망친 자리와 달랐다. 명을 받고 물러난 자리였다. 질서 있게 비워진 집이 어질러진 집보다 많은 것을 말했다. 맹은 이 문을 지킬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지키지 않기로 정한 것이다.우르가 장기판을 들여다보고 혀를 찼다. "차(車)가 죽기 직전이구먼. 두다 만 놈 속 좀 탔겠어." 케테는 빈 초소마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긋고 다녔다. 액을 밟고 지나가지 않으려는 부적 긋기라고, 곁의 기수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빈 관문에 어색하게 울렸다가 금세 잦아들었다.문루 아래서 혈비가 서신을 뜯었다. 종이는 상등품이었고 글씨는 늙고 단정했다. 혈비는 소리 내어 읽었다. 감출 것 없다는 듯이, 서른 기가 다 듣도록."북방의 손님들께. 길을 열어 두었네. 어차피 오실 걸음, 험하게 오실 것 없지. 늙은이가 마중을 두 번 나가기엔 다리가 아프니, 폐막일에 무한에서 뵙세." 혈비의 목소리가 한 대목에서 반
출발의 아침, 겨울 궁의 마당에 백 사람이 다 나왔다.서른 기의 말이 문루 아래 도열했다. 재갈에 헝겊을 물리고 편자를 갈아 신긴, 먼 길의 채비였다. 운설은 약초꾼의 봇짐 대신 가죽 안장주머니를 받았다. 안에는 침통과 마른 약재가 반, 나머지 반은 여리가 밤새 챙겨 넣은 것들이었다. 볶은 잣, 말린 산딸기, 그리고 아이가 제일 아끼는 것이 분명한, 닳은 나무 팽이 하나."이건 왜.""심심할까 봐요." 여리는 울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떴다. "돌아와서 돌려주세요. 빌려드리는 거예요."돌아올 것을 받아 두는 아이의 셈법에, 운설은 팽이를 소매 깊이 넣었다.진눈은 배웅 줄의 맨 끝에 서 있었다. 며칠 새 낯빛이 한 겹 밝아져 있었다. "겨울 내 고쳐 주신다면서요." 그가 말했다. "약조 어기시면 안 됩니다. 저는 이래 봬도 궁에서 제일 오래 기다리는 걸 잘합니다."떠나는 자보다 남는 자들의 말이 길었다. 타간은 조청 단지를 안장에 묶어 주었고, 바토는 밤새 벼린 짧은 칼 하나를 사백에게 건넸고, 더운돌 영감은 아무것도 안 주는 대신 "물 조심혀" 한마디를 주었다. 흑요는 문루 위에 서서 내려오지 않았다. 다만 행렬이 문을 나설 때, 왼귀 어두운 사람의 크고 갈라진 소리가 등 뒤에 떨어졌다."산 채로들 돌아와라. 궁이 넓다."그것이 그 노파의 배웅이었다.선우현은 행렬의 가운데쯤에 배정되었다. 앞도 뒤도 붉은 달의 기수인 자리. 호위인지 감시인지 묻는 것이 무의미한 자리였다.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낯으로 제 말의 목을 쓸어 주고 있었다. 다만 운설의 말이 곁을 지날 때, 두 사람의 눈이 잠깐 만났다. 어젯밤의 여섯 글자가 그 잠깐 사이를 오갔다. 무한이 끝나면.행렬은 남으로 하루를 달려 월하촌에 닿았다.모루 영감은 사당 마당에 나와 있었다. 서른 기가 마을 터에 드는 것을 보고도 노인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행렬 가운데서 먹빛 옷의 여인이 말을 내리자, 나무다리가 눈을 딛는 소리가 잠깐 어지러워졌다."……마님." 노인이 예를 갖추려 몸을 굽히는
출발 전야에 그녀는 침통을 들고 그의 처소를 찾았다.회랑을 걸어오는 동안 그녀는 제 심장 소리를 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치료다. 마지막 처치다. 침통이 그 말의 증거처럼 손에 들려 있었다. 다만 처소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한 번 여민 것과, 문을 두드리기 전에 숨을 접은 것은, 치료의 준비와 조금 달랐다."실밥을 뽑아야 합니다. 내일부터 열이틀을 말 위에서 흔들릴 테니,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눈굴에서도 그 말을 들은 것 같소." 그가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그때는 못 뽑았지.""그때는…… 사정이 있었습니다.""무슨 사정이었소?"알면서 묻는 물음이었다. 운설은 답하지 않고 등잔을 당겨 놓았다. 그의 처소는 그다웠다. 세간이 자리를 정확히 지키고, 검이 벽에 반듯이 걸리고, 침상 귀퉁이의 이불깃이 각 잡혀 접혀 있었다. 