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또 다쳤나?
도희가 보고 싶어 온 N구역이었다. 도희는 아직 회복 단계에 있을 테니 어느 회복실에 있는지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수술이 있다고?’ 스크린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그는 이내 허, 하고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감정 통제 목적으로 제어 칩 재삽입 예정……이라.’ 시현의 고개가 조용히 비뚤어진다. 입가에는 광기 서린 미소가 걸리고. ‘그걸 또 집어넣겠다고.’ 스크린을 내리는 시현은 도희의 수술방을 알아냈다. 오늘 오후 16시. 10분 뒤다. 10분만 늦었어도……. 도희가 안쓰러워서가 아니다. 연민도, 동정도 아닌 감정이다. ‘내가 빼냈는데…… 또 손을 대?’ 비틀린 집착이었다. 도희를 본 순간부터, 스스로 칩을 없앤 순간부터. 그는 소유욕에 잠식되고 있었다. 천천히 허리를 일으킨 그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병동 8층, 도희의 수술방으로. *** “M구역 군의관 이도준 중위입니다. 집도의 교체 명령입니다.” “……예?” “SMD 상부 명령입니다.” “저는 못 받았습니다만.” 수술방 앞에서 시현과 집도의의 기싸움이 벌어졌다. 간단한 삽입술이라 집도의는 고작 한 명. 갑자기 나타난 시현 때문에 도희의 시술이 지연되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SMD 직속 명령입니다.” 시현은 그에게 패드를 내밀었다. 물론 조작이었다. 예전에 썼던 명령서를 글자 몇 개만 바꾼, 아주 조잡한 가짜 문서였다. “아니, 난 전달을 못 받았는데…….” “지금 전달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미쳤나…….” 집도의가 쉽게 비켜주지 않자 시현은 주머니 속 메스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그의 눈은 상대의 몸을 스캔 중이었다. 목, 심장, 옆구리,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 머리. 작은 메스라도 그 살상력이 배가 될 자리들. “그럼 다시 보십시오.” 조작한 문서였으나, 시현은 당당히 패드를 내밀었다. 나이 지긋한 집도의는 패드를 받아드는 것조차 서툴렀다. “이게 무슨……. 사전에 연락도 안 주고 이런 게 어디 있어?” 결국 툴툴대며 그는 마스크를 벗었다. 완벽하게 시현의 손으로 수술방의 권한이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시현이 가운을 입고 수술방에 들어왔다. 소연이 어떻게든 막으려 했던 시현의 N구역 침투를, 그는 너무나도 쉽게 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수술방 깊숙이까지 들어온 시현이었다. “어?” 얌전히 앉아 있던 도희가 시현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 그래도 이 사람 생각 중이었는데. 요즘 자꾸 기분이 이상해서, 그래서 이 남자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기분이 이상한 것과 이 남자가 왜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왜 연관되서 떠오르는지. “M구역 군의관 선생님 아니세요?”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됐습니다.” 속마음은 말하지 않는 시현이었다. 그는 메스와 가위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눈에 띈 검은 기계 세 개. 시현의 눈썹이 들썩였다. 왜 세 개지? 두 개여야 하는 거 아닌가? 살펴보니, 하나는 추적기. 두 개는 감정 제어 칩이었다. 그제서야 시현은 깨달았다. 이 여자에게 칩을 한 번에 두 개나 꽂아넣으려고 하는 거구나. 묘한 재미에 시현의 손끝이 떨렸다. 정교한 손놀림을 가진 그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손짓이었다. “오늘 무슨 시술인지는 알고 있습니까?” “감정 제어 강화라던데요.” 그걸 믿었나. “순진한 겁니까, 멍청한 겁니까?” 메스를 집어들던 시현이 물었다. “둘 다는 아닌 사람으로 보였는데.” 도희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꾸했다. “의심스러운 냄새가 나도 뭐 어째요. 까라는 대로 까야지. 그게 군인으로서 할 의무고요.” 그리고 덧붙인다. “어차피 다른 목적인 거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요.” “있다면요?” 시현이 물었다. 그가 추적기의 버튼을 눌렀다. 붉은 빛이 나오며 추적기가 활성화된다. 이걸 켜는 순간부터 도희를 감시하던 곳에서는 그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것이다. 지금 당장부터 말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추적기와 칩이 든 멸균팩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게 뭔데 멋대로 버려요?” “추적기요.” 시현의 말에 도희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이 남자는 단 한 번도 대답을 미루거나 뜸을 들인 적이 없었다. 늘 단도직입적으로, 필요한 대답만 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가끔은 허무할 정도로 어이가 없기도 했다. “되게 서운하네. 