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3화

Penulis: 코코넛 서고
연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인이 알아봤는데 최상급 연지였습니다. 이런 걸 사서 쓸 능력이 있는 자는 황궁에 계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고위 관료의 여식들이나 가능하겠지요. 왕비마마도 거기에 포함입니다.”

연기준은 왜 그 향이 이리도 익숙하게 느껴졌는지 기억해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전까지 서인경이 그의 앞에서 알랑거릴 때 자주 사용하던 연지였다.

“그럼, 그 사람이 자신이 죄를 저질러 놓고 자작극을 했다는 얘기냐?”

연붕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소인이 어찌 함부로 그런 불경한 추측을 하겠습니까. 이 연지를 샀던 사람들 중에 왕비마마와 사이가 안 좋은 규수들이 몇 있긴 했었지만, 맹국공가와 서왕부와는 사이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굳이 오늘 같은 자리에서 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요.”

서인경에게 보복한다고 일을 꾸미기에는 맹국공가문과 서왕부 모두 만만찮은 상대였다.

연기준은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담담히 말했다.

“놈들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맹은영은 서왕부에서 죽고 상왕비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겠지. 그러면 누구에게 가장 유리할 것 같으냐?”

그 말을 들은 연풍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왕비께선 처형을 피해가더라도 정비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을 겁니다. 그럼, 상대의 목적은 상왕비의 자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연기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듣기로는 최근 대황자께서 단씨 가문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는데?”

“예. 황후께서는 단효산의 둘째딸인 단여월을 대황자의 측비로 추천했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연풍의 안색이 급변했다.

“왕야… 그럼, 설마… 단씨 가문에서…!”

상왕비인 서인경과 대황자비로 내정된 맹은영.

하필 단씨 가문의 두 딸이 노리고 있는 위치였다.

연기준은 말없이 면사포를 연풍에게 도로 던져주었다.

“계속 주시하고 있거라.”

“예.”

그날 밤, 서인경은 단잠을 잤다.

눈을 뜨고 탕약을 마시고 나니 몸상태가 비로소 회복된 것 같았다.

그녀는 평이와 함께 갈아 만든 배즙을 마시며 정원에서 햇빛을 받았다.

“단씨 가문 쪽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평이는 배즙 한숟가락을 떠먹고는 말했다.

“단은설이 마마를 문안한다는 핑계로 왕부에 방문해서 왕야의 서재에서 한참을 있다가 방금 돌아갔습니다. 단여월은 대황자를 만나러 갔고요. 맹 소저가 앓아누운 이후로 대놓고 대황자 관저를 드나들고 있어요. 단평안은 아직 침상에서 못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마 외출을 하려면 최소 열흘은 필요할 듯 보여요.”

서인경은 시원한 배즙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평이 너 소식이 참 빠르구나?”

평이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두드렸다.

“소인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성안에 사는 노숙자 중 한명이 소인의 고향친구인데, 그들에게 만두를 사줬더니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서인경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머리 좋네! 그 녀석들 죄다 침상에 눕혀 놓아야 좀 얌전해지려나?”

그러자 평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마마, 그들에게 복수하시려고요?”

“그래야 하지 않겠니?”

평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마마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려던 나쁜 놈들입니다. 당연히 갚아줘야죠!”

서인경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단씨 가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상인 가문 주제에 서왕비의 생신연에 초대를 받았어. 배후에 적지 않은 관료 세력들이 얽혀 있을 게다. 사소한 보복으로는 그들의 근간을 흔들 수 없으니 천천히 구워삶는 수밖에.”

평이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서인경은 햇살을 맞으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후궁에 매화꽃이 필 시기가 곧 도래하겠구나. 황후께선 그때에 맞추어 다과회를 열 것이야. 단여월은 대황자의 측비로 간택되었으니 단씨 자매도 초대를 받을 테지.”

올해 황후는 각궁의 황자를 위해 황자비를 간택하느라 꽤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다.

이런 다과회라면 황후의 눈에 들고 싶은 수많은 가문의 여식들이 앞다투어 참석할 것이다.

‘너희가 주목받기를 원한다면 소원대로 해주마!’

다음 날이 되자, 평이는 보따리 두 개를 메고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갔고, 서인경은 대놓고 대문을 나섰다.

관리인은 서인경이 황궁 다과회 때 입을 의복과 장신구를 준비하려는 줄 알고 평소처럼 그녀에게 은화 스무 냥을 건넸다.

