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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Author: 코코넛 서고
연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인이 알아봤는데 최상급 연지였습니다. 이런 걸 사서 쓸 능력이 있는 자는 황궁에 계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고위 관료의 여식들이나 가능하겠지요. 왕비마마도 거기에 포함입니다.”

연기준은 왜 그 향이 이리도 익숙하게 느껴졌는지 기억해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전까지 서인경이 그의 앞에서 알랑거릴 때 자주 사용하던 연지였다.

“그럼, 그 사람이 자신이 죄를 저질러 놓고 자작극을 했다는 얘기냐?”

연붕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소인이 어찌 함부로 그런 불경한 추측을 하겠습니까. 이 연지를 샀던 사람들 중에 왕비마마와 사이가 안 좋은 규수들이 몇 있긴 했었지만, 맹국공가와 서왕부와는 사이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굳이 오늘 같은 자리에서 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요.”

서인경에게 보복한다고 일을 꾸미기에는 맹국공가문과 서왕부 모두 만만찮은 상대였다.

연기준은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담담히 말했다.

“놈들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맹은영은 서왕부에서 죽고 상왕비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겠지. 그러면 누구에게 가장 유리할 것 같으냐?”

그 말을 들은 연풍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왕비께선 처형을 피해가더라도 정비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을 겁니다. 그럼, 상대의 목적은 상왕비의 자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연기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듣기로는 최근 대황자께서 단씨 가문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는데?”

“예. 황후께서는 단효산의 둘째딸인 단여월을 대황자의 측비로 추천했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연풍의 안색이 급변했다.

“왕야… 그럼, 설마… 단씨 가문에서…!”

상왕비인 서인경과 대황자비로 내정된 맹은영.

하필 단씨 가문의 두 딸이 노리고 있는 위치였다.

연기준은 말없이 면사포를 연풍에게 도로 던져주었다.

“계속 주시하고 있거라.”

“예.”

그날 밤, 서인경은 단잠을 잤다.

눈을 뜨고 탕약을 마시고 나니 몸상태가 비로소 회복된 것 같았다.

그녀는 평이와 함께 갈아 만든 배즙을 마시며 정원에서 햇빛을 받았다.

“단씨 가문 쪽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평이는 배즙 한숟가락을 떠먹고는 말했다.

“단은설이 마마를 문안한다는 핑계로 왕부에 방문해서 왕야의 서재에서 한참을 있다가 방금 돌아갔습니다. 단여월은 대황자를 만나러 갔고요. 맹 소저가 앓아누운 이후로 대놓고 대황자 관저를 드나들고 있어요. 단평안은 아직 침상에서 못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마 외출을 하려면 최소 열흘은 필요할 듯 보여요.”

서인경은 시원한 배즙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평이 너 소식이 참 빠르구나?”

평이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두드렸다.

“소인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성안에 사는 노숙자 중 한명이 소인의 고향친구인데, 그들에게 만두를 사줬더니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서인경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머리 좋네! 그 녀석들 죄다 침상에 눕혀 놓아야 좀 얌전해지려나?”

그러자 평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마마, 그들에게 복수하시려고요?”

“그래야 하지 않겠니?”

평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마마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려던 나쁜 놈들입니다. 당연히 갚아줘야죠!”

서인경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단씨 가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상인 가문 주제에 서왕비의 생신연에 초대를 받았어. 배후에 적지 않은 관료 세력들이 얽혀 있을 게다. 사소한 보복으로는 그들의 근간을 흔들 수 없으니 천천히 구워삶는 수밖에.”

평이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서인경은 햇살을 맞으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후궁에 매화꽃이 필 시기가 곧 도래하겠구나. 황후께선 그때에 맞추어 다과회를 열 것이야. 단여월은 대황자의 측비로 간택되었으니 단씨 자매도 초대를 받을 테지.”

올해 황후는 각궁의 황자를 위해 황자비를 간택하느라 꽤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다.

