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똑똑.아스테리온의 손이 멈췄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똑똑.두 번째 노크.“아스테리온.”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나야.”아스테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문으로 걸어갔다.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문을 열었다.아르셀리아가 서 있었다.짙은 붉은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고, 평소 집무실에서 입던 검은색 원피스 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얇은 책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작은 접시가 있었다.“왜 그렇게 봐?”아르셀리아가 물었다.아스테리온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아스테리온?”“오셨군요.”“응.”“정말.”아르셀리아가 눈썹을 올렸다.“약속했잖아.”“예.”“들어가도 돼?”아스테리온은 곧바로 옆으로 비켜섰다.“물론입니다.”아르셀리아가 문턱을 넘었다.그 순간 아스테리온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어제도 왔다.그제도 왔다.처음 초대했던 날에도 왔다.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아르셀리아가 자기 발로.약속한 시간에.자신을 만나기 위해.이 방에 왔다.“뭐 해?”아르셀리아가 물었다.아스테리온이 정신을 차렸다.“아닙니다.”“또 멈췄어.”“예.”“왜?”그는 천천히 웃었다.“반가워서요.”아르셀리아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나도.”“…….”“너 보니까 반갑네.”아스테리온은 다시 멈췄다.아르셀리아가 웃었다.“또.”“……예.”“오늘 몇 번 멈출 거야?”“아직 모르겠습니다.”“그럼 일단 차부터 줘.”“예.”아스테리온은 그녀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아르셀리아는 자연스럽게 푸른 러그 위에 앉았다.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찻상 위에 올려놓았다.아스테리온이 물었다.“이건 무엇입니까?”“과자.”“…….”“차 마신다며.”“예.”“빈속에 마시면 심심하잖아.”아스테리온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작은 버터 과자였다.화염궁 주방에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직접 가져오셨습니까?”“응.”“왜요?”아르셀리아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봤다.“손님이 빈손으로 오면 좀 그렇잖아.
“성검님?”관리 정령의 부름에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들었다.“예.”“여기 기록이 하나 빠졌어요.”정령이 가리킨 곳은 붉은 수정 왕관과 황금 술잔 사이였다.아스테리온이 처음 놓였던 자리.그곳의 목록에는 오래된 항목이 남아 있었다.고대 성검. 소유자 아르셀리아 로하르트.아스테리온은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소유자.그 단어는 이제 익숙하지 않았다.아르셀리아는 왕실 기록에서 자신을 사용한 사람들을 ‘소유자’가 아니라 ‘사용자’로 고쳐 적었다. 자신을 검으로 다루던 이들의 이름을 읽으며, 그들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기록은 조금 달랐다.그는 스스로 아르셀리아의 보물이 되고 싶다고 했다.그녀의 검이고 싶었다.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보물고의 물품 목록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이 항목은.”아스테리온이 조용히 말했다.“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어떻게요?”그는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펜을 들었다.기존 기록 위에 선을 그었다.고대 성검. 소유자 아르셀리아 로하르트.그 아래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아스테리온. 현재 독립된 인격체로 생활 중. 보물고 보관 대상에서 제외.관리 정령이 눈을 깜빡였다.“그럼 성검님은 이제 보물 목록에서 빠지는 거예요?”아스테리온은 잠시 멈췄다.“공식 물품 목록에서는요.”“아가씨가 아쉬워하시지 않을까요?”“…….”그는 빈 선반을 바라봤다.“아마.”조금 웃었다.“아르셀리아는 여전히 저를 보물이라고 부르실 겁니다.”“그럼 목록에서도 보물 아닌가요?”“그건 다른 뜻입니다.”“어떻게 다른데요?”아스테리온은 대답을 고르느라 잠시 생각했다.“여기 있는 물건들은 주인님이 어디에 놓을지 정하실 수 있습니다.”“네!”“하지만 저는 제가 어디에 있을지 고를 수 있습니다.”정령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활짝 웃었다.“아! 성검님은 걸어 다니는 보물이네요!”“…….”아스테리온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말하면 또 조금 이상하지만.”“왜요?