“부족하시면 일단 왕부의 이름으로 외상을 달아두십시오. 소인이 나중에 가서 결산하겠습니다.”

서인경은 은화주머니를 받으며 머리를 굴렸다.

“내게도 매달 녹봉이 내려올 텐데?”

관리인이 답했다.

“마마의 매달 녹봉은 은화 열 냥입니다. 허나 왕부에서 생활하시는데 부족함이 없으시다면서 한 번도 그걸 받아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말에 서인경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돌아가서 계산 좀 부탁하네. 내가 왕부에 시집온 이후로 밀린 녹봉이 대략 얼마인지도 말이야. 이따가 돌아가면 평이를 보내 받도록 하겠네.”

관리인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마마, 혹시 생활비가 부족하십니까?”

서인경은 은화주머니를 흔들며 답했다.

“그래. 그러니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시게.”

관리인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연기준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런 관리인의 걱정과는 별개로 서인경은 소비를 하러 밖에 나간 것이 아니었다.

평이가 미리 정리해둔 보따리 안에는 혼수품에서 골라낸 금은보화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죄다 팔아 은화로 바꾸고 관리인에게 받은 녹봉과 함께 놓아두었다.

서인경은 침상에 앉아 은화를 세며 이 세계로 건너온 이래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과회 전날밤, 밤새 큰눈이 내렸다.

아침에 창문을 열었더니 온 세상이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평이는 장롱 앞에 서서 옷들을 꺼내 보며 고민을 토로했다.

“마마, 어떤 걸 입으면 좋을까요? 마마께서 근래 통 새옷을 마련하지 않아서 참 마땅치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씨와 부인들은 의상점 의복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는데 말입니다.”

서인경은 창문을 닫고는 고개를 돌려 고민에 찬 얼굴로 서 있는 평이를 위로했다.

“오늘은 황후께서 각 궁의 황자들을 위해 비를 간택하는 날이다. 헌데 이미 혼인한 내가 그리 화려하게 차려입으면 괜히 미움만 살 것 아니더냐.”

평이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늬가 간단한 장밋빛 치마를 들며 물었다.

“마마, 이 옷은 어떠십니까?”

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

“매화꽃과 비슷한 색상인데 하필 지금이 매화철이니 적당하지 않아.”

평이가 흰색 옷을 들자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입으면 흰눈과 일체가 되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할 게다.”

마지막으로 평이는 연하늘색 옷을 골랐다.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오늘 왕야께선 짙은 남색 의복을 입으셨으니 잘 어울리실 거예요.”

서인경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그를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혹시 네가 문을 걸어잠그고 안 열어줬니?”

평이는 의복을 내려놓고 장신구함을 열며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이번 폭설로 이주에 재난이 닥쳐 왕야께서 많이 바쁘시다 들었습니다. 어제는 깊은 밤에 돌아오셨다가 서재에서 두 시진 주무시고 오늘 새벽에 다시 나가셨다 합니다.”

‘재난?’

원주인의 기억에 따르면 이번 폭설은 시작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건 쌓인 눈이 녹으면서 발생한 혈흡충이라는 역병이었다. 이 역병은 이듬해 여름까지 지속되어 이주 일대에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흉년까지 들어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이때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가문이 단씨 가문이었다. 나라의 재난을 이용해 그들은 식량과 물자를 고가로 되팔아 떼돈을 벌었다. 그 재난을 계기로 단씨 가문은 진국 최고의 부호가 되었다.

순간 서인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시간을 거슬러   제1115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한 번이라도 터지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는 바로 화친 공주였다. 상대가 분풀이를 하듯 공주를 죽이거나, 전장 한복판에 끌어내 모욕을 주는 일. 그런 일은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반복되어 왔다.금수 대장공주는 줄곧 믿어왔다. 아버지는 자신을 두 나라의 관계를 이어주기 위해 보낸 것이라고, 자신이 시집온 이상 양국의 관계는 굳건해지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진국이 전쟁을 일으킬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있어 가장 절대적이고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이미 성조 선제와 함께 묻혀버렸어야 할 비밀을 연기준이 지금 이 자리에서 드러내고 말았다.금수 대장공주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채, 눈빛이 흐트러졌다.“방금 네가 한 말은 전부 거짓이라고 하거라.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다.”연기준은 그저 연민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황고모께서 짐의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즉시 그들에게 손을 멈추게 하겠습니다. 요동의 도성도, 영토도 지킬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지요. 허나 황고모께서 이를 거부하신다면 요동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황고모께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국군이 성을 함락시키는 속도는 결코 만만하지 않으니까요.”말을 마친 연기준은 그대로 돌아섰다.막사를 나서자마자, 등 뒤에서 찢어질 듯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연기준, 꿈 깨! 네 황후도, 네 진국군도 모두 도성에 묻히게 될 것이다! 넌 너무 일찍 기뻐한 거야! 하하하하!”연기준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대로 말을 몰아 떠났다.*그 무렵, 단은설과 그녀의 협력자들은 이미 모두 붙잡혀 있었다.다만 봉한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저 사람들, 연강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냐?”연기준은 나무에 묶여

