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86. 급류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3 17:54:19

큰 배는 서두르지 않았다.

물살이 뗏목을 저절로 데려다주는 판이었다. 사수가 뱃머리에서 갈고리 사슬을 늘어뜨려 쥐었고, 낯 검은 거룻배들은 양옆에서 뗏목의 퇴로를 눌렀다. 돛대 그늘에서 일어선 사람은 난간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늘의 가장자리에 선 채로, 검은 포의 자락과 뒷짐 진 손의 윤곽만이 강빛에 겨우 잡혔다.

"어른께서 말씀하신다." 사수가 그늘의 침묵을 받아 옮겼다. "책과 그릇을 넘겨라. 나머지는 물에서 건져 주마."

그릇. 그 말이 저를 가리킨다는 것을 운설은 알았다. 함거 그늘의 운백천이 책을 품은 팔에 힘을 넣는 것이 보였고, 간수문의 늙은 눈이 처음으로 그늘의 사람에게 박혀 움직이지 않는 것도 보였다. 아는 자를 보는 눈인지, 알아내려는 눈인지 — 그 눈은 읽히지 않았다.

"싫다면?" 선우현이 물었다. 빼앗은 검의 물기를 털며, 그는 이미 답을 아는 사람처럼 물었다.

"물이 대답할 거야." 사수가 웃었다. "불은 봄물에 뗏목이 통째로 뒤집히면, 책은 젖고 그릇은 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설야팔부 (雪夜八部)   95. 식은 차

    간수문은 김이 다 가라앉은 차를 그제야 한 모금 마셨다."앉아라. 서서 듣기에는 긴 이야기다."차 따르는 소리 하나 없는 방이었다. 늙은이는 새 잔에 차를 부어 그녀 앞에 밀어 놓고, 김이 오르는 것을 잠자코 두었다. 마시라는 말도 없었다. 식기를 기다려 마시는 제 법을 손님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다만 잔 하나로 이 자리의 시간을 정해 두는 것이다. 이 차가 식는 동안만 이야기한다는 듯이.운설은 앉았다. 등을 돌렸다는 늙은이의 말을 그녀는 나중에 몇 번이고 뒤집어 보게 된다. 서른둘의 감찰이 등을 돌린 값으로 아이 하나가 살았고, 그 감찰은 마흔 해를 법 안에서 늙어 당주가 되었다. 후회하는 낯도 자랑하는 낯도 없이, 장부에 적어 두고 이자를 세어 온 낯. 지금 그녀 앞의 낯이 그것이었다.등 뒤의 문밖에 한겸이 서 있고, 담 밖에 남궁가의 가마가 서 있다는 것을 늙은이도 알았고 그녀도 알았다. 그것이 이 자리의 법도였다. 서로의 패를 상 위에 반쯤만 올려놓는 법도."그 밤에 나는 서른둘의 감찰이었다." 간수문이 말했다. 회고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문서를 읽듯 골랐다. "명을 받고 올라갔고, 명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명에 없는 것도 보았지. 불타는 장막 사이에서 네 아비가 강보 하나를 안고 나오는 것을. 나는 등을 돌렸다. 못 본 것으로 하는 값으로, 네 아비와 약조 하나를 맺었다.""어떤 약조입니까.""명을 내린 손을 찾는 것. 찾아서, 법의 이름으로 베는 것." 늙은이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법을 맡고, 네 아비는 —" 거기서 말이 접혔다. 접는 솜씨가 하도 익어서, 접힌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뒤는 네 아비의 몫이니 네 아비에게 들어라.""십팔 년이 걸렸군요.""명은 종이에 남고, 종이는 봉인에 숨고, 봉인은 세 당주를 갈아치우며 버텼다." 간수문의 눈이 처음으로 늙은이답게 피로해 보였다. "물 위에서 열두 줄이 읽히던 날 — 그날이 내가 십팔 년을 기다린 날이다. 저들의 붓이 저들을 베는 날. 한데 마지막 장이

