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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Author: 코코넛 서고
황제는 이 옥패를 기억하고 있었다. 선황이 살아 있을 때, 그와 연기준에게 각각 하나씩 만들어 준 것이었다. 연기준의 것은 흰색, 자신의 것은 회색. 두 개를 맞대면 하나의 완전한 팔괘 태극이 되도록 만들어진 짝이었다. 형제가 한마음으로 끝까지 화목하기를 바란 선황의 뜻이 담긴 물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왜 연기준의 옥패가 자기 곁에 있는 것인가? 연기준은 언제 그에게 다가왔던 것인가? 그리고 언제 이 옥패를 그의 몸에 옮겨 놓았단 말인가?

황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 채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마치 어딘가 어둠 속에서 연기준의 시선이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극도로 긴장한 탓에 귀 안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머리가 팽창하는 듯 아파지더니 어느 순간 시야가 캄캄해졌다.

황제는 그대로 용좌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의식을 잃기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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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37화

    서인경의 눈이 가늘어졌다.분명, 속셈이 있다.연강호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는 남궁열을 앞세워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정연은 그녀와 애초에 말 섞을 이유조차 없었다.“내가 안 나가면, 어쩔 건데?”병사가 대답했다.“반 시진 안에 마마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면 산을 공격하겠다고 합니다.”맹경운의 얼굴이 굳었다.“어디서 굴러온 놈이든 상관없다. 내가 지키는 산을 치겠다고?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나. 전군, 전투 준비!”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바위가 옮겨지고 궁수들이 자리를 잡았다.서인경은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앞에는 산 아래를 메운 검은 물결 같은 군세, 뒤에는 차분하게 전투를 준비하는 병사들.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그녀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요동이 도성에 남겨둔 병력은 많지 않을 터였다.그런데 지금 산 아래의 병력은 다시 한 번 전부 쏟아져 나온 듯한 규모였다.요동 황제는 분명 믿고 있었다. 서인경만 손에 넣으면 진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산 아래의 남궁열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서인경을 붙잡기만 하면 자신의 어족 내공을 되살리고, 이 기이한 눈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고.일불락 수령 일족의 피는 어족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예컨대 막수한의 부인처럼, 혹은 어술을 잃고 생긴 이색의 눈처럼.그리고 남궁열을 따라온 예정연은 서인경만 사라지면 연기준이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될 거라 믿고 있을 것이다.궁 안의 연강호는 말할 것도 없다.서인경을 손에 넣기만 하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이들은 모두 서인경을 ‘소원을 이루어주는 연못’쯤으로 여기고 있었다.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한다. 도성의 병력까지 전부 끌어다 쓰면서.그렇게까지 몰아붙이면 정말로 뒤가 안전하다고 믿는 걸까.서인경의 시선이 산 아래를 훑었다.대열의 가장 뒤쪽, 너무 멀어 사람의 형체는 분간되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번쩍이는 검은 기운이 보였다.연강호. 그

