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혼례 이튿날 아침, 신방의 문이 늦도록 안 열렸다.궁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발소리를 죽였고, 발소리를 죽이는 저희끼리 눈짓으로 웃었다. 해가 중천에야 문이 열렸을 때, 나온 두 사람은 서로 딴 데를 보며 걸었고, 그것이 온 궁의 그날 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덤의 날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셈이 없는 날들이라 — 셈 없는 날들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아무도 세지 않았다. 여름이 산기슭의 초록을 짙게 밀어 올리고 있었다.셈이 없는 날들이었다. 아침이면 약방에 환자가 들고, 낮이면 그가 기수들에게 검을 봐 주고, 저녁이면 한 상에서 밥을 먹고, 밤이면 — 등잔이 꺼졌다. 큰일이라고는 타간의 국 간과 여리의 땋음머리 순서 다툼뿐인 날들. 열여덟 해 치 소란을 치른 사람들에게 세상이 처음으로 내주는, 이자 없는 날들.어머니는 그 날들을 아껴 살았다.아침마다 묵할멈과 후원을 반 바퀴 걸었다. 반 바퀴가 힘에 부치는 날은 반의 반 바퀴를 걸었고, 걷지 못하는 날은 마루에 앉아 볕을 걸었다. 딸들이 번갈아 그 곁에 앉았다. 언니는 궁의 일을 어머니에게 물어 가며 했다. 물을 것이 없어도 물었다. 물음이 곧 곁이었다.운설은 어머니의 맥을 아침저녁으로 짚었다.실낱은 실낱인 채였다. 다만 실낱이 이상하게 — 편안했다. 낡아 가는 맥이 아니라, 다 낡은 것이 제 낡음과 화해한 맥. 의녀의 손은 그 차이를 알았고, 아는 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내기를 하나 하자." 어느 볕 좋은 마루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어미가 첫눈을 보는지 못 보는지.""어머니.""너는 어느 쪽에 걸겠느냐.""보는 쪽에요." 운설은 맥을 짚던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제 침이 아직 안 졌습니다. 진눈의 내기도 이기고 있고요.""그럼 어미는 못 보는 쪽에 걸마." 어머니가 웃었다. "그래야 네가 이기면 어미가 첫눈을 보지. 지는 게 이기는 내기가 세상엔 있는 법이다."지는 게 이기는 내기. 운설은 그 말을 웃으며 받았고, 받고 나서 혼자 오래 곱씹었다.
혼례는 눈마당에서 치러졌다. 지난겨울 운설이 처음 궁에 들던 날 눈을 쓸던 그 마당이었다.눈은 없는 계절이었다. 한데 아침부터 온 궁이 마당에 흰 천을 깔았다. 삭월 신부는 눈 위를 걸어 시집가는 법이라고, 눈이 없으면 눈을 지어서라도 깐다고 — 흑요가 법도를 밝혔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신부는 흰 천의 길을 걸었다.수 놓인 족두리가 머리에 있었다. 어머니가 심지를 아껴 태워 완성한, 눈밭에서도 얼지 않는다는 족두리. 활옷 소매에는 세가의 격이 놓은 매화가 피어 있었다. 신부의 손을 잡고 길을 이끈 것은 운백천이었다. 열여덟 해 전 강보를 안고 눈길을 걸었던 사람이, 다 자란 딸의 손을 잡고 흰 길을 걸었다.흰 길의 양쪽에 온 궁이 도열해 있었다. 유민들, 기수들, 만군에서 눌러앉은 병졸 몇, 사냥막의 자매, 그리고 상석의 어머니와 언니. 신부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삭월의 축원을 낮게 웅얼거렸다. 눈처럼 오래, 눈처럼 고요히. 축원의 뜻을 운설은 걸으면서 처음 배웠다.신랑은 길의 끝에 서 있었다.검은 예복에, 빈 허리에. 검신은 혼례에 검을 차지 않았다. 오늘 지킬 것은 검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초례상 앞에서 두 사람은 마주 섰다.맞절이 오갔다. 표주박의 술이 오갔다. 반쪽씩 나눈 것이 도로 하나가 되는 잔이었다. 그리고 삭월의 법식 하나가 더 있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이름을 — 온전한 이름을 — 마당의 모두가 듣도록 부르는 것."설야."그가 불렀다. 위급이 고르던 이름이, 혼례상 앞에서 처음으로 위급 없이 불렸다."현."그녀가 불렀다. 김 서린 온천의 밤에 처음 넘었던 이름이, 백일하에 불렸다.마당이 뒤집어졌다. 우르가 제일 크게 울었고, 울면서 제일 크게 웃었다.잔치는 해가 지도록 갔다. 열여덟 해 치 잔치를 하루에 몰아 하는 사람들이라, 흥이 바닥나지 않았다. 타간의 국은 그날따라 간이 맞았다 — 고 다들 우겼다. 더운돌 영감은 무릎을 두드리며 젊은것들의 춤을 훈수했고, 여리와 연지는 신부의 족두리를 번갈아