이런 다과회라면 황후의 눈에 들고 싶은 수많은 가문의 여식들이 앞다투어 참석할 것이다.

‘너희가 주목받기를 원한다면 소원대로 해주마!’

다음 날이 되자, 평이는 보따리 두 개를 메고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갔고, 서인경은 대놓고 대문을 나섰다.

관리인은 서인경이 황궁 다과회 때 입을 의복과 장신구를 준비하려는 줄 알고 평소처럼 그녀에게 은화 스무 냥을 건넸다.

“부족하시면 일단 왕부의 이름으로 외상을 달아두십시오. 소인이 나중에 가서 결산하겠습니다.”

서인경은 은화주머니를 받으며 머리를 굴렸다.

“내게도 매달 녹봉이 내려올 텐데?”

관리인이 답했다.

“마마의 매달 녹봉은 은화 열 냥입니다. 허나 왕부에서 생활하시는데 부족함이 없으시다면서 한 번도 그걸 받아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말에 서인경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돌아가서 계산 좀 부탁하네. 내가 왕부에 시집온 이후로 밀린 녹봉이 대략 얼마인지도 말이야. 이따가 돌아가면 평이를 보내 받도록 하겠네.”

관리인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마마, 혹시 생활비가 부족하십니까?”

서인경은 은화주머니를 흔들며 답했다.

“그래. 그러니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시게.”

관리인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연기준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런 관리인의 걱정과는 별개로 서인경은 소비를 하러 밖에 나간 것이 아니었다.

평이가 미리 정리해둔 보따리 안에는 혼수품에서 골라낸 금은보화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죄다 팔아 은화로 바꾸고 관리인에게 받은 녹봉과 함께 놓아두었다.

서인경은 침상에 앉아 은화를 세며 이 세계로 건너온 이래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과회 전날밤, 밤새 큰눈이 내렸다.

아침에 창문을 열었더니 온 세상이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평이는 장롱 앞에 서서 옷들을 꺼내 보며 고민을 토로했다.

“마마, 어떤 걸 입으면 좋을까요? 마마께서 근래 통 새옷을 마련하지 않아서 참 마땅치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씨와 부인들은 의상점 의복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는데 말입니다.”

서인경은 창문을 닫고는 고개를 돌려 고민에 찬 얼굴로 서 있는 평이를 위로했다.

“오늘은 황후께서 각 궁의 황자들을 위해 비를 간택하는 날이다. 헌데 이미 혼인한 내가 그리 화려하게 차려입으면 괜히 미움만 살 것 아니더냐.”

평이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늬가 간단한 장밋빛 치마를 들며 물었다.

“마마, 이 옷은 어떠십니까?”

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

“매화꽃과 비슷한 색상인데 하필 지금이 매화철이니 적당하지 않아.”

평이가 흰색 옷을 들자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입으면 흰눈과 일체가 되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할 게다.”

마지막으로 평이는 연하늘색 옷을 골랐다.

“그럼 이건 어떠신가요? 오늘 왕야께선 짙은 남색 의복을 입으셨으니 잘 어울리실 거예요.”

서인경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그를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혹시 네가 문을 걸어잠그고 안 열어줬니?”

평이는 의복을 내려놓고 장신구함을 열며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이번 폭설로 이주에 재난이 닥쳐 왕야께서 많이 바쁘시다 들었습니다. 어제는 깊은 밤에 돌아오셨다가 서재에서 두 시진 주무시고 오늘 새벽에 다시 나가셨다 합니다.”

‘재난?’

원주인의 기억에 따르면 이번 폭설은 시작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건 쌓인 눈이 녹으면서 발생한 혈흡충이라는 역병이었다. 이 역병은 이듬해 여름까지 지속되어 이주 일대에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흉년까지 들어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이때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가문이 단씨 가문이었다. 나라의 재난을 이용해 그들은 식량과 물자를 고가로 되팔아 떼돈을 벌었다. 그 재난을 계기로 단씨 가문은 진국 최고의 부호가 되었다.

순간 서인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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