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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폭풍전야

Author: 서화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14 18:03:05

또 다쳤나?

도희가 보고 싶어 온 N구역이었다.

도희는 아직 회복 단계에 있을 테니 어느 회복실에 있는지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수술이 있다고?’

스크린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그는 이내 허, 하고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감정 통제 목적으로 제어 칩 재삽입 예정……이라.’

시현의 고개가 조용히 비뚤어진다.

입가에는 광기 서린 미소가 걸리고.

‘그걸 또 집어넣겠다고.’

스크린을 내리는 시현은 도희의 수술방을 알아냈다.

오늘 오후 16시.

10분 뒤다.

10분만 늦었어도…….

도희가 안쓰러워서가 아니다.

연민도, 동정도 아닌 감정이다.

‘내가 빼냈는데…… 또 손을 대?’

비틀린 집착이었다.

도희를 본 순간부터, 스스로 칩을 없앤 순간부터.

그는 소유욕에 잠식되고 있었다.

천천히 허리를 일으킨 그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병동 8층, 도희의 수술방으로.

***

“M구역 군의관 이도준 중위입니다. 집도의 교체 명령입니다.”

“……예?”

“SMD 상부 명령입니다.”

“저는 못 받았습니다만.”

수술방 앞에서 시현과 집도의의 기싸움이 벌어졌다.

간단한 삽입술이라 집도의는 고작 한 명.

갑자기 나타난 시현 때문에 도희의 시술이 지연되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SMD 직속 명령입니다.”

시현은 그에게 패드를 내밀었다.

물론 조작이었다.

예전에 썼던 명령서를 글자 몇 개만 바꾼, 아주 조잡한 가짜 문서였다.

“아니, 난 전달을 못 받았는데…….”

“지금 전달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미쳤나…….”

집도의가 쉽게 비켜주지 않자 시현은 주머니 속 메스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그의 눈은 상대의 몸을 스캔 중이었다.

목, 심장, 옆구리,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 머리.

작은 메스라도 그 살상력이 배가 될 자리들.

“그럼 다시 보십시오.”

조작한 문서였으나, 시현은 당당히 패드를 내밀었다.

나이 지긋한 집도의는 패드를 받아드는 것조차 서툴렀다.

“이게 무슨……. 사전에 연락도 안 주고 이런 게 어디 있어?”

결국 툴툴대며 그는 마스크를 벗었다.

완벽하게 시현의 손으로 수술방의 권한이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시현이 가운을 입고 수술방에 들어왔다.

소연이 어떻게든 막으려 했던 시현의 N구역 침투를, 그는 너무나도 쉽게 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수술방 깊숙이까지 들어온 시현이었다.

“어?”

얌전히 앉아 있던 도희가 시현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 그래도 이 사람 생각 중이었는데.

요즘 자꾸 기분이 이상해서, 그래서 이 남자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기분이 이상한 것과 이 남자가 왜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왜 연관되서 떠오르는지.

“M구역 군의관 선생님 아니세요?”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됐습니다.”

속마음은 말하지 않는 시현이었다.

그는 메스와 가위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눈에 띈 검은 기계 세 개.

시현의 눈썹이 들썩였다.

왜 세 개지?

두 개여야 하는 거 아닌가?

살펴보니, 하나는 추적기.

두 개는 감정 제어 칩이었다.

그제서야 시현은 깨달았다.

이 여자에게 칩을 한 번에 두 개나 꽂아넣으려고 하는 거구나.

묘한 재미에 시현의 손끝이 떨렸다.

정교한 손놀림을 가진 그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손짓이었다.

“오늘 무슨 시술인지는 알고 있습니까?”

“감정 제어 강화라던데요.”

그걸 믿었나.

“순진한 겁니까, 멍청한 겁니까?”

메스를 집어들던 시현이 물었다.

“둘 다는 아닌 사람으로 보였는데.”

도희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꾸했다.

