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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 조각을 내준 값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22:03:14

밧줄 끝은 촌장의 손바닥을 깊이 베고 있었다.

우물 안으로 내린 쇠망에는 흰 돌덩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달 걸쇠 소리가 가장 크게 나는 벽을 깨서 돌째 꺼내려 한 것이다.

선우현이 밧줄을 밟았다.

“어디로 가져가려 했소?”

촌장은 놓지 않았다.

“당신들이 못 꺼내게 숨길 거요.”

“황실에도?”

“황실은 이게 있어야 약을 줍니다.”

그는 조각을 팔려 한 것이 아니었다. 운설이 대신 쓸 처방을 찾은 뒤 우물을 비울까 두려워, 자기 집 지하에 돌을 옮길 생각이었다.

타간이 촌장 뺨을 때렸다.

“이 물은 네 것이 아니야.”

“네 것은 되고?”

촌장의 되물음에 타간 손이 멎었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걸쇠를 넣었는데? 죽은 열하나 가족한테? 살아난 스물하나한테? 우물 쓰는 집들한테?”

타간은 때린 손을 내렸다. 걸쇠를 넣은 선택은 사람을 살렸지만 마을 전체에게 묻고 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했소.”

그는 운설을 보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첫날 내가 넣었다. 촌장은 우물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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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75화 — 조각을 내준 값

    밧줄 끝은 촌장의 손바닥을 깊이 베고 있었다.우물 안으로 내린 쇠망에는 흰 돌덩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달 걸쇠 소리가 가장 크게 나는 벽을 깨서 돌째 꺼내려 한 것이다.선우현이 밧줄을 밟았다.“어디로 가져가려 했소?”촌장은 놓지 않았다.“당신들이 못 꺼내게 숨길 거요.”“황실에도?”“황실은 이게 있어야 약을 줍니다.”그는 조각을 팔려 한 것이 아니었다. 운설이 대신 쓸 처방을 찾은 뒤 우물을 비울까 두려워, 자기 집 지하에 돌을 옮길 생각이었다.타간이 촌장 뺨을 때렸다.“이 물은 네 것이 아니야.”“네 것은 되고?”촌장의 되물음에 타간 손이 멎었다.“누구에게 물어보고 걸쇠를 넣었는데? 죽은 열하나 가족한테? 살아난 스물하나한테? 우물 쓰는 집들한테?”타간은 때린 손을 내렸다. 걸쇠를 넣은 선택은 사람을 살렸지만 마을 전체에게 묻고 한 일은 아니었다.“내가 했소.”그는 운설을 보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첫날 내가 넣었다. 촌장은 우물 자리를 감췄고, 황실 사자에게는 걸쇠가 그대로 있다고 약조했소. 저 사람 혼자 묶어 끝낼 일이 아니오.”촌장이 품에서 가죽 장부를 꺼냈다. 황실 약이 온 날과 양, 그 대가로 내준 물과 사람이 적혀 있었다.촌장은 장부를 자기 집에 두지 않았다. 우물가 죽은 이들의 위패 뒤에 감췄다. 누구도 쉽게 태우지 못할 곳에 두면서도, 살아 있는 이들이 날마다 보지 않는 자리를 골랐다.“이걸 왜 이제 내놓습니까?”운설이 묻자 촌장은 피 묻은 손바닥을 폈다.“어젯밤까지는 우리가 얻은 약만 보였소. 오늘 저 돌을 숨기려다 타간 말이 맞는 걸 알았지. 나도 내 선택을 남의 눈에서 감추고 있었소.”타간은 사과를 받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마을 한가운데 펼쳐 놓자고 했다.첫달에는 우물물 열 항아리, 둘째에는 병을 견딘 사람 셋의 피, 셋째에는 타간이 모르는 소년 하나의 수결이 있었다.“이 사람은 누구예요?”운설이 물었다.촌장이 입술을 핥았다.“삭월 궁에서 전갈 나르던 아이. 이름이 누리랬소.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74화 — 약이 된 우물

