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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2화

Author: 코코넛 서고
“왕비 마마께서 입궁하시는 순간, 소인은 곧바로 사람을 풀어 소문을 냈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폐하의 부름을 받아 병을 살피러 궁에 들어오셨다고 말입니다. 이거야말로 왕비 마마께서 가장 익숙하신 방식 아니겠습니까? 경성 백성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더는 사양하신다면 도리가 아니지요. 설마 폐하께서 친히 궁을 나서 왕비 마마를 모셔 오게 하시겠습니까?”

이쯤 말이 나왔으니 서인경이 더 거절한다면 그건 황은을 업신여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속으로는 황제가 제 손으로 써 준 성지를 휴지처럼 뒤집는 꼴을 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황제 또한 체면이 있었다. 군자의 말이 희롱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연기준이 떠난 뒤 이토록 오래 기다리다 마침내 그녀를 단독으로 궁에 부를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전에는 늘 다른 이들과 함께 입궁했기에 황제가 손을 쓸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은설의 침전이었다. 그 안에서라면 무슨 일이든 벌이기 쉬웠다.

이쯤에서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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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29화

    이쯤 되자 맹은영은 더더욱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답게 진방옥을 부축한 손과 표정에는 노골적인 협박이 담겨 있었다.“화내는 건 당신 마음이니까 상관 없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가 더 심해진다고 해도 저한테 뒤집어 씌우지 마세요. 전 제가 한 일은 책임지지만, 억울하게 덤터기 쓰는 건 절대 안 할 겁니다.”진방옥이 눈을 흘겼다.“한마디만 더 해보세요. 당신이 했던 일을 황후 마마와 당신 오라버니한테 전부 다 말해버릴 거니까요.”두 사람은 서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누구 하나 놓아줄 기색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그러다 맹은영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진 공자님, 조심하세요. 절대 넘어지시면 안 됩니다.”진방옥은 곧장 어깨를 펴고 턱을 들어 올렸다.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괜히 위엄을 부리는 모습이었다.서인경과 맹경운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저 둘... 뭔가 수상하다.*둘을 막사 안으로 들였다. 맹은영은 먼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서인경은 진방옥의 상처를 다시 살폈다.다행히 심각하지는 않았다. 머리는 살짝 찢어진 정도였고 다리도 겉상처뿐, 뼈나 힘줄에는 문제가 없었다.맹경운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진방옥이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안 궁금합니까?”서인경은 그의 다리 상처를 정성껏 닦아주고 있던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어차피 네가 은영을 괴롭힌 건 아니잖아. 그럼 된 거지.”진방옥이 가슴을 움켜쥐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저흰 친구 아닙니까? 그것도 같이 이 세계로 넘어온, 특별한 인연이라고요. 그러니 우리 사이가 더 중요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음 좀 덜 편향적으로 써주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태평양만큼 기울어졌잖아요!”서인경은 고개를 숙인 채 약을 발라주며, 웃으며 받아쳤다.“너희가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야랑국 일은 이미 끝났다는 뜻이겠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순조롭게 올 수 없지 않겠느냐.”진방옥은