이 방에서 흐트러진 것은 그녀의 숨 하나뿐이었다.그가 저고리를 어깨에서 내렸다.등잔 빛에 어깨가 드러났다. 눈굴의 밤보다 밝은 빛이었다. 상처는 깨끗하게 아물어 있었다. 붉던 자리가 가라앉고, 실밥만 검은 점선으로 남아 아문 살을 여미고 있었다. 그녀의 바느질이었다. 그녀가 여민 살이, 한 달을 그의 몸에서 살다가, 이제 풀릴 때가 되어 있었다.운설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가위를 들었다.한 땀. 실이 조심스럽게 끊기고, 살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두 땀. 세 땀. 실이 지날 때마다 그의 등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 아픈 것과 다른 긴장이라는 것을, 의녀의 손은 알았다. 의녀의 손이 아는 것을 여인의 손도 알아서, 가위를 쥔 손끝이 자꾸 데워졌다.강은 조용했다. 그의 곁에서 물이 순해지는 것은 여전한데, 오늘의 고요는 결이 달랐다. 잔잔하다기보다, 숨을 죽인 물이었다. 물도 이 방의 온도를 아는 것 같았다."수련은 어땠소." 그가 물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꺼낸 말이라는 것이 목소리에 적혀 있었다."금(禁)을 배웠습니다. 죽은 것은 못 살린다고.""좋은 금이오. 검에도 비슷한 것이 있소. 벤 것은 물릴 수
수련은 온천 곁 정자에서 시작되었다."나는 시늉만 가르친다." 혈비가 먼저 못을 박았다. "물이 없는 자가 물길을 말로 가르치는 게다. 구결은 다 외고 있다. 여섯 살까지 배운 것과, 그 뒤로…… 잊지 않으려고 매일 왼 것."잊지 않으려고 매일 왼 것. 강이 멎은 사람이 십팔 년 동안 강의 구결을 되뇌어 온 밤들을, 운설은 묻지 않기로 했다."첫째. 물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억지로 듣는 게 아니다 — 그치면, 들린다." 혈비는 못의 물낯을 가리켰다. "숨을 반으로 접고, 그 반을 다시 접어라. 생각이 끊긴 자리에 물이 있다."운설은 눈을 감았다. 숨을 접었다. 접은 숨의 밑바닥에서, 과연 강이 흘렀다. 늘 거기 있던 소리였다. 쫓기던 밤에는 둑을 밀던 소리, 그의 곁에서는 순해지던 소리. 이제 처음으로, 위기도 곁도 없이, 그녀는 제 강가에 저 홀로 앉았다."들리느냐." 혈비의 목소리가 물소리 바깥에서 왔다."들립니다.""그럼 이제 흘려 보아라. 어제 병자에게 했듯이. 다만 이번에는 알고 해라."구경은 이날도 붙었다. 정자 아래 마당에 여리가 쪼그려 앉았고, 그 곁에 진눈이, 부목 감은 팔의 기수 둘이, 이 앓는 노파가 줄을 섰다. 수련과 왕진의 경계가 반나절 만에 지워졌다. 흘리는 법을 배우면 배운 만큼 병자에게 쓰고, 쓰다 막히면 다시 정자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혈비는 그 오감을 막지 않았다. "그 법은 본래 그렇게 배우는 것이다. 병자가 스승이지." 외운 구결을 옮기는 목소리에, 그 말을 할 때만은 외움이 아닌 것이 섞였다.마당에는 시험 삼을 것들이 놓여 있었다. 얼어 시든 화분의 난초, 다리 부러진 어린 매 — 사백이 겨울 사냥에서 주워 온 것이라 했다. 운설은 매의 부러진 다리에 손을 얹고 물을 흘렸다. 실개천이 손끝을 지나 스며들었다. 뼈가 붙는 것이 손바닥으로 읽혔다. 어긋난 것이 자리를 찾고, 상한 자리가 데워지고. 매가 파닥이며 일어나 정자 기둥에 올라앉았다.난초는 달랐다. 물을 흘려도 흘려도, 스밀 자리가 없이 흘러내
그날 저녁 운설은 혈비를 찾아가 낮의 일을 물었다.혈비는 온천 곁 바위 정자에 있었다. 시위도 시녀도 물린 채, 김 오르는 못을 혼자 바라보고 앉은 등이 낮의 상석과 달라 보였다. 정자로 가는 길에 더운돌 영감을 지났다. 온천지기 노인은 물꼬를 살피다 말고 그녀를 향해 이 빠진 웃음을 지었다. "마님한테 가시는가. 잘 골랐어, 물가에 계실 때가 그나마 사람 말을 들으시지. 물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궁에서 혈비를 두고 농을 하는 사람은 이 노인 하나라고 여리가 했었다. 그 밤에 온천 굴에 숨어 살아남은, 궁보다 나이 많은 노인이라고.낮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혈비는 한동안 못만 보았다."