“의심스러운 냄새가 나도 뭐 어째요. 까라는 대로 까야지. 그게 군인으로서 할 의무고요.”

그리고 덧붙인다.

“어차피 다른 목적인 거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요.”

“있다면요?”

시현이 물었다.

그가 추적기의 버튼을 눌렀다.

붉은 빛이 나오며 추적기가 활성화된다.

이걸 켜는 순간부터 도희를 감시하던 곳에서는 그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것이다.

지금 당장부터 말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추적기와 칩이 든 멸균팩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게 뭔데 멋대로 버려요?”

“추적기요.”

시현의 말에 도희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이 남자는 단 한 번도 대답을 미루거나 뜸을 들인 적이 없었다.

늘 단도직입적으로, 필요한 대답만 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가끔은 허무할 정도로 어이가 없기도 했다.

“되게 서운하네. 난 추적기 빼줬으니까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부터 도희는 알 수 없는 광란에 사로잡히는 기분이었다.

별 것도 아닌데 기쁘고, 화가 난다.

감정이 요란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었다.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하나도 안 서운한 얼굴인데요.”

“지금도 내가 추적기 버려줬잖아요.”

“그러니까 왜요?”

도희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우린 접점도 없는 사이였잖아.

겨우 수술 한 번 해준 의사와 환자 사이인데, 저 냉혈해 보이는 의사가 대체 왜?

시현이 수술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시현과 도희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도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또야.’

처음엔 시현도 똑같아 보였다.

의무감에 움직이는 사람처럼 늘 정확하고 건조한 눈빛이었다.

불필요한 말도, 감정의 기색도 없는 그 눈.

그러나 처음 마주쳤을 때, 한순간 아주 짧게 그 틈에서 뭔가 삐져나왔다.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아니었다.

본인은 제대로 봤고, 지금도 그랬다.

그 눈은 단단한 껍질 아래에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익숙하다.

무언가를 들키지 않으려 더 조용히, 더 완벽히 굳던 눈빛.

도희는 완벽하게 깨달았다.

‘이 사람도 똑같아.’

처절하게 숨기는 쪽,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쪽.

그래서 더 조용히 미쳐 있는 쪽.

그게 백시현의 눈이다.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서.”

“…….”

“그 눈이 나와 닮아서. 그래서, 더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서.”

도희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지금 살아움직이는 건, 저 남자의 눈인데.

이상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날뛸 것 같은 눈이었다.

시현은 자연스럽게 수술 도구들을 제자리에 정리했다.

마치 수술이 다 끝났다는 듯이.

“아무것도 안 심었어요, 난.”

“알아요.”

지금 내 몸에 메스 하나 안 댔잖아.

“회복실로 가요. 오늘 수술 보고는 내가 알아서 올릴 거니까.”

“뭐라고 올릴 건데요?”

“그냥, 수술 완료. 삽입 성공.”

시현이 패드에 천천히 입력했다.

뻔뻔할 정도로 거침없는 손놀림이었다.

전송까지 완료한 그는 패드 전원까지 꺼 버리고는 도희에게로 몸을 돌렸다.

“다음에 또 보자고 했었잖아요.”

추적기를 없애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만.

이제야 시현의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시현이 빙그레 웃었다.

도희만큼이나 선명한 미소였다.

“눈빛, 보기 좋네요.”

***

소연은 정확히 16시 9분, 추적기가 다시 활성화된 것을 보았다.

스크린에는 다시 도희의 실시간 위치가 떴고, 아무 문제 없이 작동된다.

N구역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도희의 위치.

GPS, 도청 기능, 지오펜싱 기능.

다 정상 작동 중이다.

“좋아.”

이제 더 이상의 소동은 없어야 한다.

요 며칠 사이, 도희의 감정은 한 번도 90%를 넘기지 않았다.

매우 안정화되어 있는 그녀의 감정.

“모든 게…… 정상화됐어.”

그게 폭풍전야의 고요함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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