    두레박은 김이 나는 물을 길어 올렸다.겨울도 아닌데 물은 사람 체온만큼 따뜻했다. 흰 광물 사이로 푸른 점이 떠다녔고, 두레박 밑에서는 달 걸쇠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타간이 침통을 풀어 운설 앞에 놓았다.“지난겨울 열병이 마을을 돌았소. 약을 아무리 써도 사흘째면 숨이 얼었지.”환자는 서른둘이었다. 그중 열하나는 어린 나이에 죽고, 남은 사람도 손발 끝부터 굳어 갔다. 황실에서 약 백 첩이 왔으나 병을 늦출 뿐 낫게 하지는 못했다.타간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솥 뚜껑 안쪽에 새겨 두었다. 살아난 사람만 세면 자기가 옳았다고 믿게 될까 두려웠다고 했다. 이름 열하나 사이에는 칼끝이 미끄러진 자국과 다시 새긴 획이 겹쳤다.촌장은 그 뚜껑을 사람들 앞에 보이지 말라 했고, 타간은 매일 약을 달일 때마다 열어 보았다. 둘은 같은 우물을 지키면서도 기억하는 방법이 달랐다.“그래서 걸쇠를 녹였습니까?”“불에는 안 녹더군. 우물 바닥 흰 돌 위에 놓으니 물이 먹었소.”타간은 누구에게 묻지 않았다. 첫 환자의 숨이 돌아온 뒤에는 꺼내려 했지만 걸쇠가 우물 벽 속으로 스며든 뒤였다.장정 하나가 소리쳤다.“그 물 아니었으면 우리 절반은 죽었소.”다른 여인이 반박했다.“그 뒤 황실이 우물 앞에 사람을 세웠잖아. 약도 저 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줬고.”마을은 물 덕에 살았고 같은 물 때문에 감시받았다.운설은 환자 셋을 보았다. 열병은 지났으나 하루라도 우물물을 마시지 않으면 입술이 파래지고 손이 굳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물을 마시게 하자 첫 환자의 손가락이 한 식경 안에 오므라들었다.첫 환자 옥심은 손이 굳기 전 실을 꼬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물 덕에 살았지만 이제 하루 두 번 물을 마시지 않으면 발끝 감각도 잃었다.“이 물을 빼면 나는 다시 겨울로 갑니다.”옥심이 명주를 보며 말했다.“그래도 당신 몸에 필요한 거라면 내 앞에서 말해요. 밤에 훔쳐 가지 말고.”명주는 우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옥심 앞에 앉았다.“필요합니다.”“그래서?”“당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73화 — 타간의 빈 침통

    석잔촌이 보이기 전에 신발부터 희어졌다.마른 길을 밟아도 발등에 고운 가루가 앉았다. 우물물 속 광물이 바람에 마르며 돌과 흙에 엉겨 붙은 흔적이었다.선우현은 마을 어귀에서 걸음을 늦췄다. 지팡이 끝에도 흰 테가 생겼다.“수레표에는 다섯째 수레가 여기서 멈췄다고 했소.”연도하가 왼손으로 낡은 표를 펼쳤다.“바퀴축을 갈고 물 여섯 통을 실었지.”“그때 타간을 만났어요?”“이름은 몰랐소.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는 사내가 물을 길어 주었네.”마을 사람들은 타간을 모른다고 했다. 지나가는 일행에게 밥을 팔던 노파도, 우물가 짚단을 나르던 사내도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집집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안쪽 방문만 닫혔다. 마당에는 열병 뒤 굳은 손을 펴는 나무틀과 약 달인 찌꺼기가 널려 있었다. 환자가 없다는 마을치고 약 냄새가 너무 짙었다.명주가 문 하나를 바라볼 때마다 안에서 숨을 죽이는 소리가 났다. 그녀 안 물길이 사람의 병을 알아보는지, 사람들 몸에 밴 우물 기운을 찾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그러면서 모두 운설의 약갑을 보았다.“의원이시오?”노파가 물었다.“환자가 있습니까?”“없소.”“그런데 왜 약 냄새가 나요?”노파의 소매 끝에는 열병에 쓰는 마른 쑥과 흰 나무껍질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녀는 팔을 등 뒤로 감췄다.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장정 여섯이 길을 막았다. 연도하의 상단 표를 알아본 얼굴들이었다.“상단에서 우물을 도로 가져가려 왔소?”“우물을 판 적도 없는데 어떻게 가져가오.”“당신들 짐이 멈춘 뒤 황실 사람이 왔지. 이번에는 삭월 사람까지 데려왔군.”명주의 흰 얼굴과 담우의 젖은 소매를 본 장정들이 낫자루를 고쳐 잡았다.연도하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선우현이 갈라진 지팡이를 가로놓았다.“길을 열라고 말하지 마시오.”“그럼 저들이 끝까지 막으면?”“막고 싶은 까닭이 먼저 나오겠지.”선우현은 그 자리에 앉았다. 장정들이 지칠 때까지 버티려는 것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환자에게 약을 가져갈 사람이 결국 나올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72화 — 마르간의 낯선 꿈