  • 시간을 거슬러   제1136화

    진방옥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을 꺼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맹은영은 그 말을 듣다가 잠시 멍해졌다.늘 티격태격하던 그 얼굴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낯선 다정함이 비쳐 보였기 때문이다.“그럼… 제가 들은 얘기는 황후 마마한테 도움이 됩니까?”“됩니다.”진방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그걸로 누굴 경계해야 할지 알 수 있고 앞으로 들어오는 정보 중에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도 구분할 수 있으니까요. 헌데 밖에 일은...”“그건 언젠가 일어날 일이니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짧지만 정확한 위로였다.맹은영의 가슴을 조이던 불안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예요.”그녀는 두 손을 모아 이마에 얹고 작게 중얼거렸다.“부디…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서인경은 산 정상에 서 있었다.아래를 내려다보니 산 아래에는 빽빽하게 병사들이 들어차 있었다.그리고 그 선두에는 이색 눈동자를 가진 사내도 함께 있었다.남궁열. 역시 그는 결국 이곳까지 왔다.남궁열은 말 위에 올라탄 채, 산 위를 향해 외쳤다.“너희 진국 황후를 나오라 하거라 나와는 구면이다. 우리 둘뿐 아니라, 우리 조상끼리도 인연이 있다. 할 말이 많을 텐데, 나오지 않겠느냐?”그 말이 전해지자 맹경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마마, 듣자 하니 그 눈 빨간 놈이랑 원수지간이신가 보네요? 실력은 어떻습니까? 일대일이면 제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서인경은 담담하게 말했다.“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깊이 얽힌 적은 없어 실력은 모르겠다. 직접 상대해보거라. 대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맡으마.”맹경운이 눈을 좁혀 아래를 살폈다.과연 남궁열 곁에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요동군 안에서 여자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처음엔 금수 대장공주가 돌아온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그녀가 오면 연기준이 미리 알렸을 테고 이렇게 조용히 나타날 리도 없었다.그가 정체를 짐작하던 순간, 서인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야랑국의 정연 공주다. 예전에 진국에 와

  • 시간을 거슬러   제1135화

    “야랑국에서 거래는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애초에 저희 누님과 단평안이 길을 많이 터놔서 그쪽 도움을 받으니까 금방 끝나더라고요. 다만 국경 쪽에서 덕비랑 그 눈 빨간 놈… 아, 맞다, 마마께서 말한 남궁열. 거기에 여자 하나 더 있었는데, 덕비가 ‘정연’이라고 부르더라요.”서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셋이 맞다. 야랑국에서 데리고 나올 때,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느냐?”진방옥이 자신 있게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들은 거의 한 달 가까이 갇혀 있었습니다. 매일 들판에서 자고 야생 열매로 겨우 버티면서 말입니다. 더 늦었으면 야랑국 쪽에 들키기 전에 굶어 죽었을걸요. 우리 상단이 나타난 건 그 사람들한테 거의 마지막 기회였을 겁니다. 엿듣는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맹은영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조금 전, 그녀는 이미 맹경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한바탕 혼이 났다.다시는 이런 위험한 짓을 하면 부모님께 말씀드려 집에 가둬버리겠다는 말까지 들었다.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다행히 이번 일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은 듯했고 더 이상 따지려 드는 기색도 없었다. 그제야 겨우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진방옥에게 점수를 하나 더 얹었다.‘이 사람, 괜찮네. 일 터지면 대신 막아주는 사람이니.’하지만 서인경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엿듣는 일.그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그날, 원래부터 너희랑 갈라질 생각이었던 것이냐? 아니면 엿듣는 일이 터지고 나서, 그때 갈라지자고 한 것이냐?”그 질문에 맹은영은 멍해졌고 진방옥의 심장이 순간 조여들었다.“엿듣는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 눈 빨간 놈이 먼저 갈라지자고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진국 땅 안쪽이었고 마마께서 붙여둔 사람들이 뒤에서 따라붙을 거라 생각해서 별 의심 없이 보내줬어요. 왜요? 갈라진 시점에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가 틀렸

