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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6화

Author: 코코넛 서고
이번 길을 떠나며 서인경은 일부러 꼬막이에게 그 장명쇄를 달아 주었다.

소년 병사는 손에 쥔 장명쇄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순금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고 한눈에 봐도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는 서인경의 신분을 조금 더 믿게 된 듯했다.

“좋습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소년은 장명쇄를 쥔 채 몸을 돌려 곧장 성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

꼬막이는 마차 창문에 몸을 기대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곳곳에 널린 시신들과 부상병들.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다만 어딘가 슬프고 안타까운 빛이 어렸다.

전쟁은 사람을 너무 많이 죽게 만드니 좋은 것이 아니다.

꼬막이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내가 크면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게 만들 거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서인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 사람 그거 들고 그냥 도망가 버리면 어떡해요?”

궁을 나온 뒤 서인경은 꼬막이에게 호칭을 바꾸라고 했었다. 괜한 소문을 막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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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05화

    봉한설은 정말로 더 이상 그 하얀 옷의 여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이 돼지 같은 머리를 햇볕에 잘 말려 머릿속에 고인 물이나 다 증발시키라는 듯 내버려두었다.여인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마지막에는 정신이 몽롱해졌고 배고픔과 피로, 두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창과 칼을 멘 병사들이 끊임없이 그녀 곁을 지나갔다.처음에는 두려웠다. 봉한설이 사람을 보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굳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두려움마저 마모되어 결국 아무 감각도 남지 않게 되었다.그녀의 이름은 부생. 성을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그녀를 버리고 떠나버렸다.그녀는 친부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그녀는 혼자 남았다.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구걸하며 살아왔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내다가 겨우 마음을 준 사람 하나를 만났다.이제야 떠돌이 같은 삶이 끝날 거라 믿었는데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그 남자는 순결만 빼앗고는 그대로 기루에 팔아넘겼다.기루에서 보낸 그 한 달 동안,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의 민낯을 보았다.밖에서는 권력을 쥔 고관대작이었고 명망 높은 가문의 선비였으며 부인과 자식을 사랑하는 모범적인 가장이었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군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얼굴들이 기루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전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색욕에 찌들고, 비열하고, 배신하는 자들부터 기괴한 취향을 가진 자들까지.그들은 하룻밤 사이 그녀를 죽음보다 못한 상태로 몰아넣었다.그녀는 여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것들을 모두 겪었다.그러다 반 년 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기루를 탈출했다.그리고 가장 먼저 자신을 그곳에 팔아넘긴 원흉을 찾아갔다.그 남자는 그녀를 팔아 얻은 돈으로 큰 집을 사고 처와

  • 시간을 거슬러   제1104화

    그래서 그녀는 그 향에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네가 폐하를 해치려 한 독은 차에 있는 게 아니야. 네 몸에 밴 그 향기지. 이건 일종의 독이야. 단독으로 쓰면 유혹 효과를 내는 향이 돼서 웬만한 색욕에 약한 인간은 쉽게 홀려버려. 헌데 정신력이 강한 사람, 이를테면 우리 다정하고도 한 사람만 바라보는 폐하 같은 경우에는 네가 가져온 그 싸구려 차까지 곁들여야 효과가 생기지. 내 말이 틀려?”봉한설이 굳이 차에 한 번 더 독을 탄 건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해 이 여자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막사 안에 있는 연기준은, 자신이 뜻밖에 한 번 칭찬을 받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막사 밖에서는 하얀 옷의 여인이 충격에 말을 잃고 있었다.이 어린 소녀는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걸까? 몸에 밴 향을 알아차린 것도 모자라 그 사용법까지 꿰뚫고 있다니.하지만 단은설이 겪은 일을 떠올리자 그녀의 분노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헛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그냥 평범한 연지일 뿐입니다. 괜히 애쓰지 마시죠. 제가 단은설을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그 애는 저한테 아무것도 시킨 적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 당신이 그 애를 끌어들이게 두지 않을 겁니다.”봉한설은 오히려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와, 완전히 홀렸네. 너 좀 바보냐? 이렇게 오랫동안 진국 군영에 붙잡혀 있었는데 단은설이 널 구하러 온 적 있어?”그 말에 여인의 얼굴에 금이 간 듯 흔들림이 스쳤다.“그 애 잘못 아닙니다! 제가 편지를 남겼어요. 무슨 일이 생겨도 절 구하러 오지 말라고요. 저는 자발적으로 그 애를 도와준 겁니다. 세상 모든 배신한 남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말입니다!”멀리서 듣고 있던 꼬막이가 그 말에 푹 빠져 있다가 갑자기 길게 감탄사를 내뱉었다.“아... 한설 누님. 저 사람은 단은설을 도와 우리 아버지를 공격하려고 했답니다. 헌데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만 좋아합니다.