    “물 아래 기둥이 열여덟입니다.”마르간은 눈을 뜨자마자 숯으로 바닥을 그었다. 네모난 관실과 그 사이를 가르는 수로, 북쪽에서 들어온 수레가 멎는 돌마당까지 망설임이 없었다.“가 본 적 있어요?”운설이 물었다.“없습니다.”“그럼 누구 눈으로 봤지?”마르간은 자기 가슴 아래 불룩한 쇠고리를 짚었다. 살 속 검은 물길이 손가락을 피해 움직였다.“잠들면 물이 눈을 빌려 갑니다. 깨어나면 제가 빌렸는지 저들이 빌렸는지 모르겠습니다.”명주가 바닥 그림 앞에 앉았다. 그녀 안의 정무가 알아보는 듯 왼눈만 뜬 채 수문 셋을 따라갔다.“마르간의 조각을 제 몸에 잠깐 이으면 더 읽을 수 있습니다.”담우가 고개를 저었다.“누이 맥 하나가 어제 없어졌어.”“길을 모르면 더 많은 맥을 잃어.”운설은 마르간을 보았다.“당신 몸에서 꺼내지는 않을 겁니다. 명주에게 잇는 것도 당신이 고르세요.”마르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물목 하나가 틀려도 밤을 새워 맞추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자기 기억을 셀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워 보였다.“제가 거절하면?”“다른 길을 찾습니다.”“명주 아씨가 죽어도?”“그 죽음을 당신 선택의 값으로 쓰지는 않아요.”명주가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렸다. 살고 싶다는 말이 누군가의 허락을 재촉하는 칼이 될까 봐 입을 다문 얼굴이었다.마르간은 한 식경만 물그릇을 사이에 두겠다고 했다. 몸을 맞대지 않고, 자기 이름을 세 번 부르면 곧 끊으며, 보이는 것은 운설과 왕철이 함께 적는다는 조건을 붙였다.물그릇 셋을 놓았다. 마르간이 첫 그릇에 왼손을, 명주가 마지막 그릇에 오른손을 담갔다. 가운데 물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검은 선이 첫 그릇에서 둘째로 넘어오자 명주의 발이 다섯 갈래로 움직였다. 서련은 약 냄새를 찾았고 노칠은 발톱으로 돌 틈을 긁었다. 정무는 보이지 않는 수문 손잡이를 돌렸다.마르간의 입에서는 낯선 여자의 울음이 흘렀다. 목이 쉰 채 열셋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었다. 여덟에서 한 번 멎고,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71화 — 봉한 수레표