월하(月河)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 이윽고 그녀가 물었다."달의 강…… 이겠지요.""삭월 사람들은 사람 몸속에 강이 하나씩 흐른다고 믿었다. 피보다 깊은 데를 흐르는 강. 달이 바다를 밀고 당기듯, 그 강을 다스리면 몸의 물때를 다스릴 수 있다고." 혈비의 목소리는 외운 것을 옮기는 사람의 것이었다. 제 것이 되지 못한 지식을 옮기는. "월하심법은 본래 고치는 법이다. 상한 물길을 트고, 막힌 데를 흘려보내고, 꺼져 가는 것을 데우는. 부(部)에 큰 의원이 따로 없던 것은 심법이 의원이었기 때문이지. 전승자는 대대로 부의 병자를 돌봤다. 무구(武具)가 된 것은……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게다. 고치는 손은 어디를 고치면 부서지는지도 아니까."부수는 손과 고치는 손. 폐사의 눈밭에서부터 그녀를 따라온 물음이, 처음으로 뿌리를 보였다.고치는 법이 어쩌다 무서운 소문이 되었는지도 물을 것 없었다. 십팔 년 전 맹이 탐낸 '신물'이 무엇이었는지 — 죽고 사는 물때를 다스리는 법이라면,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손과 없애고 싶은 손이 세상에 얼마나 많았을지. 멸문의 셈법이 거기서부터 다시 보였다."노인이 — 마지막 전승자가 왜 저를 찾아왔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운설이 말했다. "의녀라서.""아니." 혈비가 처음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반대다.""……
출발까지 남은 사흘을, 운설은 침통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예복의 소매에서 빠졌던 침통은 여리가 찾아다 주었다. 어린 시녀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와서는, 보물 상자라도 여는 낯으로 뚜껑을 열어 보고 싶어 몸을 비틀었다. 은침 여남은 대가 골무처럼 나란한 것을 보여 주자 아이는 실망 반 감탄 반의 숨을 뱉었다. "칼인 줄 알았어요. 요녀님은 — 아, 아니지. 마님 동생님은 이걸로 사람을 잡는댔는데.""잡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운설은 웃음을 물었다. "아픈 사람이 있니. 궁 안에."여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고는 손가락 없는 왼손을 접어 가며 세기 시작했다. 허리 굽은 이 여섯, 기침하는 이 아홉, 눈 어두운 이 셋, 이 앓는 이 넷 — 겨울 궁의 병자 명부가 아이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백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백 사람 몫의 아픈 데가 있었다. 십팔 년 동안 의원 없이 견딘 아픈 데가."제일 아픈 사람부터.""진눈 오라버니요." 여리가 답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피를 뱉어요. 겨울마다 더해요. 한데 본인은 제일 안 아픈 척해요."왕진 길에는 구경이 붙었다. 처음에는 여리 하나였는데, 허리 굽은 노파의 등에 침이 들어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던 이들이 하나둘 마당으로 나왔다. 침이 들고 날 때마다 낮은 탄성이 일었다. 요녀의 침이라고 수군대던 입들이, 제 차례가 오자 등을 내밀었다. 타간은 부엌에서 뜨거운 조청물을 내왔다. 간이 안 맞는 것은 조청물도 마찬가지였으나, 운설은 두 그릇을 다 비웠다. 비우는 것이 이 궁의 말로 고맙다는 뜻이었다.진눈은 무기고 곁 볕 드는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스물둘이나 셋. 뺨이 눈처럼 희었는데 그녀의 흰빛과 다른, 속에서 꺼져 가는 흰빛이었다. 그녀를 보자 그는 웃으며 일어나려다 기침에 붙들렸고, 기침 끝에 손등에 묻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소매에 닦았다."마님 동생님이 왕진을 다 오시고." 그가 말했다. "죽을 때가 됐나.""그런 농은 의원 앞에서 하는 게 아닙니다.""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