  • 시간을 거슬러   제1103화

    봉한설은 칭찬이라도 들은 듯한 얼굴로 신이 나서 꼬막이의 볼을 꾹꾹 눌렀다.“그럭저럭입니다. 다 대황자의 어머니께서 잘 가르친 덕이지요.”연기준은 말문이 막혔다. 이 일에 서인경까지 엮여 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곁에 없는데도 이쪽 상황까지 휘어잡고 있으니 말이다.하얀 옷의 여인은 봉한설이 스스로 인정하는 말을 듣고 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외쳤다.“저는 독을 넣지 않았어요! 억울합니다! 왜 저를 잡는 거죠? 놓아주세요! 이렇게 억울하게 몰아붙이면 두 나라 사이에 더 큰 갈등이 생길 거예요! 우리 황후 마마께서 절대 가만두지 않으실 겁니다!”봉한설은 뜻밖이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어머, 국가 일도 제법 잘 아는구나. 어디서 배운 거야, 이런 말은?”여인은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빛이 흔들렸다.“누, 누가 가르친 게 아니라… 제가 그냥 아는 거예요.”봉한설은 턱을 만지며 혀를 찼다.“대사는 제대로 외웠는데 반응이 영 별로네. 방금 네 반응이 다 말해줬어.”여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어디서 틀렸는지조차 몰랐고 혹시라도 또 들킬까 두려워 숨도 죽였다.연기준은 그제야 알아챘다. 봉한설이 일부러 떠보는 중이라는 것을.그는 부장들과 다음 작전을 논의해야 했기에 끝까지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연풍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게 하고 나중에 자세히 보고하라고 일러둔 뒤 돌아서려 했다.하지만 꼬막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준의 품에서 몸을 비틀며 내려왔다.“저는 한설 누님이랑 있을 겁니다.”봉한설은 그의 손을 잡고 두 걸음쯤 떨어진 계단 위에 앉혀 주었다.“여기서 얌전히 구경하십시오. 이 누님이 어떻게 저 뒤에 있는 놈을, 속이고 겁줘서 끌어내는지.”노골적인 계략이었다.하얀 옷의 여인은 깊이 모욕당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제 뒤에 누가 있다는 건 다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해도 전 속지 않을 거예요!”봉한설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언가를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내가 점을

  • 시간을 거슬러   제1102화

    다시 자리에 앉자 금수 대장공주는 더 이상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연기준, 지난 십오 년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본궁도 일이 이토록 커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우리 요동도 대가를 치르지 않았느냐. 동욱촌 하나가 통째로 도륙당하고 수만 명이 함께 묻혔다. 그것으로도 십오 년의 일을 속죄하기에 부족하단 말이냐? 네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두 나라 백성들은 다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금수 대장공주가 이렇게 흑백을 뒤집는 말을 흘리자 평소 정사에 관심 없던 봉한설조차 눈을 굴렸다.연기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시는 평안하지 못할 쪽은 진국이 아니지요. 우리 진국에는 국토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요동이 우리 백성을 해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예요. 헌데 우리는 언제든 요동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짐이 조금만 더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면, 몇 년 안에 요동 전토를 수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진국은 이미 남쪽의 여국과 북방의 능지국을 정복한 경험도 있으니까요.”금수 대장공주는 연기준이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며 광기 어린 기색이 드러났다.“너는 핑계를 삼아 일을 키우려는 것이다. 진국 백성의 원통함을 풀어주려는 게 아니야. 이 기회에 요동을 네 손아귀에 넣으려는 거지! 연기준, 인정하거라. 너도 그리 고결하고 위대한 존재는 아니잖느냐!”연기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황고모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황고모께서 제시하신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자’는 제안에서는 짐은 어떤 성의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금수 대장공주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병사들이 마을을 도륙한 일은 천하 열국이 모두 꺼리는 금기다.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진국이 열국의 공적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연기준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도륙의 주범은 이미 찾았습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그들을 공개 처형해 민심을 달랠 것입니다. 그

  • 시간을 거슬러   제1101화

    봉한설은 못마땅하다는 듯, 탁자 위를 흘끗 내려다보았다.찻잔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짙은 차 향 사이로 묘하게 다른 기운이 섞여 있었다.“그리고 이 차도 우리 폐하께 드릴 필요 없다. 우리 폐하께서는 싸구려를 좋아하지 않거든.”그렇게 말하며 봉한설은 찻잔을 들어 내용물을 그대로 목제 협상 탁자 위에 쏟아버렸다.순간,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색의 탁자에서 연기가 치솟더니 곧장 막사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사람들은 놀라 뒤로 물러섰고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연기준은 재빨리 꼬막이의 얼굴을 감싸 막았다. 하지만 꼬막이는 호기심에 그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밖을 들여다보았다.연풍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연기준과 꼬막이 앞에 서서 둘을 지켰다.하얀 옷의 여인은 다리가 풀린 채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제가 아닙니다! 저는 독을 넣지 않았습니다! 만 개의 담력을 빌린다 해도 감히 진국 황제를 해치고 두 나라의 화담을 망칠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금수 대장공주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본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 여자를 끌어내려라! 엄하게 문초해서 누가 시켰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요동 병사들이 곧장 다가와 여인을 끌고 가려 했다.하지만 봉한설이 한발 먼저 움직여 그녀를 눌러 제압했다.“이 사람은 진국 폐하를 노린 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진국에서 처리해야지요.”그 말을 듣자, 하얀 옷의 여인은 온몸을 더 세차게 떨었다.연기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 봉한설이 유난히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그녀는 서인경과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전혀 나서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금수 대장공주는 궁녀 하나의 생사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 궁녀 하나 때문에 두 나라의 협상이 망가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특히 그 여인이 요동 출신인 이상, 진국 황제 암살이라는 죄명이 성립되면 이번 협상에서 요동은 단번에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금수 대장공주는 손을 들어 올려 호위병들에게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