아르셀리아는 자신이 무슨 약속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어제 아스테리온의 방에서 차를 마셨고, 오늘도 가겠다고 했다. 그것도 그가 좋아하는 차를 마셔 보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별다른 의미 없이 한 말은 아니었다. 아스테리온이 자신의 방을 조금씩 채워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고, 그가 고른 물건을 함께 사용하는 일도 생각보다 즐거웠으니까.그러니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당연했다.문제는 아스테리온이 그 약속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주인님, 오늘 저녁 일정이 있으십니까?”아침 식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테리온이 물었다. 아르셀리아는 빵에 버터를 바르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없는데.”“집무실 업무는요?”“오전에 끝낼 거야.”“칠색 의회에서 연락이 올 가능성은 없습니까?”“연락이야 언제든 오지. 왜?”“아닙니다.”아스테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식탁 옆에 놓아 둔 작은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무언가를 적었다.아르셀리아의 손이 멈췄다.“너 지금 뭐 적었어?”“오늘 일정입니다.”“내 일정?”“제 일정입니다.”“보여 줘.”아스테리온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수첩을 건넸다.아르셀리아는 펼쳐진 페이지를 내려다봤다.오전에는 서고 목록 정리, 정오에는 식사, 오후에는 보물고 물품 대조와 개인 독서 시간이 적혀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그런데 저녁 일정이 이상했다.오후 여섯 시 — 아르셀리아 방문 예정.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차 준비. 찻잔 세척. 의자 주변 정리. 러그 상태 확인.아르셀리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너.”“예.”“나 손님이야?”“예.”“어제도 갔잖아.”“오늘도 오시니까요.”“그런데 왜 이렇게 준비해?”아스테리온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손님을 맞이하는 일이니까요.”“내가 무슨 황실 사절단이야?”“그분들보다 중요하십니다.”아르셀리아는 입을 다물었다.아스테리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첩을 돌려받았다.“그리고 어제는 주
아르셀리아는 아침부터 자기 방문 앞에 서 있었다.정확히는, 문에 걸린 작은 나무 문패를 보고 있었다.돌아오면 반갑습니다.어제 아스테리온이 월백촌 시장에서 사 온 선물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나무판에는 특별한 마력이 깃들어 있지 않았고, 세공 역시 화염궁 보물고에 보관된 고대 유물들과 비교하면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아르셀리아는 침실에서 나갈 때마다 그것을 한 번씩 읽게 되었다.오늘 아침에만 벌써 세 번째였다.“…….”그녀는 손가락으로 나무판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건드렸다.달칵.문패가 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뭐 하십니까?”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르셀리아가 돌아봤다.아스테리온이었다.검은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그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어제 시장에서 산 검은색 찻잔을 들고 있었다. 인간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력은 안정적이었으며,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아르셀리아는 문패를 가리켰다.“이거.”“예.”“생각보다 예뻐.”아스테리온의 시선이 문패로 향했다.“어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오늘도 예쁘다고.”“그렇습니까.”“응.”아스테리온이 조금 웃었다.“그럼 잘 샀군요.”“잘 샀지.”아르셀리아는 다시 문패를 바라봤다.“근데 왜 하필 이 문장이야?”어제도 이유를 들었다. 자신이 돌아왔을 때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조금 더 궁금해졌다.아스테리온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처음에는 다른 문장을 생각했습니다.”“뭔데?”“‘어서 오십시오.’”“그것도 괜찮네.”“예. 하지만 조금 이상했습니다.”“왜?”“그건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아르셀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돌아오면 반갑다는 것도 누구한테나 할 수 있잖아.”“말은 그렇습니다.”아스테리온이 문패를 바라봤다.“하지만 저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주인님께서 돌아오실 때 반갑다는 뜻으로 골랐습니다.”아르셀리아는 잠시