  • 시간을 거슬러   제1128화

    서인경은 요동의 병사들이 거의 전부 쏟아져 나온 광경을 보았다.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히겠다는 듯, 진국군을 모조리 몰아내려는 그 집요하고도 잔혹한 기세는 지금의 요동 황제가 감히 보여줄 수 있는 결단이 아니었다.서인경이 알고 있는 요동 황제는 평생을 무능하게 살아온 인물이었다.지금 금수 대장공주가 도성에 없는 상황에서 대군이 성문 앞까지 밀려왔다면 설령 겁에 질려 성문을 열고 항복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수비에만 전념하며 출전을 거부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곧장 사람을 보내 팔백 리를 달려 금수 대장공주에게 급보를 전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는 전군을 내보내지 않았던가. 이런 배짱은 분명 연강호가 준 것일 터.그렇다면 문제는 하나였다. 이 모든 명령을 내리면서도 정작 연강호 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서인경은 단 하나의 가능성만을 떠올렸다.그는 서인경의 병력을 소모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이득만을 챙기려는 속셈.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요동도, 서인경도 결국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서인경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곧 일불락 전체를 손에 넣는 것과 같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당당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백 년 전, 세상이 탐냈던 그 모든 것을 손에 넣었노라, 자신이 이미 장생불사의 왕이 되었노라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연강호가 노리는 궁극의 목적이었다.국경에서 동남동녀를 이용해 장생불사를 연구하던 일은 아마도 금수 대장공주와 협상을 하기 위한 조건이자 유혹에 불과했을 것이다.평생을 스스로 총명하다 여겨온 금수 대장공주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모든 것을 그르치고 말았다.이미 죽었다고 여겼던 선조에게 한 번 속았고 이제는 자신의 후손인 연기준에게 몰려 더는 물러설 곳조차 없게 될 것이다.*맹경운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인경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놀라움에 감탄하며 허벅지를 탁 치고 말았다.“세상에, 이 안에

  • 시간을 거슬러   제1127화

    연기준이 말을 재촉해 돌아오던 중, 진국군이 요동 도성을 공격하다 실패해 어쩔 수 없이 도성 밖 오십 리 떨어진 봉명산으로 물러났다는 소식을 받았다.그는 급히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웠다. 시선은 도성 방향을 향한 채, 손에 쥔 고삐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패배.그 한 단어가 그의 심장을 세게 옥죄었다.“어찌 이리 빨리 패할 수 있느냐?”맹경운이 가진 전력이라면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할 리가 없었다.보고를 올린 병사가 공손히 답했다.“황후 마마의 뜻입니다. 성 안에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끌어내려 하십니다.”연기준의 가슴에 걸려 있던 숨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불안이 스며들었다.연강호가 탈출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백 년 전 이미 죽었어야 할 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될 것이다. 일불락에 진정한 장생불사의 비법이 존재한다고. 그리되면 그곳은 백 년 전보다도 더 깊고 위험한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연기준의 눈빛에 드리운 근심이 점점 짙어졌다.“맹경운에게 전해라. 반드시 하루만 더 버티라고.”하루 안에 그는 금수 대장공주를 굴복시켜야 했다.그의 말에 암위가 즉시 명을 받들었다.“예.”곧바로 말머리를 돌려 도성 쪽으로 내달렸다.*암위가 가져온 소식을 들었을 때, 서인경은 작은 산등성이 위에 앉아 마른 식량을 씹고 있었다.그 곁에는 막 몸을 씻어내고 어지러웠던 흔적을 겨우 털어낸 맹경운이 서 있었다.“마마께서는 하루 안에 연강호를 끌어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서인경의 옅은 눈빛이 먼 북쪽을 향했다.그곳은 재앙과 죄업이 시작된 땅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살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곳. 그리고 그녀의 선조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연강호를 제거하지 않는 한 그 땅은 영원히 평온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연강호가 가장 원하는 것들은 전부 내 손에 있다.”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우리가 전투에서 밀렸고, 지금 사기가 떨어졌다는