  • 시간을 거슬러   제1114화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진국군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이미 도성 코앞까지 이르고 있었다.금수 대장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분노에 휩싸여 외쳤다.“연기준, 감히 본궁을 속이다니!”연기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황고모께서도 짐을 속이시지 않았습니까? 진국군을 기습하라고 보낸 자들, 모두 정예 중의 정예였지요. 다만 짐이 한 수 위였을 뿐입니다.”금수 대장공주는 발걸음이 휘청이더니, 넋이 나간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에 억지 웃음이 번졌지만 눈동자 깊은 곳의 패배감은 끝내 숨기지 못했다.“좋다… 참으로 좋다. 역시 연도현이 눈여겨본 사람답구나. 그 아이보다도 네 재능이 훨씬 뛰어나구나.”연도현의 이름이 언급되자 연기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흔적은 금세 사라졌다.“열셋 째 황숙의 체면을 봐서라도 짐은 황고모와 죽고 죽이는 지경까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요동은 사람을 보내 진국 땅에서 날뛰던 메뚜기 떼를 소탕하고, 백성들에게 평안을 돌려주십시오. 또한 요동의 황제와 황후는 재해 속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만의 진국 백성 앞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혼령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 다섯 곳을 내어주고 앞으로 십 년간 요동 사람은 단 한 명도 진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그러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헛된 망상이다!”금수 대장공주는 반생을 바쳐 진국을 굴복시키려 해왔다. 그런데 마지막에 맞이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이대로 궁으로 돌아간다면, 요동의 백성들은 더 이상 그녀를 믿지 않을 것이고 요동 후궁에서도 그녀가 설 자리는 사라질 터였다.“헛된 망상이라고요?”연기준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털며 돌아섰다.“그렇다면 황고모께서는 요동이 완전히 진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날을 기다리십시오. 그때가 되면 황고모의 최후는, 지금 짐이 제시한 조건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입니다.”연기준은 더는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고

  • 시간을 거슬러   제1113화

    그곳에 이르게 되면 자신은 결국 주인의 짐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차라리 진국 황궁으로 돌아가 주인을 대신해 태자를 목숨 걸고 지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주인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연풍의 마음은 더욱 아렸고 놓아주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반드시 주인보다 먼저 앞에 나서겠다고, 설령 주인을 대신해 죽게 된다 해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봉한설의 말은 분명 연풍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그 깊은 무력감은 오히려 그를 더욱 성실하고 치열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그 변화는 연기준뿐 아니라, 어린 꼬막이조차 눈치챌 정도였다.*다음 날, 부생이 그들을 데리고 단은설을 찾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연풍은 유난히 적극적으로 나섰다.“폐하, 저를 보내주십시오. 반드시 단은설을 데려오겠습니다.”연기준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럴 필요 없다. 단은설 곁에는 연강호가 남긴 사람들이 있다. 너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설이에게 맡기거라.”말을 마친 뒤, 연풍의 낙담한 표정을 보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한설의 무공이 너보다 약할 수는 있어도 일불락을 상대하는 데는 훨씬 능하다.”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는 언젠가 반드시 설산으로 가게 될 날이 떠올랐다. 그곳에 이르면 자신은 진짜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연풍은 다시 한 번 깊이 무너져 내렸다.하지만 연기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억지로 따라간다 해도, 그저 짐이 될 뿐이었다.그때, 꼬막이가 그의 가라앉은 기색을 눈치채고 다가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연풍 형님, 저랑 같이 가요. 부탁할 게 있습니다!”연기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또 무슨 생각이냐?”꼬막이는 신비롭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대신 친척 좀 만나러 가야 합니다!”연기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꼬막이를 연풍에게 넘겨주었다.“잘 지키거라.”자신에게도 아직