  • 시간을 거슬러   제1100화

    금수 대장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네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본궁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연기준은 그녀가 인정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황고모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건, 요동 황제에게 뒤에서 장생불사 약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겠지요? 그런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물건을 가지고도 그에게 나누지 않으셨다니. 이 일이 알려지면 황고모의 황후 자리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비밀을 정확히 찔린 금수 대장공주는 약점을 잡힌 채 점점 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그는 감히 그러지 못한다! 지금 요동이 이만큼 부유해진 건 모두 본궁 덕이다. 폐하께서 자리를 지킬 생각이 있다면 절대 본궁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연기준은 담담하게 받아쳤다.“그럴까요? 그렇다면 짐이 젊고, 말을 잘 듣고, 야심도 없는 공주 한 명을 더 요동에 혼인시키면 어떻겠습니까? 황고모 때와 마찬가지로, 풍성한 혼수와 함께 진국 황제인 짐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얹어서 말입니다. 그럼 요동 황제는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요?”찍.꼬막이의 손에 들린 호랑이 머리 장난감이 또 한 번 울었다.예상치 못한 그 소리에 금수 대장공주는 몸을 움찔 떨었다. 얼굴에서는 완전히 핏기가 사라졌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연기준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요동 황제가 이미 그녀의 전횡에 질려 있다는 사실도.기회만 생긴다면 그는 주저 없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금수 대장공주의 반응을 본 연기준은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그렇다면 오늘, 황고모께서는 무엇을 협상하려고 조카를 부르신 겁니까? 차라리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짐은 시간이라면 많으니까요. 마침 아들과 함께 요동의 경치도 구경할 겸 말입니다.”꼬막이는 ‘논다’는 말을 듣자마자 호랑이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연기준의 팔에 매달렸다.“아버지, 놀아요!”뒤에 서 있던 봉한설과 연풍은 그 모습을

  • 시간을 거슬러   제719화

    “멈춰라!”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열다섯 째 황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문 앞을 가로막았다.통령은 이미 다리를 들어 올린 뒤였고 발길은 황자의 작은 몸을 향해 곧장 내리꽂힐 듯했다. 그 순간, 옆에서 번개처럼 뛰어든 한 사람이 황자를 끌어안아 몸을 감쌌다.쾅!발길은 그대로 그 사람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 열다섯 째 황자는 순간 얼어붙었다.익숙한 냄새. 낮고 억눌린 신음 소리.자신 앞에서 몸을 떨며 아이를 지킨 사람에 단은설의 얼굴이 단숨에 화로 변했다.“감히! 어디서 굴러먹던 천한 것들이 본궁 앞에서 설치느냐!”위급한 순

  • 시간을 거슬러   제733화

    온조는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고 차분히 대답했다.“왕야께 아룁니다. 대장로께서 며칠에 한 번씩 노장군의 맥을 짚고 계십니다. 대장로의 말씀에 따르면, 노장군께서는 연세가 있으신 데다 원래도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섭혼술 이후의 부작용이 후유증으로 남았고 그 뒤 설산에서 오랫동안 얼어붙은 채로 지냈던 탓에 단번에 많이 쇠약해지셨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요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한데 노장군께서는 편히 쉬지 못하시고 날마다 경성에 있는 분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연기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 시간을 거슬러   제748화

    “황후, 어서 말해 보거라.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황후는 황제가 꽉 붙잡고 있는 자신의 손목에 시선을 잠시 두었다가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신첩이 이미 가영을 제 침전으로 들였습니다. 신첩의 거처와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곳이니 폐하께서 다녀가신다 해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황제의 얼굴에는 기쁨이 숨김없이 떠올랐다.“황후, 이번 일은 참으로 잘 처리하였다. 과인의 뜻에 꼭 맞는구나. 오늘로 우리 황아를 대황자부로 돌려보내겠다.”황후가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오늘에서야 마침내 아들이 무사

  • 시간을 거슬러   제714화

    그제야 황제는 서인경이 아직도 태황태후의 궁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현실이 늦게서야 뼈아프게 스쳤다.서인경이 털끝 하나라도 다친다면 그는 무슨 낯으로 연기준 앞에 선단 말인가?황제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모든 불안과 짜증은 하나같이 단은설 탓으로 번졌다.단은설 또한 눈치채고 있었다. 연기준의 갑작스런 등장 탓에 황제의 시선이 더 차갑게 멀어졌다는 것을. 방금 전까지 침상 위에 허락된 애정이라 믿었던 것들이 이제는 수치와 굴욕으로 변해갔다.황제의 싸늘한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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