  • 시간을 거슬러   제1126화

    “꼬막이는 괜찮습니다. 다음부터 안 하면 되죠 뭐.”꼬막이는 어른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목을 한껏 빼고 올려다봐야 해서 그게 제법 힘에 부쳤다.그는 연기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연기준은 단번에 알아차리고 아이를 가볍게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오해가 풀렸다면 됐다. 자책할 필요 없다. 다만 알고 싶은 게 있다. 그 수령의 후예를 사칭한 자는 어떻게 네 정체를 알아낸 것이냐? 또 너에게 무슨 짓을 시켰느냐?”사내는 급히 기억을 더듬었다.“처음 만난 건 산에서 소를 돌보던 때였습니다. 그 자가 다쳐서 쓰러져 있었는데, 제가 빙능으로 통증을 눌러줬습니다. 아마 그때 제 정체를 눈치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저를 이용해 작은 주인을 노렸던 겁니다.”봉한설이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빙능은 일불락에만 있는 무공입니다. 그걸 외부인 앞에서 쓰면 들키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요!”그러자 촌장 부인은 참지 못하고 아들을 두둔했다.“우린 여기서 평생을 살아왔다. 외지인이 거의 오지도 않는 곳이지. 빙능도 사냥할 때나 쓰는 것이다. 몸에 익은 재주를 안 쓰는 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 게다가 일불락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여기서 그걸 알아볼 사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그녀는 전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불락의 사람이 정체를 드러냈을 때,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연기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왜 이 가문을 지하흑시의 주인으로 세우지 않았는지.봉한설은 더 말하기도 싫다는 듯 눈을 굴렸다.연기준이 낮게 당부했다.“지금 세상은 평온하지 않습니다. 일불락이 겪었던 비극이 언제든 다시 되풀이될 수 있어요.”이 정도까지 말하자 촌장 부인도 알아들은 듯 놀란 눈으로 연기준을 바라봤다.“수령의 후예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까?”수령의 후예인 꼬막이는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아저씨들이 몇 번만 더 나타난다면 저는 어머니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될 겁니다.”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해했다.“그럴 일

  • 시간을 거슬러   제1125화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는 방 안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오늘 손님이 왔습니까?”하지만 연기준과 꼬막이가 자기 집 밥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순간 얼굴이 굳으며 곧장 괭이를 치켜들었다.“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뭘 하려고 온 거지?”연기준이 나설 틈도 없이 할머니가 비틀거리는 다리로 몇 걸음에 다가가 사내의 뒤통수를 철썩 내리쳤다.“이 못난 자식! 밖에서 무슨 못된 짓을 하고 다녔길래,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왔느냐! 어서 사실대로 말해라!”사내는 얼떨떨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촌장은 수염만 만지며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밥그릇도 보면서, 끝내 아들을 보지 않았다.사내는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머니, 저는 그냥 산에 가서 소나 몰았어요. 나쁜 짓 같은 건 안 했어요! 굳이 하나 꼽자면… 며칠 전에 이 꼬마를 납치할 뻔한 것 정도? 헌데 그건 어머니께서 허락하신 거잖아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의 손이 다시 날아갔다. 맞으면서도 사내는 감히 대들지 못했다.“내가 늙어서 정신이 흐려졌다고 너도 같이 흐려진 것이냐? 네가 잘못한 건 맞지?”꼬막이는 그 모습을 보며 아파 보였는지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며 달려가 할머니의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할머니, 그만 때려요! 아저씨, 남 대신 뒤집어쓴 것 같아서 불쌍하잖아요!”할머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꼬막이의 말은 분명 그를 두고 한 말이었다.연기준은 더 이상 그들이 얼버무릴 틈을 주지 않았다. 곧장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나는 일불락 금족과 목족의 후예다. 두 부족의 무공을 모두 익혔지. 그리고 저 아이는 어족의 후예라 너의 빙능 공격을 손쉽게 무력화할 수 있었다. 네 어머니는 이미 우리의 정체를 믿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계속 의심할 생각인 것이냐?”사내의 시선이 연기준과 봉한설 사이를 오갔다.“어, 어떻게 그런… 그럼 왜 수령 일족을 배신한 겁니까?”봉한설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왜 우리가 배신했다고 생각합니까?”사내는 단호하게 말했다.“일불락