난 추적기 빼줬으니까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부터 도희는 알 수 없는 광란에 사로잡히는 기분이었다. 별 것도 아닌데 기쁘고, 화가 난다. 감정이 요란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었다.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하나도 안 서운한 얼굴인데요.” “지금도 내가 추적기 버려줬잖아요.” “그러니까 왜요?” 도희가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우린 접점도 없는 사이였잖아. 겨우 수술 한 번 해준 의사와 환자 사이인데, 저 냉혈해 보이는 의사가 대체 왜? 시현이 수술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시현과 도희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도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또야.’ 처음엔 시현도 똑같아 보였다. 의무감에 움직이는 사람처럼 늘 정확하고 건조한 눈빛이었다. 불필요한 말도, 감정의 기색도 없는 그 눈. 그러나 처음 마주쳤을 때, 한순간 아주 짧게 그 틈에서 뭔가 삐져나왔다.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아니었다. 본인은 제대로 봤고, 지금도 그랬다. 그 눈은 단단한 껍질 아래에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익숙하다. 무언가를 들키지 않으려 더 조용히, 더 완벽히 굳던 눈빛. 도희는 완벽하게 깨달았다. ‘이 사람도 똑같아.’ 처절하게 숨기는 쪽,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쪽. 그래서 더 조용히 미쳐 있는 쪽. 그게 백시현의 눈이다.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서.” “…….” “그 눈이 나와 닮아서. 그래서, 더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서.” 도희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지금 살아움직이는 건, 저 남자의 눈인데. 이상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날뛸 것 같은 눈이었다. 시현은 자연스럽게 수술 도구들을 제자리에 정리했다. 마치 수술이 다 끝났다는 듯이. “아무것도 안 심었어요, 난.” “알아요.” 지금 내 몸에 메스 하나 안 댔잖아. “회복실로 가요. 오늘 수술 보고는 내가 알아서 올릴 거니까.” “뭐라고 올릴 건데요?” “그냥, 수술 완료. 삽입 성공.” 시현이 패드에 천천히 입력했다. 뻔뻔할 정도로 거침없는 손놀림이었다. 전송까지 완료한 그는 패드 전원까지 꺼 버리고는 도희에게로 몸을 돌렸다. “다음에 또 보자고 했었잖아요.” 추적기를 없애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만. 이제야 시현의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시현이 빙그레 웃었다. 도희만큼이나 선명한 미소였다. “눈빛, 보기 좋네요.” *** 소연은 정확히 16시 9분, 추적기가 다시 활성화된 것을 보았다. 스크린에는 다시 도희의 실시간 위치가 떴고, 아무 문제 없이 작동된다. N구역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도희의 위치. GPS, 도청 기능, 지오펜싱 기능. 다 정상 작동 중이다. “좋아.” 이제 더 이상의 소동은 없어야 한다. 요 며칠 사이, 도희의 감정은 한 번도 90%를 넘기지 않았다. 매우 안정화되어 있는 그녀의 감정. “모든 게…… 정상화됐어.” 그게 폭풍전야의 고요함인 줄도 모르고.시현의 눈이 시렸다.물기가 서리는 걸 막으려고 한참 동안이나 깜빡이지 않은 채 부릅뜨고 있었던 탓이었다.시현의 세계가 끔찍한 진실에 감염되어 버렸다.“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내 질문에…… 그게 정상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해?”진짜 그를 사랑하는 도희였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짜증을 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도희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혼란이 잠식되고 있었다.흔들리는 눈동자.어색한 시선.뭔가를 들킨 듯 굳어 있는 입꼬리.수축된 피부 아래 근육들과 빨라진 심장 박동 소리.‘진실이다.’도희의 당황은 연기가 아니었다.진짜였다.시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마주하기 싫은 진실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와 그를 비웃고 있었다.“너 그러니까…… 정부로 복귀해야 되는 거지?”그가 재차 물었다.다시 확인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질문이었다.도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여기서 도희가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 준다면.시현은 소연이고 뭐고 그냥 그 아니, 라는 두 글자를 믿었을 것이다.제발, 아니라고 한 마디만.그 딱 한 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했다.시현을 살릴 약이자 메스였다.“…….”그러나 끝끝내 시현이 원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기어코 약은 처방되지 못했다.대신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도희의 표정 아래 근육들만이 잔인하도록 선명하게 핏발을 세우고 있었다.오늘따라 왜 이렇게 잘 보이는 건지.“……맞