혼례를 앞둔 궁은 열여덟 해 만에 잔치라는 것을 준비했다. 잔치 준비가 서툰 사람들이라 소동이 잦았고, 소동마다 웃음이 났다.준비는 온 궁의 일이 되었다. 타간은 잔치 국의 간을 두고 밤잠을 설쳤고, 바토는 함에 넣을 빗과 가락지를 두드렸고, 더운돌 영감은 혼례 전날 신부가 몸을 담글 탕을 벌써부터 쓸고 닦았다. 여리와 연지는 신부의 들러리 자리를 두고 하루 세 번 다투고 네 번 화해했다.수를 놓는 손은 둘이 되었다.어머니의 족두리 곁에서, 남궁완이 신부의 활옷 소매를 맡은 것이다. 세가의 수는 격이 있었고, 격이 있는 만큼 — 처음 며칠은 바늘이 자주 멎었다."이상하지 않아요?" 어느 밤 여인이 수를 놓으며 운설에게 말했다. "오 년을 정혼자로 살았던 사람의 혼례 옷을 — 파혼당한 여자가 놓고 있는 게.""이상합니다." 운설은 숨기지 않았다."그렇죠. 한데 더 이상한 건—" 부채 대신 바늘을 쥔 손이 고르게 나아갔다. "놓다 보니 알겠어요. 나는 그 사람을 잃은 게 아니라 — 격을 잃었던 거예요. 남궁완의 정혼자라는 격을. 사람은," 바늘이 실을 물고 지나갔다. "사람은 여기 있네요. 벗의 자리에. 격보다 오래가는 자리에.""아씨.""수나 마저 놓죠. 소매가 두 짝이라."혈비의 혼례 선물은 말 없이 왔다. 어느 아침 운설의 처소 앞에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물때를 다 벗겨 내고 새로 벼린 — 왕의 검이었다. 딸에게 물려주마 하셨다던 그 검을, 언니는 아우의 혼례에 내놓았다. 곁에 쪽지 한 장. 검은 신부 쪽 혼수다. 물리진 못한다.운설은 그 검을 차는 대신 벽에 모셨다. 검을 쓸 줄 모르는 신부였다. 한데 벽의 검이 방을 지키는 무게는 알 것 같았다.한겸에게서는 파발이 왔다. 남쪽의 종이 전쟁은 길겠지만 지지 않겠다는 소식과, 혼례 날에 못 가는 것을 백 번 사죄하는 문장과 — 봉서 하나. 간수문의 것이었다. 늙은 법은 혼서(婚書)의 격식을 손수 적어 보냈다. 가문 없는 신랑의 혼서에 증인 자리가 비니, 실각한 당주의 이름이
장례의 아침은 맑았다. 곡하기 좋은 날이란 없지만, 열여덟 해를 기다린 곡이라면 맑은 날이 나았다.왕의 유해는 대전에서 무덤 벌판으로 옮겨졌다. 스물일곱 봉분의 위, 벌판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자리에 왕의 무덤이 마련되었다. 백성들이 묻힌 벌판을 발치에 두고, 산의 등을 베개 삼는 자리. 자리를 고른 것은 부수 노인이었다. 왕은 백성을 굽어보는 자리가 아니라 — 백성에게 발을 맡기는 자리에 눕는 법이라고.곡은 삭월의 옛 법대로 했다.만장도 곡비도 없이, 산 사람들이 저마다 제가 아는 왕의 이야기 하나씩을 무덤에 놓고 가는 것. 더운돌 영감은 젊은 왕이 온천에 몰래 들었다가 저한테 등짝을 맞은 이야기를 놓았다. 흑요는 왕이 국사를 보다 조는 버릇을 놓았다. 부수는 아무 말 없이 잔돌 하나를 놓았고, 묵할멈은 손짓말로 긴 이야기 하나를 놓았는데 여리가 옮기다 반쯤에서 울어 버려 뒷말은 하늘만 들었다.남궁완도 이야기를 놓았다. 세가의 영애는 제 가문의 창이 이 벌판에 진 빚을 다시 한 번 적어 놓고, 왕을 한 번도 뵌 적 없는 처지로 놓을 이야기가 없어 — 조부의 이야기를 놓았다. 달만 보면 울던 늙은이가 평생 지우지 못한 죄의 임자가 여기 누웠으니, 이제 두 늙은이 다 편해지시라고.선우현은 검객의 예로 곡했다. 검을 뽑아 무덤 앞에 반 호흡 세웠다가 도로 넣는 것. 베어야 했던 것을 못 베고 늦은 검이 올리는, 가장 무거운 예였다.혈비는 다섯 살의 검 이야기를 놓았다. 검이 너를 문 게 아니라 네가 검을 문 것이라던.운설은 놓을 이야기가 없었다.낳아 준 아버지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은 전부 남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야기 대신 다른 것을 놓았다. 초승달 패. 죽어 가는 노인이 마지막 힘으로 쥐여 주던, 이야기가 시작되던 밤의 그 쇠붙이를 — 이야기의 임자에게 돌려놓았다."처음 뵙습니다, 아버지." 그것이 그녀의 곡이었다. "따님이 물을 배웠습니다."어머니는 맨 마지막이었다.부축 없이 무덤 앞까지 걸어간 어머니는, 이야기를 놓는 대신