  • 시간을 거슬러   제1124화

    꼬막이는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데굴 굴렸다.이게 대체 무슨 대화 방식이람?할머니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이어갔다.“당신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니 제 정체를 이미 알고 있겠지요. 옛날에 제가 은거할 때, 은노에게 말해두었습니다. 이 다시는 이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고요. 어족이 수령 일족을 지키는 책임은 은노에게 맡긴다고 말입니다. 이 밥 한 끼 먹고, 하룻밤 자고 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이미 사람들이 찾아온 이상, 할머니도 더 이상 숨길 생각은 없었다.꼬막이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이제 봉한설까지 나타났으니 이들이 자신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려 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짐작했다.요즘 요동과 진국 사이의 전쟁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만약 자신처럼 일불락 어족의 후예가 나선다면 진국의 피해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저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다. 세속의 싸움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일불락을 배신하지도, 악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지키는 마지막 선이었다.연기준은 차분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당신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 몰라도 당신의 자손들은 바깥에서 가만히 있지 않더군요. 빙능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기술. 그건 당신에게서 전해진 것 아닌가요?”할머니가 순간 굳어버렸다. 놀란 눈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무슨 소리입니까?”봉한설은 며칠 전, 검은 옷의 사내가 꼬막이를 납치하며 빙능을 썼던 일을 떠올렸다.순간, 이 할머니와 그 사내의 관계를 깨달았다.표정이 단숨에 분노로 바뀌었다.“그래서였군요. 당신이 아들을 풀어놓고 제 작은 주인을 납치하게 만든 거였습니다! 당신 친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 아들의 가죽을 벗겨버리고 당신과도 인연을 끊을 거예요!”할머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곧장 고개를 숙여 꼬막이를 바라봤다.“작은 주인이라고? 한산이 납치하려던 아이가 너였느냐?”봉한설은 그 모습을 보고 탁자

  • 시간을 거슬러   제399화

    깊은 밤, 사방은 적막했으나 진가이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예정임의 온몸에서 몰아치는 것은 술기운이 아니라 날 선 광풍과 분노였다. 그의 기세는 사납고 손에는 여전히 주렴과 연지의 향이 묻어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조금의 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불안에 시달렸던 진가이였으나 막상 그가 자신 앞에 서자 오히려 마음은 가라앉았다. 이미 대비해 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오늘의 독약은… 진국의 폐하께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숙귀비에게 서가군을 맡기려는 계책, 그 대가로 오늘의 결과는 애초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지요.”예정임

  • 시간을 거슬러   제395화

    서인경은 호청이 꽂아 두었던 은침을 뽑아내고 다시금 맥을 짚어 침혈을 바꿔 놓았다. 잠시 뒤, 봉한설의 얼굴빛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입가를 더럽히던 검은 피도 멎었다. 서인경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상태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물었다.“이런 증세는 언제부터였느냐? 원인이 뭐였는지 기억하느냐?”상왕부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봉한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지 못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기에 그녀는 담담히 사실을 내뱉었다.“저는 집안 내력으로 심장병이 있습니다. 본래부터 몸이 약했는데 다섯 살 때

  • 시간을 거슬러   제398화

    대황자의 고개가 휙 하고 옆으로 돌아갔다.“어머니, 무슨 뜻입니까?”황후의 눈에는 피로와 좌절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하면 그 뒤에는 늘 참새가 있느니라. 폐하께서는 우리를 경계하고 계신다. 그러니 감히 서가군을 네 손에 쥐여주지 않으려는 것이지. 명심하거라, 장차 천하를 잇고자 한다면 오늘 이후로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 눈치 채선 안 된다. 폐하께서는 네가 드러내는 야심을 가장 싫어한다. 그의 재위 중에는 그 누구도 눈에 띄어선 안 된다.”대황자의 얼굴에 서린 건 억울함과 분노였다.“아버지께서는 저

  • 시간을 거슬러   제386화

    대전 안, 황후와 대황자의 시선이 동시에 숙귀비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눈빛은 마주쳤다가 곧바로 흩어졌다.열다섯 째 황자는 모친 곁에 더 다가가고 싶어 의자를 살짝 옮겼으나 숙귀비가 단호히 막으며 얘기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여덟 째 공주가 보고 싶다 하지 않았느냐? 저기 보거라. 신비가 아이를 안고 있다. 공주가 널 기다리고 있어.”열다섯 째 황자가 고개를 돌리니 인자한 미소로 아이를 품은 신비와 그 품속에서 침까지 흘리며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열여덟 째 공주가 있었다. 갓 두 해를 넘긴 공주는 작은 손을 내밀며 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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