그 후, 거처로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지나온 길에는 몇 시간 전의 전투 흔적만이 조용히 말라가고 있었다.폭탄 소리도, 총성도.아무것도 없었다.시현과 도희 둘 다, 거처로 돌아오는 동안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그뿐이었다.“……왔어?”시현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엉망이 된 문이 작게 비명을 지르자 온몸에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도희가 보였다.원래 같았다면 반가웠을 거고, 안도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대로 안아 들었을 것이다.아니면 손이라도 잡든지, 키스라도 하든지.욕이라도 뱉든지.뭐라도 했을 텐데.이번에는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둘 다 지나온 황무지보다 건조한 눈빛으로 의심으로 베어진 상처를 벌리고 있었다.“나 씻고 올게.”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물어보려고 했는데.자기 못지않게 조용한 도희의 태도에 시현은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그녀도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그렇다면 소연의 말이 진실인가?강화인간이 아닌 일반인이 본다 해도 도희의 침묵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일 터였다.물소리가 멈췄다.시현의 고민도 같이 멈췄다.물기를 털며 모습을 드러낸 도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굳어 있었다.남들이 보기에는 무표정일 뿐이겠지만, 시현에게는 아니었다.“한도희.”“……응.”시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도희도 그저 조용
그 후, 거처로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지나온 길에는 몇 시간 전의 전투 흔적만이 조용히 말라가고 있었다.폭탄 소리도, 총성도.아무것도 없었다.시현과 도희 둘 다, 거처로 돌아오는 동안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그뿐이었다.“……왔어?”시현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엉망이 된 문이 작게 비명을 지르자 온몸에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도희가 보였다.원래 같았다면 반가웠을 거고, 안도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대로 안아 들었을 것이다.아니면 손이라도 잡든지, 키스라도 하든지.욕이라도 뱉든지.뭐라도 했을 텐데.이번에는 둘 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둘 다 지나온 황무지보다 건조한 눈빛으로 의심으로 베어진 상처를 벌리고 있었다.“나 씻고 올게.”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물어보려고 했는데.자기 못지않게 조용한 도희의 태도에 시현은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그녀도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그렇다면 소연의 말이 진실인가?강화인간이 아닌 일반인이 본다 해도 도희의 침묵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일 터였다.물소리가 멈췄다.시현의 고민도 같이 멈췄다.물기를 털며 모습을 드러낸 도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굳어 있었다.남들이 보기에는 무표정일 뿐이겠지만, 시현에게는 아니었다.“한도희.”“……응.”시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도희도 그저 조용
그녀의 낯빛이 파래졌으나, 실험체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저, 정말이야! 여, 열어서 읽어봐!”도희는 문서를 열었다.첫 문장에서부터 도희를 언급하고 있었다.-잠재적 반역자 1순위, 한도희. 이리부대 소속, 계급은 중사. SMD와 국가정보국의 지시 아래 2118년 7월 2일부터 탐색을 시작한다. 작성자, 대위 백시현.“……거짓말이야. 다 조작이잖아.”둘이 처음 만난 날짜는 9월이었다.문서 속의 시현은 훨씬 전부터 도희를 언급하고 있었다.“조, 조작이 아, 아냐! 그 아, 안에 영상도, 있어!”문서를 넘겼다.떨리는 손가락이 몇 번이나 페이지를 잘못 넘기기도 했다.그러나 도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읽었다.억지로 읽어내려갔다.-감정 이상자 해당. 지속적인 관찰과 조사 필요. 차후 실험 대상으로 선정할 예정.-한도희 중사를 실험 대상으로 선정. 약물 투여와 복용이 필요함. 강화인간 3단계, 과자극 방지 필요하여 세피아르미닌정 처방. 차후 더 긴밀한 관계가 되어 경계를 풀고 투약할 예정.‘……이게 뭔데. 백시현이 직접 쓴 거라고? 이걸?’시현은 도희에게 하루 한 번씩 먹으라며 약을 처방해준 적이 있었다.강화 3단계인 도희의 과자극을 막아주고 예민한 오감을 잠시 재워주겠다면서.실제로 도희는 약을 하루에 한 번 꾸준히 먹고 있었다.‘아냐. 9월부터였어. 그 새끼랑 난…….’갑자기 턱에 흘러내리는 뜨듯한 액체가 느껴졌다.입술에서 터진 자기 피였다.페이지를 더 넘겼다.다음은 영상이었다.소리는 없는 영상이었지만, 백시현이 확실했다.잠시