궁의 봄은 완연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봄은 소문 두 개를 동시에 받았다.남쪽에서 종이가 두 갈래로 달리고 있었다. 하나는 한겸의 종이 — 얼음여울의 기록, 휘월의 자백, 만군 서기들의 증언. 하나는 격문 두 번째 판 — 북의 요녀가 물로 만군을 협박해 돌려세웠다는, 진실이 닿기 전에 먼저 달리는 왜곡."소문이 진실보다 발이 빨라요." 남궁완이 연통들을 갈래로 나누며 말했다. "한데 진실은 발이 느린 대신 숨이 길죠. 반년을 보세요. 만 명의 입이 집집으로 흩어져서 제 눈으로 본 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 격문 따위가 못 당해요."궁 안의 시간은 종이의 시간과 다르게 흘렀다.어머니는 안채에 들었다. 열여덟 해 만의 제 방이었다. 묵할멈이 그 방을 열여덟 해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쓸고 닦아 온 것을, 어머니는 문지방에서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전 빗이 제자리에 있었다. 은방울 한 쌍이 제자리에 있었다. 시중과 왕비는 그 방에서 한나절을 나오지 않았고, 문밖으로는 손짓말이 오가는 기척만 — 소리 없는 대화의 기척만 — 이따금 흘러나왔다.흑요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부터 했다. 마마를 못 알아뵙고 산 세월을. 어머니는 노파를 일으키며 딱 한마디를 했다."자네가 궁을 지켰으니 내가 돌아올 데가 있었네."운설의 약방에는 다시 환자들이 들었다. 진눈의 폐, 더운돌의 무릎, 겨우내 미뤄 둔 궁 사람들의 잔병들. 언 손을 데워 주던 백로진의 밤들이 돌아온 것 같은 날들이었다. 다만 이제 그 손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녀를 의원이라고도, 마님이라고도, 아씨라고도 제각각으로 불렀고 — 그녀는 그 제각각이 다 좋았다. 이름이 늘어나는 것이 세상이 넓어지는 일이라는 걸, 열여덟 해 걸려 배웠다.휘월의 거처는 궁 밖, 무덤 벌판이 보이는 산신당 곁 곳간으로 정해졌다. 운백천이 쓰던 그 곳간이었다. 속인 자가 속은 자의 자리를 물려받는 셈을 두고, 부수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이부자리 한 채를 더 들였다.죄인은 낮마다 벌판에 올랐다. 스물일곱 봉분의 잔돌을 골
궁으로 돌아가는 길은 열흘을 잡았다. 서두를 까닭이 하나도 없는 길은 다들 처음이었다.이틀이면 닿을 길이었다. 한데 어머니의 몸이 하루 두 시진 넘는 이동을 받지 못했고, 아무도 그 이상을 청하지 않았다. 열흘의 귀로는 그래서 이상한 시간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죄인이 이름을 돌려받고, 낡은 닻이 실려 가는 행렬이 — 소풍처럼 느리게 북쪽 봄을 건넜다.어머니는 수레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이따금 딸들을 불러 시시한 것을 물었다."저 새 이름이 뭐냐.""직박구리입니다.""남쪽에도 있느냐.""있습니다.""그럼 됐다."무엇이 됐다는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열여덟 해를 새 한 마리 마음대로 못 보고 산 사람의 셈은, 묻는 것이 아니었다.간수문과 한겸은 사흘째 갈림길에서 남으로 꺾었다. 종이 뭉치와 함께. 작별은 짧았다. 늙은 법은 젊은 법의 등을 한 번 두드렸고, 젊은 법은 서툰 절을 올렸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쪽에서 해야 할 일이 산이었다. 왜곡보다 먼저 진실을 앉히는 일. "겨울이 오기 전에 소식을 올리겠습니다." 한겸은 그 말을 남기고 말을 몰았다.휘월은 행렬의 맨 뒤를 걸었다. 결박은 없었다. 말에서 내려 걷겠다고 한 것은 본인이었다. 이름을 돌려받은 죄인은 하루 백 리를 걷던 다리로 하루 십 리를 느리게 걸으며, 길가의 물웅덩이마다 걸음을 멈췄다. 봄물이 고인 웅덩이에 하늘이 비치는 것을, 노인은 처음 보는 것처럼 보곤 했다.사수가 그 곁을 지켰다. 손등의 상처가 아무는 동안 여자의 조롱기도 함께 아물어서, 요즘은 말수가 사냥꾼 언니를 닮아 갔다. 사백은 그 둘을 멀찍이서 지켰다. 세 사람의 거리는 열흘 내내 조금씩 줄었는데, 누구도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남궁완은 수레 곁에서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는 날이 많았다. 세가의 영애와 삭월의 왕비는 이상하게 죽이 맞았다. 문갑과 반짇고리 이야기, 격과 법도 이야기, 그리고 이따금 — 두 사람이 같이 운설 쪽을 보며 웃는 일이 있어서, 운설은 그 웃음이 제일 무서웠다.진눈의 기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