  • 시간을 거슬러   제1112화

    검은 옷의 사내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그는 방금 연기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설마 너희가 일불락의 원수가 아니라는 것이냐? 그럴 리가…”봉한설이 담담히 말했다.“왜 그럴 리가 없습니까? 그들은 일불락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손을 쓰라고 부추긴 그 자야말로 진짜 일불락의 가장 큰 원수예요.”검은 옷의 사내는 눈을 크게 떴다.“아니, 그럴 리 없다. 그는 분명…”말을 반쯤 꺼내다 말고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지금의 나는 그도 믿지 못하겠고 너희도 믿지 못하겠다.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을 거다.”그 말을 마치자마자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연기준 쪽으로 던져 버렸다.연기준이 몸을 날려 받아냈다. 꼬막이는 공중에서 한 줄기의 호를 그리며 날아가 그대로 그의 품에 단단히 안겼다.검은 옷의 사내가 달아나려 하자 암위들이 즉시 장검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그때, 꼬막이가 다급히 외쳤다.“아아아, 잠깐! 아프게 하지 마세요!”그의 말에 암위들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그 틈을 타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깊이 한 번 바라보더니 곧바로 몸을 날려 자취를 감췄다.짧지만 소란스러웠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꼬막이는 큰일을 겪고도 무사히 다시 연기준의 곁으로 돌아왔다.아이는 뒤늦게 가슴을 두드리며 중얼거린다.“아이고... 아기 심장 떨어질 뻔했습니다.”연기준이 곁눈질로 그를 흘겨봤다.“아까 보니 꽤 침착하던데.”꼬막이는 연기준의 어깨를 끌어안고 온몸의 힘을 빼듯 축 늘어졌다.“그건 다 속인 겁니다. 사실은 정말 무서워서 죽을 뻔했거든요.”그 말투를 듣고서야 봉한설은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음을 알았다.“왜 암위들한테 잡으라고 안 했습니까? 그자를 잡으면 줄기를 따라가서 뒤에 있는 가문까지 찾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요

  • 시간을 거슬러   제1111화

    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연기준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정답에 다다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순간, 그의 눈빛이 비통하게 일그러졌다.“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 수령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원수가 대대로 고통받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어느새 암위들이 조용히 그의 등 뒤로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연기준은 곁눈질로 그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 오직 검은 옷의 사내만을 똑바로 응시했다.“너와 네 뒤의 가문은 여전히 일불락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 헌데 선과 악도 가리지 못하고,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하지.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린 그자가 바로 일불락 수령의 가장 큰 원수다.”그 말에, 검은 옷의 사내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입을 떼지 못한 채, 그저 눈을 크게 뜬다.“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그의 주의력은 온전히 연기준에게 쏠려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단 한마디라도 더 알아내고 싶다는 듯 초조하게 매달렸다. 그 탓에 손에 들어간 힘도 어느새 느슨해졌다.꼬막이의 목을 조이던 압박이 조금씩 풀리자 아이는 급히 숨을 몰아쉬며 몇 번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그러고는 아직 어린 목소리로 연기준의 말에 힘을 보탰다.“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여 할머니께서 그러셨거든요. 얼굴도 못 드러내는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설 낯이 없는 거래요. 일불락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얼굴만 보면 당장 죽여버릴 만큼, 대대로 잊지 못할 원수라고 했습니다.”여 할머니?검은 옷의 사내의 표정이 더욱 기이하게 일그러졌다.“어느 여 할머니를 말하는 것이냐?”꼬막이는 여전히 숨을 고르며 목을 매만졌다.“그냥 설산 안에 사는 그 여 할머니요! 입가에 검은 점 있는 그 할머니 말입니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의 온몸이 굳어 버렸다.설산의 여 할머니라니?여족? 설장로? 입가의 검은 점…이 어린아이가 정말로 설장로를 안