  • 설야팔부 (雪夜八部)   94. 절

    감찰이 대문을 나가고 한 식경 만에 되돌아왔을 때, 별저의 저녁은 아직 상도 물리기 전이었다."객의를 뵙겠습니다." 젊은 감찰은 그렇게 청했다. 명부에 성명 미상이라 적어 놓고 나간 입으로.후원 약방에서 마주 선 그는, 운설을 보자 먼저 두 손을 모으고 큰절을 올렸다. 마룻바닥에 이마가 닿는 절이었다. 배운 격식은 어디에도 없고, 몸이 아는 것만 있는. 서툴고, 길었다."재작년 겨울, 청하 의막에서 침 세 대로 누이를 살리셨습니다." 몸을 일으킨 감찰의 낯이 붉었다. "한겸입니다. 누이가 서신마다 적습니다. 그 은인을 다시 뵈면 못다 한 절을 올려 달라고. 그리고 —"그가 소매에서 봉서를 꺼내 약상 위에 놓았다. 두 줄의 해서가 등잔 밑에 드러났다. 재감정의 노고를 치하한다. 돌아오는 길에, 남궁가의 객의를 모셔 오너라."수배 방을 뭉갠 것도, 오늘 명부에 성명 미상이라 적은 것도 접니다." 한겸은 숨기지 않았다. 숨길 수 있는 자리를 이미 다 지나온 사람의 말이었다. "한데 당주 어른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알면서 하필 저를 보내셨고, 알면서 모셔 오라 적으셨습니다. 이 종이를 두고 도망치시면 — 제가 어찌 되는지는 상관없습니다만, 담이 무너집니다. 재감정도, 남궁가도, 객경 어른의 이름도요."운설은 젊은 감찰을 오래 보았다. 침 세 대의 밤을 그녀는 셈에 넣은 적도 없었다. 앓는 아이가 있어 침을 놓았을 뿐인. 그 밤이 이 사람의 안에서 두 해를 자라, 붓을 꺾고 명부를 굽히고 이제 제 관복의 목숨줄까지 걸고 있었다. 갚으라고 준 적 없는 것을 갚겠다고 온 사람 앞에서, 그녀는 빚이라는 말의 무서움을 새로 배웠다.정당으로 자리가 옮겨지고, 봉서가 상 가운데 놓였다. 늙은 당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두고 말들이 오갔다. 물을 세우는 힘이다. 아버지와 맺은 옛 약조다. 대월의 손이 닿기 전에 제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 — 어느 셈도 종이 두 줄을 다 덮지 못했다."가겠습니다." 운설이 말했다."안 되오." 선우현의 답이 반 박자도 늦지 않았

  • 설야팔부 (雪夜八部)   93. 명부 (한겸)

    한겸은 제 손으로 그린 얼굴이 저잣거리에 붙던 날을 기억했다.키를 반 자 늘였다. 흉터를 오른뺨으로 옮겼다. 눈매를 사납게, 콧대를 낮게. 화공에게 넘길 인상서를 적는 붓이 밤새 떨렸고, 다 적은 뒤에는 뒷간에서 속엣것을 게웠다. 스물여섯 해를 법이 좋아 산 사람의 생애 첫 죄였다. 촌에서 감찰이 났다고 잔치까지 벌였던 어미가 알면 몸져누울 일이고, 알 리 없는 누이는 지난달에도 서신을 보내왔다. 오라버니, 그 은인을 다시 뵈면 절을 올려 줘. 그때 못다 한 절이 아직 내 몫으로 남아 있어.침 세 대에 누이의 열이 내리던 밤, 한겸은 마룻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생각했었다. 이 빚은 평생 못 갚는다. 그 생각이 맞았다. 빚은 갚아지는 대신 자라서, 이제 그의 붓을 쥐고 흔들었다.집법당 안의 공기도 요즘은 낯설었다. 열두 줄이 물 위에서 읽힌 뒤로 늙은 감찰들은 말수가 줄었고, 젊은 축은 둘만 모이면 목소리를 낮췄다. 십팔 년 공훈의 임자들이 하루아침에 도살 장부의 임자가 된 판국에, 당주 어른만이 여느 때와 같았다. 여느 때와 같다는 것이 제일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한겸도 이제는 알 만큼 물이 들어 있었다.남궁가의 별저 대문 앞에서 한겸은 관복을 여몄다. 하루 일찍 온 것은 제 뜻이었다. 가는눈과 함께 오면 눈이 둘이다. 혼자면 하나다. 못 보는 것은 하나인 눈이 더 잘 못 본다."재감정 감찰, 집법당의 한겸입니다."안내를 받아 정당에 들자, 그 사람이 있었다.검신 선우현. 지난겨울 사흘 밤낮을 서툴게 밟다가 눈밭에서 놓친 사람. 물 위의 단에서 열두 줄을 읽던 사람. 그 사람이 지금 남궁가의 객경 자리에 앉아, 저를 밟던 신참 감찰을 알아보는 눈으로 조용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겸은 절을 올렸다. 여전히 서툰 절이었다. 몸에 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실성 재감정의 문목(問目)입니다." 그는 준비해 온 종이를 폈다. "형식이니 양해하십시오. 하나. 공자는 금년이 무슨 해인지 아십니까.""아오.""둘. 공자가 물 위에서 읽은 것이 무엇인지