아스테리온이 시장 안으로 사라진 뒤, 아르셀리아는 정확히 열두 번 그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을 돌아봤다.열두 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열세 번째 돌아보려던 순간이었다.“…….”아르셀리아는 고개를 돌리려던 것을 멈추고 눈앞의 가게를 노려봤다. 가게 주인이 진열대에 놓인 유리 장식품을 정리하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없어.”“그럼 혹시 기다리시는 분이…….”“있어.”“아, 그러시군요.”가게 주인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이 오히려 아르셀리아의 신경을 건드렸다. 자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뻔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그것도 이상했다.아르셀리아는 기다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화염궁에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고, 늦는 자가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다른 일을 했다. 칠색 의회에서 회의가 지연되면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도 그녀였다.그런데 지금은 월백촌 시장 입구에서, 자기 보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니.보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조금 이상했다.그는 분명 자기 검이었다. 계약으로 이어진 성검이었고, 그녀가 에드릭에게서 빼앗아 온 보물이기도 했다.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조금 전 아스테리온은 자신의 돈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혼자 시장 안으로 걸어갔다.아르셀리아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그가 혼자 고르고 싶어 했으니까.“…….”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고작 선물 하나인데.아르셀리아는 허리춤에 찬 작은 시계를 확인했다.십칠 분.“……별로 안 지났네.”생각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었다.그녀는 결국 근처 찻집의 야외 의자에 앉았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주문하고, 시장 입구가 잘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가게 주인이 물었다.“동행분이 오시면 차를 더 준비해 드릴까요?”아르셀리아는 잠깐 망설였다.“응. 한 잔 더.”“어떤 차로요?”“…….”아스테리온이 좋아하는 차가 뭐였더라.화염궁에서는 주
월백촌으로 가는 날 아침.아스테리온은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났다.정확히는, 잠을 제대로 잔 것인지부터 조금 의심스러웠다.아르셀리아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침실 소파는 비어 있었고, 협탁 위에는 익숙해진 쪽지가 놓여 있었다.[먼저 일어났습니다.제 방에 있습니다.오늘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아스테리온]“……누가 사라졌다고 했나.”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아르셀리아는 쪽지를 버리지 않았다. 지난번 쪽지가 들어 있는 협탁 서랍을 열어 그 옆에 나란히 넣은 뒤, 서랍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두 장이 제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별것 아닌 종이였다.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쪽지.그런데 두 장이 되니까.조금 달라 보였다.“…….”세 장이 되면.그때는.어떨까.그 생각이 든 순간 아르셀리아는 서랍을 탁 닫았다.“쓸데없는 생각.”그리고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스테리온의 방으로 향했다.문 앞에는 여전히 금빛 이름이 있었다.[아스테리온.]아르셀리아는 손을 들었다.똑똑.이제는.노크가 먼저였다.안쪽에서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오십시오.”문을 열자.아르셀리아는 걸음을 멈췄다.“……뭐 해?”아스테리온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책상 위에는.종이가.많았다.정말.많았다.“목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무슨 목록을 새벽부터 그렇게 많이 써.”“오늘 살 것.”“그건 전에 썼잖아.”“세분화했습니다.”“…….”아르셀리아가 다가갔다.맨 위 종이를 들었다.[침구 — 보류. 현재 침구 만족.][책꽂이 — 폭 120 이상. 높이 미정. 서고 대출본과 개인 소장본 분리 가능할 것.][등 — 밤에 독서 가능한 밝기. 금빛 과다 장식 제외.][찻잔 — 두 개 이상.]아르셀리아의 시선이 멈췄다.“왜 찻잔이 두 개 이상이야.”“손님이 올 수 있으니까요.”“손님.”“예.”“누구.”아스테리온이 그녀를 봤다.“현재 예정된 사람은 한 명입니다.”“…….”“첫 손님.”“알아.”아르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