  • 시간을 거슬러   제1134화

    “알고 있다.”서인경이 그의 말을 끊었다.“남궁열이 나중에라도 눈치를 채서 주방 놈이 진짜 엿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내고 진짜 엿들은 사람을 찾아 복수하러 올까 봐 걱정한 거지. 그래서 아예 모든 사람이 ‘엿들은 건 너다’라고 믿게 만들려 한 거고. 나한테조차 그걸 끝까지 밀고 가려 한 것이지 않느냐.”진방옥은 들킨 김에 시원하게 인정했다.“맞습니다. 남자인데 여자한테 그런 불안까지 떠넘길 수는 없잖아요.”서인경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조용히 엄지를 들어 올렸다.“그건 인정. 다만 그 주방 놈은 좀 불쌍하네.”칭찬을 들은 진방옥은 기분이 좋아졌다.“걱정 마세요. 저도 아무나 막 죽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 주방 놈은 동네에서 이미 평판이 바닥이었어요. 밖에선 약자를 괴롭히고 집에선 부인과 자식들을 때리고 말입니다. 부인도 몇 번이나 겨우 목숨 건진 적이 있다더라고요. 게다가 딸까지 늙은 놈한테 팔아넘기려고 했다던데... 그런 인간이면, 제가 처리한 게 오히려 잘 된 겁니다. 겸사겸사 저 대신 뒤집어쓰게 한 거고요. 죽어도 억울할 건 없었을 겁니다.”서인경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진방옥이 무고한 사람을 건드릴 성격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괜히 너희까지 위험에 끌어들였구나. 사실 예정훈이랑 짜고 연극만 해도, 일은 충분히 끝낼 수 있었다.”진방옥이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놈들은 엄청 예민합니다. 야랑국 쪽에서 일부러 허술하게 굴면 바로 눈치챌 거예요. 그럼 다음 행선지로 안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헌데 진국 쪽 사람이면 훨씬 경계를 덜 하거든요.”겉으로는 가벼워 보여도 속은 생각보다 깊었다.그는 나름대로 서인경을 안심시키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말입니다. 이번에 야랑국 다녀오면서 얻은 것도 꽤 많아요. 이거 해보니까… 저 장사에 재능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몇 년만 기다리세요. 이 시대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될 겁니다. 그때 되면 국고도 제가 채워줄게요. 마마와 연기준

  • 시간을 거슬러   제1133화

    맹경운을 달래고 난 뒤, 두 사람은 밤 순찰 계획까지 다시 점검했다.모든 준비가 끝날 즈음, 서인경이 보낸 수행원이 진방옥과 맹은영의 이동 경로를 함께 한 사람들이 데리고 돌아왔다.그 사람은 곧장 예를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황후 마마께 아룁니다. 진 공자와 맹 아가씨는 길 내내 말다툼을 하긴 했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진 공자께서 말재주가 좋아서, 위험한 인물을 만나도 잘 넘기며 의심을 사지 않았습니다.”그 ‘위험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서인경도 짐작하고 있었다.덕비, 남궁열, 그리고 예정연.역시 이 일은 진방옥에게 맡기길 잘했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 사람은 이어서 말했다.“다만 야랑국 경계에 이르렀을 때,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위험한 인물들과 헤어진 그날 밤, 그들이 나눈 이야기를 누군가 엿들은 듯했습니다. 그걸 알아차린 자들이 대화를 엿들은 사람을 절벽 끝까지 몰아붙였지만 그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그들은 오히려 저희를 붙잡고 심하게 위협했습니다. 엿들은 자를 내놓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요.”서인경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들이 엿들었다는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남궁열이 말했던, ‘서인경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는 그 말. 그 한마디 뒤에, 이런 일이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그다음은?”“그때 진 공자는 자리에 없었고 맹 아가씨는 크게 놀란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진 공자께서 제때 돌아와 엿들은 자를 찾아냈고 그 덕분에 저희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일이라면… 그것뿐입니다.”서인경의 눈이 가늘어졌다.“엿들은 사람을 찾았다고?”“예, 찾았습니다. 묵고 있던 객잔 뒤편 주방에서 일하던 하인이었습니다. 발견됐을 때 이미 혀가 잘려 있었고 붉은 눈의 그 남자에게 정수리를 얻어맞아 그 자리에서 칠공이 피로 물들었습니다.”담담한 말투였지만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는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서인경은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방금 전,