  • 설야팔부 (雪夜八部)   92. 진맥

    "의원님, 비밀 하나만요."연지가 약방 문지방에 앉아 목소리를 낮춘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사시 낀 왼눈이 저 혼자 문밖을 살폈다. "아씨가 달포째 통 못 주무세요. 새벽마다 등이 켜져 있어요. 어의를 부르자니 본가에 말이 들어가고, 그냥 두자니 낯이 하루하루 종이 같아지고. 의원님이 몰래 좀 봐 주시면 안 돼요?""아씨가 청하신 겁니까.""아뇨." 연지는 당당했다. "제가 청하는 거예요. 시중드는 사람 눈이 제일 먼저 알아요."운설은 잠깐 망설였다. 어제 수장고에서 이 여인이 미워지지 않게 된 것과, 그저께 마당에서 이 여인이 놓은 가시들은 별개의 장부였다. 한데 의녀의 장부는 그 둘보다 오래된 것이라, 아픈 사람이 있다는 말 앞에서 결국 이겼다. 백로진의 약방에서도 그랬다. 밉든 곱든, 언 손은 언 손이었다.안채의 남궁완은 서안 앞에 앉아 있다가, 시비 뒤로 들어서는 객의를 보고 붓을 놓았다. 연지를 보는 눈이 반쯤은 나무람이었고 반쯤은 체념이었다."쫓겨나는 법을 모르는 아이라." 남궁완이 말했다. "의원까지 끌고 올 줄은 몰랐네요.""진맥만 하겠습니다. 싫으시면 이대로 나가고요."여인은 한참 운설을 보다가, 소매를 걷어 왼 손목을 서안 위에 얹었다. 항복이라기보다 셈이 빠른 것이었다. 실랑이가 길어지면 소문이 나고, 소문은 불면보다 값이 비쌌다.맥은 가늘고 급했다. 심화가 오래 눌러앉은 맥.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 달포가 아니었다. 계절을 넘긴 불면이었다. 진맥하는 손끝 아래, 약지의 가락지 자국이 파인 채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반지를 뺀 자리는 살이 아물어도 자국이 남는다. 오래 낀 것일수록 깊게."언제부터 못 주무십니까.""의원이 맥으로 알아냈을 텐데요.""맥은 겨울이라 합니다."남궁완은 창 쪽으로 잠깐 눈을 돌렸다. "그이가 인수를 눈밭에 버렸다는 말이 세가에 닿은 게 겨울이었어요. 실성했다는 말과 같이 왔죠. 가문은 그날로 파혼 서신을 보냈고요." 목소리는 남의 집 제사 이야기를 하듯 골랐다. "반지는 돌려보내라 했을

  • 설야팔부 (雪夜八部)   91. 대월(待月)