  • 시간을 거슬러   제1110화

    말을 마치자마자 봉한설은 즉시 몸을 날리며 한 줄기 바람처럼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뒷산.이미 연기준과 암위들이 검은 옷의 사내를 따라잡은 상태였다.그때쯤 꼬막이도 깨어났지만 사내의 어깨에 들려 있으면서도 조금도 겁을 먹은 기색이 없었다.까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연기준이 따라붙은 것을 보자마자 양팔을 흔들며 외쳤다.“아버지! 저 여기 있습니다!”그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연기준도 이렇게 빠르게 위치를 특정하진 못했을 것이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어깨에 멘 채 연기준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생각보다 빠르게 따라붙었군. 진국의 황제라더니, 듣던 것보다 훨씬 영리하네. 일불락 수령 일족의 후예라던데 사람 보는 눈은 그 조상보다 훨씬 낫군.”연기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동자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넌 일불락의 후손이구나.”물음이 아니라 단정이었다.“어느 부족 출신인지 밝혀라.”검은 옷의 사내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나를 이기면 그때 알려주지.”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순간, 공기 속에 수없이 많은 빙능이 맺혀들었다.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일제히 연기준을 향해 쏟아졌다. 연기준은 가까이 있던 암위의 검을 뽑아 들고 내력을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앞뒤에서 부딪히는 힘에 의해 빙능은 공중에서 산산이 부서졌다.그 반동으로 검은 옷의 사내는 내력이 역류하여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너... 목족 무공을 쓸 줄 아는 것이냐?”그 말에, 연기준 역시 순간 멈칫했다.방금 그가 사용한 내력은 어릴 적 연도현이 가르쳐준 것이었다.그때는 그저 일반적인 내공보다 깊고 강하다고만 여겼을 뿐이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연도현은 이미 그의 출생을 알고 일찍이 일족과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연기준은 낮게 말했다.“아이를 놓거라. 같은 일불락의 후손이라면 서로 죽일 필요는 없을 텐데.”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

  • 시간을 거슬러   제567화

    봉한설은 서인경을 따라 병풍 뒤로 가서 꼬막이에게 젖을 먹였다. 연풍은 문 앞에 멈춰 서서 즉시 연기준에게 고했다.“왕야, 왕비 마마를 찾았다는 소식이 이미 밖에 퍼졌사옵니다. 곧 경성까지 전해질 것이옵니다.”연기준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일어나 옆 탁자에 올려둔 서신 한 통을 집어 들고 방을 나섰다.“대외적으로는 이렇게 알리거라. 상왕비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서 노장군은 설산에서 전사했다고 말이다.”연기준은 그 서신을 연풍에게 건넸다.“서 노장군은 본왕을 도와 능지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협력하다가 설산에서 순국하

  • 시간을 거슬러   제576화

    그들은 자신을 다 써먹고선 이렇게 버려두다니...은혜를 저버리는 것도 참 빠르구나!단은설이 다시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리자 서인경은 이미 검은 가면을 벗어 자신이 혐오스러워하던 그 얼굴을 드러냈다.그녀는 분노로 주먹을 꽉 쥐었다.“왕비 마마, 서 가는 이미 다 망했는데 아직도 여기서 놀 생각을 하다니요. 서 장군께서 보고 계신다면 왕비 마마의 불효로 화가 나서 다시 살아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서인경은 미소를 거두고 냉정하게 단은설를 바라보았다.마음속으로는 할아버지와 고모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은설이 가

  • 시간을 거슬러   제600화

    꼬막이는 정말 그 말을 알아듣고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그 모습에 서인경은 그때의 꿈이 떠올랐다. 어쩌면 꼬막이가 정말로 말을 알아듣는 걸지도 몰랐다.어느새 방 안에는 선물들로 가득 쌓였다.맹은영은 하나하나 들며 꼬막이와 서인경에게 보여주었다.“이 옷은 저희 어머니께서 직접 지으신 겁니다. 촉감이 부드럽고 편안하지요.”“이 호랑이 머리 신발은 저희 큰형수님께서 직접 만드신 겁니다. 밑창을 여러 겹 덧댔으니 발이 아플 일은 없을 테지요.”“이 모자는 저희 둘째 형수님의 작품입니다. 지금 임신 중이라 똑같은 걸 두 개나

  • 시간을 거슬러   제550화

    붉은 털의 호랑이와 늑대는 피리 소리를 듣자마자 마치 급소를 눌린 듯 몸이 굳어버렸다. 순간 그들의 눈동자는 한곳으로 모이며 눈빛이 살기로 가득 찼다.말은 통하지 않고 힘은 당해낼 수도 없는 상황. 서인경은 그 거대한 위력 앞에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붉은 털 호랑이는 번개처럼 앞발의 발톱을 내밀며 서인경을 향해 덮쳐왔다. 그녀는 급히 몇 걸음 물러서다 벽에 몸이 밀착되었다. 이 거대한 맹수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곤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그러나 예상했던 고통 대신 들려온 건 호랑이의 울부짖음이었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