  • 시간을 거슬러   제1132화

    서인경은 진방옥이 원래 주인의 죄까지 뒤집어쓴 처지를 떠올리며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쓰였다.그녀는 맹경운을 다독였다.“은영이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다. 그 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지. 나는 절대 은영이가 어떤 억울함도 겪게 두지 않을 것이다.”단단한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로 맹경운의 근심이 가시지는 않았다.“불안합니다. 제가 황후 마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진 씨 집안을 못 믿는 겁니다. 안 되겠습니다. 지금 바로 편지를 써서 경성으로 보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진 가에 압박을 넣어 그 망나니 아들을 당장 불러들이게 하셔야 합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붓을 들어 올렸다.그 모습에 서인경은 어이가 없었다.도대체 맹은영이 무슨 말을 했길래 저렇게까지 몰린 사람처럼 초조해하는 걸까. 거의 병이라도 날 기세였다.그녀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맹경운이 급히 써 내려가는 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왜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것이냐? 진방옥이랑 은영이가 뭐라도 있는 것처럼. 그냥 말싸움 좀 한 거 아니냐?”맹경운은 이를 악문 채 붓을 움켜쥐었다.“방금… 은영이가 저 때문에 진방옥 편을 들었습니다. 저한테 소리를 질렀어요. 그 애가… 저한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서인경이 더 캐묻자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드러났다.최근 들어 맹은영이 눈에 띄게 수척해졌고 맹경운이 무심코 한마디 툭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누이를 데리고 나가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진방옥을 불러 따져야겠다고, 그저 농담처럼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맹은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왜 그 사람을 찾습니까?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으니 괜히 건드리지 마세요!”그 한마디에 맹경운은 얼어붙었다.맹은영 역시 곧바로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급히 수습하려 했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더 꼬였고 해명은 오히려 의심을 더 키웠다. 결국 스스로 단서를 드러내버린 셈이었다.서인경은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 시간을 거슬러   제708화

    맹국공은 맹은영의 애교에 결국 마음이 흔들렸다.사람을 보내 황제에게 청했으니 태황태후도 그쯤이면 서인경을 풀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황제는 이미 온몸이 다른데 사로잡혀 궁 밖의 일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을.태황태후의 침전.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때, 한 유모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 들어와 태황태후의 귓가에 바짝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태후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꺼칠한 눈빛은 날카롭게 서인경을 향했다.“상왕비, 수완이 참 좋구나!”서인경은 평이가 일을

  • 시간을 거슬러   제718화

    단은설은 말을 끝내자마자 당연한 듯 주좌에 몸을 기댔다.“들거라! 안으로 들어가 상왕비를 모셔 나오거라. 여긴 후궁이다. 그녀가 제멋대로 날뛰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폐하께도 즉시 전하거라. 열여덟 째 공주께서 방금 승하하셨다고.”명령과 동시에 한 무리의 태감들이 침전으로 걸음을 옮겼고 또 다른 태감은 바깥으로 뛰쳐나가 황제에게 보고하려 했다.“멈춰라!”신비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울렸다.“열여덟 째 공주는 아직 멀쩡하다! 누가 감히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냐? 본궁이 그 자리에서 목을 베겠다!”그 말에, 침전 앞을 지키

  • 시간을 거슬러   제752화

    앞서 서인경이 태황태후의 부름을 받아 입궁했고 문책을 당하는 데다 어림군까지 동원되었다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첨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던 이들 역시 이제야 서왕부의 태도를 분명히 읽어냈다. 그들은 일제히 웃는 얼굴로서인경을 맞이했다.서왕비가 중히 여기는 인물이라면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명백했다. 설령 태황태후의 심기를 거슬러 화를 입게 되더라도 앞에 서서 막아 줄 이는 서왕비였다.서인경이 이런 미묘한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으나 그녀는 그저 미소만 띠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방에 모여 앉은

  • 시간을 거슬러   제731화

    서인경은 연기준의 인품을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명성과 지위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가 정말로 다른 여인을 원했다면 진작에 후원은 처첩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수도를 떠나 몰래 누군가를 만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태황태후 역시 그에게 첩을 들이기 위해 굳이 자신을 찾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늘 경계와 계산으로 가득 찬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서인경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었다.21세기에서 온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온 여자였다. 돈도 있었고 외모도 출중했으며 남편과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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