    수장고의 창은 좁고 높아서, 빛이 칼처럼 비껴 들었다.서명 없는 서신 열여섯 장이 긴 탁자 위에 날짜 순으로 벌여졌다. 이른 것은 그 밤보다 반년을 앞섰고, 마지막 것은 보름을 앞섰다. 선우현이 한 장 한 장 획을 짚어 나갔다. 붓을 대는 첫 자리. 꺾는 버릇. 마지막 획이 종이를 누르며 끝나는 모양."같은 손이오." 그가 말했다. "물 위에서 본 수결과. 열여섯 장 전부."운설은 탁자 끝에서 그 종이들을 보았다. 글은 격조 높은 문어였다. 북쪽의 이리가 이빨을 간다. 눈이 녹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한다. 정병이 모이고 있다는 풍문이 있다 — 풍문이라는 말을 쓴 입이, 반년 뒤 그 풍문을 열두 줄의 공훈으로 바꾸었다. 십팔 년 전 온 중원이 믿은 침략설이 이런 담 안, 이런 서안 위로 배달되어 온 광경을, 운설은 벌여진 열여섯 장에서 보았다. 남궁가에 열여섯 장이면 다른 세가에는 몇 장이 갔을까."조부님은 만년에 달을 못 보셨어요." 남궁완이 말했다. 부채는 접힌 채 탁자에 놓여 있었다. "달이 뜨면 방문을 닫으셨죠. 다들 노환이라 했어요. 저는 열다섯에 이 서신들을 찾았고요. 태우라 명하신 걸 몸소 태우지 못하고 수장고 바닥에 감추신 것도, 노환이라면 노환이겠죠.""가문 회의는 이걸 압니까." 운설이 물었다."알면 제가 여기 서 있겠어요?" 여인은 처음으로 웃었는데, 웃음에 온기가 없었다. "회의는 명예를 씻으라고 절 보냈어요. 저는 — 씻어지는지 알고 싶어서 왔고요. 씻어지는 죄인지, 씻는 시늉만 해야 하는 죄인지."빛이 반 뼘을 옮겨 가는 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 수장고 바닥에서 가문의 죄를 주워 들고, 십 년을 혼자 품고 산 셈이었다. 명예를 씻으러 온 사람은 부채를 든 영애였고, 지금 탁자 앞에 선 사람은 그 종이를 십 년 진 사람이었다.그 말투에는 부채도 격도 없었다. 운설은 이 여인이 처음으로 미워지지 않는 것이 불편했다. 미워할 수 있는 동안은 셈이 간단했다.대조는 한나절을 갔다. 선우현과 남궁완이 탁자

  • 설야팔부 (雪夜八部)   90. 담 안

    남궁가의 별저는 담부터 달랐다.무두장이 골목의 흙담이 아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회벽이 물길을 낀 후원까지 둘렀고, 문마다 창을 든 가병이 섰다. 객경은 정당 곁의 상방에 들었다. 객의는 후원 행랑채, 약방 곁의 골방이었다. 짐을 푸는 데는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골방의 창으로는 상방의 처마 끝이 겨우 보였다."의원님은 이쪽이래요." 안내하던 시비가 말했다. 왼눈이 살짝 바깥을 보는, 호기심을 감출 줄 모르는 아이였다. "저는 연지예요. 아씨 시중을 들어요. 저기, 의원님 — 침으로 사람을 재운다는 게 참말이에요?""재우는 게 아니라 아픈 걸 멎게 하는 겁니다.""물 위를 걸었다는 것도요?"운설은 대답 대신 짐을 마저 풀었다. 연지는 쫓겨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아이처럼 문지방에 앉아 한참을 재잘대다 갔다. 담 안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궁금해하는 눈이 사시 낀 시비 하나라는 사실이, 우습고 조금 시렸다.오후에는 별저의 약방을 안내받았다. 남궁가의 객의라는 신분은 종이 한 장이었으나, 약방만은 진짜였다. 마른 약재가 벽을 채우고, 저울과 절구가 손 닿는 자리에 있었다. 낯선 담 안에서 처음으로 숨이 놓이는 자리였다. 운설은 당귀 한 뿌리를 집어 손끝으로 부러뜨렸다. 똑, 하고 마른 것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백로진의 약방에서 눈 오는 밤마다 듣던 소리. 세상이 몇 번을 뒤집혀도 잘 마른 약재는 같은 소리로 울었다.저녁상은 따로 나왔다. 객경의 상은 정당에, 객의의 상은 행랑에. 법도에 흠잡을 데가 없어서 흠을 잡을 수도 없었다.상을 물리고 후원을 지나다, 운설은 정당의 열린 문 안쪽을 보았다. 남궁완이 찻상 앞에서 차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는 소리만으로 물 온도를 아는, 자라면서 몸에 밴 손놀림. 맞은편의 선우현이 무어라 짧게 답하자 여인이 웃었다."오라버니는 그때도 우전(雨前)만 드셨지요. 곡우 지난 잎은 입에 대지도 않고.""소저의 기억이 밝소.""제사가 그해 곡우 다음이었으니까요. 백부님이 오라버니더러 검보(劍譜)를 외워 보라 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