    젖은 수레표는 연도하의 왼손 아래에서도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운설은 화로 가까이에 마른 돌을 놓고 종이를 한 장씩 눌렀다. 앞뒤로 붙은 여덟 장이 떨어지자 날짜와 마부 이름, 짐의 무게가 드러났다.“처음부터 쓰세요.”“방금 다 말했소.”“첫 수레가 당신 것이었다고만 했어요.”연도하는 붓을 왼손에 들었다. 글씨가 예전보다 느리고 굵었다. 오른손으로 쓴 옛 수결 옆에 지금의 획을 놓자 같은 사람 이름이 다른 이의 글씨처럼 보였다.두 해 전 늦겨울, 고윤의 수레 여덟 대가 설로상단 북쪽 창고에 들어왔다. 짐칸은 안팎으로 널을 덧대고 누런 밀랍을 발랐다. 물목에는 설산 약재와 깨질 수 있는 수정관이라 적혀 있었다.수레는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았다. 이틀 간격으로 둘씩 떠났고, 앞 수레가 관문을 지난 뒤에야 다음 것이 창고 문을 나섰다. 마부도 길마다 바뀌었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이 없도록 잘라 놓은 운송이었다.“그때는 이상하지 않았어요?”“황실 짐은 으레 그랬소.”“으레 그렇다는 말이 가장 오래 문을 닫아 두죠.”연도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첫 수레를 직접 몰았던 까닭도 적었다. 고윤의 사람이 상단 마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그를 지목했고, 연도하는 자기 눈으로 북관을 넘기면 뒤 수레까지 안전하리라 계산했다.첫날 밤, 짐칸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는 수정관의 얼음이 녹은 것이라 여겨 마른 짚만 갈게 했다. 젖은 짚은 상단 창고에서 태워졌고 재까지 황실 사람이 가져갔다.“누가 열어 보았어요?”“아무도.”“당신도?”“봉함을 풀면 북쪽 약길 셋을 다시 닫겠다는 조건이었소.”선우현이 상 끝에 기대 물었다.“그 길로 몇 사람이 약을 받았나.”“첫겨울에 사천칠백 첩. 이듬해에는 그 절반쯤.”“몇 사람을 실었는지는 모르고.”“사람이라고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명주 안에서 누군가 낮게 웃었다. 고명주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머리맡 물그릇이 떨렸다.운설은 웃음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수레마다 멈춘 곳을 쓰세요. 물을 길은 우물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370화 — 검게 돌아온 달

    다섯 번째 방울 끝에 말발굽이 박자를 보탰다.북문 쪽 먼지가 갈라지고 말 세 필이 장터로 들어왔다. 선두의 연도하는 오른손을 가슴에 묶은 채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있었다. 뒤 수레에는 검은 천을 덮은 들것과 상단 의원 둘이 실려 있었다.선우현이 우물가에서 몸을 일으켰다.“이번에는 혼인 소문도 없이 오는군.”“환영치고는 낡았소.”연도하는 말에서 내리다 오른발이 등자에 걸렸다. 예전 같으면 몸을 가볍게 틀었을 사람이 어깨부터 땅으로 기울었다. 선우현이 팔을 내밀었고, 연도하는 잠깐 보다가 그 손을 잡았다.“다리는 멀쩡하오.”“손을 받았지 다리를 받았소?”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들것 위 천이 안쪽에서 젖어 들고 있었다.운설이 천을 걷었다.“마르간.”삭월 궁의 창고지기는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셈이 하나 어긋나면 밤을 새우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계속 무언가를 세었다. 목에서 가슴까지 검은 물줄기가 번졌고, 침통에 있어야 할 달 걸쇠가 살 아래에서 불룩하게 움직였다.“어디서 찾았어요?”“북쪽 약재창고. 물목을 맞추다 갑자기 쓰러졌소. 깨어나서는 가 본 적 없는 남쪽 수뢰의 기둥 수를 말했지.”“여기까지 며칠 걸렸어요?”“말 둘을 바꿔 타고 나흘. 셋째 말은 지금 나보다 성질이 나쁘오.”“손은요?”“오는 동안 붙어 있었소.”운설이 대꾸 없이 그의 묶인 오른손을 한 번 보았다.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아래로 처져 있었고 약지 끝은 고삐에 쓸려 피가 맺혔다. 연도하는 치료를 재촉하지 않았다. 들것의 숨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다.선우현이 수레바퀴에 묻은 흰 진흙을 긁었다.“곧장 온 길은 아니군.”“두 번 쫓겼소. 한 번은 황실 관졸, 한 번은 얼굴을 가린 삭월 무사들이었지. 서로 싸우느라 우리를 놓쳤고.”명주가 감은 눈을 떴다.“언니가 사람을 보냈군요.”명주가 혈비를 언니라 부른 것인지, 안의 다른 목소리가 누구를 부른 것인지 아무도 묻지 못했다.연도하가 왼손으로 봉한 꾸러미를 내놓았다. 안에는 반쯤 검게 변한 쇠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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