같은 시각, 도희 역시 매캐한 안개 속을 헤매다 겨우 빠져나왔다. 도희도 이 안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복무 시절, 훈련용으로 경미하게 겪어봤던 특수 연막탄이었다. ‘씨발, 내가 이걸 당하다니.’ 알고 있다. 이걸 마시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판단력과 오감이 전부 옅어지는 것도. 지금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데도,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공포였다. 내가 왜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지, 왜 지금 생각이 자꾸 안 되는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뇌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시현이랑 떨어졌어.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은데……. 하필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땅을 향한 총구가 덜덜 떨렸다. 도희의 손이 총을 그렇게 흔들어댄 적이 없었다. 그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도희 역시 바짝 긴장하는 중이었다.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이 눈을 적시자, 따가움에 도희가 신경질적으로 눈을 벅벅 비볐다. 시뻘개진 눈가로 그녀는 독안개를 억지로 꿰뚫어보았다. 평소보다 투시가 잘 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작동하지 않는 오감으로 무작정 길을 뚫었다. ‘여기서 목소리를 내면 그놈에게 들킬 수도 있어. 아직 연막이 남아 있어.’ 아까보다는 훨씬 선명해진 공기. 그러나 여전히 연막의 잔해들은 땅바닥을 기며 틈틈이 도희를 노리고 있었다. “한도희 중사!” “……!” 탕- 장전도 없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도희를 부르는 순간 이미 준비되어 있던 총알은 즉시 공기를 뚫고 튀어나갔다. “자, 잠시만! 고, 공격하, 러 온 게 아, 아니, 야!” 도희 또한 침묵했다. 그건 본능이었다. “이, 이, 이봐, 진정하, 하라고!” 흙먼지와 연막 안개가 섞인 뿌연 공기 속에서 나타난 것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뭐야, 저건?’ 괴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한쪽 눈이 없었고 팔은 길이가 맞지 않았다. 다리 한쪽은 뒤틀려 있었는데 그래서
“도희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정부와 이리부대의 명령을 받는다. 널 사살하기 위해 보내진 인물이야. 하지만 나는 방금 말했듯이 널 죽이기엔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를 설득하러 왔고.”“……거짓말인 게 다 보여.”그러나 그 말을 하는 시현이 되려 거짓말이었다.소연의 눈은 깨끗했다.더럽고 끔찍할 정도로.“거짓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을 텐데? 자, 그러면 좀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게.”소연이 화면을 띄웠다.깨끗하고 파란 화질 속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도희였다.시현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백시현을 통제하는 건 쉬웠습니다. 상부 명령대로 움직이니 제가 그에게 감정을 줬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넘어올 테니, 명령은 언제든지 내려주십시오.팔에 새겨진 이리부대 마크, 익숙한 체형, 더 익숙해서 끔찍한 목소리.전부 그가 사랑한 한도희 그 자체였다.“조작이다.”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려고 노력했다.이제는 총을 치켜든 팔에 저릿한 아픔이 밀려들었다.“과연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럼 이건?”소연이 책상 위로 뭔가를 탁 꺼내놓았다.시현의 눈이 반사적으로 그곳을 향했다.이번에도 그가 잘 아는 물건이었다.“자, 이 약. 네가 도희에게 처방해줬던 약이잖아. 그것도 주기적으로. 도희의 과자극을 방지해주려고 줬지?”‘이걸 이 여자가 왜…….’시현이 마스크 속으로 입술을 깨물었다.소연이 보지 못해서 다행이었다.“우리가 이 약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네가 도희에게 약을 줄 때마다 도희가 우리에게 이 약을 넘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